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누가복음강해

(누가복음22장 강해)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이요나 2006. 6. 22. 16:48

(누가복음22:42)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이요나 목사 / 서울 갈보리채플

 

(눅22:42)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지난 주 우리는 사역자들을 훈련 시키시는 주님의 방법을 살펴 보았습니다. 주님은 제자들 앞에 다가오는 고난을 그대로 통과하게 하셨습니다. 그 고난은 사단으로부터 오는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시험 중에서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 시험을 통하여 뒤에 동일한 시험을 겪어야 할 동료들을 굳건히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내용을 살펴 보겠습니다. 복음서를 살펴 보면 주님은 동일한 말씀으로 세 번이나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천사들이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신 말씀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였습니다. 그리 어렵지도 않은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동일한 기도를 세 번이나 그것도 천사까지 내려와 도울 정도로 피 땀을 흘리시며 힘과 애를 써 기도하셨을까요? 오늘 우리는 이 부분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I. 베드로의 실수

먼저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씀부터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제자 중 베드로에게 사단이 너희들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청구할 것이라 경계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떠나시고 나면 사단이 복음사역을 맡은 제자들을 대상으로 극심한 시험을 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를 안 주님은 제자 중 가장 경솔하고 실수가 많은 베드로에게 나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하시며 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을 굳건히 하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겪어야 할 영적전쟁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실수도 많고 경솔하지만 그리스도의 능력과 은혜를 많이 체험한 네가 먼저 믿음으로 극복하고 형제들이 흔들리지 않게 하여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 앞에 절대 충성을 맹세하는 베드로에게 네가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 예고하셨습니다. 이로서 베드로는 또다시 돌이킬 수 없는  뼈 아픈 경험을 체험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 속에서 참으로 많은 잘못을 체험하게 됩니다. 목사인 나도 얼굴이 뜻뜻할 정도로 많은 잘못을 했습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실수들은 대부분 입으로 짓습니다. 호언장담하고 남을 쉽게 정죄하고 책망과 질책을 서슴지 않고 정말 내 혀지만 나도 감당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실수를 할 때마다 지옥문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결국 목사들의 이러한 실수로 많은 성도들이 가슴에 상처를 입고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하나 둘 쌓여 경륜을 만들어 갑니다. 생활 속에서 날이 갈수록 다듬어지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사의 가슴속은 숯검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II. 세상을 살아 가는 법

이 일 후 주님은 35절에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없었습니다 답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을 두 명씩 짝지어 각 고을로 전도 여행을 보냈을 때의 일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막6:8) 하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여기서 전대는 돈주머니 요즘의 지갑을 말하며 주머니는 여행도구를 담는 가방에 해당됩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이 목적이 생활 여행이 아니고 복음전도를 위해 주께 보냄을 받은 자들로서 그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권세로 하여 각 지역 사람들이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은 이제는 전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 옷을 팔아 살지어다 말씀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은 모순이 있어 보입니다. 이제는 주께서 돌보아 주지 않으신다는 의미처럼 들립니다.

 

이 말씀은 난해 구절 중의 하나입니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을 상고할 때 난해한 구절이라 할 수도 없습니다. 무리하게 해석하려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해석보다는 적용에 관한 말씀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검 없는 자는 겉 옷을 팔아 사라 하신 말씀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오늘 주께서 이와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은 앞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 이후 전개될 제자들의 삶에 대한 삶의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주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하셨지만 예수께서 정죄를 받아 십자가 고난을 받아 죽게 되면 그들은 단일 종교체제인 유대교 공동체 속에서 살아갈 방법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들은 이 말씀을 들어 사역자들도 이제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을 살아가는 재력과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며 충분한 보수들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미 주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경계하셨습니다.

 

특별히 주께서 겉 옷을 팔아 검을 사라고 하신 것은 그동안 제자들은 이스라엘 공동체 속에서 율법과 장로들의 유전을 삶의 기본권으로 믿고 살아 왔으나 이제 스승 예수님의 정죄로 유대교에서 출교된 제자들은 그들 속에서 의를 상실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를 삼아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A. 다윗의 예증

이 말씀과 함께 주님은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님은 다윗이 겪은 일들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모름지기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을 받고도 먼저 왕된 사울의 시기와 질투로 생명의 위험을 받으며 쫓겨야 했습니다.

 

다윗은 더 이상 이스라엘 속에서 생활 할 수 없음을 알고 블르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것을 알고 국가 간의 문제로 변질 것을 두려워해 그를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윗은 어쩔 수 없이 아둘람 굴로 숨어 들어가야만 했습니다. 

 

다윗이 아굴람 굴로 도망을 하자 이스라엘에서 살 수 없게 된 다윗가의 사람들이 찾아 들었고 그 당시 세상에서 환난 당한 모든 자 곧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 사백 여명이 모여들어 다윗은 그들의 장관이 되었습니다. 후일 그 무리들은 육백여명에 이르렀습니다(삼상22장 참조).

