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막10장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이요나 2001. 9. 21. 13:01
우리말에 세상만사 마음먹은 대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말이 생긴 것을 보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되는 세상이 있었던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에 통하는 시대가 아닐듯 싶습니다. 그만큼 경쟁력이 치열해졌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달려가야하는 세태 속에서 평상심을 찾기란 그리 쉽지않습니다. 요즘 마음 속에서 자꾸 젊은이들에 대한 두려운 걱정이 들곤 합니다. 젊은이들을 바라보면 마치 자전거 대회에 출전한 사람들 같이 느껴집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길을 있는 힘을 다하여 달려가야 하는 그들을 보며 언젠가 힘이 빠져 패달을 밟지 못할 때 넘어지고 말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맘 그지없습니다. 세상살이란 흡사 자전거 경주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힘이 있을 때까지 밟지 않으면 넘어져 낙오가 되고마는,,,, 이처럼 힘겨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현대속의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들이 앞으로 겪어야할 고통을 바라봅니다. 성경은 이러한 고통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수천년동안 외쳐왔습니다. 바울은 이제 잠에서 깰 때가 벌써 되었나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휠씬 가까워졌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그는 그날이 도적같이 이를 것을 너희가 안다 하였고 그러나 너희에게는 그날이 도적같이 이르지 못한다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너희는 빛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과연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젊은이들은 빛의 자녀인가 묻고 싶습니다. 요한은 영원한 생명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우리는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라고 말하며 이러한 축복은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는다 하였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우리를 부르신 에수 그리스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아니 우리 교회는 그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주의 오심을 예비할 그의 교회가 주를 알지 못한다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하여 주를 믿는 것일까요? 복음이라는 명목으로 신문을 만드는 일일까요? 복음이라는 명목으로 기도원을 짓는 일일까요? 복음이라는 명목으로 대형교회를 짓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교회는 그의 말씀 즉 성경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부디 우리의 인생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돈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막 10: 24-25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에 놀라는지라 에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말씀하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기가 어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물질만능시대>

    물질 만능 시대가 도래되면서 사람들의 목적은 부귀와 공명입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세상은 서로 죽이고 밟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 나갑니다. 그러나 동서고금을 통하여 부귀공명을 성취한 자가 없으며 또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자자손손 지킨 사람들은 없습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입은 영광이 들풀만도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얼마전에 작고한 우리나라의 경제계의 대가 정주영 회장도 지금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고인이 되었고 그가 일생을 헌신하여 일으킨 현대도 지금은 그것을 지탱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허무한 것은 그가 이룩하여 놓은 수많은 공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가 다음 세상에서 영생을 누린다는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삼성을 일으킨 이병철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정말 힘겨운 노력으로 한세상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한 줌의 흙이되어 있을 뿐입니다.


   

<성인들의 노고>

    최근 조선시대 성리학자 퇴계 이황(1501-70)의 사상을 기리는 학술대회가 한국과 일본 중국의 성리학 후계들 가운데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5백년전에 태어난 퇴계 이황은 송나라의 정주 성리학을 발전시킨 학자입니다. 그의 학문은 후세에 중국의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희를 능가할 정도로 그 학문의 경지가 높이 평가되었습니다. 그는 경서 중에 심경을 주시하였으며 인간의 진지한 마음가짐인 경이 인성을 함양하는 가징 근본적인 요건으로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 심신을 수양함을 역설하였습니다. 그는 물아일체와 천인합일을 주창하며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심미안을 즐겼습니다. 공자나 노자나 또 석가도 모두 인산의 심성과 삶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들의 도덕적 가르침은 어쩌면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것을 들어서 그들이 예수보다 먼저 태어난 것을 말하며 예수도 그의 제자라고 억지를 부리기도 합니다. 고대로부터 수많은 성인들이 인생속에서 선을 이루기를 힘써 왔습니다. 많은 학문과 명상과 수행을 통하여 온전한 선을 이루기를 힘써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인간은 선에 이르지 못하고 모든 인생이 돌아가는 길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석가도 공자도 노자도, 퇴계 이황도 모두 같은 길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아직 그들의 가르침만이 더 나아가지도 못한 채 그것을 숭상하는 종교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영생의 문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문제도 사실 이러한 맥락입니다. 한 부자가 예수께 달려 나아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자로 태어나 호의호식하면서 부족함이 없이 살았으면 되었지 이제 한 술 더 떠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기를 바라니 없는 집안에 태어나 호강한번 못해본 사람들에게는 정말 울화통 터지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은 말타면 종부리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내가 계명을 알고 있으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다"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십계명 중 인생살이에 필요한 계명입니다. 예수께서는 십계명 중에서 인간에 속한 6가지만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의 흥미를 돋구어 줍니다.


   

<돈으로는 안 된다>

    부자 청년은 예수의 말씀에 "선생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그를 사랑하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얼마나 이쁜 말입니까? 사실 젊은이들이 이처럼 행하기는 쉽지 않은 것입니다. 한세상 살면서 주깨서 말씀하신 6가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고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부족함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처럼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살기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행함에 오직 한가지 부족한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셨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황당한 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를 따르라니 이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구원의 능력>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위한 새로운 가르침을 터득하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나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또 이것은 재물의 속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인생 속에서 사람의 도를 깨닫고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다 지켰다 하더라도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또 어떤 목사들은 이것을 들어서 재물을 팔아서 교회에 바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수께서 하신 말씀의 주제는 "나를 따르라"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나를 따르라는 것은 나의 제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해석적 의미도 자연히 플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3장과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천국비밀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따르지 않은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영생을 누리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에는 또 많은 오해를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이 말을 목사로 국한 시키려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신약에서의 주의 종이라는 의미는 성령의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말하는 만인제사장 시대의 도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주께서는 근심하고 돌아가는 부자 청년을 보시며 그의 제자들에게 새로운 제자의 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잇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자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디 있는 재물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겠습니까? 이것이 어디 부모형제 처자를 내어버리라는 말씀이겠습니까? 주께서는 앞에서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를 따르는 자 즉 복음을 위하여 사는 자들은 무엇을 생명으로 삼느냐에 중점을 두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온전히 복음사역에 임하지 못하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부모형제 처자와 관련된 물질관계 속에 엉켜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속성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더럽게 합니다. 시기와 질투와 분노를 갖게 합니다. 가지면 가질 수록 음부처럼 입을 벌리고 내 인생을 불 속으로 태워버리고 맙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재물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막는 커다란 장애물입니다. 이러한 일로 주깨서는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로서 먼저될 자가 많음을 시사했습니다. 재믈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려는 목사님들 정신차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