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누가복음20:8) 세상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

이요나 2006. 5. 11. 18:34
(누가복음20:8) 세상의 권세와 하늘의 권세 (눅20: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앞에서 성경에 기록되신 바와 같이 나귀새끼를 타고 무리의 찬송을 받으며 당당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오늘날은 벤츠를 타는 목사들도 많습니다만 성경에는 네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임하신다 기록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메시야이심을 들어 내 놓고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서자 성전 안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환전을 하고 제물로 쓸 짐승들을 비싸게 팔고 있었습니다.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께서 자기 아버지의 집에 들어 섰는데 그들은 종교활동에 연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님은 분노하여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도다’ 하시며 그들을 내어 쫓았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자기를 따르는 소수의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난감한 종교지도자들 곧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인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모여 예수를 죽이려고 방도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예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 그들도 어찌하지 못하였습니다. I. 권세의 출발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서 나지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하루는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은 백성들을 가르치시는 예수께 나와서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다그쳤습니다. 어쩌면 그들로서는 당연한 논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전에서 행하는 모든 권세가 자기들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주장하고 있는 권세 대하여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권세를 운운하는 것은 예수께서 자신들에게 속한 권세를 침범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권세란 말 그대로 권위로부터 나오는 힘으로서 통치의 질서에 속한 것입니다. 바울은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서 나지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롬13:1)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것입니다. 우리는 흥미롭게도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사단에게 있음을 성경에서 찾아 볼 있습니다. 예수께서 광야에서 사십일간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주께 나아와 천하 만국을 보이며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눅4:6) 말하며 “그러므로 네가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하였습니다. 그러면 이 권세는 언제 누구로부터 사단에게 넘겨진 것일까요? 이것은 바로 에덴동산에서 처음 창조된 인간 아담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상실한 것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땅과 바다와 인간 세계의 모든 권세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하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과 땅 아래와 바다에 속한 모든 권세는 하나님에게서 속한 것입니다. 사단은 다만 죄에 속한 세상을 통치할 권세를 갖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요5:27) 하셨고 그가 자기 땅에 오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1:12) 기록하였습니다. A. 종교지도자들의 질문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눅20:2) 여기서 우리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께 권세를 묻는 이유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의 모든 권세가 자신들에게 속한 것이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모세를 통하여 율법으로 정한 것으로 그 아무도 변개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에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9장 24절에는 모세와 아론 외에는 다른 제사장들이나 백성들이 여호와께서 임하신 산에 올라 오지 못하게 하신 말씀이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레위지파를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 받을 지파로 정하시고 그들에게는 땅을 기업으로 주지 않으셨습니다(신18:20,23-24). 또한 레위지파 중 특별히 아론의 자손을 성별하여 대제사장으로 삼아 특별한 기름부음의 의식을 통하여 그 직무를 담당하게 하였고 대제사장의 직무는 세습되었습니다(출29).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선 이스라엘의 최고의 대표자로서 제사장들과 율법학자인 서기관과 각 지파의 두목인 장로들을 통치하였습니다. 따라서 성전 안에서 행하는 모든 종교활동과 이스라엘 속에 속한 모든 제도는 대제사장의 권세 속에 있었습니다. 또한 서기관들은 율법의 수호자가 되어 율법을 연구하고 해석하며 적용하는 교사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이 이에 속한다 하겠습니다. 서기관은 포로귀한 후에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었는데 레위지파와 제사장들 중에서 선발되어(느8:7,9) 유대주의의 초석을 이룬 랍비문화를 이루었으며, 유대교의 중심세력인 바리새파를 만들어 교권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지파별로 가장 존경받는 가문의 어른을 장로로 세워 지파를 대표하고 각 지파들을 이끌어 갔습니다(신29:10. 눅19:47). 이러한 제도는 이미 출애굽기 4장 29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장로들은 각 지파를 다스리며 삶 속에 필요한 실제적인 율례와 윤리 문제들을 다루는 유전을 만들어 준수하게 하고 감찰하였습니다(마15:2,21). 그러므로 장로들이 예수님을 체포하고 심문하였으며 후일 사도들을 심문한 것입니다(마26:3,37; 행4:5). 이처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절대 권위인 하나님의 율법을 토대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적 권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로마 정부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해서는 유대교 지배권세들과 합의를 이루지 않으면 않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율법과 역사적 조명을 받지 않은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와 잘못된 종교활동을 막고 백성들을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누가 너에게 이러한 권세를 주었느냐고 따진 것입니다. B. 주님의 질문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눅20:4) 이에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 물으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대제사장 가문의 세례 요한의 권세를 물으신 것이 아니라 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 곧 침례에 대하여 물으신 것입니다. 주님의 되물음에 그들은 낭패에 처했습니다. 만약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 온 것이라 말하면 백성들의 지도자인 너희는 왜 세례를 받지 않았느냐 할 것이며 만약 요한 개인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말한다면 백성들이 모두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므로 그들을 돌로 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은 진퇴양난이 되어서 “어디로선지 우리도 모르겠다” 답하였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나도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겠다” 하셨습니다. 정말 통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전 기독교 텔레비전에서 동성애에 관한 토론회에 패널로 초대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요나가 동성애에 대하여는 일가견이 있는 줄 알았었는가 봅니다. 그곳에 가보니 신학교 윤리학 박사와 신학교 교수 그리고 크리스챤 정신과 의사가 함께 패널로 참석하였습니다. 한 시간동안 사회자의 정해진 질문을 따라 답변해야 하기 때문에 충분한 토론이 되지는 못하였지만 나는 함께 패널로 참석한 분들이 과연 성경을 가르치는 교회의 지도자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동성애 접근은 복음과 영혼의 구원에 있지 않고 윤리적 보호에 두고 있었습니다. 정신병원 과장이라는 분은 의학계에 제시된 원숭이들의 동성애를 이끌어 내며 생물학적으로 동성애자들은 선천적 성향을 갖고 태어난 것이라는 괴변을 늘어 놓았습니다. 참으로 크리스챤으로서의 성경적 지식과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1. 성경의 증거 여기서 우리는 요한의 권위의 출발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기를 모든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였을 진데 우리는 그 모든 권세가 하나님의 정하심과 또 그의 말씀을 통하여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나 서기관이나 장로들의 권위도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의 세례로 그것이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려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출발한 것인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례 요한에 관하여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를 통하여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말4:5-7) 예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께서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올 것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2. 