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막9장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2)

이요나 2001. 8. 27. 18:12
앞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본연의 임무에서 떨어져 나가 다른 종교적 행위에 빠짐을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의 속성이 본디 자기 충족에 있어 자기 만족과 자기 자랑에 집착하게 됩니다. 이러한 속성은 주의 제자라고 하여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끄시기 위하여 그의 아들 예수를 우리의 주로 세우시고 그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와 함께 살며 수많은 기사와 이적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적 능력을 체험한 제자들도 세상 흐름에 빠져 인간의 본디 속성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로 오늘날 변화 받지 못한 우리 교회의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음란에 빠지고 믿음에서 떠나 신학적 논쟁을 일삼고, 자기 권능적 욕망에 사로잡혀 은사주의에 빠져 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사실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벌어진 일들이 작금에 그대로 실현되고 있음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주의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받은 후에도 제자들은 천국에서의 자리다툼에 혈안되어 있습니다. 주께서는 자기를 버려 새 생명을 주셨는데, 그 소망을 지킬 교회들은 교파간의 경쟁의식과 장자권 다툼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오늘 9장 본문에는 또 하나의 신학적 논쟁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일을 보면 이 때의 상황은 후일 우리의 거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이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함으로 금하였나이다"(9:38). 오늘 날 우리 교회 속에는 이러한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많은 교회들이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아직 한국에서 한국교회의 풍조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여 정죄를 받지 않은 교회는 갈보리채플이 유일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우리 갈보리채플은 믿음의 신조에서 우리는 다른 교파의 주장하는 교리들이 모두 옳다고 찬동하지 않으며 그들의 지나친 강조들을 따르지 않는다 전제하면서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이유로 주의 지체인 교회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말에 예수께서는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교파들이 자기들의 믿음의 이념을 가지고 주를 섬김에 있어 자기들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다른 교회들을 비방하고 더 나아가 이단으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단으로 알고 있는 많은 교회들이 모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엄격히 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탄생하시고 인간의 죄를 사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으시고 기록대로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서 하늘에 오르셨으며 이 땅에서 진리로 교회를 세우시고 약속하신 그의 날에 이 땅에 다시 오실 것과 그를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나에게 믿음을 더하소서(2)


막9:49-50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누가 이단인가?>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성경적 해석의 모호함에서 오는 것으로 다시 말하면 성경의 지식에 부족하여 오류에 빠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물론 이에 더 지나친 자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이름을 부인하고 멸망의 길로 들아 간 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단이 아니라 성경해석의 오류에서 갈라진 교파간의 교리적 차이에서 발생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오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것은 모두 어느 신학적 교리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 발생한 것입니다. 성령은사라든가 귀신론, 전도학 등을 지나치게 확대 설명함으로서 균형을 잃었기 때문에 발생된 것입니다. 또 아직 확증되지 못한 종말론적 문제들을 부분적 지식과 개인의 이상적 환상에 빠져 성경의 말씀의 범위를 넘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원인은 무엇인가?>
    그러나 이러한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한정된 인간의 부족한 성경적 지식과 높아지려는 인간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서기관들과 신학적 논쟁에 빠진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문맥을 보아 아마 귀신론에 대하여 논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높은 자에 대한 쟁론에 빠졌습니다. 주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세우시고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나라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어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하셨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을 기억합니다. 이 때 주께서는 내가 너희의 주와 선생으로 모범을 보였다 말씀하시고 너희도 서로 이 같이 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근본교리가 되어야 할 부분입니다.


    <누가 큰 자인가?>
    오늘 주께서는 우리 교회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누가 크고 작으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무엇을 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이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땅에서 무엇을 한 사람들이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느냐가 아닙니다. 또 누가 주의 이름으로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내가 그리스도에 속한 자임과 또 내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을 섬기는 자들이냐에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신대로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세상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 오늘의 말씀 속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그리스도에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 주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족케 하는자...>
    우리를 두렵게 하는 말씀은 다음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멧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던지움이 나으니라"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는 이 말씀을 뒷받침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있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메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니라"(눅17:1-2)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어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여기서 말씀하신 "네 형제"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소자 즉 작은 자"는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지.... 마가복음 2장에서 예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소자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셨습니다. 소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 나라의 자녀가 된 자들을 말합니다. 누가는 주께서 하신 말씀을 감당하기 어려워 주께 도움을 청하는 제자들의 마음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누가 주의 백성을 실족치 않을 만큼의 온전한 지식을 갖추었겠습니까?


    <불로서 소금치듯..>
    오늘 주께서는 "네 손이 범죄하거든 찍어 버리라" 하셨고 다시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면 찍어 버리라" 하셨습니다. 또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면 눈을 뽑아 버리라"고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디 우리의 손이나 발이나 눈을 뽑으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아직도 어리석음 속에 있는 자들이 진리의 지식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아둔하고 미련하여 이러한 것들을 억지로 풀고 있는 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자들 즉 교회의 행함과 소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또 우리가 어디를 행하고 있느냐에 따라 또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우리는 인간의 속성에 빠져 그릇된 길로 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치듯함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불은 태우는 속성과 온전한 그릇을 만드는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주시는 자라고 증언한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부르신 제자들의 삶은 그리스도의 불 속에서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비록 당신의 환경이 불로 소금치듯 하여도 인내하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온전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는 일, 이 말씀을 가슴에 두십시오. 10장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