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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3:38) 유대인의 왕

이요나 2006. 6. 29. 17:40

(누가복음 23:38) 유대인의 왕

 

(눅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을 목격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데 그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그리고 부활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에 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하나님의 뜻으로 성취된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것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 사실이 없다면 성경은 그 존재 가치를 말할 수 없으며 기독교 또한 이념과 철학을 가르치는 다른 종교들과 다를 바 없다 하겠습니다. 변할 수 없는 이 두 가지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유이자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영광의 토대가 됩니다.

 

유대교의 공회로 끌려간 예수님은 백성들의 장로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네가 그리스도여든 우리에게 말하라’ 욱박질렀습니다. 이에 주님은 “내가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물어도 너희가 대답지 아니할 것이니라 그러나 이제 후로는 인자가 하나님의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으리라”(눅22:67-69) 답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물었습니다. 이에 주께서 “너희 말과 같이 내가 그니라”(눅22:7) 답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그들은 더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하며 예수님을 유대 총독인 빌라도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총독에게 끌고 나아가 ‘이 사람이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곧 그리스도라 하였다’ 고소하였습니다. 하나는 단일 유대교 국가인 이스라엘의 종교적 이단성을 언급한 것이고 두 번째는 로마 속국으로서의 정치적 논쟁을 고소의 명분으로 삼은 것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 말이 옳도다” 답하였습니다. 예수의 말씀들은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고소인들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다’ 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이러한 결론은 ‘유대인의 왕’이란 종교적 해석으로 로마정부로서는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 당시 유대인의 왕은 헤롯 안디바였습니다. 그는 헤롯대왕의 아들로서 로마 정부로부터  분봉왕의 작위를 받아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란 고소한 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 문제이기 때문에 로마정부로서는 골치 아픈 종교 문제에 끼어 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실 로마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자주권을 승인하는 것으로 정치적 구속력을 가졌던 것입니다.

 

I.유대인의 왕’ 의 의미

성경에서 유대인의 왕이란 말은 신약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물론 구약에서도 유대인의 왕에 대한 뉴앙스를 가진 내용들은 많이 소개되었습니다만 이 호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복음서입니다.

 

 A. 천사의 증거

성경에서 유대인의 왕이란 다윗의 위를 이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나타나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1:31-33) 하였습니다.

 

  B. 선지자의 증거

구약의 선지자 스가랴는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나귀새끼니라.’(슥 9:9) 예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20장 38절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 주께서 스스로 성취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C. 이방인 박사들의 증거

그후 마리아가 그 남편 요셉을 따라 베들레헴에 올라 가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을 천사의 말을 따라 예수를 칭하였습니다. 이 때 동방의 박사들이 메시야의 별을 보고 예루살람에 찾아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이란 이스라엘 민족의 등불처럼 가슴에 새겨진 메시야입니다만 그의 별을 보고 유대인의 왕이라 칭호한 것은 이방인이였습니다.

 

  D. 예수님의 증거

복음서에서 주님은 왕에 관련한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달란트의 비유다 열므나의 비유는 모두 장차 다시 오실 왕국에 관한 비유들입니다. 우리가 누가복음 19장에서 본 것과 같이 후일 예수께서 왕이 되기를 원치 않았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멸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인내로 자기의 직분을 다한 종들에게는 함께 왕노릇하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또한 주님은 산상수훈을 통해서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의 삶에 대하여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 5:3)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0)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나라가 임하옵소서” 기도하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가르치셨습니다.

 

계속하여 주님은 다시 왕국에 들어갈 조건을 말하여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2) 라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인 것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물었습니다. 이에 주님은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하는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E. 반대자들의 증거

흥미로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인 것은 주를 반대하는 자들의 입에서도 증거되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가 그가 자칭 왕 곧 메시야라 하였다고 고소하였습니다.

 

이때 빌라도는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요18:34,35) 물었습니다. 이때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요18:36)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빌라도가 ‘그럼 네가 왕이 아니냐?’ 묻자 주님은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해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18:37)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분명하게 자기를 가리켜 ‘유대인의 왕’이라 증거하셨고 빌라도도 주를 향하여 ‘네가 왕이 아니냐?’ 수긍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심문을 받은 후 군사들은 예수께 자줏빛 겉옷을 입히고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며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리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조롱하였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내놓으며 “보라, 너희의 왕이라.”고 말하자 그들은 일제히 소리질러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쳤습니다. 결국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고 히브리어와 로마와 그리스말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달았습니다.

