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가르치는 은사2) 설교가 다 말씀은 아니지

이요나 2007. 2. 14. 12:08
(가르치는 은사2) 설교가 다 말씀은 아니지


*서론*
우리는 이방인의 사도요 전도자요 교사로 활동안 바울의 생애에 대하여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잠간 살펴보았듯이 가르치는 은사는 곧 교사의 직무를 의미하며 교사의 직무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봉사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기록되어진 이래부터 이어진 중대한 사역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하여 예수께서도 늘 복음의 가르치시는 일에 열심을 다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이며 동시에 교사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에 대한 확증은 사도행전 11장 26절을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큰 무리를 가르쳤고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로부터 예수를 따르는 자들을 잡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내려가다가 주를 만나 사도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께서는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를 통하여 그에게 안수케 하여 성령세례를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과거의 행적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기피하며 사도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도권에 대하여는 예루살렘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7절을 보면 그는 먼저 사도로 부름 받은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고 증거하였습니다.

*바울은 성경교사다!
이 때 안디옥에서는 바나바가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인 교회의 전초지였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로서는 이방인을 위하여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가 필요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는 다소로 내려가 바울을 만나 데리고 온 것입니다. 바울이 그곳에 와서 성경을 가르치자 안디옥 교회는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증거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을 보면 안디옥 교회에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름 속에는 바울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유하며 다수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주의 말씀을 가르쳤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행15:35)

또 사도행전 18절 11절을 보면 바울은 그 후에 고린도에 가서 18개월 간 고린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는 에베소로 내려가 3년을 거하며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다"(엡20:20)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그들에게 "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노니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행20:27)고 증언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사역자는 하나님의 뜻 즉 계획을 모두 전하는 임무인 것입니다.

*누가 거짓말쟁이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경 전체 즉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온전하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임으로 그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뜻과 비밀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직무는 오직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부르시고 성령으로 기름 부어 가르치는 교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의 직무는 막중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 거짓 교사가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거짓교사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의미를 잘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짓교사는 기름부음을 받지 않은 자 다시 말하여 하나님이 부르지도 않으시고 알지도 못하는 자들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자격증을 얻어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가르치고 있으나 실상은 커다란 실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은 성경을 알 수 있는 암호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주께서 그의 제자들에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교사의 봉사를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2절에서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성령으로 직접 받은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원리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 갈보리채플의 사역자들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갈보리채플의 사역자들이 주로부터 받은 은사가 있다면 가르치는 은사입니다. 만약 어느 갈보리채플의 목사가 있어 성경의 말씀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세움을 받은 목사가 아닐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만큼 갈보리채플의 목사들이 어느 곳에 가든지 성경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울은 유대의 랍비를 키우는 가장 경건한 가말리엘 학파에서 수학을 했습니다(행22:3).

그러나 그는 사람들의 심령을 하나님께 이끌 수 있는 능력이나 사람들의 지성을 설득시킬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그는 조직의 힘으로 사람들을 구속시킬 권세를 받았을 뿐입니다. 이 세상에 사람들을 심령으로부터 굴복시킬 수 있는 권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직 이러한 일은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사람들의 가르침에 미혹되어 가는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고 꾸짖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하여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1:7-8).고 경고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있어서 가르치는 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봉사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가르치는 자는 지기의 위치가 얼마나 중대한 위치에 있으며 그 책임 또한 얼마나 막중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십 년을 믿어도 어린아이다?
따라서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면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서 거짓 선지자들이나 교사들에게 미혹 당하여서 영혼의 환난과 삶의 갈취를 당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게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2) 고 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것은 영으로 분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2:16)고 역설하였습니다. 이것은 아무도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신령한 비밀을 알 수 없음을 증명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에게 전달되는 것일까요? 이것은 성경의 말씀하심과 같이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였다"(고전2:9) 하심과 같습니다. 오직 그의 택하심과 부르심과 세우심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세움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부르신 자들을 성령으로 기름 부어 그의 백성들을 온전케 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루게 하여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입니다(엡4:12-14)

*아멘이냐 노멘이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고 신학교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신학교에 들어가면 성경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학을 하지 않을 때보다 성경을 보지 못합니다. 신학교에 나가는 날부터 그들은 신학을 배우고 상담학을 배우고 설교학을 배우고 교회 성장학을 배웁니다. 모두가 학문입니다. 그런데 졸업을 하고 나면 가장 필요한 것이 성도들에게 성경을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급한 나머지 인터넷이나 책을 통하여 유명 목사의 설교집을 카피하기 시작합니다.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하여 신문이나 잡지에서 게재된 기사를 많이 인용합니다. 그리고 멋진 설교를 위하여 많은 미사여구를 동원하고 어떠한 목사는 심지어 집 안에 설교 연습장을 설치하여 거울 앞에서 목청을 다듬어서 최고의 멋진 설교를 연출한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높은 강대상에서 조명과 음향과 제스츄어로 잘 연출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받았다고 기뻐하며 아멘 아멘을 연발합니다. 무엇이 아멘이고 무엇이 노멘인지를 구분하지 못한 채 멋쟁이 목사에 멋쟁이 성도가 되기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러는 사이에 그들은 소경이 소경을 이끌고 가는 것이 되어서 함께 지옥행 열차를 타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 다니는 것과 예수 믿는 것은 다르다?
교회를 다니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다릅니다. 또 설교를 듣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듣는 것은 다릅니다. 이제 종말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성경이 말한 바와 같이 무엇을 들을 것인가 스스로 조심하여야 하며 어떻게 들을 것인가 스스로 조심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고 탄식하였습니다. 이제 이 말씀을 받은 당신은 이제로부터 당신이 무엇을 들을 것인가 선택하십시오. 당신이 태어남으로부터 섬겨 온 교회라 해도 성경 전체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장차 주로부터 경책을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못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2-14)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의 뜻을 예비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께서 예배자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