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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2:24) 영광과 굴욕의 선택

이요나 2006. 12. 7. 19:16

(사도행전12:24) 영광과 굴욕의 선택

 

(행12: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지난 주 우리는 사도행전 11장을 통하여 주의 성령께서 이방인 전도의 문을 여시는 과정을 살펴 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핍박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의 수호자로 세움을 받은 유대교 지도자로부터 오고 하나님의 나라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하여 성령께서 친히 열어가고 계심을 보았다. 

 

오늘 우리는 12장에서 의의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사도의 영광스런 죽음과 세상의 권세를 한 손에 쥐고도 하나님의 거룩한 종들을 핍박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당한 지도자를 보게 된다. 이것은 복음 이후 이 땅을 사는 모든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하여야 할 영혼의 문제이다.

 

I. 의의 고통(1-4)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행하여 죽이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이라(1-3)

 

A. 헤롯의 가문

여기에 등장하는 헤롯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때 유대의 왕이던 헤롯대왕과 마리암네 사이에 태어난 아리스토블르스의 아들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또한 그는 헤롯 안디바의 조카이며 헤로디아의 형제이기도 하다.

 

헤롯왕가는 B.C.47년 가이샤 율리우스에 의해 유대총독으로 임명된 팔레스틴의 통치자 안티파터가 일으킨 이두매(Idumea) 왕가의 후계들로 에서의 마지막 후손이다. 헤롯대왕은 안티파터의 둘째 아들로 25세의 나이에 갈릴리 군장으로 임명(47년)되어 그 당시 정치적으로 큰 골치거리였던 도적 떼들을 소탕하여 로마정부로부터 인정을 받아 38년에 유대왕으로 임명되었다. 헤롯의 가문은 명실공히 유대에서 정치적 이상을 실현 시키기 위해 유대교에 개종한 명목상의 유대인이었다.

 

헤롯대왕은 마음이 교활하고 강한 정치적 욕망을 갖고 있어서 권모술수에 능하여 로마황제와 원로원과 깊은 유대를 갖었으며 유대에 헬라의 문화를 보급하고 자신의 명성을 위해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여리고에 방대한 도시를 재건하고 원형극장과 경기장을 건설하였으며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거대한 예루살렘 재건 계획을 수립하였다.

 

그는 10명의 아내와 결혼하여 많은 자녀들을 두었으나 편집증세가 있던 그는 그 아들들을 중심으로 발생될 정치적 소요를 제거하기 위해 정적의 여지가 있는 아들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후일 통치 말기에 아들 아켈라오를 유대와 사마리아 왕으로 빌립과 안디바를 그 외의 지역 분봉왕으로 세운 후 B.C.4년에 동맹경화로 죽었다.

 

복음서에 등장하는 헤롯 왕가의 인물들은 예수님 탄생 당시 동방박사들의 예언을 두려워하여 베들레헴과 그 인근 지역의 두살 아래 남자아이들을 모두 살해 한 헤롯대왕(마2:1, 13,16) 을 기점으로 예수님 당시 갈릴리와 베레아 지역의 분봉왕으로 이복 동생의 처 헤로디아를 교활한 방법으로 아내로 맞은 일을 정죄한 세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헤롯 안디바이며(막6:14) 또 한 사람은 오늘 본문에 소개되는 헤롯 아그립바 1세이다.

 

B. 야고보의 죽음과 베드로의 구속

오늘 사도행전 12장에 등장한 헤롯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서 그는 아버지 아리스토블르스가 암살당한 후 로마 황실에서 양육되어 가이샤 디베료의 아들 두르수스(Drusus)와 친구가 되어 지나친 사치와 방탕한 생활로 원로원의 미움을 사 팔레스틴으로 망명생활을 하던 중 후일 황제가 된 칼리굴라에 의해 유대와 사마리아의 왕이 되었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명실공히 완전한 유대인의 왕이 되기 위해 유대교와 유대인의 속성을 공부하여 표면적으로 유대인의 율법과 종교성을 존중하고 그 당시 유대의 골치거리로 등장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도들을 핍박하여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큰 호의를 얻었다.

 

II. 교회의 기도(5-20)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5)

 

  A. 초대교회의 상황

여기서 우리는 스데반 집사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의 처한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성령감림 후 초대교회에 쏟아 부어진 성령의 능력으로 놀라운 부흥을 하였다. 하루에 삼천명의 제자들이 더하였고 성도들은 서로 필요한 재산을 내어 놓고 서로 통용하는 형제사랑으로 가득찼다.

 

놀라운 이적들로 하여 많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초대교회에 합세하였고 초대교회의 물결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유대일대에 급속도로 번성되어갔다. 그러나 수천년 동안 율법의 집행자로 예루살렘 성전과 회당을 이끌어 오던 제사장과 바리새인 세력들이 그대로 자기들의 입지를 포기하고 가만있지는 않았다. 그들은 명실공히 율법의 수호자란 명분을 갖고 있었고 유대교는 로마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협정을 맺은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한 종교 공동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세력이 다시 반전할 기회를 노리며 여전히 사도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역 회당에서 발생된 스데반 집사와의 종교적 갈등으로 야기된 스데반 집사의 순교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초대교회를 핍박할 커다란 빌미가 되었다.

