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강해/사도행전강해

(사도행전19:2)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이요나 2007. 2. 22. 19:40

(사도행전19:2) 너희가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2)

 

우리는 앞장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인도로 바울의 제자가 아볼로가 추천을 받아 아가야로 들어가 고린도 교회의 감독이 되었음을 있다. 바울이 아볼로를 아가야 일대로 들어 가도록 천거한 것은 그만큼 그가 온전한 복음의 지식과 담대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저가 가매 은혜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맣은 유익을 주니 이는 성경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공중 앞에서 유력하게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18:27,28) 기록하였다. 그러나 후일 우리는 고린도전후서에서 아볼로 사역 이후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복음사역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단순한 것만이 아님을 있다. 

 

I. 바울의 에베서 사역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2)

 

A. 성령 세례는 구원과는 별도로서 구원받은 후에 체험할 있다

다른 번역에는, 너희가 믿은 이래 성령을 받았느냐? 되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헬라어 번역은 모두 동일한 개념을 갖고 있어서 우리가 어떤 번역을 읽든지 간에 음미하는 바가 중요하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당신이 예수를 믿지만 성령의 은사를 받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우치고 있다.

 

이 부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철저하게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근대에 외서 모든 교회에 성령은사 바람이 불면서 지나치게 성령 성령하고 있지만 사실 성령을 외치는 사람들 속에는 성령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수두룩하다. 사실 나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령운동을 제일먼저 일으킨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였다. 나는 성령 받기를 힘쓰며 기도원에 찾아가기도 하고 금식도 하고 또 성령세례를 준다는 어떤 사람들에게 안수를 받기도 하였다.

 

그때에는 오산리 기도원에 가면 땅굴 속에서 진을 치고 생활하는 자칭 예언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당시 내가 성령세례를 받았다고 한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성령을 받은 것 같은 내 생각과 착각이지 성령은 그렇게 무당 굿하듯이 내리는 것이 아님을 십 여 년이 지난 후에서야 알았다. 그렇다고 나는 여기서 진실로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진정으로 성령세례를 받은 것이라며 그들의 믿음생활 속에서 나타난 성령의 열매들이 성경적 증거를 받아야 할 것이다.

 

주님은 요한복음 14장에 제자들에게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말씀하셨다. 또한 주님은 부활 후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자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요20:22)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때 제자들에게 아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나 제자들의 코에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했을 때 제자들이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이 더 이상하다. 이 때의 예수님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부활의 영체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제자들은 성령을 받았으나 아직 성령의 은사가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면 성령세례는 제자들에게 언제 나타났는가? 주님은 부활 후 40일 간 제자들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그 때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내 생각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제자들이 해야 할 일들 곧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와 관련하여 나타날 일들과 재림에 관한 많은 지식들을 말씀해 주셨을 것이다.

 

그리고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릴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행1:4,5) 하셨다.

 

이 모든 말씀 속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성령이 너희와 함께 하시고, 너희 안에 계시겠고, 성령이 너희 위를 덮으실 (한글성경 임하시면) 권능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을 약속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성령과 관련된 헬라어 전치사 함께para 이며 속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en이다. 또한 임하시면epi로서 우리 속에 부어진 성령이 넘처 흐르는 상태를 뜻하며 여기서 ‘‘임하실 때 또는 덮으실 때로 번역된 헬라어 전치사는 둘 다 가능한 번역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상태가 성경적인 조명을 통하여 확실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네가 성령을 받았느냐?다는 성경의 질문은 물음은 감정적인 인식으로 답변할 문제가 절대 아닌 것이다.

