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방언통역은사2) 진짜인가 가짜인가?

이요나 2007. 2. 14. 12:04
(방언통역은사2) 진짜인가 가짜인가?


*서론*
바울은 자기의 생활 속에서 은사를 갖고 있었음에 대하여 "나는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전14:18-19)고 말하였으며 또 다시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14:15)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말은 자기 의지로 기도할 수도 있고 자기 의지로 기도를 멈출 수도 있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순절 교회 성도들이 자기의 의지로 방언을 멈출 수 없다는 말은 성립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인격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와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고 계십니다. 또 성경은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14:32)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언의 영 즉 성령이 예언자들에게 의하여 제재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서 진행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안에서 발생되는 일들을 사단의 역사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도 그러한 혼란을 많이 겪어 왔습니다.


*사단인가 성령의 역사인가? *
최근 한가지 발견한 것입니다만 어떤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할 때, 또 기도할 때 마치 마취제에 취한 것처럼 잠들어 버리는 것에 대하여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의심을 해왔었습니다. 대개 그러한 경우는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악한 영에게 눌림을 받았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사단의 영에 의한 일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발견한 것은 그 순간 그 옆에 있는 사람도 같은 영향권에 돌입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전에도 그러한 현상은 나에게까지 미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나까지도 순간적으로 깜박 깜박 잠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귀신의 역사라고 생각하고 상대가 잠에 빠지지 못하게 경계하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순간 말할 수 없는 평안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세상에서는 죽음이지만 영원의 세계로 빠져들어 가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한 경험은 깊은 기도에 빠져들어 갈 때 종종 경험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임재하심 즉 후광예배였음을 기억하고 내가 얼마나 영적으로 착각하고 있었던지 많이 회개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으로 매우 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생활 속에서 어떠한 영적인 상황이 일어나면 그것을 성령의 임재보다는 귀신의 역사로 판단해버리는 경우가 종종있습니다. 우리의 무지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도 우리를 인내하시겠지만 참으로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하나님의 영은 희락과 화평임을 잊고 주의 영의 임재하심 속에서 깊히 빠져들어 가는 현상을 귀신의 역사로 보았으니 참으로 나도 한심한 목사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날까요? 세상 가운데 잘못된 은사를 집행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도 그 사람들처럼 보이게 될까봐 너무 경계한 나머지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은 우리 생활 반경 속에서 자유롭게 우리 가운데 임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똑 같지 않다! *
밧모섬에 잡혀 있던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영을 만났을 때 혼비백산하여 자신의 육체가 썩어지는 것 같은 체험을 하였습니다. 다니엘도 그랬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주의 영이 임재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무아지경으로 빠지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삶 속에 일어날 수 있는 성령의 역사에 민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통역의 은사는 우리 가운데 어떻게 나타나는 것일까요?

바울은 성령의 은사는 여러 종류가 있음을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방언의 통역 은사도 그 종류에서 여러 가지 일 것으로 만약 당신이 통역의 은사가 있다면 당신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의지대로 향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방법대로 일하시도록 코너로 몰고 가기 일쑤입니다만 절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기분을 맞추어주시는 분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과 의지를 따라서 역사하십니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여러 명의 소경들을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른 방법으로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침에 흙을 개어서 눈에다 바르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도록 하셨고 어떤 사람은 두 번을 기도하여 점차적으로 눈을 뜨게 하셨으며 어떤 때에는 눈에 침을 발라서 기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디메오에게는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신 후 보기를 원하는 그에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인간의 생각을 벗어난 자기의 방법으로 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주께서는 자기의 주권적 의지로 행하심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사역은 어떠한 틀에 묶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면 자신도 그러한 체험을 하고자 흉내를 내곤 합니다. 심지어 표정과 목소리까지 흉내를 내고자 하기도 합니다.

*구약에도 통역은사가? *
또 주의하여야 할 것은 한번 방언 통역을 하였다고 하여 방언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것이 아닙니다. 전매 특허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전매특허처럼 받은 것으로 착각할 때 성령은 이미 그 사람과 함께 역사하지 않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각 사람의 기분을 만족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그의 주권적 사역 속에서 취하실 자를 취하시고 버리실 자를 버리십니다. 믿는 모든 사람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그 순간에 느끼게 되는 체험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을 가르칠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오르는 체험을 하게 되기도 하고 자신도 의심할 정도로 성경의 말씀이 쉽게 깨달아져 올 때가 있습니다. 그 성령의 흐름은 나의 성실함과 온전함에 의하여 더욱 은혜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삼고 함께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시대에는 통역의 은사가 나타났던 것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 당시는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전하여 주셨습니다. 물론 요셉과 같이 꿈을 해몽하게 하여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알게 하시기도 했습니다만 이것은 방언의 통역의 은사는 아닙니다. 구태여 한가지 유사한 발견은 다니엘서에서 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5장을 보면 벨사살 왕 때 하나님께서 왕궁의 연회장 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라고 쓰셨습니다. 이 때 그 글을 본 벨사살 왕은 혼비백산하여 죽음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어떤 박사들도 그 글을 해석해 내지 못했습니다. 이 때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와 있었던 다니엘이 과거 느브갓넷살 왕 때 있었던 일이 기억되어 벨사살 왕에게 불려 나왔습니다. 이 때 다니엘은 "이 뜻을 해석하건데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데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라"(단5:26-28)고 말하였습니다.

*시작에서 끝날까지? *
그러나 이것을 신약시대에 믿는 자들에게 주의 증인이 되게하기 위하여 주신 성령의 선물 방언의 은사와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구약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참예한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은사는 이미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신 가운데 우리를 가르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의 선물을 부어주시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의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방언의 은사는 오순절 날 교회의 탄생과 함께 주어진 첫 번째 선물로 방언과 함께 나타난 성령의 은사였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방언 은사는 주께서 오시는 날까지 계속 되어질 것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방언 통역의 은사는 방언이 이 땅에 있는 성도들 속에서 역사하는 동안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오순절 날 교회의 탄생과 함께 나타난 방언과 통역의 은사는 성도들을 가르치는 말씀이나 예언의 통역이 아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각 나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 내일은 미국 갈보리채플 교회의 탄생과 함께 있었던 방언 통역의 은사를 척 스미스 목사의 증언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