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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6:4,5) 사역의 융통성과 단순성

이요나 2007. 1. 25. 12:02

(사도행전16:4,5) 사역의 융통성과 구원의 단순성

 

여러 성으로 다녀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의 작정한 규례를 저희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어지고 수가 날마다 더하더라(4,5)

 

오늘 이야기는 유럽전도 대장정의 시작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유럽을 정복하고 바야흐로 땅끝을 향하여 끊임없이 믿음의 도전을 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민족과 풍습과 문화와 정치의 풍토가 서로 다른 이방 세계 가운데서 역사하는 복음사역의 융통성과 영혼 구원의 단순성을 살펴 보게 된다. 이 과정들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 위하여 목숨을 내어 놓은 사도들과 동역자들의 헌신과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성취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으로 이방인 선교가 두 팀으로 나누어진 것을 공부하였다. 이방선교의 대역사를 눈 앞에 놓고 두 사도가 서로 다투었다는 것을 볼 때 그들도 우리와 똑 같은 성정을 가진 평범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바나바는 조카 요한, 마가를 데리고 구부로 섬을 향하여 길을 떠났고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새롭게 제정된 사도들의 교지를 이방교회에 전달하기 위해 파송된 실라 곧 실루아노를 데리고 수리아, 길리기아 일대를 거쳐 더베와 루스드라 지역으로 들어 갔다(행15:37-41).   

 

I. 복음사역의 융통성(1-5)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 새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 줄 다 앎이더라(3)

 

A.     제자 디모데의 만남

바울은 바나바와 제1차 전도여행에 뿌리를 내렸던 더베와 루스드라로 들어가 가정을 중심으로 개척된 형제들의 교회를 돌아보던 중 그곳에서 디모데라는 청년을 만났다. 디모데는 이미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의 교회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어서 디모데를 본 바울은 그의 마음에 굳게 자리잡고 있는 헌신된 믿음을 발견하고 제자를 삼게 되었다.

 

디모데는 유대인 어머니와 헬라인 아버지 사이에 루스드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그 당시 유대인의 가계는 모계 중심으로 아버지가 이방인이라 해도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들은 유대인으로 등록되었다.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말하여 어려서부터 외조모 루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으며 바울과 장로회의에서 안수를 받았다고 하였으며 (딤후1:5,6; 딤전4:14).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파송하며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수고하였다(빌2:22) 천거하였다. 또한 그의 서신에서 여섯 번에 걸쳐 디모데를 증거하였으며, 특별히 디모데에게 두 편의 편지를 통하여 장차 복음에 헌신할 젊은 목회자들의 사역적 규범을 남겼다.

 

우리는 디모데가 후일 어떻게 사역을 하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는 사도바울의 뒤를 이어 이방세계의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복음사역을 위해 말씀에 준비되고 성실하여 형제들 가운데 칭찬받는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의 동역자를 만날 때 출신배경과 혈육적 관계를 떠나 주께서 예비하신 준비된 그릇을 만나야 할 것이다. 

 

B. 바울과 할례

오늘 우리는 3절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보게 된다. 바울이 디모데를 제자로 삼고자 할 때 주변의 유대인의 이목을 생각하여 데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 그 이유는 그 지역 유대인들이 디모데의 부친이 헬라인인 것을 다 알기 때문이었다.

 

사실 우리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바울의 신앙고백은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주장하여왔다. 그러한 바울이 갑자기 유대인들의 이목을 배려하여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푼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이방인 동역자 디도의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인들에게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다(갈2:5) 증거하였다. 그러면 바울은 왜 여기서 디모데의 할례를 허락하였을까 참으로 의심스럽다. 여기서 바울은 이중적 잣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은혜의 복음에 대한 바울의 믿음은 그 누구도 견줄 수 없을 만큼 확고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사역의 상황적 현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디도의 할례가 거론 된 것은 유대인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였다. 그 당시 예루살렘교회에는 수많은 제사장과 바리세인들이 전향하여 모세의 할례를 들어 복음의 교리를 왜곡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밀리면 결국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발생할 수 밖에 없으며 이방인으로 구원을 얻은 디도로서는 교두보 역할이 되는 셈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유대인의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으로서의 바른 성경적 교육을 받아왔다. 이미 그는 복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므로 그에게 있어 할례란 그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그 지역 유대인들의 훼방거리가 되어 더 나가갈 수 없다면 이것은 복음사역의 걸림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바울은 후일 나는 복음을 위하여는 유대인에게 대하여는 더욱 유대인이 되고자 하며 헬라인에 대하여는 더욱 헬라인이 되고자 한다 증거하였다. 어쩌면 이 말은 나는 유대인 앞에서는 햄버거를 먹지 않으나 나 혼자 있을 때에나 이방인 형제들과 어울려 선짓국을 맛있게 먹겠다는 말과도 같다.    

