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사도행전강해

(사도행전17:18) 진리의 충돌

이요나 2007. 2. 4. 18:33

(사도행전17:18) 진리의 충돌

 

(행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라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바울의 두 번째 전도여행은 유럽으로 발을 딛게 되었다. 유럽의 첫 성 빌립보는 나름대로 대성공을 한 셈이다. 유럽선교에서 첫 출발지역에서 현지 유대인과 지역 유력자들에게 영적 영향을 미치는 헬라 여인과 로마인 간수의 구원은 대성공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여기서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은 구원과 함께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믿음의 증거이다.

 

흥미롭게도 사도행전에는 바울 서신에 소개된 중요 교회들의 개척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었다. 그 중에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상당한 파워를 가진 교회 중에 하나이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빌립교회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빌립교회는 여성들의 사역이 왕성한 교회로서 상당히 발전된 교회였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의 문제는 외적인 활동과 지나친 사역적 경쟁심으로 그리스도인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유럽전도의 두번째 개척지 데살로니가교회와 고린도교회의 근원이 된 아데네 지역의 복음전도에 대하여 살펴 보게 된다.  

 

I. 데살로니가 입성(1-10)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매(2)

 

A. 데살로니가의 유래

바울 일행은 소동하는 빌립보 성을 성령과 주의 성도들에게 맡기고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들어 갔다.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 일대의 가장 아름다운 항구로서

마게도냐와 로마를 잇는 교통요지이다. 데살로니가라는 이름은 헬라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인 카산더가 그의 처이자 알렉산더의 이복자매인 데살로니가의 이름을 따서 봉헌한 도시로서 헬라의 멸망 후 마게도냐를 통치한 카산더 장군의 정치 군사적 중요도시였다.

 

B. 바울의 성경강해

2절에는 바울이 자기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기록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3주간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데살로니가서에서 나타난 데살로니가 교회의 영적 상태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이 자기 규례를 따라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 갔다는 말은 매우 흥미롭다. 사실로 말하자만 유대교 회당에 들어 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호랑이 굴로 들어 가는 것과 같다. 그런데도 바울은 항상 안식일이 되면 유대인의 회당으로 들어 갔다. 이것이 바울이 이방세계에서 복음을 전하는 첫 번째 전략이다.

 

사실 바울은 유대교의 가장 유력한 율법사 가멜리아 학파의 수제자로서 유대인들 사이에 나름대로 이름이 알려져 있을 수 있다. 어쩌면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 회당장을 비롯한 회당의 유력자들과 통성명을 하면서 자신이 가멜리엘 학파 출신이었음을 넌지시 말하였을 지도 모른다. 만약 처음부터 자신들이 모세의 율법을 따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라 말했다면 회당장이 바울에게 설교의 기회를 주었을 리가 없다.

 

이방에서 태어난 바울은 이방지역에 사는 유대인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그들의 심리를 충분히 이용하여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나라도 당연히 그러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울의 설교가 끝나고 나면서 일어났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이 그들 앞에 설 때 성경을 갖고 강단에 섰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사람들 앞에 성경을 가르치는 학자로 인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아마 바울은 회당에 보관된 구약의 두루마리를 들고 나갔을 것이며 설교 내용으로 보아 이사야서나 시편을 즐겨 사용했던 것 같다. 

 

여기서 성경을 가지고 뜻을 풀어 강론 하였다는 것은 바로 강해설교를 의미한다. 그 당시 회당의 서기관들은 고작 예언서 한 부분을 읽고 율법을 지킬 것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바울은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 곧 아무도 거론하지 못하는 메시야의 복음을 강론한 것이다.

 

바울이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야 할 것을 증명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사야 53장과 시편2장과 16장의 말씀을 갖고 증거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쩌면 시간이 넉넉하였다면 스가랴서를 펼쳤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증명이란 성경적 변증을 의미한다. 더 이상 반론할 수 없도록 성경의 예언을 확증하였다는 것이다.