 

이와 같이 다윗은 모름지기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음에도 산적 두목처럼 자기를 따르는 자들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자급자족해야만 했습니다. 이때 발생된 사건이 사무엘상 25장에 기록된 나발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 감이니라(37) 하신 것은 이제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자칭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는 유대인들에게 불법자들로 규정될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이 때 베드로가 나서 주여 보소서 여기 검이 둘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고 족하다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은 세상의 불의와 대항하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이 자신들을 지키는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빙자하여 정부의 실책과 세상에 대항하여 사회단체와 연대하여 일선에 나가 투쟁을 일삼으면 안될 것입니다.

 

B. 바울의 가르침

바울은 로마서 13장에서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으로 그들이 공연히 칼을 가진 것이 아니다(롬13:1-4) 증거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복음사역을 대적하는 세상에 대해 자력으로 정정당당히 살아갈 것을 말한 것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에 대한 굴복을 권면하면서 8절에서 피차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하였으며 자기 스스로 솔선하여 장막을 치는 일을 하며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는 권위 의식에 빠져버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주의 형제들과 게바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느냐 어찌하여 나와 바나바가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고전9:4-6) 경계하며 자기 생활을 스스로 준비하지 않는 게으른 성도들을 향해 일하기 싫거든 먹지도 말라 가르쳤습니다.

 

흥미롭게도 대제사장들과 성전군관들이 가룟 유다를 앞세워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나서 주여 우리가 검으로 치리이까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칼로쳐서 떨어 뜨렸다는 것입니다.

 

이 때 주님은 이것까지 참으라 하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를 해하고자 하는 세상과 맞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과 말씀과 기도의 전신갑주를 입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히4:12) 증거한 것입니다.

 

III. 시험에 들지 않는 법

 A. 주님의 예시

주님은 제자들과 감람원에 들어 가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이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40) 하시고 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 하셨습니다(41) 이와 관련하여 복음서에는 주께서 세 번이나 동일한 기도를 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상실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신 후 돌 던질 만큼의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은 특별한 의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는 방법을 친히 가르쳐 주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 하신 말씀은 시험의 문제가 외적인 것이 아니고 내적인 것을 시사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여 그 시험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주께서 당부하신 말씀을 따라 자기 생활을 스스로 지켜 나간다면 사람이나 교회에 꺼리낌 없을 것이며 성도들과 어떤 마찰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교회를 유익의 통로로 삼고자 한다면 그는 큰 시험에 빠져 들 것입니다.

 

 B. 무엇을 기도할 것인가?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온전한 사역을 위하여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42) 기도하셨습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번이나 동일한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는 그때의 상황을 말하여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43) 하였으며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살펴 보건 데 주님의 기도 내용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닌데 주님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이 이 글을 읽을 때 죽음 앞에선 젊은 예수님의 고통에 찬 고뇌라고 생각했습니다. 마가는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 기록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자신이 이 일을 위하여 온 것을 아셨고 기록된 말씀을 따라 스스로 고난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다른 방법을 요구하실 필요는 없었습니다.

 

주께서 이 기도를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를 때에 하나님의 계획대로 할 것인가 나의 계획대로 할 것인가에 대한 시험을 이기는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며 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는 그렇게 하고 정작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자기의 원대로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느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름다운 교회를 갖기를 소망하였다고 합시다. 그로나 목사나 장로들이 더 많은 성도들을 전도하기 위해 크고 넓은 교회를 짓게 해달라고 100일 작정 기도회를 개최 하였다면 그들은 결국 자신들의 원대로 해달라고 하나님께 떼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 하여 오늘날 재정에 시험을 당하는 교회들이 부지 기수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사역이란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뜻 가운데 있는 것으로 우리의 마음의 원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어야 할 것임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이 사역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들 소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그 일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주의 힘으로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단의 시험인 것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아버지의 원대로 이루시기 위해 땀이 피방울이 떨어지는 것처럼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단의 시험을 이기는 것은 결국 자기 마음의 생각과의 전쟁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뜻을 이루고자 하는 생각에 치우쳐 잠들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잠들어 있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개척교회 목사들이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 가족의 생활을 교회에 짐 지우려는 태도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력으로 일 할 수 있으면 자기 생활은 자기가 스스로 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이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직업을 가져서는 않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주님은 전대를 가지라 하시며 겉 옷을 팔아 검을 사라 하셨습니다. 자기의 고정관념이나 의식이나 체면에서 벗어나 오직 말씀에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사단이 나를 밀 까부르듯이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믿음의 지름길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기도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전대와 칼은 말씀과 기도인 것입니다. 생활에 필요한 것은 스스로 준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주의 말씀 가운데 서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