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13:48)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
(행전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안디옥 교회에서 출발하여 구브르 섬을 지나 밤빌리아의 버가를 통하여 고원지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른 바울과 바나바 일행은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 그들에게 메시지를 전할 기회를 얻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먼저 이스라엘의 두 왕 곧 사울과 다윗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은 폐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다 증거하였다.
바울이 그들에게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을 이끌어 낸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오심을 소망하는 그들에게 영혼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합리적으로 증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전한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메시지 속에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따라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하는 너희는 과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들인가? 하는 선택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새로운 복음의 시대를 전하는 바울의 메시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역사적 성취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허락하신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의 은혜와 의인을 향한 장래의 약속에 대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22)
바울은 본문에서 하나님과 마음을 합한 자 다윗을 통하여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하신 일들을 세가지로 증거하였다. 그 하나는 먼저 시편 둘째 편에 기록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신 말씀의 성취였으며 두 번째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매달아 죽인 것과 세 번째는 주께서 썩임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서 저를 살리셨다는 것이다.
A.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33)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 증거하여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오시는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23) 증거하였다. 이 메시지는 이미 우리가 복음서를 통하여 공부한 바와 같이 마가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소개하고 있다.
계속하여 바울은 현실 가운데 나타난 성경의 예언적 증인 세례 요한을 이끌어 내어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세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하니라”(24) 증거하였다. 이 또한 그 시대를 살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로 하여 주님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 하셨다.
바울은 계속하여 “요한이 그 달려갈 길을 마칠 때에 말하되 너희가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느니 나는 그 발의 신 풀기도 감당치 못하리라”(25) 하였다 증거하였다. 이 또한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두 목도한 바로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당면한 문제는 저희가 그를 저버리고 죽일 죄가 없는 그를 빌라도에게 죽여달라고 내어 주었다는 것이다.
B. 성경의 말씀을 알지 못함으로
“성경에 저를 가리켜 기록한 말씀을 다 응하게 하려 한 것이라 후에 나무에서 내려다가 무덤에 두셨으나”(29)
바울은 26절에서 “형제들 아브라함의 후예와 너희 중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아 이 구원의 말씀을 우리에게 보내셨거늘” 말하여 예수를 ‘구원의 말씀’이라 증거하였다. 바울의 이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만약 오늘 모든 교회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면 성경 말씀에 이처럼 소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속하여 바울은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 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함으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다”(26,27) 증거하여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맡은 자들과 백성들의 가르치기 위해 세운 지도자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지도자들의 직무유기에 관한 것으로 그 당시 제사장이나 서기관이나 율법사들의 자질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두번째로 바울은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하였고 또 매주일 예배 가운데 외우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말씀의 깨달음에 관한 것으로 이사야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마13:14) 증거하였고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마13:19) 하셨다.
사실 이 문제는 오늘 이 말씀을 대하는 우리도 삼가 살펴 보아야 할 말씀들이다. 오늘날 모든 교회에서 매주 예배를 드리고 또 성경공부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들은 늘 말씀에 갈급하고 있고 또 수년을 배워도 항상 어린아이와 같이 범죄에 휘말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말하여 바울은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2) 하였다. 이로서 아직 우리 가운데 죄가 만연하며 또 성도의 의로움과 거룩함과 또 장차 우리가 받아야 할 영광의 기업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C.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주실 것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34)
이제 바울은 세번째 성경적 예언의 성취에 대하여 증거하여 ‘또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사 다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을 가르쳐 가라사대 내가 다윗의 거룩하고 미쁜 은사를 너희에게 주리라 하셨으니’(34)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에게 전하는 거룩한 자들의 부활에 관한 메시지이다. 이와 같이 부활의 메시지는 주님의 날에 선포된 것이 아니라 이미 다윗을 통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다윗을 증거하여 ‘그는 선지자라’ 하였고 다시 “미리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을 당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행2:31) 하였다.
사실 이것은 부활의 메시지로서 은혜의 구원과 쌍벽을 이루는 복음의 메시지이다. 이것은 바로 세례 요한이 증거한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었으나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리라 하신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죽은 자 가운데서 저를 일으키셨다는 말씀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메시지이다. 이것은 주를 믿는 우리에게 더없이 기쁜 소식이다. 바울은 “주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7-19) 증거 하였다. 살아 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없다면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 하였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님과 부활의 논쟁을 하는 사두개파 지도자들을 볼 수 있다. 주님은 부활에 대하여 부정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을 향하여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여 오해하였도다’ 책망하셨다. 이처럼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성경에 대하여 무관심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여 ‘너희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막고 있다’(눅11:52) 하셨다. 이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II. 죄 사함과 용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 전하는 이것이며”(38)
A.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이제 바울의 설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관련하여 가장 실제적인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죄사함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다.
죄사함에 대한 원리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죄에 대해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죄란 문자적으로 과녁에서 빗나간 화살을 의미한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의 원죄는 창조자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떨어져나간 상태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 아담을 창조하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동일한 생물학적 원리를 가진 짐승과 달리 영혼을 지으시고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아담으로 생령이 되게 하셨고 그로 하여 인간은 영혼을 통하여 하나님과 호흡하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의 능력과 기능을 나타나도록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성경은 “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기원한 것이다.
아담은 미리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자신의 생각과 육신의 욕구에 이끌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과 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여기서 죽음이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로 하여 죄인된 인간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는 죄의 몸이 되어 죄의 노예로 살아야 했다.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자기의 생각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죄된 인생을 살아야 했다. 그러나 죽음 앞에 선 인간은 짐승과 달리 내세를 갈망하는 신적 요소를 필요로 하는 영혼의 기능이 있어 그 갈급한 영혼의 만족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정제하여 신 앞에 나아가 신의 음성을 듣기 소망하였다. 이것이 종교의 기원이다.
