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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2:38)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

이요나 2006. 9. 12. 16:29

(사도행전2:38)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

 

(행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오늘은 사도행전 두번째 시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주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과 그로 하여 시작된 새로운 시대,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탄생에 관한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사실 이 사건은 아담 이후 이 세상이 출발한 이래 처음부터 계획되었던 하나님의 예정으로서 성경은 수천년 동안 이 위대한 탄생을 위하여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이 날이 없었다면 그리스도의 오심과 죽으심과 부활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오순절 성령강림은 이 세상이 생긴 이래 이 땅의 모든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며 영광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날의 시작은 베드로의 증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와 같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일들은 수세기를 통해서 성취되어질 곧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펼쳐질 하나의 그림인 것이다.

 

믿는 우리가 주 예수를 믿을 때 모든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듯이 그리스도인의 시간은 이미 그 하루하루가 그리스도의 천년의 왕국 가운데 설계된 것이다. 다윗의 시편에는 모세의 기도를 인용하여 인생에 대하여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경점 같을 뿐이다 말하였다.

 

이사야는 하나님을 향하여 소망을 가진 백성들을 향하여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기록하였다. 이제 우리는 그 위대한 첫발을 내어 딛는 것이다.

 

I. 교회의 탄생(1-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니라(1-4)

 

A. 성령강림(1-4)

 오순절은 유대의 명절 유월절과 초막절(요7:2)과 함께 3대 명절이다. 그때가 되면 예루살렘의 20마일 반경 내에 사는 남자들은 모두 참가하여야 한다. 유월절은 유대력으로 정월14일로서 그 유래가 출애굽에서 비롯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날에서 비롯된다 유대인들은 정월15일부터 7일간 누룩이 없는 떡 무교병을 먹게 되므로 유월절을 무교절이라고도 하며(눅22:1)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에 첫 열매를 상징하는 요제를 드리게 되는데(레23:9-14) 오순절은 이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로서 7번의 안식일을 지낸다 하여 칠칠절이라고도 한다. 이때 백성들은 누룩을 넣은 떡 유교병을 두 덩이를 하나님 앞에 흔드는 요제를 드리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사도들과 함께 모여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며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오순절이 이르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아 있는 집 안에 가득하며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였다.

 

이와 함께 그 집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말하시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뭐라고 언급할 길이 없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납득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오는 신적 상황으로 이러한 현상은 수많은 이적을 체험하던 유대인의 유래에도 없었던 일로서 이 지구상에 처음 발생한 사건이다.  

 

물론 구약시대에 성령이 임하여 산에 올랐던 모세의 시대에 산에 오른 70인의 장로들이 거룩한 신적 영향을 체험하였고 또 각 시대별로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예언을 하기도 했었지만 120여명이 한꺼번에 성령체험을 하며 열다섯 나라의 방언을 쏟아 내는 역사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B. 예루살렘 상황(5-13)

제자들이 있던 집안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자 오순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각 지방과 나라에서 예루살렘에 올라 온 사람들이 놀라서 모두 뛰어 나왔다. 그들은 로마와 애굽 아라비아와 본도와 소아시아를 비롯한 열다섯 국가에서 올라 온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입교한 사람들로서 그들의 눈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놀란 것은 갈릴리 사람들의 무리들이 각국 사람들이 모두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정말 과학적으로도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사건이다. 120여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동시에 각국에서 모인 사람들의 언어로 동시에 말을 한다면 대혼란이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느 집회장에서 120명의 사람들이 15개국어로 동시에 말을 하였다고 하자 과연 각 사람들이 그들의 말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있겠는가? 세상은 물질적인 한계 속에 설정된 공간과 시간의 질서 속에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말을 동시에 쏟아내면 대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II. 베드로의 설교(14-36)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

 

이때 베드로와 사도들이 일제히 일어나 그 상황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먼저 베드로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술에 취한 상황이 아님을 설명하였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술에 취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우리는 사람이 성령에 충만함을 받으면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감정적 충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A.     요엘의 예언