 

계속하여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전8:9) 하였으며 다시 만일 음식물로 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로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8:13) 증거하였다. 이것은 만약 내가 이웃집에서 보낸 고사떡을 맛있게 먹는 것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믿음의 형제들을 실족시키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이미 할례에 관한 충분한 지식과 믿음을 가졌으므로 자신이 명실공히 유대인됨을 알리기 위해 할례를 한 것이라 하겠다.

 

II. 바울의 사역전환(6-10)

바울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10)

 

A.     바울의 뜻-아시아 정복\

바울의 일행은 브르기아와 갈라디아 땅에 이르러 소아시아의 최북방 무시아와 비두니아로 들어가고자 행군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께서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허락지 않으셨다. 성령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길을 막으셨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그들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 본도로 향하고자 애를 썼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였다 기록되었다. 아마 그들이 가려고 했던 모든 길이 막혔던가 행군 형편이 어긋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정치적 여건이나 도로 사정 또는 기후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다.

 

B.     하나님의 뜻- 메게도냐 일대

결국 그들은 산악지대의 육로를 포기하고 드로아 항구로 내려오자 밤에 환상 중에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환상을 보게 된다. 바울은 이 환상을 본 후 동료들과 함께 마게도냐 출행을 도모하니 길이 순조롭게 열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일을 진행하고자 할 때 그 행하고자 하는 사역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믿음을 갖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일정 속에서 계속 방해가 일어나고 또 일의 형편이 꼬이기 시작한다면 속히 그 일을 중단하는 결단을 갖어야 할 것이다.

 

나는 3년 전 서울 사역을 정리하고 중국을 들어 가고자 모든 것을 스스로 정리하고 잠시 미국에 들어가 쉬면서 중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서울 갈보리채플 사역을 다시 맡지 않으면 않되게 되었다. 이미 중국 대학교에 입학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 예약을 마쳤지만 주께서 내 발목을 잡고 허락치 않으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최근 중국에서 새로운 손짓이 시작되고 있다. 3년 전 나를 필요로 하던 몇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새로운 방향에서 나를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묻으며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한 내 마음이 이처럼 기뻐 오는 것을 볼 때 아마 나는 중국과 관련된 새 일을 하게 될 것은 느낌이다.  

 

여기서 우리는 누가가 함께 하였을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기록한 것인데 9절에서부터 계속 우리라는 호칭이 기록되고 있다. 만약 이 일행 중에 누가가 포함되지 않았다면 바울 일행이라던가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라고 기록했어야 하는데 누가는 우리 라는 관계 대명사를 사용하여 자신이 동참하고 있음을 넌지시 암시하였다. 이러한 표현은 21장까지 계속 이어진다.

 

 

III. 빌립보 교회의 탄생(11-34)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에게해를 건너 사모드라게 항으로 직행하여 해안을 따라 네압볼리를 거처 빌립보 성으로 들어 갔다. 빌립보 성은 마게도냐 지역의 관문으로 로마에 속한 첫번째 성이었다. 빌립보지역은 원래 핼라사람들과 트라키안인이 살던지역으로 B.C.42년 로마의 식민지로 예속되어 마게도냐의 핍립2세가 이 성을 건축하여 로마황제에게 봉헌하였다. 로마정부는 이 지역에 퇴역한 병사들의 거주지로 정하여 이 지역을 로마의 영토로 활성화 시켰다. 