 

그 당시 제사장들을 중심으로 유대교가 다시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새 로마황제 칼리굴라가 집권하여 헤롯 안디바의 처 헤로디아의 형제인 헤롯 아그립바 1세에게 빌립이 다스리던 지역의 분봉왕으로 임명된 것과 깊은 정치적 관계가 있었다.

 

정치적 욕망에 불타던 아그립바1세는 숙부 헤롯 안디바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로마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정치자금이 필요했고 그것은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들을 통해서 충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의 종교적 속성을 잘 아는 그는 초대교회의 출범으로 위축된 유대교도들의 마음을 충동하기 위해 교회 중추세력을 해하기로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정치적 배경 속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유대인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초대교회의 지도자 몇을 죽이기로 결안하고 먼저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를 시해하였다. 이 일로 유대인들의 기세가 등등하자 헤롯은 사도의 수장인 베드로를 잡아 옥에 가두고 유월절이 끝나면 백성들 가운데 끌어내어 거대한 처형을 할 것을 계획하였다.

 

   B. 야고보의 죽음

우리는 5절에서 이에 베드로는 갇혔고 교회를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더라라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 일은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의 칼에 죽임을 당한 이후의 일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의 핍박과 관련하여 교회가 취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동안 교회는 스데반 집사의 죽음과 야고보 사도의 순교를 목도하였다. 그리고 사도의 수장 베드로 역시 처형당할 긴박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물론 교회는 믿음이 왕성한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 가득차 있었고 이미 성령의 능력을 체험한 터라 어떤 방법으로라도 대항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오직 베드로를 구원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했을 뿐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기 교회를 비판하는 소리가 들리며 빨간띠를 띠고 거리로 뛰어나와 데모를 일으키고 있다. 물론 그럴만한 명분을 갖고 있겠지만 그 누가 보아도 교회의 그런 모습들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그러나 교회의 출발 이후 성경은 어떤 상황에도 세상과 맞서 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너희의 평안한 믿음 생활을 위해 집권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모든 권세자들에게 복종하라고 명령하였다.

 

6절에는 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숫군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라는 흥미로운 내용이 기록되었다. 그동안 헤롯은 베드로를 지키기 위해 군사 네 명을 한 조로 한 네 개의 조에 맡겨 밤낮으로 지키게 하였었다.

 

 이러한 내용들로 우리는 헤롯이 초대교회와 사도들 사이에서 발생한 기이한 이적들의 소문을 들어 익히 알고 있었고 내심 두려워하고 있었다. 어쩌면 헤롯은 베드로를 통하여 나타나는 신비로운 기적들의 마음으로 부정하며 그 누구라도 풀을 수 없도록 베드로를 2개의 쇠사슬에 묶어 수직하던 두 군사와 함께 채워 지키게 하였다. 실로 그 누구라도 베드로를 묶은 사슬을 풀려면 두 명의 군사의 사슬을 함께 풀지 않으면 안되었다. 또한 옥문 밖에는 파숫군이 지키고 있어 어떤 마술사라도 베드로를 구출하기란 불가한 일이었다. 

 

C. 베드로의 구속과 천사의 현신

그러던 중 밤이 되자 홀연히 주의 사자가 베드로 곁에 서자 옥 중에 광채로 환해졌다. 천사가 자고 있는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우며 급히 일어나라 말하자 쇠사슬이 소리없이 벗어졌다. 다시 천사가 베드로에게 띠를 띠고 신을 들라 하므로 베드로는 그의 말을 따라 하니 천사가 다시 겉 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 것이다. 참으로 여유있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옥중의 죄수를 풀어 내오면서 이처럼 의복을 갖추게 하니 말이다. 베드로 자신도 그를 따라가면서도 천사가 하는 것이 참인가 환상인가 깨닫지 못하였다.

 

베드로가 천사를 따라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자 쇠문이 저절로 열려 성밖으로 나와 한 거리를 지나자 곧 천사가 떠났다. 이때서야 정신을 차린 베드로는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증거하였다.

 

III. 권세자의 메시지(20-25)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목어 죽으니라(23)

 

  A. 사도의 죽음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몇 가지 미스테리한 일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것은 베드로의 구원하심과 관련하여 어찌하여 주께서 야고보 사도는 구원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야고보 사도가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야고보가 별로 사역에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를 데려가신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열두 사도 중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중용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은 늘 중요한 일들을 그 세 사람에게 친히 보이셨다. 또한 야고보는 선하나님 나라에 커다란 열정을 갖고 있어서 주께 주의 나라가 임하실 때 자기 형제들을 좌우에 세워달라고 말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주님은 요한과 야고보에게 보아너게란 이름을 더해 주셨다. 보아너게란 천둥이란 뜻으로 번개와 함께 나타난다. 이 이름 속에서 우리는 그들이 주의 명령에 망설이지 않고 헌신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에 오르시는 중 주님은 네가 내가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겠느냐 물으실 때에 그는 할 수 있다고 호언하였다. 그런데 이처럼 허무하게 죽임을 당하다니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생각이다. 어차피 우리가 모두 한번은 죽어 주 앞에 가야 할 것이라면 주께서 원하시는 가장 합당한 때에 천국으로 들어 가는 것이 마땅하다. 베드로나 요한처럼 복음을 위해 많은 사역을 하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누가 먼저 순교를 당하여야 한다고 할 때 그 선봉에 선 사람은 가장 축복을 받은 사람일 것이다.

