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은사1)교회를 지탱하는 위대한 힘
*서론*
고린도전서 12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에 역사하는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며 또 그 구조적 설명을 우리의 몸에 비교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 많은 부분은 오직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 유대인이나 미국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 노예든 대통령이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임에도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였으니 만일 다 한 지체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12:13-20)기록하였고 다시 "눈이 손더러 네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의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요긴하며 덜 귀히 여기는 부분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줌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몸을 그르게 하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심을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몸 가운데 서로 분쟁이 없음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을 때 다른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으며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받는 이치를 인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커다란 지체이며 또 아무리 작은 성도라도 우리는 그 교회의 한 지체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어 우리가 그와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우리가 모두 사도가 아님과 모두가 예언자가 아니며, 교사와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며 병을 고치는 자가 아니며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방언하는 자가 아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고전12:28-31)
*몸의 구조 *
바울은 앞에서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수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각 지체들의 중하고 약한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체들이 몸을 위하여 봉사하는 질서의 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에 해당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교회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친히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우리의 몸의 각 기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성도의 구조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각 몸 속에서 역사하는 봉사(ministry)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역을 말하지만 교사의 직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먼저 바울은 이 봉사의 직무에 대하여 "사도"를 지칭하였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친히 세움을 받은 자들로서 교회의 창시 사역자들입니다.
사도의 필수 조건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자칭 사도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고후11:13) 사도 바울은 늘 유대인들로부터 사도권에 대한 공격을 받아 왔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서신을 보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늘 그의 서신서에서"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고전1:1)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 사도의 두 번 째 조건은 주의 부활하심을 본 자라야 했습니다. (행1:22) 또한 사도들은 사도로 칭할만한 이사와 기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위한 봉사자로서 헌신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바울은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역자 *
오늘날도 자신이 사도의 직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누구라도 그것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의 부활하심을 본 것을 증명하여야 하고 사도로서의 이사와 기적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몰몬교도들은 자신들이 가장 정당한 교회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이유로서 그들은 사도에 의하여 다스려진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유일하게 열두 사도로부터 정당하게 안수를 받은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질문은 설교할 권위를 누가 주었는가? 세례를 줄 권세를 누가 주었는가? 하고 물어 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주께 하던 질문들입니다.(요1:19, 막11:28)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의 봉사는 그 누구라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작은 봉사라도 그 봉사의 직무는 하나님으로부터이다. 또한 주께서 세운 자들을 주께서 친히 증명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신학교가 난무한 가운데 가볍게 목사가 되는 풍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를 신학을 하고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는 것으로 내 세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증을 받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주로부터 세움을 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주의 능력이 함께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 능력이란 잘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으로서 오직 성경으로 조명을 해 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에 대한 증명으로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고 말하였고 다시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1:11)고 말하였습니다.
*봉사란 무엇인가? *
바울은 봉사의 직무에 대하여 첫째로 사도요 둘째로 전도자요 셋째로 교사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요 전도자요 교사로서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무를 위하여는 한 사람이 여러 직무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아마 이러한 직무는 달란트에 따라서 주어지는 은사로서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기능을 다 주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띠라서 우리가 모든 기능을 다 가질 수는 없지만 그 직무의 수행상 여러 가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또 바울은 봉사의 직무로 예언자를 꼽고 있습니다. (고전14:3)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오늘날 미국이 낳은 전도자요 예언자입니다. 또 초대교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봉사의 직무는 교사입니다. 저는 이 부분의 직무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본에서 돌아와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교회에는 교사라는 직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있는데 교사는 주일학교나 청년부 교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사는 목사와 같은 직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한 헬라어로 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목사는 성경교사이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성경교사라는 직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싼타바바라 갈보리채플 리키 라이언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을 때 주신 예언의 말씀은 예언에 관한 은사와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였습니다. 