 

A.     유대여인 루디아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14)

 

유럽의 관문 빌립보 성에 입문한 바울 일행은 먼저 그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만나고자 수소문하였다. 그것은 안식일을 통해 찾는 방법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안식일이 이르자 바울 일행은 성문박 강가로 나아가 기도처를 찾아 나섰다. 이들이 강가로 나아가 기도처를 찾은 것은 유대인들은 이방인 지역에 이르면 강가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이기 가장 편리하고 또 함께 예배 드리기 쉬운 지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스겔서나 다니엘서에서 늘 유대인들이 강가를 중심으로 모여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에스겔 선지자나 다니엘 선지자도 모두 강변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환상을 보곤 하였다. 바울 일행이 또 강변을 중심으로 기도처를 찾은 것으로 그곳은 아직 유대인의 회당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당시 로마법에는 유대인 성인남자 10이상이 발의를 하면 회당을 갖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아직 빌립보 지역은 유대인 회당이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빌립보가 퇴역한 로마군인들의 거주지로 책정되면서 유대인들의 생활여건이 순조롭지 못했지 않았다 짐작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계획하시고자 할 때에는 항상 그곳에 하나님의 사람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바울이 강가 여인들이 있는 곳에서 안식일 강론을 하게 되자 마침 그곳에 두아디라 성의 옷감 염색업을 하는 루디아라 하는 유대인 여인이 있었다.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라 하나님께서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여 그 가족이 모두 다 세례를 받고 개종을 하였다. 참으로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이로서 바울 일행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 여장을 풀고 마게도냐의 복음의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B.     귀신들린 헬라여인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17)

 

바울 일행이 빌립보 성에서 두 번째 만난 사람은 귀신들린 헬라 여종이었다. 그녀는 점으로 그 지역 유지들에게 큰 이익을 보게 하였다. 그런데 바울 일행이 나타나자 그 여종이 바울을 따라다니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떠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바울 일행으로서는 신나는 일일 수도 있다. 손 안들고 코를 풀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녀가 앞장을 서서 전도를 해주니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바울은 이 여종이 계속 며칠을 따라 다니며 지껄이므로 심히 괴로워 그 귀신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와라 하니 귀신이 그녀로부터 즉시 나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그녀가 귀신들린 것을 알았을까? 의문이다. 그녀가 말한 것은 조금도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이 바울 일행을 지적하여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말하였다. 그녀의 말은 조금도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가르치심이 아니라 귀신의 소리였던 것이다.

 

바울은 후일 귀신들도 의의 사람들로 변장하는 것은 쉬운 일이라 말한바 있다. 사단은 광명한 얼굴로 자신을 그리스도처럼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이 문제로부터 사단에게 휘말리고 있다. 어느 교회를 가면 점보는 사람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 하여 목사의 앞잡이가 되어 방언도하고 통역도 하고 또 예언을 일삼기도 한다.

 

만약 우리가 귀신의 말하는 소리에 넘어가 그것을 성령의 소리라고 믿고 따라다닌다면 결국 그 사람들은 귀신에게 이끌려 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바울은 어떻게 그녀가 말한 것이 귀신이 말한 것임을 알았을까? 우선은 그녀가 점을 쳐 주인들에게 돈을 벌게 한다는 것이며 두번째는 그 여종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의 종 바울 일행을 알라 본다는 것이다. 그로하여 여종에게서는 귀신이 떠나가고 그녀는 바울 일행에 수족되어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 이로서 그 지역에서 루디아에 이어 두번째 결신자가 생긴 것이다.  

 

C.     로마 간수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25)

빌립보 교회의 세번째 성도의 구성은 로마 간수와 그의 가족이다. 그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데에는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바울이 헬라 여종의 귀신을 쫓아내자 그 여인은 더 이상 점을 치지 못하여 그녀의 점괴에 의해 사업을 하던 유지들에게 문제가 생겼다.

 

더 이상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되자 그 지역 유지들이 들고 일어나 바울과 실라를 잡아 광장으로 끌고 나가 행정관에게 고소를 하여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였다. 시장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자 행정관은 바울과 실라의 옷을 벗기고 때린 후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엄히 경계하게 하였다. 간수들은 두 사람을 나무로 만든 착고에 머리와 손발이 체워 옥에 단단히 처 넣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였다는 것이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옥에 갇힌 죄수들이 들었다 기록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홀연히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다 열려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 것이다. 그러자 잠이 들었던 간수가 놀라 깨어보니 옥문들은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것으로 알고 자결을 하려고 칼을 커내 들었다.

