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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9:31) 인생역전과 믿음의 진보

이요나 2006. 11. 25. 16:31

(사도행전9:31) 인생역전과 믿음의 진보

 

(행9:31)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더라

 

9장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울의 소명 과정이다. 우리가 8장에서 살펴 보았듯이 느닫없이 성경에 사울의 이름이 튀어 나온다. 사울이란 이름은 구약에 소개된 사울왕과 같이 베냐민 지파에 속하여 성경상으로는 별로 좋은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부름받은 사울은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되어 어느 사도들 보다 큰 일들을 이루었다.

 

사울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롬11:1) 소개하였다. 우리가 베냐민 지파라 할 때 별로 큰 의미를 받지 못하지만 유태인에게 있어 베냐민 지파는 하나님으로부터 첫 번째 기름부음을 받은 왕을 배출한 지파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바울은 사도행전 22장에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자신을 소개를 하였다.

 

소아시아 길리기아의 다소는 지형적으로 지중해 해안을 끼고 있어 소아시아에 있어 군사적으로나 무역의 중요도시로 성장하여 페르시아 시대에 길리기아의 수도가 되였다. 그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이 지역은 교육도시로 발전되어 후일 로마시대에 이르러 자유시가 되면서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가는 교육도시로 성장하였다.

 

사울의 아버지는 아들 사울이 성장하기까지 다소에서 헬라의 새로운 문화와 학문을 익히고14살이 되자 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사울의 이름을 이어갈 베냐민 지파의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당대 가장 존경받는 랍비 가말리엘 문하생에 입문을 시켰다.

 

사울은 다소에서 성장을 하면서 이방인들과의 교류 속에서 아브라함의 이상을 이어받은 유대인의 자존심에 커다란 굴욕을 받으며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장차 메시아의 날에 세워질 유대인의 왕국의 지도자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유대교에 헌신 율법과 랍비 훈련에 열심을 가졌을 것이다. 

 

I. 사울의 부르심(1-22)

주깨서 가라사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15)

 

A.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스데반의 죽임의 증인으로 등장한 사울은 살기 등등해진 유대교의 세력에 편승하여 인근   지역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제사장으로부터 다메섹 지역의 여러 회당으로 보내질 공문을 받아 길을 떠났다. 예루살렘 북동쪽 220km에 위치한 다메섹은 수리아의 대표적인 도시로 이곳은 국경이 교차되는 지역으로 고대로부터 상업적 요지가 되어 상재에 밝은 수만 명의 유대인들이 거주하며 40여 개의 회당을 이루고 있었다.

 

사울 일행이 다메섹 가까이에 이르자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둘러 비추어 혼비백산하여 땅에 엎드린 사울에게 하늘로부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에 사울이 누구십니까? 물으니 주께서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일어나 성으로 돌아가라 그곳에 네가 행할 것을 전해 줄 사람이 있다 하셨다.

 

대화 내용을 보면 사울과 예수님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는 친구 사이인 것 같은느낌이다. 마치 사울이 핍박을 해서는 안되는 친구에게 박해를 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화 속에서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는 이미 하늘로부터 정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로 하여 후일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시기 위해  창세전에 우리를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엡1:3,4) 증거하였다.

 

B. 사울의 안수를 위해 아나니아를 부르심

흥미로운 것은 주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울 곧 바울 사도의 안수식이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택하신 그릇으로 이미 그 주인 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런데 주님은 갑자기 눈이 먼 사울을 다메섹 성안으로 들어 가게 하여 그곳에 사는 제자 아나니아에게 인도하셨다.

 

우리는 다메섹에 사는 제자 아나니아에 대하여는 아는 바가 없다. 아마 그는 초대교회의 성도로서 사도들을 통하여 세움을 받은 제자인 것 같다. 사울을 부르신 주께서는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불러 일어나 직가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라 그가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다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기이한 상황을 보게 된다. 환상 중에 주께서 사울과 아나니아에게 나타나 마치 인터넷에서 화상 네트워킹을 하는 것처럼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하셨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문단 내용을 살펴 볼 때 주께서 다메섹에서 부르신 사울을 아나니아에게 인도하신 것은 사울에게 사도의 직무를 하기 위해 안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C. 안수에 대한 성경적 증거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앞에서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사마리아 성에서도 주님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 세례를 내리기 위해 사도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어 안수를 통하여 성령세례를 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안수라는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서 안수란 제도는 출애굽기에 처음 나온다. 하나님은 아론의 아들들에게 거룩한 제사장의 직무를 위임하실 때 그들에게 회막문 앞에서 송아지와 수양의 머리에 안수하게 하여 그 제물들을 번제로 드리게 하셨으며(출29:10-15, 레1:4) 또한 여호와를 봉사하기 위해 레위인을 구별할 때 온 이스라엘 회중을 모아 이스라엘 자손들로 그들을 안수하여 요제로 삼으셨다(민8:10-13).