베드로는 먼저 주께서 언급하신 하나님의 약속 곧 요엘 선지자로 미리 하신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은 예언을 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실 성령의 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너희 자녀들이 예언할 것이라 는 말씀은 이제 성경은 유대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메시지임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제부터 모든 인류를 향한 그리스도의 복음 곧 기쁜 소식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대함에 있어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전기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그의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전달하는 예언서임을 기억하여야 하며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예언서를 말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그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을 할 것이라 하였다. 이 부분은 앞에 부분과 또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앞에서는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복음의 시대의 오픈을 언급한 것이라면 후자는 그 시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종 곧 복음의 사역자를 세우실 것을 언급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내가 내 영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리라는 말씀은 세례 요한이 말한 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실 성령세례를 말한 것으로 복음 사역자를 세우시는 특별한 역사를 언급한 것이다. 또한 저희가 예언을 할 것이라는 말씀은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을 통해서 나타날 복음의 증거를 말한 것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말한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들은 아무나 알 수 없고 오직 그 부르심을 받은 종들에게 성령세례를 통해 주어진 성령의 역사로 그 말씀들이 해석되고 전달되어 그 예언의 말씀을 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또한 이 일들은 이미 이루어졌고 또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지고 있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또 내가 위로 하늘에게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19,20) 하였다.

 

이 말씀은 아직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지 않은 일로서 장차 모든 사람들 가운데 나타날 그리스도의 날과 그 날에 있음 이 땅의 심판에 관한 말씀이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구원을 받은 우리는 하늘의 기사를 체험하고 주의 영화로운 날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1) 한 것이다. 이것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에 이루어질 일로서 이것을 위해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B.     다윗의 예언

계속하여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가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22) 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증거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그들은 이미 예언의 성취된 시간에 들어 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앞에 놓은 것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심판에 관한 말씀이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을 대하는 우리의 관점에 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성취되었고 우리는 아직 성취되지 않은 그 마지막 남은 큰 징조들 앞에 놓여있다. 지금 우리는 그의 날에 우리가 심판을 받을 것이냐 아니면 그의 영광 가운데 들어 갈 것이냐라는 두 가지 선택 중에 놓여 있고 그를 위하여 사도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다시 예언을 하였다.

 

다시 말하여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펼쳐질 영화로운 날을 소개하며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거룩한 영과 몸으로 그날을 준비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두렵게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믿는 우리라도 그 영광에 참여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음을 경고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당신의 삶은 어떠한가? 베드로 앞에선 패역한 유대인들처럼 자신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만에 빠져 주께서 성령으로 하신 예언의 말씀에 콧방귀를 뀌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약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 당신이 깨달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신 사도들을 통해서 전달된 메시지를 듣고 자신의 잘못을 돌이켜 주의 가르치심을 따른다면 당신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바 성경의 예언의 말씀이 이미 성취되었고 또 성취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주께서 더디 올 것이라 생각하여 그 말씀을 따르지 않고 게으름을 피웠다면 당신은 불순종의 종에게 처할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제 베드로는 유대인을 향하여 그들이 로마 사람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며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살아서 보지도 못한 그의 주를 어떻게 섬겼는가를 증거하기 시작했다.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웠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25-28)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윗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1000년 전에 이미 죽어서 이스라엘의 조상의 묘실에 들어 간 사람이며 또한 그는 요엘 선지자의 예언도 받지도 못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다윗은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라고 고백을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다윗은 어떻게 그의 주를 보았으며 또 그가 주를 보아야 한 이유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일에 대하여 만약 우리가 다윗이 환상이나 꿈을 통하여 주를 보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 추상적이고 종교적인 이야기가 되고 만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윗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주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가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오직 주의 말씀만이 그의 마음과 생각과 가는 길을 지켜주는 등불인 것을 알고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윗은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증거하였다.

 

또한 다윗은 믿음은 현실의 경지를 넘어 육체의 죽음 이후의 다음 세상을 생각하며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하였다. 과연 어떻게 하면 아직 이 땅에 오지 못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고 그로부터 오는 영생의 기쁨을 바라볼 수 있었을까? 성령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도 감당할 수 없는 지혜가 아닐 수 없다.

