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막10장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이요나 2001. 9. 23. 09:45

오늘 어느 신문 칼럼에서 우리나라는 다원주의 민주주의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필자는 다원주의 민주주의란 자신들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하여 조건부 화합, 절충, 이해하는 것이라 말했습니다. 사실 다원주의란 신학적 용어인데 이제는 사회 전반적인 용어가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세상은 자기 중심적이 되어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며 목적 성취를 위한 이기주의의 팽대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제 우리가 살펴본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은 부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물질에 빠져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매스켐에는 또 이용호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가 떠들석합니다. 이 사건은 얼마전 온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모재벌 부인의 옷로비 사건과 연루된 고관의 이름이 다시 거명되고 있어 우리의 입맛은 씁쓸해집니다. 이러한 일들의 문제를 면밀히 살펴 볼 때 모두 물질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노력은 오직 사회와 국가를 위한 봉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호들의 일생을 살펴볼 때 그 말은 증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기르지도 않고 창고에 들이지도 않는다 하시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고 하셨습니다. 한 세상 살면서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지 우리를 혼동케 합니다. 성인군자처럼 산중에 들어가 초근목피하며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인지... 그러나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여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가르칩니다. 성경은 규모와 질서 없이 사는 자들에게서 떠나라고 가르칩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삶의 목적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물질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의 삶을 위하여 필요한 도구이지 삶을 주관하는 이상이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려할 때 먼저 자기와의 이해관계를 따지게 됩니다. 따라서 모든 일에는 자기 목적 또는 어떤 조건이 필수적입니다. 오늘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 헌신할테이니 나중에 주님이 출세하시는 날 우리 자리도 보장해 주십시요 말하고 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도 같은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일에도 많은 조건을 붙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막 10: 35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내가 원하는 것>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또 다른 인간의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앞에서 소개된 부자 청년은 물질과 관련된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께 나아온 사람은 예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 두 형제였습니다. 그들은 주의 영광 중에 하나는 주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는 이 소리를 들은 다른 제자이 이를 갈았다고 기록하였습니다. 남 잘되는 것을 못보는 인간의 속성이 보입니다. 그들도 야고보와 요한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야고보의 어머니가 나아와 두 아들의 영광을 위하여 주께 부탁드린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어쩌면 모든 인간들의 이상이요 삶의 최대 목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그 자녀로하여 가문의 명예를 얻기를 소망합니다. 물질과 권위를 택하라면 아마 모두 권위를 택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권세는 물질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왜 알지 못하는가?>

    주께서는 두 형제의 말을 듣고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앞에서 제자들에게 이제 곧 예루살렘에서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당할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칙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메시야의 고난과 부활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마 변화산상에 올라갔었던 두 제자는 이제 곧 자기들이 변화산에서 목격한 주의 나라가 곧 이루어 질 것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입지를 확보하려했는지 모릅니다. 주의 좌편과 우편에 앉고 싶은 것은 어쩌면 믿는 자의 모든 소망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한다"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그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두 제자는 할 수 있다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이해하고 있었고 또 자신들도 순교할 각오가 있음을 피력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대단한 믿음이요 용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말 칭찬 받을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이들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는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말씀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죽음을 불사하고 사명을 다 할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어떤 명예를 얻기 위한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신정정치>

    먼저 우리는 왜 야고보와 요한이 주책맞게 그러한 질문을 하여서 주님으로부터 힐책을 받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제자들 역시 아직 하나님 나라의 체제와 권세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체제와 질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도 같은 권력 구조 속에 있는 것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아시는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에 대하여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구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주께서 이방인의 체제를 언급하신 것은 지금 이스라엘은 이방인의 체제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은 신정체제 속에 있던 민족입니다. 과거 그들이 비록 왕정정치 속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로 하나님의 권세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국가는 탄생 처음부터 신정정치 구조속의 국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서 이방인의 국가 체제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 큰 틀로 보면 하나님의 주권 속에 있었던 세상이 사단의 유혹을 받아 세상임금의 체제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의 종>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다고 헌신분투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이 결국 교회안의 권력구조 속에서 마천루를 향한 투쟁이 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오른편 왼편에 앉을 것인가하는 싸움입니다. 어느교단은 서로 장자교단이라고 공공연하게 권력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철만 되면 각 교단별로 총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총회에 참가해 보지 않았지만 교단 총회장이나 총무 서기, 등 임원이 되기 위하여 수천만원의 선거 비용과 치열한 세 싸움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벌써 기독교 신문에는 정말로 더러운 모습들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조직 속에 속해 있지 않음을 감사드립니다. 매년 미국의 갈보리채플에서 열리는 사역자 컨퍼런스에서는 참으로 신기한 일을 보게됩니다. 전세계에서 참가한 3천명이 넘는 사역자이 모두 같은 모습으로 아름다운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개척교회 초년병 젊은 목사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주는 갈보리채플 창시자 척 스미스 목사의 모습은 마치 아버지와 아들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잠언서에는 두령이 없이 가을을 준비하는 개미에게서 배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서로 높아지려는 다툼을 하면서도 주의 오심을 준비하지 않고 하늘로 높이 바벨탑을 쌓으려 하는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주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정말로 이 말씀은 우리 교회들이 다시 한번 가슴에 새겨두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늘 주께 무엇을 해주시기를 원하시겠습니까? 주의 오른편과 왼편에 서는 영광입니까? 나는 주의 발밑에서 주의 말씀을 듣는 자로 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