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3:17) 베드로의 두 번째 메시지
(행3:17)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 이를 것이요”
우리는 앞에서 성령의 강림으로 탄생된 교회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로 미리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이며 사도들에게 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이었다. 또한 이 약속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의 증표로서(롬10:9)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선물’(2:38)이다.
이날 베드로는 교회탄생 첫 메시지를 날렸다. 실수 투성이였던 시몬 베드로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 한치의 부족함과 소홀함이 없는 위대한 메시지를 선포했다. 베드로의 메시지는 오순절에 강림한 성령세례에 대한 증언이었다. 그러나 그의 메시지는 자신의 지식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설교였다.
예수님은 생전에 제자들에게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말씀하셨다. 그의 말씀처럼 보혜사 성령께서 베드로의 입술을 주장한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는 주께서 언급하신 하나님의 약속 요엘 선지자의 예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로 그것이 그들 가운데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약속은 ‘위로는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가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하신 말씀을 향하여 달려 가고 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천년 전에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미리 본 선지자 다윗의 증거를 이끌어 내였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여기서 베드로는 성경의 말씀의 중요성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이다. 이제부터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제자들을 통하여 장래 일을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주님은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15:13) 말씀하셨다.
그러나 베드로의 메시지의 백미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행2:38)에 있다. 이것이 바로 요엘 선지자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인 것이다. 바울은 이를 증거하여 “그가 위로 올라 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4:8) 하였다.
성경은 ‘이날에 베드로의 회개의 메시지를 듣고 세례를 받고 제자가 된 사람들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였다’ 기록하였다(2:41). 이것은 약속하신 만인 제사장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또한 누가는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에 전혀 힘썼다’ 기록하였다. 이것은 이 땅에 새롭게 탄생한 위대한 교회의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베드로의 두번째 메시지를 접하게 된다. 두 번째 메시지는 사도 베드로를 통하여 나타난 특별한 기적과 함께 전개된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두번째 메시지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있는지 함께 살펴 보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6)
A. 제 9시 기도 시간(1)
3장 서두의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라는 기록은 매우 흥미롭다. 어느새 사도들이 성전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사도들에게 나타난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으며(2:43) 이미 3천이나 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다. 이로서 성전은 사도들을 따르는 제자들로 연일 가득 찼으며 이제 제자들은 더 이상 다락방 같은 곳에 숨어 있을 필요가 없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3번 곧 밤 열두시 그리고 오후 3시 그리고 오전 9시 이렇게 하루에 세번 기도를 드렸다. 오늘날 아랍 사람들을 보면 하루에 세번씩 그들의 성전을 향하여 모든 일을 전폐하고 예배를 드리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이처럼 하루에 세번씩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를 드린다는 것은 보통 사람들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배시간이라 하지 않고 기도 시간이라 한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만민이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집이기 때문이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다른 사도들의 이름이 거론되지 않고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갔다고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이 온전한 사역을 위해 둘씩 짝을 지어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께서도 제자들을 파송 하실 때 둘씩 보내셨기 때문이다. 성격이 급한 베드로와 차분하고 합리적인 성격의 요한이 서로 보안하기 위함 일 것이다.
아침 기도시간이 되자 사람들이 미문(美門)이라는 성전 문 앞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메고 와서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게 하였다. 오늘날 같으면 교회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할 것인데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B. 앉은뱅이의 일어섬(3-10)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 사람이 구걸을 하였다. 이에 베드로와 요한이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아라’ 하였다. 무엇인가 동시에 같은 마음이 주어졌던 것이 틀림없다.
그가 두 사도를 바라보며 무엇을 얻을까 하였더니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어라”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내게 있는 것’이란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여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17:6) 하셨다. 또 빌라델피아 교회를 향하여 ‘너희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 하셨다.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가장 위대한 능력이었다.
그 순간 베드로가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르며 성전으로 함께 들어가며 하나님을 찬미한 것이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 천명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기이한 일로 이를 보는 모든 사람들은 함께 하나님을 찬미하며 솔로몬 행각으로 몰려 들었다.