 

주께서 약속하신 날이 임하자 성령세례를 기다리고 있던 제자들 위에 성령이 임하였다.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던 사람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성령 체험을 통하여 자신들의 입을 통해서 나타난 특별한 성령의 신적 능력을 체험하였다.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놀란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은 그 능력이 그들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베드로의 증거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물었다. 이 때 베드로는 대답하여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라고 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베드로가 증거한 요구조건과 관련하여 나는 그 말씀에 입각한 상태인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야 할 것은 베드로가 말한 세례를 오늘날 한국교회가 행하는 세례의식이 아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 스스로 받으셨던 침례인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서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16:15-18) 하셨다.

 

또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말씀은 예수께서 성령 강림을 약속하시면서 다시 요한은 물로 세례(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으리라(행1:5) 고  제자들을 상기 시키신 일이다. 그런데도 만약 당신이 강대상 앞에서 행하는 세례 의식을 고집한다면 당신은 이미 성경의 말씀에 불순종 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은 아니었다. 아마 나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침례를 받음으로 성령께서 그들 속에 들어와 계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세례가 아닌 것이다. 그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있던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하여 그들이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성령이 임했다. 그러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음을 듣고 침례는 받았으나 아직 성령이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아직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성령의 넘치는 체험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사도 바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했으나, 며칠 아나니아가 와서 그에게 성령이 임하기를 안수하니 성령 충만함을 받고 즉시로 눈이 회복되어 일어나 아나니아에게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성령충만과 성령은사가 동의어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사람은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성경과 다른 말을 하는 것이다.

 

B. 성령과 우리의 삼중 관계

여기서 우리는 성령에 관한 삼중 관계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성령은 우리가 회심하여 주를 믿기 우리와 함께(para) 하신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아무도 예수를 믿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주님은 하나님께서 내게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자가 없다 하셨다. 이것은 창세전에 계획하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으로 성령께서 그 일을 대항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그는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예수님께 양도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예수만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있는 유일한 되심을 증거하신다.

 

이때 우리가 성령의 증거와 인도하심에 반응하여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주인으로 초청할 , 성령은 우리의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말하기를, “너희 몸이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라고 한 것이다.

 

그 후 성령은 믿는 자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 우리를 인도하시며 장래 일을 우리에게 알리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우리 가운데 나타내신다(요15:13) 이로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생활을 하게 되며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우리 건을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라고 증거한 것이다.

 

성경은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시인할 없다고 증거하였다. 또한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증거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그의 증인이 되기 위한 능력을 주시겠다고 예수께서 하신 약속이다. 이를 위해 우리에게 성령세례가 임하시는 것이다.

 

II. 바울이 이런 질문을 했을까?

그러면 바울은 왜 에베소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주의 제자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였을까?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하여 어떻게 알았을까? 먼저 바울은 그들 가운데 역사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제자로서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A. 부족한 크리스천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성령충만한 삶의 증거 중 가장 커다란 열매는 사랑이다. 사랑은 희락과 평강과 오래 참는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사랑 자체가 자비와 양성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로 나타난다. 또한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타났다면 그들은 제일먼저 영혼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터득한 성경적 지식만을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교만함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가끔 여호와의 증인들의 방문을 받는다, 그들은 내게 웃는 얼굴로 다가와 유익한 성서의 말씀을 배우지 않겠느냐고 다가온다. 그러나 그들의 지식은 성경과 성령의 조명을 받지 못한 영혼을 멸망으로 이끄는 이단의 무리다.

 