나 또한 일생을 성경교사로서 살고자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주로부터 교사의 직무를 받았음으로 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 가운데 교사로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1:10)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내게 주신 이 직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능력은 성령의 기름부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는 내가 설교한 테이프를 들어보면 나 자신도 놀랄만한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그 부분의 말씀을 그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교사의 위치 *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목사님들의 테이프와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경석학 박 윤선 목사님을 위시하여 김 홍전 박사님, 석 원태 목사님, 이병기 목사님의 주석집을 읽었습니다. 물론 현재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견 목사님들은 물론 차세대 목사님들과 급진적 부흥을 일으키고 있는 몇 분의 신진 목사들의 책과 설교 테이프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 중 내게 커다란 스승이 되어 주신 분은 김 홍전 목사님입니다. 지금 그분은 고령으로 캐나다에서 목회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홍전 목사의 이스라엘 역사는 실로 이스라엘의 역사가가 가르친다해도 그 이상은 가르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위대한 교사이심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분이 우리나라에 계심을 무한히 감사 드립니다. 물론 이분은 한국의 중견 목사님들처럼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지도 못하였고 어떠한 교계의 선을 긋는 커다란 흐름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에 성경공부가 시작되는 날 이 분의 저서는 유일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미국 갈보리채플의 특징은 성경교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갈보리채플을 이끌어 가는 대형교회 목사는 모두 성경교사입니다. 그중 데빗 혹킹 목사나 래리 테일러 목사, 척 스미러 목사는 그야말로 미국을 이끌고 가는 위대한 성경교사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를 두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ministry)의 일을 하게 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교직자라는 말은 미니스터(ministry)라는 단어로도 쓰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봉사는 무엇인가? *
교사라는 직분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의 직무임에도 불과하고 우리는 봉사라는 직무가 교회에서 헌금이나 걷고 청소나 하고 안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무로 부름을 받아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무 중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복음을 전파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전파는 믿지 않는 자들을 회개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믿게 하는 사역이지만 가르치는 사역은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를 바로 알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의 봉사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인 것입니다. 물론 목사는 그 직무 속에 교사의 봉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경의 목사와 교사는 원래 헬라어에는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는 교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떻든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는 그는 주께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비록 신유은사를 갖고 있고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목사의 직무는 그와 다릅니다. 사도와 예언자들과 전도자들은 목사와 교사로서의 직무를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신유은사와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목사나 교사도 예언자나 전도자의 직무에는 미치지 못한다하여도 신유나 기적이나 예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국무총리나 각부 장관의 일을 모두 명령할 수 있는 원리와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교회를 지탱하는 힘 *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이후에서 9가지 은사를 열거하면서 돕는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는 돕는 은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 개인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로서 한 지체를 이룬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는 한 성령 안에서 오직 성경의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이 없으면 자기가 행하는 일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명백히 증거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성령의 이름으로 자기 주장을 한다면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사실 지금의 교회는 그러한 실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두 성령 성령의 이름으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한다고 떠들고 있는데 사실 성령은 자기를 증거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성령 대망회라던가 성령축제라던가 하는 말은 성령의 사역과 위배되는 일들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왔습니다. 그는 인격자이시나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을 말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 즉 그의 말씀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나는 우리교회에 돕는 은사는 매우 중요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돕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을 알리지 않으면서도 요소 요소에서 아주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어린아이들을 돌보아 준다던가, 주차장 정리를 한다던가 자기의 자동차로 성도들을 싫어 나른다던가 정리정돈과 청소 등 이러한 것은 정말로 생색도 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몸의 더러운 곳과 냄새나는 곳을 말끔하게 씻어 단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나는 목사는 이러한 직무로부터 솔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는 물에 손을 대어서도 안되며 목사는 존경받는 위치로서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풍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청소라던가 막힌 하수도를 뚫는 일 그리고 전등을 갈아 끼우는 일 들을 목사 스스로 하지 않으면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부름받은 봉사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돕는 은사는 가르치는 은사와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서론*
고린도전서 12장을 펴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교회에 역사하는 성령의 은사를 설명하며 또 그 구조적 설명을 우리의 몸에 비교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 많은 부분은 오직 한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 유대인이나 미국인이나 아프리카인이나 노예든 대통령이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입니다. 우리가 많은 사람임에도 한 몸을 이룰 수 있는 것은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모든 사람이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였으니 만일 다 한 지체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고전12:13-20)기록하였고 다시 "눈이 손더러 네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하였습니다.
