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은사

(다스리는은사2)지배받는 자가 지배 할 수 있다!

이요나 2007. 2. 14. 12:06
(다스리는은사2)지배받는 자가 지배 할 수 있다!


*서론*
로마서 12장 8절을 보면 바울은 다스리는 자에 대하여 다시 언급하기를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지런히'라는 말에는 '열심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대표한다는 것은 정말로 커다란 책임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잘못으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이 잘못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해전 호놀루루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그 내용은 종말에 관한 내용으로서 전도자 갈보리채플 척 스미스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1981년에 재림할 것이라고 말입니다.

척 스미스 목사는 절대로 그러한 발언을 한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척 스미스 목사에게 전화도 해보지 않고 편지나 이메일로 물어 보지도 않은 채 어떤 풍문을 듣고 기사화 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갈보리채플의 특징이 있다면 테이프 미니스터리입니다. 작은 교회든 큰 교회든 우리는 모든 설교를 테이프로 만듭니다. 이것은 강해설교를 하는 사람이면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강해설교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순서에 의하여 진행하게 되는데 성경 한번을 끝내려면 최소한 5년 이상이 걸립니다. 저는 7년 전에 서울 갈보리채플을 개척하면서 성경 강해를 해 왔는데 아직 한번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갈보리채플의 사역자들은 테이프를 제작하여 자기의 설교의 자료를 보관하고 또 보다 나은 준비를 하게 됩니다. 만약 척 스미스 목사가 그러한 말을 하였다면 그 테이프를 증거로 내어놓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테이프가 나온다면 척 스미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대변한 사역자로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말하는 예언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말이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그 말에 대한 책임을 그에게 틀림없이 물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사람들을 지도할 때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열심을 갖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대표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슬픔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지도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으로서 아무도 할 수 없는 이적과 기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성경은 모세는 하나님과 대변하여 말하던 자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지도자의 책임 *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사역자는 자기의 맡은 임무에 대하여 사람과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회를 할 때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겠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빨리 성장하고 싶기도 하고 유명해지고 싶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은 생각지 않고 자기의 생각과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회성장을 위하여 많은 헤프닝을 하게 됩니다. 어제 제가 담당하고 있는 인터넷 싸이트 크리스챤 이성교제 증발 사고도 하나님께서 내게 이러한 점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사실 저는 최근 많이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이미 칠 년 동안 갈보리채플 사역을 하면서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한 나는 마음이 조급하여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는 꼭 사람이 끼어 기 마련인데 최근 나는 어느 목회자로부터 충동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정말 기가 막힌 아이디어로 이제 바야흐로 갈보리채플이 일순간에 부흥할 찬스라고 느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셔서 은혜를 입히셨습니다. 허공 속에 세워둔 허망한 꿈이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지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입술이 부르트고 입안이 허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자식처럼 키워왔던 사이버 광야의 젊은이들의 휴식터인 다음넷 베스트 인기 카페 크리스챤 이성교제가 어이없는 실수로 허공으로 날라 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나는 밤을 새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나를 용서하셨습니다. 어린 이 아들을 불쌍히 여기셨던가 봅니다.

*세상의 모델 *
오늘 바울은 다스리는 자의 부지런함, 즉 열심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솔로몬의 잠언서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잠언서 12장 24절에는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세운 자들은 사람에게 매여 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묶인 자들이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과 관계성이 있음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들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러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2-45)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손수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너희가 나를 선생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요13:13-15) 말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사역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나타내는 자세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 기준이며 모범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손수 그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부지런히 하고 무엇에 열심을 하여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일이나 열심을 하면 되는 것이라 하나님과 그의 사역자의 맺어진 언약 속에서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감독의 의미! *
바울은 또 디모데 3장에서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하면 선한 일을 사모한다 함이로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독이란 말은 헬라어로 '에피스코페'로서 위에서 지켜보다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세운 직분자 즉 관리자, 지배자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감독(Episcopalian)교회, 즉 우리나라의 감리교는 감독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교회정치 제도를 가진 교단입니다. 또 바울은 장로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었는데 장로는 헬라어로 '프레스브테로스'로서 오늘날 장로교(presbyterian) 정치의 발생 어원입니다.

따라서 장로교회는 장로들에 의하여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파로서 감독이 주장하는 감리교단과는 엄격한 정치구조의 차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의 조직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가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통하여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친히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어떠한 조직형태의 정치구조를 가지고 있다하여도 그들이 성경의 말씀에서 벗어난 일들을 하였을 때는 그들은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직분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감독은 교회의 관리자로서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술을 즐기지 이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 사람이 자기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찌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딤전3:2-7)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감독의 조건을 말하는 것입니다만 그 조건의 첫 번째가 주위 사람들로 비난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다른 것에 비하여 강조한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것은 자기자신이 다른 사람에 의하여 지배받고 있음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즉 다시 말하여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의식을 갖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또 바울은 가정을 가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가족을 지배하기에 앞서서 자신이 가족에게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지배행위는 우리로 자신을 지키는 힘이 되어 줍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환경을 통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의식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