C.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구원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바 없다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바울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것이라 말한 것이다.
흥미롭게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는 믿는 사람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말씀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의 원리에 대하여 어떤 말로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의 영혼이 죄에 가려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잘못된 지식과 체험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사람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영적 세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III.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움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
유대교도들을 향한 바울의 메시지는 더 한층 강력해졌다. 바울은 그들을 향해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39) 증거하였다. 이것은 율법을 최고의 은사로 믿고 있는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율법을 지키므로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의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율법은 영생의 약속을 향한 생명이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을 향해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였다’는 메시지는 그들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교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였다. 의롭다하심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후일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롬4:2,3) 증거하였다.
오늘 우리는 이 메시지 속에서 우리를 향한 바울의 의도를 발견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지금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너희는 과연 의로운 자들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또한 오늘 이 메시지를 듣는 우리에게 너희는 과연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동일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겠다.
이 문제는 오늘날 구원과 관련하여 신학적인 대두가 되고 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의인이 되었다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이다. 그러나 과연 오늘날 우리는 의롭게 살고 있는가 물을 때 참으로 답변하기 궁색하게 된다. 우리의 삶이 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의 의가 바리새인보다 의롭지 못하면 결단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셨다. 과연 우리는 율법을 지키므로 의를 자랑하는 바리새인보다 의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역시 우리는 궁색한 답변에 급급한다.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이 오시면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시리라 하시며 ‘죄라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요16:9,10)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주께서 하신 말씀은 모두 과거 완료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여 예수를 믿지 않음으로 죄요, 하늘로 올라 가셨음이 의요, 이미 세상의 임금이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의 판결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의는 예수께서 하늘로 오르신 것과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우리의 믿음이 부활의 믿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인의 자격이요 의로움의 결과인 것이다.
이제 바울은 의인의 자격과 관련된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에게 ‘그런즉 너희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 너희에게 미칠까 삼가라”(40) 경고하며 하박국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여 “보라 멸시하는 사람들아 너희는 놀라고 망하라 내가 너희 때를 당하여 한 일을 행할 것이니 사람이 너희에게 일러줄지라도 모두지 믿지 못할 일이라”(41) 증거하였다. 이 말씀은 오늘 너희가 나의 증거를 멸시하면 너희도 망할 것이라 경고한 것이다.
바울은 히브리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강팍하게 하지 말라’하며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미치지 못할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증거였다. 나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역사할 것이라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는 의를 상실하지 않도록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IV. 영원한 생명(42-52).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아니한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 향하노라”(46)
바울을 통하여 구원의 메시지를 들은 회중들에게 놀라운 현상이 나타났다. 그 하나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많은 사람들이 사울과 바울을 좇았으며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의 사람들이 회당에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러자 시기로 가득찬 유대인들이 일어나 율법으로 바울의 메시지를 대적하고 일어섰다.
이에 바울과 바나바가 일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아니한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 향하노라”(46) 하며 “주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47) 증거하였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이것은 복음의 원천이기도 하다. 만약 영원한 생명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과 은혜가 무슨 소용있겠는가? 또한 거룩함과 의로움 또한 다른 종교적 교리와 대등소이하다 하겠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다른 종교들과 다른 것은 영생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주님은 죽음과 부활에 대하여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또한 바울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하였으며 다시 ‘우리에게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바 없다’ 하였다. 이것은 모두 영생 곧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얻었음에도 구원의 결말에 대하여 얼지 못하고 또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길을 가다가 중도에 끝내는 것과도 같다. 우리의 결말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이것은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셨다. 이것은 바리새인들의 의식주의와 헤롯당의 현실주의 곧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한 것이다. 또한 이것이 오늘날 우리 교회의 큰 병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주께서 내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신 것이다.
바울의 메시지의 요점을 요약하면 먼저 죄사함과 용서함이다. 이것은 가장 큰 은혜이며 이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두번째로 바울은 의로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이것은 성도된 죄사함을 받은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서 의로움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의로움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이라 하겠으며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성도라 칭함을 받을 수 있다.
끝으로 바울의 메시지의 절정은 ‘영생’ 곧 ‘영원한 생명’이다. 죄사함이 구원의 시작이라면 ‘의로움’은 현재의 상태이며 영생은 그 끝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것은 거듭남의 순간 가운데 동시에 나타난 신적 현상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도록 간직하여야 할 성도의 표상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가 자다가 깰 때가 가까웠으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다’ 하였다.
거룩하신 주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죄로 태어난 우리를 죄 중에서 구원하여 의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에 들게 하셨으니 주여 우리를 주의 영광의 날까지 보전하소서. 주님은 아버지께 기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니이다’(요17:17)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가 주의 날까지 온전케 보전되는 길은 주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게 되는 것 뿐이옵니다. 우리를 더욱 거룩히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신약강해 > 사도행전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도행전15:15) 교리적 충돌의 원인 (0) | 2007.01.04 |
---|---|
(사도행전14:22) 이 믿음에 거하라 (0) | 2006.12.28 |
(사도행전12:24) 영광과 굴욕의 선택 (0) | 2006.12.07 |
(사도행전11:23) 그리스도인의 정의 (0) | 2006.11.30 |
(사도행전10:14) 고정관념과 성령의 질서 (0) | 2006.1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