 

다윗은 주께서 자신을 택하여 세우심을 증거하며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였나이다(시139:5,6) 노래하였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 안수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과 종들과 왕을 세우시기 위한 직무적 기능을 위한 위임 제도였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교회 가운데서 행해지는 안수에 대하여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요즘 교회들 사이에 사역자 안수에 대해 너무 소홀하고 무질서하게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안수제도는 성령세례와 관계없이 각 교단 별로 세운 신학교만 졸업하면 목사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학부만 졸업하던 것이 이제 그 숫자가 많아지게 되니 대학원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로하여 누구든지 신학교 과정만 졸업하며 목사가 되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다.

 

물론 각 교단별로 교단의 법규에 따라 목사 안수에 따른 제도가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제도를 통해서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라고 증명할 길이 없다. 신학교만 졸업하면 목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그들의 안수식에서 성경에서 임한 것과 같은 성령의 나타남을 보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신학교를 졸업했고 그 교단에서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는 것을 알 뿐이다. 흥미로운 일은 오늘날 우리 교회 속에는 사마리아 성의 박수 시몬과 같은 사람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D. 사울의 안수와 성령세례

17절에서 우리는 안수는 성령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부르신 사람들을 세우는 의식임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사울을 찾아간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는 어떤 일을 행하실 때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신다는 것이다. 사울과 아나니야는 서로 알지 못하였고 만나보지도 못했던 사람들이다. 다만 아나니아는 스데반의 순교와 관련하여 사울의 교회 핍박을 들었을 뿐이다.

 

주께서 이러한 방법을 택하신 것은 모든 것에서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는 사람들로 하여 이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임을 서로가 확신하고 또 깨닫게 하시기 위함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통하여 안수와 같은 의식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사울이 다메섹 광야에서 주를 만나 변화되어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또 그를 통하여 어떤 능력이 나타났다고 해서 그를 사도로 인정할 수는 없다. 이미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유대교의 열성분자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들은 오랫동안 사도바울의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었다. 주님은 사울에게 가시채 뒷발질 하기가 네게 고생이다 하셨다.

 

  E. 사울의 침례

예수를 만난 사울은 사흘 동안 그는 소경이 되어 누구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때 환상 중에 본 아나니아가 들어와 안수를 하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먼저 이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사울의 침례이다. 그는 이미 아나니아의 안수로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왜 침례가 필요했을까?

 

이 문제는 다음에 나오는 고넬료 백부장의 성령체험에서도 살펴 보겠지만 사울이나 이방인 고넬료 백부장의 가솔들의 경우에는 모두 먼저 성령세례를 받은 후에 침례가 베풀어졌다. 어떻게 보면 침례란 종교적 의식이라 생각되는데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에게 왜 침례를 베풀어야 했는지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 부분은 우리에게 전달하는 강한 메시지가 내재되어 있다. 이방 사역과 관련하여 성령세례는 사도나 또는 주로부터 사명을 받은 제자들의 안수를 통하여 임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공통된 점은 그들이 성령세례의 나중이든 먼저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침례는 성령세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기 위한 예수님의 약속인 것이다.

 

나는 오늘날 우리 교회의 안수제도나 침례에 관하여 상당한 회의를 갖고 있다. 신학교를 나오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는 제도나 성례전 형식으로 베풀어 지는 약식 세례 등은 비성경적이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이러한 관습이 우리 교회에 들어 왔는지 알 수 없으니 그들의 교리와 주장이 어떻든지 간에 속히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II. 사울의 역전인생(22-31)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더라(22)

 

A.     사울의 전도와 핍박(22)

오늘 우리는 아나니아의 안수로 성령세례와 함께 침례를 받은 변화된 사울의 인생역전을 보게 된다. 이것은 주를 만나 변화된 모든 사람들의 증거이기도 하다. 사울이 금식을 풀고 음식을 먹어 강건해지자 그는 즉시로 회당에 나아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였다. 

 

사울의 증거를 듣던 유대인들은 급변한 사울의 태도에 놀라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던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고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며 기이해 하였다. 이 일로 다메섹 일대의 유대인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나자 유대인들은 사울을 죽이기로 공모하고 밤낮으로 성문을 지키고 있었다. 결국 사울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광주리를 타고 사마리아 성을 탈출하였다.

 

B.     사울의 10년 투쟁(26)

26절에는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 하더니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25절과 26절 사이에는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제자들에 의해 다메섹을 탈출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다.  그는 시나이 호렙산의 지역의 아라비아로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적 지식들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를 만나 회심 성령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으나 오랜세월 헬라문화와 유대교에 빠져 있던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위한 독대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아바리아로 내려가 3년을 지냈다고 기록하였다.(1:17).

 

오직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자 하는 탐구의 시간은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정신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3년간의 고독한 투쟁은 그리스도와의 독대 속에서 율법의 계시가 아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가운데 감추어진 그리스도의 계시를 발견하는 인생역전을 일으킨 혁명의 시간이기도 했다.