 

우리가 앞에서 베드로가 갇혔을 때 천사가 사슬을 풀고 베드로를 구해내자 헤롯은 간수들을 사형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간수가 죄수를 지키지 못하면 간수는 사형을 당하는 것이 로마법이었다. 이 때 바울이 제재하여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소리쳤다. 이에 간수가 등불을 들고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선생들아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물었다.

 

이에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전하자 그 시로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 주의 말씀을 전하고 다친 곳을 치료한 후 자기 권속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이것으로 유럽 교회 세번째 구성원은 로마 간수가 되었다. 다시 말하여 유럽의 최초의 교회는 유대인 사업가인 루디아 가족과 헬라 점쟁인 가족과 로마간수 가족이 모여 교회가 선 것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V. 복음사역의 현실적 대응(35-40)

바울이 이르되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보내고자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 한데(37)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복음전도의 사회적 적응을 살펴 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울은 절대적 복음주의자였다. 그 어떤 상황이던 또 상대가 누구이던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8) 말한 후 다시 거듭하여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며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9) 선포하였다. 이처럼 바울의 진리의 복음을 수호하려는 의지는 한치의 빈틈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한 상황적 대처에 있어서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다. 예루살렘에서 이방인 수행자 디도의 할례를 요구 받았을 때에는 한치의 양보도 없던 그가 루스드라에서는 디모데를 제자로 삼아 수행하기 위해 그 지역적 유대인들과의 교류적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디모데의 할례를 감행하였다.

 

또한 35절 이하에서는 특별한 일이 일어 났다. 바울과 실라는 옥터가 움직이는 기적으로 사슬에서 풀려났으나 관청의 판결이 나기까지 옥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다음 날 행정관들은 관리를 보내어 상관들이 너희를 놓으라 했으니 이제는 나가서 평안히 가라(36) 하였다.

 

이에 바울은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공중 앞에서 때리고 옥에 가두었다가 이제는 가만히 우리를 내어 보내려 하느냐 아니라 저희가 친히 와서 우리를 데리고 나가야 하리라(37) 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관리들은 놀라서 행정관들에게 이 사실을 고하니 행정관들이 그 말을 듣고 바울 일행이 로마사람인 것을 알고 두려워하여 옥으로 달려와 사정을 이해시키고 성에서 떠나기를 간청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우리는 그 당시 로마사람들에 대한 특권이 어떠했던가를 알 수 있다. 전세계를 지배한 로마는 로마시민에게는 치외법권 같은 특권을 주어 특별한 범죄를 짓기까지는 재판없이 옥에 가두던가 또 매질과 같은 형벌을 가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바울이 빌립보 시민들이 고소를 하여 옥에 가둘 때 자신들이 로마사람인 것을 고하지 않고 있다가 차제에 말을 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다. 어쩌면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서도 태평하게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은 앞에 일어날 일을 내다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래도 유유자작하며 주를 찬양하지 않겠는가?

 

바울이 처음부터 자신들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것은 후일 이곳에서의 원활한 활동을 위한 것일 것이다. 그들이 로마시민인 이상 더 이상 유대인으로서의 종교적 핍박은 받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후일 바울 일행이 빌립보 성을 떠난 후에도 그곳에 세워질 교회를 위한 사전 포섭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복음사역에 있어서 그 상황 윤리와 법적 대응에 합리적은 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나 중동의 이슬람교나 회교국 같은 곳에 들어가 현실 상황에 대처하지 않고 마구잡이식으로 복음전도에 나서다가 오히려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오늘 바울이 행한 유럽의 관문 빌립보성에서의 복음전도활동은 우리에게 많은 지혜를 전해 주고 있다.

 

주님 오늘 우리는 시대를 초월하여 새로운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았습니다. 이것은 비단 그 시대 뿐이 아니라 장차 우리가 나아갈 미전도 국가에서 행할 복음사역의 토대로서 이제로부터 우리는 모든 것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하게 하시도 다만 주께서 우리에게 미리 베푸신 은혜로서 현실상황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