 

C.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특성

흥미로운 것은 바울의 메시지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누가는 4절에서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았다 기록하였다. 사실 회당장이 안식일에 바울에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도록 단상을 내 준 것은 자기들과 같은 교리를 전하고 지도자들의 말을 따라 십일조 생활을 잘하라고 권할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몸의 부활과 장차 올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준비하라는 새로운 메시지를 전하여 그 메시지를 들은 회중들이 열광하니 이들은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직도 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3년 전 중국 청도의 어느 교회에서 어느 유명 목사와 함께 세미나를 인도한 일이 있었다. 한 목사는 중국 내에서 이름을 갖고 있는 터라 대부분의 시간이 그에게 배정되었고 나는 겨우 신학교의 한 강좌와 주일 예배 한 강의를 맡게 되었다. 유명 목사의 세미나에는 화려한 모습을 한 성도들이 서로 앞을 다투며 유명 호텔로 식사 초청을 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그러나 나는 조용한 믿음을 가진 집사들이 준비한 도시락으로 조촐한 식사를 했다. 신학교라고 해야 평신도 성경학교라서 거의 부인들이 중심이었다. 그래도 20여명의 부인들과 자매들이 열정을 갖고 참석하였다. 중국에서의 첫 메시지를 전하는 나는 두 시간에 걸쳐 열왕기하 2장을 가지고 엘리야와 엘리사의 영적승계에 대한 강론을 하였다. 흥미롭게도 그 시간은 마치 시간과 정적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진행되었다. 내 스스로 내가 이처럼 설교를 잘하는가 할 정도였다.

 

강의가 시작되자 여집사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하면서 마치 깊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과 같은 밝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최고의 식사 대접을 받으며 밤이 깊도록 성경말씀의 꽃을 피웠다. 그들은 난생 처음 성경강해의 맛에 취하여 떠날 줄을 몰랐다. 나는 그 때의 감격을 생각하면 지금도 다시 중국을 가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내가 청도에서 메시지를 전한 후 그 교회에서도 두 무리의 충돌이 일어났는데 한 쪽은 말씀을 중심으로 교회를 개편하려는 새로운 세력과 또 한 편은 자기들의 기존 세력을 유지하려는 세력간의 마찰이었다. 결국 나는 내가 그곳에 더 있게 된다면 분열의 조짐이 일어날 것 같은 양상이라 후일을 기약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지금 다시 청도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누가는 5절에서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란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다 기록하였다. 여기서 괴악한 사람들이란 거리의 깡패를 말한다. 그들은 바울 일행을 돌보고 있던 야손의 집으로 몰려들어 야손과 형제들을 끌어 내어 시 행정관 앞에 끌고가 이들이 황제 가이사의 명을 어기고 다른 임금 예수를 전하고 있다고 고소하였다. 결국 그들은 야손에게 공탁금을 받고 풀려났다. 그날 밤 바울과 실라는 그곳을 떠나 베뢰아로 들어갔다.

 

II. 베뢰아 사람들의 열심(11-15)

베뢰아 사람은 대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11)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시 서쪽 40km지점의 오늘날 베리아(Verria)이다. 이 지역은 마게도니아 베르미우스 산 기슭에 위치한 관계로 데살로니가와 같이 상업이 발달된 도시는 아니었지만 세공업이 발달된 공업도시로서 비교적 신실한 인품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이런 것으로 보아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사람들의 성품도 달라지는 것 같다.

 

베뢰아에 도착한 바울과 실라는 규례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 갔다. 이것은 바울의 전형적인 복음전도의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시민권자가 된 것도 율법사가 되기 위해 가멜리아 문중에서 공부를 한 것도 모두 복음의 경륜이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누가는 그 지역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 기록하였다. 더구나 그지역에는 믿는 사람들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에서 건달들의 행패를 받아 야간 도주해야 했던 바울 일행들은 이곳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을 것이다. 복음 전도자들에게 있어 이러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커다란 위로와 힘을 얻는 원동력이 아닐 수 없다.

