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막9장 네가 하늘나라를 함께 가 보겠느냐?

이요나 2001. 10. 6. 19:11
오늘은 예수님과 그의 세 제자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과 함께 천상(天上)엘 올라가 보십시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는 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를 올라가 보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사시던 시절은 높은 산에 올라가야만 하늘을 좀더 가까이 갈 수 있는 시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산은 아마 헤르몬산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앞에서 주님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을 지나셨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잠깐 거론하였지만 가이사랴 빌립보는 경관이 신비하고 수려하여 고대로부터 바알신의 중심지였고 빌립이 이곳에 신전을 지어 로마황제 가이사랴를 신으로 봉헌한 곳입니다.


그곳을 지나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무어라고 하느냐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이 가이사랴 빌립보는 북동쪽 21km 지점에 우뚝 선 헤르몬산의 정기를 한몸에 받은 지방으로 고원도시였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떠나실 때부터 제자들을 데리고 헤르몬 산에 올라 앞으로 장차 올 미래의 세계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실 작정이셨던 것 같습니다.



나는 예수께서 이 산에 오르신 시기에 대하여 마태와 마가가 모두 엿새라는 주석을 단 것에 시선이 쏠립니다. 앞뒤 전후 사정을 살펴보아 그 시점에서 엿새 후라는 주석을 달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역을 유대인의 절기에 맞추어 독자로 하여 그 행적을 추적하기에 용이하도록 배려를 하였지만 마가와 마태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기서 엿새라는 주석을 단 것에는 글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인가 생각할 여지를 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9장 시작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변화산의 이야기는 아직도 도래하지 않은 주의 날에나 있을 광경입니다. 따라서 9장 전체에 흐르는 이야기는 그 당시 실제적인 이야기로서 장차 교회사에 일어날 일들을 암시적으로 예언한 말씀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연역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싫어합니다만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본문의 말씀은 그러한 의미를 첨가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후 엿새 후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은 예수님과 산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한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비로소 예수님께서 메시야 고난을 말씀하시고 제자의 도를 가르치신 날로부터 칠일 째가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들은 교회와 관련되었으며 그날 이후로 시작될 교회사에 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추상적이 되어서는 안되지만 인간의 세계는 한계속에 있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원에 속하였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말라고 경계한 것입니다.

네가 하늘나라를 함께 가 보겠느냐?!



막9:7 마침 구름이 와서 저희를 덮으며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꿈인가 생시인가?>

오늘은 세 제자들이 경험한 미리 가 본 천국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살펴보기 위하여는 사복음서를 복합적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누가는 이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제자들이 졸다가 아주 깨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눅9:37). 따라서 어쩌면 이 일은 밤중에 일어났을 것이고 높은 산에 오르느라고 지쳐있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누가는 또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기록하였습니다(눅9:29). 이것으로 우리는 이 과정이 일상적인 과정 속에서 순간적으로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해 들어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지쳐 피곤하여 졸고 있었고 예수님은 예정하신 것을 위하여 기도하시자 순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제자들이 깬 것입니다. 누가는 "아주 깨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제가 이것을 설명하는 것은 이 일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음을 환기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세상의 말로 표현할 길 없는 제자들은 "영광 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만약 나라도 지금 이러한 세계로 돌입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에서 체험하게 된다면 "주의 영광"을 외쳤을 것입니다.


엑소더스>
    누가는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별세"라는 우리말은 출국이란 의미의 "엑소더스"( exodus)입니다. 예수께서 만난 두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 속의 위대한 지도자들로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자들로서 어떤 의미로서 "엑소더스"를 실제로 체험해 본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에서 "엑소더스"하였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나라의 임함을 소망하여 사십주야를 하나님께 간구하여 육신의 한계를 벗어나 불말을 타고 이 땅에서 하늘로 엑소더스 하였습니다. 모세는 육체의 노예를 벗어났다면 엘리야는 이상의 세계를 벗어났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세 제자들이 들은 것은 주님의 "엑소더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영이시고 인간으로 오신 예수께서 영원한 세계로의 출국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아직 우리의 한계로는 측량하기 힘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이 일을 생각할 때, 인공위성이 궤도를 진입할 때의 원리를 상상해 보기도 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나라를..>
   
마태는 17장 1절부터 8절까지에서 이 때의 광경을 기술하면서 얼마나 감격적이었던지 "보라"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썼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지닌 채 상상을 초월한 경험하지 못한 거룩한 세상을 맞는다는 것은 과학적이든 의학적으로든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일은 믿음과 오직 성령의 가르치심으로 터득할 뿐입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옷이 광채가 나며 희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는 세상의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주께서 그의 천사들과 영광 중에 오실 때 그들의 용모에 대하여 알 수 있으며 그의 부름을 받은 우리도 그와 같이 거룩한 모습으로 화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는 한복을 입었던 기모노를 입었던 양복 아니면 반바지를 입었던 그 옷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과거에 역사적인 인물들을 함께 만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세 제자들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스스로 알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은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스스로 모든 언어를 터득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영어를 몰라도 되고 프랑스어나 일본어 중국어를 몰라도 우리는 자신의 말로 무엇이든지 거리낌 없이 말하고 듣게 될 것입니다.


    <예수나 모세나 엘리야나..>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한다는 것은 그 세계에서도 자기의 의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으며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상황 속에서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자기의 의지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저희가 심히 무서우므로 저가 무슨 말을 할는지 알지 못함이라" 기록하였지만 그것은 그들이 미처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이라 자신들의 지식의 범위 내에서 말한 것이지 그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높은 사람을 만나도 경겁 중에 말을 하지 못하는데 감히 영광 중에 역사 속의 사람들을 만나 그 상황에서 언감생심 말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의사를 말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그 시대에 우리도 우리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베드로로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모세와 엘리야의 위치에 대하여 동등의 위치로 착각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선명이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와 동등으로 삼고자 합니다. 김용옥 교수는 노자를 예수 보다 위에 있다고 논평하였습니다. 요즘 일부 기독교계에서도 다른 종교의 신적 요소들을 인정하며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을 것이라는 망발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는 내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재림의 때에 이 땅에서 발생할 문제는 일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신적요소를 가진 사람들과 나란히 놓게 될 것이라는 암시가 곁들여집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