 

인간은 모두가 생명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 누구도 죽음 앞에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스데반 집사의 죽음 이후 초대교회에 불어 온 피 바람은 교회성도들을 두려움에 쌓이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모두가 자기 목숨을 두려워하여 배교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때에 주께서 가장 아끼시던 사도가 순교를 당한다면 이것은 교회를 굳게 결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사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동안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은 모두 신의 능력을 나타내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난 일들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신적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들을 우러러 보며 그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알았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사도들을 위한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은 히브리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히13:18) 하였다. 사도들도 우리와 같이 위협과 죽음 앞에 두려워하는 성정을 가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께서 맡기신 복음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 위해 사도들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모여서 기도하기 시작했다(5, 12).

 

B. 헤롯의 죽음

우리의 또 하나의 의문은 하나님의 복수에 관한 일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 하셨다. 주님은 그의 교회를 위해 친히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3년 동안 가르쳐 주의 사도로 세우셨다. 그것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함이셨다.

 

그런데 초대교회 시작과 함께 주께서 사랑하고 아끼던 제자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 1세에 손에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은 하늘에 닿는 분노이다. 그런데 주님은 헤롯에게 바로 죽음을 내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헤롯은 의기양양하여 교회를 멸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헤롯의 비참한 죽음을 목도하게 된다.

 

헤롯은 유대에서 정치적 야심을 달성하고 자신의 정적이 된 숙부이자 누이 헤로디아의 남편인 헤롯 안디바를 넘어뜨리고 가이샤라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는 편협한 성격을 갖고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대인에게는 호의적이였으나 두로와 시돈의 사람들은 매우 싫어했다.

 

시돈과 두로지역은 지중해 연안으로 무역을 통해 살던 사람들로 유대왕국을 통하여 양식을 구해야 하는 관계로 왕의 시중 블라스도를 통하여 계속 화친하기를 힘써 왔다. 시중을 통하여 많은 금품을 받은 헤롯은 어느날 하루를 택하여 그 백성들을 만날 것을 정하고 화려하고 위엄있는 왕복을 차려 입고 높은 성 위에 서서 연설(효유)하였다. 

 

헤롯의 메시지를 들은 백성들은 그 위세에 놀라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하며 환호하였다. 아마 이 날의 헤롯의 설교는 백성들의 혼을 빼앗아 갈 정도로 위험이 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23절에는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기록되었다.

 

이 일은 참으로 기이한 일 중의 하나이다. 두로와 시돈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왕이 그들 앞에 나가 위세 등등하게 나서 신의 소리에 가까운 메시지를 전하였다고 하여 또 그 백성들의 환호에 대해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다고 하여 그를 치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권세자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 땅의 수많은 영웅 호걸들이 권세를 잡기 위해 열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권세는 하늘로부터 온다고 기록하였다. 따라서 어찌하였던 미국의 부시나 김정일이나 또한 현 정권의 수장인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들의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할 때가 있다. 하나님은 오직 그의 교회와 성도들에 국한된 분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하실 때 인간의 성정과 같으므로 하나님을 인간의 성정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며 이 땅의 모든 생물과 모든 사람에 이르기까지 그의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생명은 모두 하나님의 권세에 있는 것이다.

 

물론 헤롯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그의 사랑하는 사도 야고보를 목을 벤 헤롯을 능지처참하여야 했을 것이다. 이것인 사람의 성정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원래 사랑이시고 은혜가 많으시고 또 인자하셔서 이 땅의 모든 사람으로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시기를 바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야고보를 해한 헤롯에게도 나름대로 회개의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악은 악을 낳는다는 것이다. 악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에 회개의 기회를 얻지 못하여 더욱 자만하고 교만하여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듯 기고만장 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24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흥왕하여 더하더라는 기록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 땅에 세우신 교회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메시지가 왕성하기를 원하신다. 그로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가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영광의 자리에 서서 백성들을 효유하는 메시지를 설파하는 지도자들을 많이 본다. 거대한 집회를 이끄는 그들은 마치 자신이 신의 대행자라도 된 것처럼 위광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 두려워하고 있다. 오늘 헤롯의 메시지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 주의 의의 길을 선택케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내가 비록 세상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하나 내가 부끄러워 하지 않을 것은 내 앞에 천국문의 영광이 열려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제 이 영광을 위하여 오직 이 땅에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왕성하기를 소망합니다. 부디 나로 주의 날에 이르도록 당신의 영광만을 위해 살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