 

3년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내 생전 방문한 플로리다주는 하늘보다 더 파란 해변과 하얀 밀가루를 쏟아 부은듯한 긴 해변을 가진 매우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곳은 일년 열두달 바다낚시와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있었다. 그곳에는 예전부터 남달리 사랑하는 형제가 가정의 문제로 마음의 큰 상처를 받고 있어서 위로 차 방문한 곳이다. 나를 유독히 따르던 형제는 밤마다 성경말씀으로 새 힘을 얻고 기쁨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 형제를 따라 이웃 교회의 성도들이 모여 들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나와 함께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몇 일 안되어 그 지역 목사들이 연합하여 들고 있어나 나를 위협하며 떠나기를 종용하였다. 결국 나와 그 형제는 새벽 길을 재촉하여 아틀란트에 있는 형제의 부모 집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그 형제 어머니는 신실한 믿음의 권사로서 기쁨으로 나를 맞아 주었고 우리는 매일 아침 성경말씀을 사모하는 집사들과 함께 성경공부에 빠졌다. 나는 이들 속에서 커다란 위로를 받았다. 아직도 나는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그들의 열정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은 바울 일행이 베뢰아에서 말씀을 전한다는 말을듣고 이곳까지 몰려와 훼방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에 남겨두고 인도자들을 따라 아데네로 들어갔다. 아마 바울이 실라와 디모데를 그곳에 둔 것은 그들이 이방인이기 때문에 유대인의 훼방을 피할 수 있었고 또 말씀을 사모하는 베뢰아 사람들에게 부족한 믿음을 보충하게 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다.

 

III. 철학과 종교의 도시 아덴(16-34)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데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22)

 

베뢰아를 떠나 들어간 아데네는 메게도니아 아래지역인 아가야에 위치한 항구도시로서 오늘날 그리스의 수도이며 고린도시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아데네는 여신 아데나(Athena)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으로 정치 문화, 종교적으로 황금기를 이루어 문화도시로 명성을 날렸다. 이곳에는 솔론(Solon)과 피시스트라투스(Pisistratus)에 의해 출발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고 헬라제국의 몰락과 함께 잠시 패권다툼 속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로마의 집권으로 아데네는 자유도시로 선포되었다(B.C.86).

 

16절에는 바울이 아데네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시장거리)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라고 기록되었다. 바울의 이러한 심정은 일본을 방문한 목회자라면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일본에는 그 어디를 가도 신사와 또 각양각색의 우상들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특성을 살펴 볼 수 있다. 바울은 태성적으로 종교적 열정이 강한 사람으로서 유대교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로 앞장을 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서도 복음을 도를 훼방하는 유대지도자들과 맞서 예루살렘에까지 올라갔으며 왕들과 총둑들 앞에서 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을 강론을 하였으며 결국은 로마황제 네로 앞에까지 가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와 같이 복음을 향한 바울의 열정은 그 누구도 못 말리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

바울이 아데네 성에 이르자 온 성안이 우상으로 가득차 있었고 철학을 즐기는 괴변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 중에 사모섬 출신 철학자 에피쿠로스(B.C.341-271)가 일으킨 에피쿠로스 학파와 제논이 창시한 스토아 학파가 주도를 이루고 있었다. 에피쿠로스 철학은 쾌락을 인간의 최고의 선으로 보는 철학으로 인간이 쾌락을 추구하고 누리는 가운데 아름다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하였다.

 

또한 스토아 철학은 이성을 중시하고 도덕과 윤리를 중히 여겨 금욕생활을 최고의 선으로 여겼다. 결국 에프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철학은 서로 상반된 교리를 가지고 고린도시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이곳은 오늘날과 같이 이분법적인 논쟁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이 지역에 이르러 회당과 거리에서 복음의 도 곧 예수와 몸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를 전파하자 두 학파 열성당원들이 바울이 전하는 새로운 교의 변론을 듣기 위해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지역의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끌고 갔다. 바울을 아레오바고 광장으로 이끌고 간 것은 아레오바고는 민주주의를 정립한 솔론이 세운 대법원으로 그 당시 아데네 사람들은 그 지역에 들어 온 외국인 거주자들은 늘 새로운 철학에 귀를 기울이며 다른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계는 어떠한가? 유명한 목사들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교회성장 교리와 새 풍조를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지 아니한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은 자기들이 듣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술취한 사람들처럼 무리를 져 다니고 있다. 이미 이사야 선지자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따라가며 밤이 깊도록 머물러 포도주에 취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5:11) 하였고 다시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5:21) 경고하였습니다.