바울은 우리 몸의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요긴하며 덜 귀히 여기는 부분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줌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몸을 그르게 하셔서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심을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몸 가운데 서로 분쟁이 없음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을 때 다른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으며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영광을 받는 이치를 인용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몸인 이 땅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커다란 지체이며 또 아무리 작은 성도라도 우리는 그 교회의 한 지체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어 우리가 그와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우리가 모두 사도가 아님과 모두가 예언자가 아니며, 교사와 기적을 행하는 자가 아니며 병을 고치는 자가 아니며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방언하는 자가 아니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고전12:28-31)
*몸의 구조 *
바울은 앞에서 첫째 둘째, 셋째라는 수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각 지체들의 중하고 약한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 지체들이 몸을 위하여 봉사하는 질서의 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머리에 해당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저 교회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친히 사도를 세우셨습니다. 지금 바울은 우리의 몸의 각 기관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와 성도의 구조를 비교하여 설명하면서 각 몸 속에서 역사하는 봉사(ministry)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봉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역을 말하지만 교사의 직분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먼저 바울은 이 봉사의 직무에 대하여 "사도"를 지칭하였습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친히 세움을 받은 자들로서 교회의 창시 사역자들입니다.
사도의 필수 조건은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사도로 부름을 받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자칭 사도라고 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고후11:13) 사도 바울은 늘 유대인들로부터 사도권에 대한 공격을 받아 왔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서신을 보면 자신의 사도권에 대하여 아주 강하게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늘 그의 서신서에서"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도로 부름받은 바울"(고전1:1)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
또 사도의 두 번 째 조건은 주의 부활하심을 본 자라야 했습니다. (행1:22) 또한 사도들은 사도로 칭할만한 이사와 기적이 나타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바울의 일생은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위한 봉사자로서 헌신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또 바울은 믿음의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역자 *
오늘날도 자신이 사도의 직무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누구라도 그것을 주장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의 부활하심을 본 것을 증명하여야 하고 사도로서의 이사와 기적이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몰몬교도들은 자신들이 가장 정당한 교회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이유로서 그들은 사도에 의하여 다스려진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자기들이 유일하게 열두 사도로부터 정당하게 안수를 받은 교회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질문은 설교할 권위를 누가 주었는가? 세례를 줄 권세를 누가 주었는가? 하고 물어 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주께 하던 질문들입니다.(요1:19, 막11:28) 이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의 봉사는 그 누구라도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작은 봉사라도 그 봉사의 직무는 하나님으로부터이다. 또한 주께서 세운 자들을 주께서 친히 증명하실 것이다"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 신학교가 난무한 가운데 가볍게 목사가 되는 풍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부름을 받았다는 증거를 신학을 하고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는 것으로 내 세웁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증을 받는 것은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주로부터 세움을 받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주의 능력이 함께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의 능력이란 잘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으로서 오직 성경으로 조명을 해 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에 대한 증명으로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고후12:12)고 말하였고 다시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1:11)고 말하였습니다.
*봉사란 무엇인가? *
바울은 봉사의 직무에 대하여 첫째로 사도요 둘째로 전도자요 셋째로 교사라고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요 전도자요 교사로서 봉사하였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무를 위하여는 한 사람이 여러 직무를 가질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아마 이러한 직무는 달란트에 따라서 주어지는 은사로서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기능을 다 주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띠라서 우리가 모든 기능을 다 가질 수는 없지만 그 직무의 수행상 여러 가지 봉사를 할 수 있는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또 바울은 봉사의 직무로 예언자를 꼽고 있습니다. (고전14:3)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안디옥 교회에는 많은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오늘날 미국이 낳은 전도자요 예언자입니다. 또 초대교회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봉사의 직무는 교사입니다. 저는 이 부분의 직무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직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일본에서 돌아와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 교회에는 교사라는 직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있는데 교사는 주일학교나 청년부 교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교사는 목사와 같은 직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와 교사는 한 헬라어로 한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목사는 성경교사이어야 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성경교사라는 직무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 싼타바바라 갈보리채플 리키 라이언 목사로부터 안수를 받을 때 주신 예언의 말씀은 예언에 관한 은사와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였습니다. 나 또한 일생을 성경교사로서 살고자하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내가 주로부터 교사의 직무를 받았음으로 알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 가운데 교사로서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1:10)기록하였습니다. 나는 내게 주신 이 직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고 있으며 그 능력은 성령의 기름부음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는 내가 설교한 테이프를 들어보면 나 자신도 놀랄만한 말씀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로 내가 그 부분의 말씀을 그처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교사의 위치 *
저는 한국에 와서 많은 목사님들의 테이프와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경석학 박 윤선 목사님을 위시하여 김 홍전 박사님, 석 원태 목사님, 이병기 목사님의 주석집을 읽었습니다. 물론 현재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중견 목사님들은 물론 차세대 목사님들과 급진적 부흥을 일으키고 있는 몇 분의 신진 목사들의 책과 설교 테이프를 읽어 보았습니다. 그 중 내게 커다란 스승이 되어 주신 분은 김 홍전 목사님입니다. 지금 그분은 고령으로 캐나다에서 목회 중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홍전 목사의 이스라엘 역사는 실로 이스라엘의 역사가가 가르친다해도 그 이상은 가르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책을 통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분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위대한 교사이심이 틀림없습니다.