* 척스미스 목사의 기적 체험
나는 척 스미스 목사의 간증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읽은 일이 있다. 척 스미스 목사께서 갈보리채플을 개척할 당시의 일이다. 주일 예배 후 오후 기도 모임 때였다고 한다. 그때 척 목사는 공교롭게도 사도행전 3장을 설교했고 그 자리에는 휠체어를 타고 온 남자 성도가 있었다고 한다. 그는 5년 동안이나 휄체어 생활을 하였다 한다. 그를 위한 기도 차례가 되어 함께 기도하려고 할 때 척 스미스 목사님 마음 속에 갑자기 그를 일으켜 세우라는 성령의 말씀이 왔다. 그러나 척 목사님은 그러한 일을 한번도 체험해 보지도 못하였고 이성적으로도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충동을 억제하며 그의 명령을 스스로 부인하려 하자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에서 견딜 수 없는 욕망이 불같이 일어났다. 결국 척 목사님은 주님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주께서 하라 하신 것이라 하니까 그 책임은 주님이 지십시요 하고 그에게 가서 손을 잡고 일으키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니 일어나 서라’ 하였더니 휄체어에 앉았던 그 분이 벌떡 일어나 사람들 사이를 걸으며 하나님을 찬양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거짓말 같은 일이 갈보리채플 사역 속에 그림같이 펼쳐진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러나 척 스미스 목사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와 관련하여 상당히 중요한 경계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그 다음주 척 스미스 목사는 추수 감사절 기념예배 설교를 하기 위해 아리조나 주의 툭손(Tucson)에 있는 교회에 갔다. 예배 후 그곳 목사님은 휄체어를 탄 부인을 데리고 나와 그녀의 치유하심을 위해 기도를 부탁했다.
척 스미스 목사는 몇일 전 일어난 기적을 생각하며 그녀에게 손을 얹고 그 당시의 영감으로 몰입하기 위해 애를 쓰며 먼저 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러나 불과 몇일전에 있어던 기적은 결코 일어 나지 않았다.
돌아 오는 길에 척 목사의 아들이 물었다. ‘아버지 왜 그 부인은 일어서지 못했을까요? 하나님이 아버지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신 것일까요?’ 척 스미스 목사는 아들에게 ‘주께서 오늘 내게 그러한 믿음을 주시지 않았다. 주님의 생각은 나와 다르신 모양이다’ 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오늘날 우리 교회 가운데 행해지고 있는 은사집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은행통장에서 자기 마음대로 돈을 빼내듯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모든 사역은 하나님의 계획으로 주의 뜻에 의한 것이다. 이것을 알면 성도들이 몰지각한 목사들에게 미혹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문 7절에는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다’ 기록되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라면 그의 발은 성장하지 못하여 펼 수 없는 상태일 것이다.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는 것은 보통 사람과 같이 정상적인 상태라는 말이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기적이다.
II. 왜 기이히 여기느냐?(11-18)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12)
A. 그의 이름을 믿음으로
이 놀라운 일이 발생되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솔로몬 행각이라 하는 전각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모두 일어난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이한 일을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에게 시선이 집중 되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베드로가 백성들 앞에 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하였다. 이 날은 베드로에게 있어 가장 위험한 시험의 때이기도 하다. 사단은 항상 우리의 교만함에 그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베드로는 둘러선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생명의 주 예수를 죽였으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다 이 사람이 그 이름을 믿음으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다’(13-16) 증거 하여 그 영광을 모두 예수께 돌렸다.
B. 사역의 시험
이런 일은 루가오니아의 성 루스드라에서 일어났다. 사도바울과 바나바가 유대인을 피하여 루스드라에 왔을 때 그곳에 날 때부터 앉은뱅이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을 때 바울이 그에게 구원받을 믿음이 있음을 보고 큰 소리로 ‘네 발로 바로 일어나 서라’ 하니 그가 뛰어 걸었다.
이것을 본 사람들이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 하며 두 사도에게 제사를 드리려 하자 바울이 옷을 찢으며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함은 헛된 것을 버리고 천지를 만드신 창조자 살아계신 하나님께 돌아 오라 함이라 하였다.
오늘 우리는 사도 베드로에게 나타난 이적을 통해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복음사역 속에 나타나는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은 결단코 사람과 함께 영광을 나누지 않는다는 것이다.
C. 천국에 들어 갈 자
그러함에도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자신들에게 나타난 적은 은사들을 내세워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현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 하다. 여기서 우리는 이미 주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 하셨다.
