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6:7)사단의 책략과 성령의 지혜
(행6:7)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우리는 5장에서 교회의 출발과 함께 나타난 교회의 문제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첫번째 사건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존경을 받고자 하는 성도들의 교만한 마음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성령에 충만함을 받은 사도 베드로는 그러한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고 경책하여 이에 대한 성령의 준엄한 심판을 경계로 삼았다.
두번째 발생한 교회의 문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사도들의 물리적 구금이였다. 유대교 제사장들은 예루살렘의 교권이 사도들에게 넘어간 것을 시기하여 사도들을 옥에 가두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실 때 늘 천사들을 보내셨다.
세번째 발생한 문제는 유대교 공회의 심문이었다. 공회는 이스라엘 민족의 공동체를 운영해 가는 최고 의결기관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도들을 처형하는 것이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공회 앞에 설 때에 할 말을 미리 연구하지 말라 하셨다. 그 시에 성령께서 할말을 이르시리라 하셨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게케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5:29-32) 대답하였다.
이에 분노한 공회원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자 바리새인 교법사 가말리엘이 일어나 ‘저희가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를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9) 제지하였다. 이와 같이 주의 성령께서는 특별한 방법을 통하여 교회와 사도들을 보호하셨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행6:3)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6장에는 특별한 문제가 기록되어 있다. 5장의 아나니야의 문제가 교회의 권위에 관한 것이라면 6장에 언급된 문제는 교회운영에 관한 것이라 하겠다. 다시 말하여 교회 사역과 관련하여 자연 발생된 문제라 하겠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볼 때 오늘날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우리는 여기서 지혜의 말씀의 은사가 사도들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절에는 “그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라고 기록되었다. 날이 갈수록 교회가 확장되면서 유대인들 중에서도 서로 다른 언어권에 사는 사람들의 마찰이 생기게 되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중동지역에 흩어져 살던 헬라 문화권에 살던 유대인을 말한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조선족이나 재일동포들을 말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히브리파 유대인들이란 정통성을 가진 이스라엘 사람들이란 자부심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종교적, 역사적 그리고 지역 특정상 초대교회 안에서의 위세는 히브리파 사람들이 득세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교회 안에 파벌의 원인이 되는 아주 중대한 문제이다. 우리나라도 이북에서 넘어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개척된 교회들은 아직도 이북계열 사람들의 분포로 세력이 형성되어 있고 외국인들을 섬기는 교회에서도 내국인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국가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와 풍속을 초월하여 성령으로 거듭난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너지면 교회의 의미는 무의미해질 수 밖에 없다.
이에 열두 사도들이 모여 회의를 갖게 되였고 그 결과 사도들은 모든 제자들을 불러 모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처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2) 말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확장되면서 또한 성령의 은혜로 각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통용하면서 모여든 어려운 사람들로 하여 교회는 그들을 구제하고 공궤하는 일에 바빠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공궤’란 식탁 봉사를 의미한다. 요즘 많은 교회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식탁을 베풀고 있다. 그 중에 어느 교회는 ‘밥 퍼’라는 별명을 얻어 구제와 봉사의 대명사가 되었다. 구제와 봉사라 할 때 단연 카톨릭이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계2:19) 하셨다.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탁을 베푸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바울은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히13:1,2) 하였다. 이 말씀을 상고할 때 우리의 구제사역은 참으로 인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구제가 교회 사역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 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과 주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의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셨고 성경은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 기록하였다.
이에 열두 사도는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히라라”(3,4) 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일을 출애굽 당시 광야 교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모세는 하루 종일 백성들 속에서 그들의 문제를 상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당시 출애굽한 남자들의 수는 100만이 넘었고 모세는 이 일로 지쳐버렸다. 이 때 유대교로 전향한 이방인 제사장 장인 이드로가 모세에게 사람은 많고 너는 혼자이니 네가 혼자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그러니 백성들 중에서 부족 별로 존경받는 사람 70인을 장로로 선임하여 그들로 백성들의 고통을 전담케 하라 하였다.
오늘날도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성장하면서 교회들은 여러 가지 사역에 매달리게 된다. 어느 교회는 해외선교 어느 교회는 농어촌 선교, 어떤 교회는 대학생 선교 또 어떤 교회는 직장인 선교 혹은 외국인 선교 등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다. 물론 교회에서 이런 일들은 매우 중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주께서 왜 사도와 전도자와 목사와 같은 복음 사역자들을 세우셨는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구제를 위해서라면 굳이 사도들과 같은 말씀 사역자들을 세울 필요가 없다.
바울은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를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하였으며 계속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하였다.
이에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의 말을 따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였다’ (5,6)
여기서 우리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란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문벌과 학문과 또 교회 출석, 봉사와 관련한 것이 아니다. 우선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성경 말씀에 입각한 온전한 믿음을 의미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말한다. 또한 성령의 충만한 사람이란 그 사람의 믿음이 자신의 노력과 성실함으로만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믿음 생활을 뜻한다.
그로 하여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7) 고 기록하였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 가운데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는 사도들의 지혜를 살펴 보았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게 말 한마디로 해결한 것 같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여 교회의 분열을 획책하는 사단의 역사를 차단한 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 부으심으로 나타난 지혜의 말씀의 은사이다.
II. 집단주의 사고로부터 수호(8-15)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6:10)
오늘 두번째 나타난 문제는 일곱집사로 선발된 스데반 집사와 관련된 것이다. 스데반이 집사가 되어 교회안에서 봉사를 하게 되면서 그를 통하여 큰 기사와 표적이 사람들 가운데 나타났다. 어떤 능력들이 나타났었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리버디노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각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을 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9,10) 라는 기록으로 보아 스데반에게는 특별히 이방인들을 말씀으로 설복하는 은혜가 임하였던 것 같다.
여기서 ‘리버디노’란 자유인이란 뜻으로 로마 폼페이 장군(B.C.106-48)에 의해 포로로 끌려 갔다가 노예에서 해방된 유대인들의 후손들을 말한다. 이들은 예루살렘 지역에 모여 살면서 자신들의 출신지역 문화권을 따라 회당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유대교에서의 문제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과 같은 교파의 대립도 있었지만 각 출신지역과 문화권의 대립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문제는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서로 대립하여 교파를 이루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들은 스데반의 지혜로운 설복으로 자기들에 속한 사람들이 회심하여 사도들을 따르게 되자 이를 경계하여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하여 스데반이 모세와 및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다고 거짓 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공회에 세워 저가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스려 말하고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거짓 증거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공회에 선 스데반의 얼굴을 주목하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기록되었다(14,15).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 공동체 운영과 관련하여 자연 발생하는 커다란 문제 두 가지를 발견하였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사도들로 본연의 말씀 사역에서 벗어나 다른 봉사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각 성도들의 출신 지역별로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을 사람들 중심으로 집단적 무리를 이루어 서로의 마음을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집단주의 사고의 돌출이다. 이것은 모두 교회를 훼방하는 사단들의 책략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도들과 집사들에게 지혜의 성령 은사를 부어 주어 사단으로 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훼방하지 못하게 하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예비하신 당신의 종들로 하여 이미 발생된 교회들의 문제를 해결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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