이성교제와결혼

술취해 춤추는 결혼 풍속도의 시작

이요나 2001. 3. 19. 02:46
이제 성경상에서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정의 구성적 원칙을 깨어버리는 인간의 패역함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대를 떼어내어 여자를 지음으로서 하나가 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둘이 한 몸을 이루는 결혼 과정을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여 부부는 원래부터 하나님의 창조하심 속에서 하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비밀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인간은 두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됩니다. 가인과 아벨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가인과 아벨이 모두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득죄를 하였어도 하나님께 제물을 통하여 나아갈 수 있도록 허락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조로부터 생령이되어 하나님과 호홉적 동행의 삶을 살 수 있었던 인간이 이제는 제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판단에 서게 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제물을 선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나아간 가인을 물리치시고 양의 첫 새끼를 드린 아벨의 제물을 흠향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인은 범죄한 인간에게 명하신 대로 하였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 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라"(창3:18-19)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땀을 흘리며 농사를 지어 그 소산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은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창3:17)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로하여 그가 살아가야하는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그래서 땅은 인간을 위하여 스스로 내던 과실을 멈추고 가시와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저주 받은 땅에서 범죄한 인간의 땀으로 얻은 것을 가지고 나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저주 받은 땅의 소산물이 그리고 범죄한 인간의 땀으로 만든 제물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벨은 생명의 소중을 깨달아 사랑의 대상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입니다.


결국 가인은 시기와 질투로 그의 형제 아벨을 죽이고 맙니다. 하나님의 받으심과 거절하심으로 인간의 속에서 형제를 죽일만큼의 분노가 생긴다는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은 각자의 모양과 모습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고 그 예배의 형식이 다름으로 인하여 시기와 질투가 유발되어 서로 정죄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결국 퇴출당하고 맙니다. 하나님 앞에서 떠나 살아야 하는 고통과 두려움에 대하여 가인은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 벗어난 인간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살기 위한 극한 생존경쟁 속에서 싸우고 죽여야 하는 필사적 전쟁이 지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가인은 그 생존경쟁을 위하여 자신의 아성을 구축하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에서 떨어져 나갔음으로 자기 생명을 자신이 지켜나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삶의 방법도 하나님의 정하심을 떠나 자신의 방법대로 구축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인의 첫번째 반역은 자신의 이름으로 성을 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존속 시키는 것입니다. 요즘 세습사건과 맞물려 이 말씀은 음미하여야 할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후 가인의 후손들을 두번째 반역은 두 아내를 취하는 것입니다. 가인의 후손 라멕은 아다와 씰라라는 두 아내를 취한 후 그들로 하여 자신의 말을 듣게 합니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나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데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배이로다"(창4:23-24)

이 말은 아주 무서운 발언이며 계획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떠난 인간은 모두 인간 통치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누구도 그를 거역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더욱 가공할 만한 것은 자신의 선포의 입지를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위치에 놓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주권과 판단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도 그는 가인에게 내린 하나님의 징계를 변개하여 자신의 말로 다시 선포하고 있습니다.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칩십칠배로다" 이것은 그 아무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교만입니다.



이 때부터 세상 가운데서 여인들의 위치는 통치자의 마음과 소욕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의 죄악은 걷잡을 수 없는 비탈길로 내달리고 있음은 그 죄의 속성이 누룩과 같고 문둥병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음에서 인간의 여인들을 취하는 영적존재들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