천사의 예고 세례 요한의 출생은 이스라엘 중에서 가브리엘 천사에 의해 전달되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요한의 아버지인 대제사장 스가랴가 성전에서 예배를 집도할 때 주의 천사 가브리엘이 향단 옆에 나타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였습니다. 계속하여 천사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와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스라엘 자손을 주 앞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 오게 하겠음이니라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 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눅1:14-17)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그 증인들을 통하여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었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또한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인증되었습니다. 어느날 제자들은 예수께서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막9:11)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그들에게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막9:12)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눅7:27) 하시며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눅7:28)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주께서 ‘기록된 바와 같이’; ‘기록된바’ 라고 말씀하여 성경의 기록을 주시하신 일입니다. 우리는 계시록 11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앞서 다시 출연할 엘리야의 에 관한 기록을 다시 보게 됩니다. II. 권세의 표적 A. 세례 요한의 권세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례 요한을 통해 나타난 성경적 권세입니다. 만약 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권세가 없었다면 그것은 세상에서 아무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마가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세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막1:3-5)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세례요한의 메시지를 듣고 각 사람에게 나타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만약 요한이 베푸는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또한 침례를 받은 사람들 마음 속에서 회개의 심령이 임하지 않았다면 온 이스라엘 백성은 요한에게 나아와 침례를 받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세에 대한 표적은 그 메시지를 받아드린 사람들의 심령 가운데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하여 살펴 보십시다. 위에서 말한 성경적 원리를 적용할 때 먼저 예수님의 출생은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되어야 할 것이며 또한 천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고지 되었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에게 나타날 권세에 대하여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사61:2, 눅4:18)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세례요한이 잡혀 옥에 있을 때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당신이 오시기로 한 그이입니까 아니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물으니 예수께서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어리가 들으며 죽은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마11:3) 전하라 하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고지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들었으며 그의 증인들이 기록한 성경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과 사심과 또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달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보게 됩니다. 사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성경의 중심과 메시지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계19:10) 한 것입니다. C. 권세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가 발견해야 할 메시지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권세가 우리에게 어떻게 나타나느냐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는 권세가 예루살렘을 주관하고 있던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에게 주어진 종교적 권세와 같은 것이라면 우리 또한 아직 그리스도에게 임한 하나님의 권세를 체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지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져버리니라”(눅7:29-30)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미리 하신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에게 침례를 받으면 하나님의 권세가 그에게 임할 것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에게 주신 권세가 요한의 침례로 하여 침례를 받은 모든 백성들에게 임하였듯이 그리스도의 권세가 하나님의 권세의 능력으로 나타나야 할 것이며 이러한 내용들이 그 말씀을 받은 사람들의 증거로 성경으로 전달되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에서 무엇을 듣느냐(막4:24) 어떻게 듣느냐(눅8:18)는 매우 중요하며 그것이 믿는 자들의 책임인 것입니다. III. 교회의 권세 A. 세례 요한의 예언 세례 요한은 그에게 나아와 침례를 받는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거니와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막1:7-8) 증거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세례 요한을 통해서 나타난 권세는 물세례 곧 침례를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다시 증거하여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 예언하였습니다. B. 예수님의 약속 주님은 부활 후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속한 권세의 나타나심에 대해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요한으로부터 받는 물세례를 상기 시킨 점을 기억해 두어야 합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 권세의 권능을 말하여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권능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곧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택하신 사도들에게 주실 권세의 능력을 말한 것입니다. 그후 그들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의 강림으로 약속하신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C. 그리스도의 명령 이제 우리는 사도 곧 교회에게 주신 권세 곧 성령의 능력이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되느냐를 살펴 볼 차례입니다. 주님은 생전에 그의 사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하셨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맡은 예수 그리스도의 택하시고 보내신 자 사도들에게 주신 권세이며 오늘날 우리 교회의 권세인 것입니다. D. 교회의 문제점 바울은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는 어떤 제자들을 보고 그들 속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음을 보고 말하여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행전19:2)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물으니 그들은 ‘요한의 세례로라’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이 그들을 향하여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들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말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안수하니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여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행전19:5,6).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이어받지 못한 것입니다. 아직도 유대인들과 같이 목사와 신학자와 장로들로 결속된 종교적 권세 속에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성도들은 모두 그들의 권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으로 알지마는 그리스도의 권세를 교권과 종교활동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권세에 관한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메기지인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아직 이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고로 많은 성도들이 하늘로부터 온 권세 속에 있지 못하고 종교적 권세 속에서 있는 것입니다. 부디 잠에서 깨어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