나는 이러한 분이 우리나라에 계심을 무한히 감사 드립니다. 물론 이분은 한국의 중견 목사님들처럼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지도 못하였고 어떠한 교계의 선을 긋는 커다란 흐름을 만들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우리나라에 성경공부가 시작되는 날 이 분의 저서는 유일하게 쓰임을 받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미국 갈보리채플의 특징은 성경교사가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 갈보리채플을 이끌어 가는 대형교회 목사는 모두 성경교사입니다. 그중 데빗 혹킹 목사나 래리 테일러 목사, 척 스미러 목사는 그야말로 미국을 이끌고 가는 위대한 성경교사들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4장에서 사도, 예언자, 전도자, 목사와 교사를 두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ministry)의 일을 하게 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교직자라는 말은 미니스터(ministry)라는 단어로도 쓰임을 기억해 둘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봉사는 무엇인가? *
교사라는 직분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의 직무임에도 불과하고 우리는 봉사라는 직무가 교회에서 헌금이나 걷고 청소나 하고 안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무로 부름을 받아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직무 중 가장 큰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복음을 전파하시며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복음전파는 믿지 않는 자들을 회개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주로 믿게 하는 사역이지만 가르치는 사역은 이미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한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도를 바로 알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라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의 봉사 중 가장 큰 것은 역시 가르치는 교사의 직무인 것입니다. 물론 목사는 그 직무 속에 교사의 봉사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성경의 목사와 교사는 원래 헬라어에는 한 단어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목사는 교사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떻든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는 그는 주께로부터 부름받은 사역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가 비록 신유은사를 갖고 있고 귀신을 내어쫓는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목사의 직무는 그와 다릅니다. 사도와 예언자들과 전도자들은 목사와 교사로서의 직무를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들은 신유은사와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목사나 교사도 예언자나 전도자의 직무에는 미치지 못한다하여도 신유나 기적이나 예언을 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은 대통령이 국무총리나 각부 장관의 일을 모두 명령할 수 있는 원리와도 같다고 하겠습니다.
*교회를 지탱하는 힘 *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8절 이후에서 9가지 은사를 열거하면서 돕는 은사와 다스리는 은사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우리는 돕는 은사를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 개인으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로서 한 지체를 이룬 공동체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하여는 한 성령 안에서 오직 성경의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이 없으면 자기가 행하는 일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명백히 증거하기 어렵습니다.
모두가 성령의 이름으로 자기 주장을 한다면 교회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아니 사실 지금의 교회는 그러한 실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모두 성령 성령의 이름으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한다고 떠들고 있는데 사실 성령은 자기를 증거하러 온 것이 아니므로 성령 대망회라던가 성령축제라던가 하는 말은 성령의 사역과 위배되는 일들입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왔습니다. 그는 인격자이시나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듣는 것을 말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의 것 즉 그의 말씀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나는 우리교회에 돕는 은사는 매우 중요한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돕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을 알리지 않으면서도 요소 요소에서 아주 필요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주일 예배에 어린아이들을 돌보아 준다던가, 주차장 정리를 한다던가 자기의 자동차로 성도들을 싫어 나른다던가 정리정돈과 청소 등 이러한 것은 정말로 생색도 나지 않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몸의 더러운 곳과 냄새나는 곳을 말끔하게 씻어 단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나는 목사는 이러한 직무로부터 솔선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목사는 물에 손을 대어서도 안되며 목사는 존경받는 위치로서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풍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스스로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청소라던가 막힌 하수도를 뚫는 일 그리고 전등을 갈아 끼우는 일 들을 목사 스스로 하지 않으면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부름받은 봉사자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돕는 은사는 가르치는 은사와 함께 교회를 이끌어 가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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