 

베드로는 다윗을 가리켜 그가 죽어서 우리 조상의 묘에 묻혀 있으나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증거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는 선지자라는 말씀과 저가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여 라는 부분이다. 이것은 다윗이 특별한 상황에 있었음을 언급한 것이다. 다윗은 성령에 의하여 1000년 후에 일들을 미리 보고 말한 것이다.

 

후일 베드로는 복음사역을 정리하며 장차 올 그리스도의 날을 경계하며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서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벧후3:8) 하였다. 이것은 그 자신이 우리 앞에 다가 올 그리스도의 천년왕국을 미리 봄으로 한 말일 것이다.

 

계속하여 베드로는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를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으니 이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 그리스도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34-36) 증거하였다.  

 

III. 세례와 성령의 선물(37-42)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38)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요지라 하겠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령의 선물에 관한 것이다. 베드로가 요엘 선지자의 말과 다윗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증거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신 성령의 선물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베드로의 메시지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예수님이나 베드로는 모두 이 땅에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 곧 성령의 역사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은 미리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고 다윗은 그 선물을 통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보았으며 또 그의 때에 이르러 세례 요한을 통하여 그 세례를 베풀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었으며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을 받은 사도들이 성령의 나타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이 성령을 받은 것을 피력하며 성령의 능력을 증거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증거가 오늘 베드로의 증거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된 메시지가 틀림없다.

 

이제 사도 베드로는 메시지를 듣고 회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였다.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세례란 침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한 죄사함의 세례인 것이며 또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위한 세례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령의 선물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서 그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이 약속에 대하여 이 약속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설명하였다. 이 말은 요엘 선지자로 하신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말씀과 동일하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세례(침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처럼 세례에 대하여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고 그를 통하여 엄청난 역사가 나타났는데 왜 우리 교회들은 세례(침례)에 대하여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우리는 세례와 무관하게 주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만약 이들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불순종한 것이라면 과연 그들에게도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의 선물은 주어진 것일까?

 

계속하여 베드로는 여러 말로 확증하며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40) 권하였다. 여기서 여러 말로 확증하였다는 것은 성경에 미리 하신 구원에 관한 말씀들을 확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증거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들은 것을 말한다(요16:13).

 

흥미롭게도 베드로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 중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다. 누가는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기록하였다.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사도들을 통하여 미리하신 말씀을 듣고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난 예언의 성취인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믿고 받는 사람들에게는 그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며 불순종한 사람들에게는 미리 경고하신 형벌이 임하는 것이다.

 

IV. 성령의 선물과 교회의 시작(43-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42)

 

이제 바야흐로 이 땅에 교회의 사역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뜻의 성취로 말미암아 이 땅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였고 그 사도들의 전도를 받아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신령한 은사이고 이제 이 능력을 받은 그들은 그들의 임무와 책임이 부여되었다. 그것은 바로 사도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는 무질서한 바람이 불고 있다. 모두가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하여 매달리고 있지만 성령의 세례를 받고 난 이후에 가르침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가 스승보다 높지 못하리라 경계하셨다. 하늘로부터 오는 능력 가운데는 그 앞에 세우신 자를 통하여 전달되는 말씀의 가르침도 포함된 것이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에 힘을 썼다. 교제란 성도간의 교통을 말한다. 각 자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나누어지는 교통의 은사이다. 또한 떡을 뗀 다는 것은 성찬을 나눈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며 그 사랑 안 거하여 기도에 힘쓴 것이다.

 

또 이들 가운데 특별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믿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 보지 못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흥미롭게도 마지막 절에는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기록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각 사람의 성격과 생활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집에서 이웃들과 모여 성찬을 떼며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은혜를 나눈 것이다.

 

여기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매우 흥미롭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열정적인 전도로 사람들을 구원시키려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그들이 모여 떡을 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백성들에게 칭송 받는 일을 하므로 하나님께서 날마다 구원받는 사람들을 더하셨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백성들에게 칭송 받는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은혜와 사랑의 주님. 당신의 위대한 이름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부족함 가운데도 주님은 아직도 우리를 권면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성령의 세례를 받은 우리로 하여  더욱 주님을 사랑하게 하옵시고 백성들에게 칭송받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