 

또한 야고보는 종말의 성도들을 향하여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를 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의의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3,14) 말하고 다시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4:15,16) 기록하였다.

 

아레오바고에 모인 군중들 앞에 선 바울은 그들을 향하여 아데네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하고 포문을 열었다. 참으로 바울의 서론은 이방 종교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생명과 호흡의 창조자 하나님

 계속하여 바울은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제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하였다.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주체이신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자이시며 운행자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섬기는 신들처럼 신전에 거할 필요도 없고 또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을 필요가 없는 생명과 호흡의 주체가 되신 분임을 역설하였다. 

 

우리가 어떤 신을 섬긴다고 할 때 그 신의 형상이 사람의 손으로 지어 또 사람이 지은 신전에 놓여 사람들의 섬김을 받는다고 할 때 이것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미 성경이 말하였듯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는 물체 앞에 엎드려 예물을 드리고 절을 하는 자는 그 우상과 같을 것이라 기록 하였다.

 

계속하여 바울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26,27) 하였다.

 

바울은 여기서 창조주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인류의 창조자를 소개하여 그들로 하여 모두 모든 우상에서 떠나 창조주를 발견하게 하기 위함이다. 먼저 바울은 모든 인류는 한 혈통이라 하였다. 이것은 우월감을 가진 유대인에게나 로마사람들에게 자극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철학과 신비의 세계를 연구하기를 좋아하는 아데네 사람들에게 있어는 새로운 자부심을 갖게 하는 가르침이었다.

 

계속하여 바울은 우리 인간이 모두 신의 소생 곧 신적 권능을 가진 위대한 존재임을 선언한다. 베드로는 우리가 모두 신의 성품에 참예한 자들이니 썩어 없어질 육체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이미 아데네 사람들 중에도 공감하는 신적 철학이라 바울은 인간이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은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고 역설하였다.

 

  *회개의 시대의 메시지

이제 바울은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공의로 심판할 날을 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음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증거하였다.

 

지금 바울은 구원의 복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구원의 복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 가기 위한 몸의 부활에 대한 지혜를 언급하였다. 이것은 복음의 교리의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우리 또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에 영혼의 구원의 메시지에 치중하여 장차 그리스도의 날에 임할 영원한 생명의 복을 가릴 때가 있다. 바울은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이라 말하며 이제 우리가 잠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나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증거하였다. 세례 요한은 주를 증거하여 그는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라 하셨다. 이것이야 말로 그리스도 복음의 진수이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 모두 만인제사장의 시대를 열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함이다.

 

  *복음의 결과 몸의 부활

 바울의 전도가 신의 소생에서 몸의 부활에 이르자 아데네 사람들 간에 비방하는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이것은 형이상학적 철학이 난무하던 시대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었기 때문이다. 이에 한계를 느낀 바울은 저희 가운데서 떠나 고린도로 옮기게 된다. 더 이상 그들 가운데 소망이 없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바울은 그들 가운데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불리는 여자와 몇 사람을 얻게 되었다. 이들은 대법원의 직원으로 상당한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것으로 바울은 만족을 얻고 다음 기회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곳은 후일 바울의 제자이며 성경학자인 아볼로가 들어와 복음의 진리를 가르치게 된다. 이제 우리는 18장에서 바울의 고린도교회 개척과 새로운 제자 아굴라와 브리스가 그리고 성경학자 아볼로를 만나게 되는 과정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주님 오늘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앞으로 복음전도의 길에서 만날 많은 훼방과 그에 대처하는 지혜를 살펴 보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철학이 난무하는 아데네에 들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시는 하나님 곧 만유를 지으신 창조자의 자녀가 되기 위한 믿음의 시초임과 또 그로 말미암아 몸의 부활을 얻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지혜를 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이러한 담대함과 복음의 지혜를 주어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 앞에 무릎을 꿇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