또한 나는 가끔 자기 지식에 취하여 신학적 논리로 나를 가르치려는 무리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의 교만은 자신들도 깨닫지 못한 것을 가지고 변론을 하려 한다. 나는 이들을 만날 때 그들이 아직 그리스도의 충만한 지식에 이르지 못하였고 그것은 성령의 세례를 받지 못함 때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남을 가르치는 은사는 성령세례의 가장 근본된 목적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들의 믿음 생활 속에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나타나야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결여된 것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B. 성령충만과 성령이 넘쳐흐르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주님은 요한복음 7장에서 명절에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에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내가 주는 생수를 마시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요7:37,38) 외치셨다. 이에 대해 요한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는 주석을 달았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성령에 대하여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그는 당신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과 같으리라 하셨다. 이것은 성령이 당신 안에 내주하시는가? 아니라 당신의 삶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같은 성령을 가졌는가? 라고 묻고 계신 것이다. 당신은 컵에 물이 가득 찰 때까지 물을 부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부으면 컵에 넘치기 시작한다. 그로므로 가득 차는 것과 넘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C. 세상 살기 힘든 크리스챤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살기가 어렵다고 불평하며 포기해버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적인 삶을 흠모하고 인정하고 난 후에 이상적인 기준대로 없을 좌절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살아 있다면 왜 내 모양이 이 모양 요 꼴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 믿는 일을 중단해 버린다.

 

또 어떤 사람은 이요나 목사가 성령의 능력을 받았다면 왜 고난을 받고 있느냐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그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소망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인 것이다. 이미 갈보리채플에서 소망을 잃은 사람들은 모두 나를 떠났다. 그러나 성경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구원을 얻을 것이라 기록하였다. 최고의 면류관은 최후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자신의 삶에서 느낀 좌절감을 리얼하게 말했다. 내가 원치 아니하는 것을 행하며 원하는 것은 행치 아니하도다. 내가 미워하는 그것은 함이라. 내가 율법에 선한 것을 시인하나 선한 것을 행할 수가 없구나.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죄의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도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0-24)

 

그러나 계속하여 바울은 성령 안에서 사는 삶을 말하면서 로마서 8장에서 그의 해답을 제시한다. 이는 그리스도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느니라.(롬8:2-6) 이와 같이 주님은 모든 인간이 소망하는 이상적인 삶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그런 다음에 이상을 살도록 능력을 주신다.

 

III. 바울의 에베소 사역(8-20)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는 누구냐 하며 악귀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5,26)

 

A. 두란도 서원

에베소에서 제자들을 얻은 바울은 사역의 힘을 얻고 그곳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석달 동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강론을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관한 것으로 종말론적인 성경강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에베소에서도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굳은 마음으로 순종치 않는 사람들이 일어나 그리스도의 도를 비방하므로 할 수 없이 바울은 회당을 떠나 제자들을 중심으로 두란도 서원을 세워 그곳에서 2년 동안을 말씀 사역을 하게된다. 누가는 10절에서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기록하였다. 이것은 에베소가 아시아 지역의 교통 중심지였기 때문에 많은 제자들을 얻었음을 의미한다.

 

  B. 축사행위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하여 특별한 능력이 나타내셨다. 그 지역 사람들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들도 떠났다. 그로하여 그 지역에 마술을 하는 유대인들도 시험적으로 악귀들린 자들을 향하여 주 예수 이름으로 나가라는 일까지 생겼다. 흥미로운 것은 유대의 스니게라는 제사장과 그의 일곱 아들도 나서서 축사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악귀가 나타나서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는 누구냐 하며 그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억제하여 저희를 상하자 그들이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 일이 벌어졌다(15,26)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축사 행위가 일어나고 있다. 감기만 들어도 손을 얹고 감기 귀신아 가다라고 기도하며 또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귀신이 나가면 좋고 안나가도 좋다는 식이다. 일단 해보자는 식으로 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제자들에게 주신 성령의 능력이다. 예수를 믿는다고 모두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나는 가끔 혼란을 격을 때가 있다. 상담을 받으러 온 어떤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과연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의심을 하게 된다. 그를 대할 때 정말 견딜 수 없도록 내 심령이 상해 오고 그 알 수 없는 악한 기운이 나를 공격해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믿는다 하고 또 교회를 다니고 있다. 나는 그때 이 사람을 향해서 귀신아 나가라 명을 해야할지 망설인다. 이것은 참으로 미묘한 문제라서 쉽지 않다.