 

F. 사도의 증거

신약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왕국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제자 레위 마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왕국 복음에 대해서 전파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 전반에 걸쳐 장차 우리가 들어갈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하여 역설하여 우리가 참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리라’ 외쳤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왕 없는 왕국은 없다는 것과 우리가 왕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왕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 다시 더러워져 그의 왕국에 들어 갈 수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며 그리스도의 은혜는 허무하게 될 것입니다.

 

II. 십자가에 달린 범죄자와의 관계(39-43)

흥미롭게도 예수님은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형벌이란 중세시대의 가장 큰 형벌로서 반역죄나 민란 등의 정치적 요소에 속한 중 죄인에게 행한 형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의 형벌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사 53:12)라 예언한 바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이미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에 속한 일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죄인과 함께 식탁에 앉는가 책망하였습니다. 이에 주님은 ‘건장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다’(눅5:31) 하시며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회개할 죄인들을 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죄인들과 함께 죽음의 자리에 함께 하시는 것 또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실 때의 시간은 오전 아홉시였습니다. 세 시간 정도 지나 정오쯤 되었을 때 강도 중 한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는 다른 한 동료가 예수를 비방하며 조롱하는 것을 보고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책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를 향하여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이 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는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예수께서 왕인 것을 알았을까요? 그는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말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빌라도의 심문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생각했을 것이며 죽음의 문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위에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쓰인 팻말을 보았을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께서는 죄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는 데도 그를 믿어서 하나님 왕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명이 육체에 있지 않음을 깨달을 때 발견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아마 그가 예수에 대하여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이심을 알게 하셨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43) 하셨습니다.

 

여기서 낙원이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쉬는 처소를 말합니다. 창조 이래로 잠든 모든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날이 이를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이 이르면 이들이 먼저 잠에서 깨어 부활하고 그 후에 이 땅에 살아 남은 우리도 끌어 올려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너희가 결단코 죽은 자들보다 앞서지 못하리라 한 것입니다.

 

사형자의 죄목을 기록한 팻말을 보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것을 믿을 수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고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고통의 순간에 어찌 한 사람은 예수를 비방하고 한 사람은 그가 왕인 것을 알고 자신의 영혼을 의탁하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은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이가 여기 있으며 (마 12:41)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이후 세상은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유대인의 왕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죄인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다시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죄인된 모든 사람들은 예수를 조롱하던가 아니면 자신의 영혼을 그에게 부탁하던가 둘 중하나를 선택하여야만 합니다. 당신이 예수를 믿던지 말던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은 곧 도래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천년만년 왕되신 예수와 함께 살고자 한다면 당신은 십자가에 달린 한 죄인처럼 당신의 영혼을 그에게 부탁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둘째사망의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III. 그리스도의 왕국

성경은 여러 곳에서 장차 올 그리스도의 왕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만세의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딤전1:17)  하였으며 다시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딤전 6:15) 증거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열린 하늘을 통해서 ‘옷과 그 다리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쓴 이름’ 이름을 보았으며 (계19:16) 그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이한 검으로 만국을 치시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릴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유대인의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누가 당신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삶의 왕이며 주이신가?” 묻는다면 당신의 답변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나는 그에게 받은 은혜가 별로 없다. 나는 내 능력과 힘으로 살아왔을 뿐이다 말할지도 모른다. 또 어떤 사람은 나는 비록 세상에서 풍요롭게 잘 살지는 못했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바라보며 믿음을 지켰다 말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복음 19장에 소개된 열므나의 비유를 셍각해 보십시다. “가라사대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나라로 때에 열을 불러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사람이 우리의 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눅19:12-14) 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백성이 그가 우리 왕 됨을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그들의 주인이 왕되어 다시 옴을 원치 않았을까요?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자기가 세원 왕 앞에 무릎을 꿇기 때문입니다. 그 왕은 당신에게 일시적인 쾌락을 줄지 모릅니다. 어쩌면 그에게 무릎을 꿇어 성공을 하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로 하여 당신은 일락에 빠져 열매맺는 일 같은 것은 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술과 도박과 게임과 스포츠와 여자들 속에서 당신은 만족할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께서 심판하러 오실 때에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때에 왕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러나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