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구제의은사1)하나님은 기분파를 좋아하실까?!

이요나 2007. 2. 14. 12:09
(구제의은사1)하나님은 기분파를 좋아하실까?!


*서론*
우리는 앞에서 우리 믿음생활에 있어서 꼭 필요한 영적예배의 토대가 되는 은사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구제하는 은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로마서 12장 8절입니다. 바울은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로서 능력이 들어오는 입구가 오직 한 곳입니다. 그것은 성령입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는다"(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분이 성도의 믿음생활에 중추적인 힘이 되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능력은 여러 가지의 출구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의 출구가 구제하는 데 즉 주는데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모두 쏟아서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삶의 기준 모델을 세우신 것입니다.

우선 주께서는 용서의 기준과 모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용서하지 않으면 않됩니다(엡4:32). 또 주는 사랑의 기준과 모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지 않으면 않됩니다(요15:12). 그리고 주님은 구제 즉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기준과 모델이 되셨습니다. 우선 그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딤전2:6).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 중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나누어 주는(구제)의 은사입니다.

*개척교회는 고물상인가?*
바울은 "구제하는(나누어 주는) 자는 성실함으로(with simplicity)"라고 말하였습니다. 영어 'simplicity'은 '단순'의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무엇을 나누어주는데 너무 복잡합니다. 이유가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행에서 융자를 받고자 하면 참으로 복잡한 절차와 서류를 요구합니다. 또 정부에서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구제품이 그 절차에 있어서 너무 까다로워 순수한 마음으로 전달된 구제물품이 창고에서 썩어가고 있음을 우리는 메스콤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구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7년 전 서울 이태원에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처음교회를 개척하면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각 성도들이 그 필요한 물품들을 살펴서 자기의 집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그것들은 모두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던 것이었습니다. 나도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앞으로 교회에서 사용될 것을 생각해서 테이프 고속 복사기, 신디사이져 등을 사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소유하던 텔레비젼과 비디오, 오디오, 세탁기 등을 모두 교회로 옮겼습니다. 물론 나의 경우도 사용하던 것이었지만 일본에서 들어오면서 새로 장만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 생활의 소중한 재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독신자로서 어차피 내 생활이 교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교회에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집에 냉장고도 비디오도 없습니다. 누님이 이사가면서 남기고 간 14인치 텔레비젼이 나를 웃겨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참에 자기들이 사용하던 고물단지들을 처분하는 기회로 삼고 새로운 가구를 들여 놓았습니다. 결국 교회는 고물상처럼 잡다한 고물가구로 가득찼습니다. 어떤 것은 얼마 사용하지 못하여 고물장수에게 주어버려야 했습니다.

그릇은 짝이 맞지 않아서 어쩌다 행사를 치르게 되면 이 그릇들이 어떻게 모여진 것인지를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성도는 자기의 혼수선물로 받은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카피셋트를 상자째 가지고 왔습니다. 커피셋트를 여러개 받았는데 그것은 아주 고가품이어서 사용하지 않고 곱게 두었던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새로 집을 지어서 옮기면서 선물로 받은 그릇 셋트를 교회에 내 놓았습니다. 우리는 7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자기들이 쓰다가 남은 것들을 주는 것은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필요 없는 것을 처분하는 것입니다. 울고 싶을 때 누가 따귀를 때려 준 것과 같은 것입니다.

* 나팔 불지마라! *
예수께서는 구제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6:2)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지금 우리 주위에 꽤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누구에게 베푼 일에 대하여 두고두고 생색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무엇을 해 주었었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제하는 자 "with simplicity"단순한 즉 순수한 마음으로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마음에서 성령을 속이다가 죽임을 당한 아니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기억하실 줄 믿습니다. 베드로는 그들 부부에게 "너희가 사람이 아닌 성령을 속이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잘못된 마음의 동기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 칭찬을 받고자 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얼마 전 어느 목사가 자신은 갈보리채플에 헌신하여 중국에 열 몇 개의 교회를 개척하였다고 자랑하였습니다. 그 분은 사실 장로교 목사로서 갈보리채플과 관계없는 목사였지만 미국에 있는 한국인 예배 담당 목사와 친분을 맺고 자신이 갈보리채플의 목사인 것처럼 명함을 갖고 다닌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지갑에는 몇 가지의 명함이 있습니다. 보여줄 상대에 따라서 명함이 바뀌는 것이지요. 그는 년말에 양재동 횃불회관에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중국에서 한 일들을 떠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는 전국 교회의 연고자들을 찾아 다니며 중국선교라는 명복으로 모금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을 해 왔는데 마치 자기 자신이 그 일을 혼자 한 것처럼 떠벌이고 다닙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사업을 하던 사람으로서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는 분인데 그러한 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것은 구제의 은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영광을 취하는 행동으로서 성령을 속이는 일인 것입니다.

*구제는 꼭 필요한 것을 채우는 것! *
또한 우리 주위에는 즐겨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기분파라고 부릅니다. 일본말로는 "기마에노 히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분파를 좋아하십니다. 기분좋게 남에게 잘 주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무엇을 남에게 주려면 세워보고 생각하고 계산하려는 사람보다 단순하게 지갑을 열어서 내어주는 그러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또 이러한 사람에게는 친구가 많습니다. 잠언서에는 "선물을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잠29:16) 고 기록되었습니다.

또 성경에는 구제 즉 나누어 주라는 단어가 1,981번 언급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행하는 단순한 의미의 구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을 줄 때 단순한 마음으로 나누어 주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구제라는 의미는 무엇이 넉넉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펑펑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 즉 무엇인가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안되는 절대적 필요의 사람에게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저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이 많습니다. 어떨 때는 내가 목사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얼굴이 뜨겁습니다. 그러한 분들의 이름은 내 가슴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소외받은 자들을 위하여 나누어 주는 손길들은 주께서 그들의 삶 위에 무한한 축복으로 채우실 것을 믿습니다. 구제의 은사는 내일로 다시 이어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