 

그런데 분명한 것 하나는 나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면 곧 그에게 성경공부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성경을 한절씩 읽으며 강해를 시작한다. 그러면 분명 특별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얼굴이 일그러지고 심한 고통의 현상이 나타난다. 그때 나는 그에게 손을 얹어 마음을 어지럽히고 심령을 상하게 하는 악한 영아 떠나라하고 명한다. 그러면 순식간에 그에게 평안이 임하고 우리 안에 기쁨이 역사한다.

 

나는 이러한 일을 여러 번 경험하였으나 이것이 축사행위라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히 복음사역과 함께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나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기도한다. 앞으로 동성애와 관련된 사역을 하기로 작정을 하였기 때문에 이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한발자국도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C. 말씀의 흥왕

이러한 일이 있은 후 에베소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며 믿는 사람들이 많아져 그 지역에 마술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행하던 책들을 가지고 와서 사람들 앞에 모아 놓고 태워버렸다. 누가는 그 책값이 은 오만에 해당한다고 기록하였다. 누가는 20절에서 이와 같이 에베소에서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었다 기록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여기서 그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말씀사역을 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를 통하여 제자를 얻으면 바로 말씀 사역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21절에는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뢰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자기를 돕는 사람 중에서 미도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을 마게도냐로 보내고 자기는 아시아에서 얼마간 더 있으니라 기록되였다. 이제 바울은 로마로 갈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마게도냐와 아가야 일대에 제자 사역이 시작되었고 그들을 더욱 든든히 하기 위해 그의 제자 디모데와 에라스도을 보내기에 이른다. 이제 바울은 로마 황제가 있는 로마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지음 에베소에서 큰 소동이 일어나고 만다.

 

  D. 대적하는 세력과 변화된 도시

바로 그 지역에서 아데미 신전을 중심으로 상권을 이루고 있던 은장색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이 그 지역 상인들을 충동하여 바울을 내어쫓으려 한 것이다.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장기적인 복음 사역으로 마술사들도 자리를 감추게 되고 에베소가 그리스도인의 거리로 바뀌어가자 그들의 장사는 날이 갈수록 쇠퇴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가 사람들을 선동하여 바울로 인하여 우리의 직업이 천하여지고 또 아데미 신전의 위엄도 떨어지게 되는 것이라 하며 바울의 동역자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 연극장으로 끌고 갔다. 다시 말하여 인민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모인 사람들은 중에는 서로 의견이 분분하여지자 유대인 중에 유력한 사람 알렉산더를 내 세워 소동을 진정 시키려 하자 반대세력들이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서지 못하게 소리를 지르게 되자 할 수 없이 서기장이 나서게 되었다. 서기장은 지혜로운 사람이라 무리를 안돈 시키고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쏘스에게 내려온 우상 전각지기가 된 줄을 누가 모르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말하고 다시 전각의 물건도 도적질하지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일이 있거든 재판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 명하였다.

 

참으로 서기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이처럼 이성적인 합당한 선언을 하게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소동할 구실을 찾지 못하였다. 이에 서기장은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도 없다하고 무리들을 해산 시켰다.(35-41)

 

이러한 결과는 바울과 그의 제자들이 에베소에서 삼년 동안 복음을 전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실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우상의 미혹된 심령에서 진리를 발견한 사람들의 마음은 이성을 되찾고 그를 훼방하는 무리들 속에서도 바른 판단에 설 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복음의 역사는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진리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른 길로 나아가게 한다

 

오늘 우리는 우리 교회 안에 성령의 역사와 온전한 말씀 사역이 이루어 지고 있는가 살펴 보야 할 때이다. 아직도 우리 가운데 제사장 스게와와 같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축사행위를 하는 악한 행위를 하는 일이 있는가 살펴 보아야 한다.

 

주님 우리로 하여 성령의 능력의 필요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이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허락하여 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가르치게 하시고 주의 말씀과 성령의 나타나심으로 이 땅에 악한 세력들을 물리치게 하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