계속하여 주님은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7:22-23)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9장에는 아주 흥미로운 일이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에베소에 두란노 서원을 개설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할 때,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희한한 일들을 행하셨다.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가기까지 하였다(행19:8-13).
이 때 그곳에 살던 유대인 마술사들이 예수와 바울의 이름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는 축사행위가 일어났다. 그 중에 스게와 라는 유대인 제사장이 그의 일곱 아들들과 함께 이런 일을 행하였는데 이 때 악귀가 답하여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누르니 저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도망하였다(행19:14-16).
III.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르리라(19-26)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20)
A. 회개하라
이제 베드로는 백성들을 향하여 그들이 행할 바를 말하여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하였으며 너희 관원들로 그리한 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자기의 그리스도의 해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다’((17-18) 증거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에게 심히 부끄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주께서 이미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일이 있을 것을 전하셨고 그들은 그 선지자의 말씀을 아침저녁으로 읽고 있었기 때문이다.
B. 만유의 회복하실 때
이에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라”(19-20) 하였다.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앞 장에서 언급한 메시지와는 또 다른 뉴앙스를 갖고 있다. 앞에서 베드로는 세례와 관련하여 죄사함을 얻으라 하였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이 주어질 것을 역설하였다. 따라서 앞에서의 메시지 중심은 성령의 선물에 있었다.
그러나 19절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메시지는 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정하신 그리스도의 날을 증거하고 있다. 사실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예정하신 그리스도의 날이 없다면 우리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죽어서 천국에 가는 일반적인 종교와 다를 것이 없겠다. 바울은 그 날을 말하여 우리에게 부활의 날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일 것이라 하였다.
21절에서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두리라”(21) 증거하였다. 여기서 베드로 사도는 이 증거는 자신의 새로운 주장이 아니라 이미 영원 전부터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선포된 말씀임을 밝히고 있다. 다만 그들이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 그를 위해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주신 것임을 다시 설명한 것이다.
우리가 앞에서 살펴 보았듯이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된 하나님의 약속은 성령의 선물로 인하여 발생될 영적각성에 관한 것이다. 먼저는 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이요 그 다음은 그의 종들에게 주시는 영적 각성의 선물이다. 이로서 이제 만세로부터 감추어진 하나님의 예정과 비밀이 세상에 들어나게 된 것이다.
C. 모세의 증언
계속하여 베드로는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 모든 말씀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을 받으리라 하였고 또하 사무엘 때로부터 옴으로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22-24) 증거하였다.
여기서 사도 베드로는 모세와 다윗의 시대를 구분하여 전달하고 있다. 다시 말하여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나누어 언급한 것이다. 주님께서도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24:44) 하셨다.
여기서 베드로의 메시지의 핵심은 결코 지나간 일들을 다시 이끌어 내어 설명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미 그는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라 하였고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보내리라 하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 말씀은 새롭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너희가 회개하여 성령의 선물을 받아 그 말씀들을 새롭게 깨우쳐야 한다는 말이다.
베드로는 25절에서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에 모든 족속이 너희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다’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의 자존심에 속한 것으로 그들 또한 모두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은 불행하게도 아직 그 말씀이 성취됨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조롱과 핍박을 당하고 있으며 아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성취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에서 확정된 것이 아직 이루지 않았을 뿐 이 언약은 틀림없이 그의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오늘 베드로의 메시지는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여 생명의 주를 죽인 것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음을 설명하고 이제로부터는 모두 회개하여 다니엘이 말한 바 마지막 때를 기다리라 한 것이다. 베드로는 끝에서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 하였다.
이것은 장차 이 땅에 성취될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신 하나님의 예정과 그들이 입을 축복에 대한 메시지이다. 그들은 멸망을 받았으나 영원히 멸망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만유를 회복하실 때에 보내실 그리스도의 날까지 남겨 두신 것이다.
바울은 자긍하는 로마교회를 향하여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11:25,26) 하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스라엘의 복을 전하심은 우리로 자긍하지 않게 하기 위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일을 가리켜 하나님이 원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의 은혜를 입어 그리스도의 능력을 받았아오니 주여 부디 우리로 자긍치 않게 하옵시고 주께서 세우신 사도들의 온전함을 본받게 하소서.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영광이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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