 

후일 바울 사도는 자신의 지식이 다른 사도들을 통해서 터득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받은 것이라 증거하였다(1:12). 그후 사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 올라가 제자들과 교제를 청하였으나 제자들은 그가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믿지 않았다. 이때 나타난 사람이 바로 초대교회에서 위로자라 칭함을 받은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사울이 다메섹에서 주를 만난 경위와 그리스도를 증거한 일들을 말하여 사울은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증거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그리스도에 대한 변론을 하게 되자 그들이 일어나 사울을 죽이고자 하였다. 이에 사울은 그곳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어 가이사랴를 통하여 옛 고향인 다소로 내려가 7년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리스도를 알기에 힘을 썼다. 결국 사울은 사도 바울로 사역하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을 고독한 투쟁을 했어야 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제자로 부름 받은 우리의 입장에 대하여 냉철하게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일본에서 갈보리채플 목사로 안수를 받고 곧 서울로 돌아와 서울 갈보리채플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내가 갈보리 채플의 목사가 된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에 의한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순복음교회에 출석하며 신학원 과정을 공부하고 있었다. 졸업하며 순복음교회에서 훈련을 받고 목사가 되기 위해서였다. 나는 순복음 신학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였고 오직 순복음의 가르침만이 복음전도의 최상의 길이라 믿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세월 동안 그 믿음을 지켜 왔지만 나의 모습은 의인의 도에 이르지 못하고 있었다.

 

오랜세월 동안 해결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으로 신음하던 어느 날 나는 환상 속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나는 순복음을 떠나 주께서 인도하신 동경 호라이즌 채플로 갔고 나는 그곳에서 주의 계시를 따라 갈보리 채플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돌아 온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갈보리채플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리스도의 계시의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부르심에 의한 새로운 비전을 갖고 있었으나 그를 실현하기 위한 복음의 지식을 갖지 못하였다. 나는 3년 동안 이태원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으나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의 한남동에 내려 와 7년이 되었다. 나는 7년 동안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깨닫기 위해 성경과 씨름을 하였다. 그 동안 나는 여러 번 미국에 들어가 갈보리채플 형제들 속에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했지만 그들은 늘 나를 경계하였다. 결국 나는 그리스도의 계시를 알기 위해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이제 주께서 보내실 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III. 베드로의 이방사역(32-43)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행하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32)

 

9장 마지막 단락에는 베드로 사도에 관한 내용이다. 스데반 순교 이후 예루살렘 교회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 났다. 수많은 성도들이 유대인의 핍박을 피하여 인근 도시와 국가로 흩어졌기 때문이다. 이로 하여 사도 된 베드로도 각 지역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독려하기 위해 여기저기 방문을 하였다.

 

이 지음 베드로가 이른 곳은 룻다이다. 룻다는 예루살렘에서 지중해 연한의 항구도시로서 가이사랴로 통하는 길목에 위치한 사론평야의 한 도시이다. 이곳에서 북동쪽 17km 떨어진 곳에 욥바가 있다. 베드로가 룻다에 이르니 애니아라느 사람이 중풍으로 8년 동안이나 누어 있었다. 베드로는 그에게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명하니 그가 곧 일어났다. 이를 본 룻다와 사론지역의 사람들이 주께 돌아 왔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도하게 하시는 과정을 살펴 볼 수 있다. 만약 베드로에게 아무런 능력이 나타나지 않은 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면 하루하루 살기에 힘든 그 지역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주께서 질병을 고치심을 복음의 구실로 사용하신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오늘날 신유은사를 남용하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

 

베드로는 그곳에서 다시 욥바로 내려갔다. 욥바는 룻다에서 남동쪽으로 18km 떨어진 지역으로 과거 요나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친 장소이기도 하다. 그곳에는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 도르가(작은 양)가 있어 선행과 구제에 열심하였다.

 

그때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그곳의 성도들이 그녀의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고 제자들을 보내 롯다에 머물고 있는 베드로를 청하였다. 베드로는 그들을 따라 욥바로 내려가 그녀를 둔 다락으로 올라가 사람들을 모두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다비다야 일어나라 말하니 그녀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았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야이로 회당장의 딸을 일으킨 장면을 회상하게 된다. 주님은 소녀를 향하여 달리다굼애야 일어나라 하셨다. 우리는 베드로에게 어떻게 이런 용기가 솟아 났을까 의심스럽다. 시체를 향하여 일어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를 통하여 욥바 사람들이 예수께 돌아 왔고 베드로는 주님의 인도함을 기다리며 그곳에 사는 피장(가죽세공업자) 시몬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된 베드로의 마음 속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자기 고집과 고정관렴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주님은 이러한 베드로를 깨우치기 위해 또 다른 일을 계획하고 계셨다. 이제 우리는 10장에서 그 내용을 살펴 보게 될 것이다.

 

주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아직 당신의 뜻을 알기에 너무 부족합니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너무 어렵고 복음의 도는 너무 어려워 나는 늘 실패에 쌓여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를 부르셨으니 이제라도 주의 뜻과 복음의 계시를 알게 하소서. 내가 주를 기다립니다. 부디 가까이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