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세례

<성령세례26>하나님과의 조화(2)

이요나 2007. 2. 14. 12:16
<성령세례26>하나님과의 조화(2)


*하나님의 싸이클*
우리는 믿음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몰라 괴로워하며 또 나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는 것으로 어린아이들처럼 투정을 부리기도하고 짜증을 부리기도 합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을 원망도하고 불평도 합니다. 철부지 아이들이 당치도 않는 것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떼를 쓰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한 참 흐른 후에 돌이켜 보면 내가 원하였던 것들이 어느새 다른 방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들으셨고 하나님께서는 나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일을 성취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저 역시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떼를 써왔는지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고집을 부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래서 인간은 하나님 앞의 영원한 어린 아이들임이 틀림없습니다. 주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온전함의 기준이 하나님이실진대 과연 티끌에 불과한 우리의 존재가 하나님의 기준치에 도달 할 수 있을 것인지, 두렵기만합니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그 분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그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순종할 때 그의 영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위대한 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 그 두 번째를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술취한 자 같아! *
그러면 성령께서는 이러한 문제를 위하여 어떻게 우리를 도와 주시는 것일까요? 사무엘을 보면 우리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의 남편 엘가나는 브닌나라는 첩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조강지처 한나가 자식을 낳아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마6:24)고 하셨는데 두 아내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이러한 일은 현대에서 통하지 않는 일이 되었지만 이스라엘의 풍습은 대를 잇지 못하는 여인은 이혼감이었습니다. 그러나 엘가나는 조강지처 한나를 사랑하여 버리지 않고 첩을 얻었었나 봅니다.

문제는 첩 브닌나가 자식을 낳자 한나를 무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대체 여인에게 있어서 자식이 무엇이기에 이런 일은 끊이지 않는 싸움이 되고 있는 것인지요. 이러한 사건은 아브라함의 처 사라에게도 있었습니다.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자기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의 이부자리 속에 넣어 주었지요. 그 결과 이스마엘을 낳은 하갈이 사라 앞에서 코를 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라는 결국 하갈을 내어 쫓고 말았습니다만 남편에게 사랑받는 여인 한나도 이 문제만큼은 견디기 힘들었는가 봅니다.

참을 수 없는 굴욕은 여호와의 집에서 매년 개최하는 축제에서 극도로 달하였습니다. 그 때마다 첩 브닌나는 자기 자식들을 앞세우고 한나를 격동 시켰습니다. 저는 이런 경우는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습니다만 여인에게 있어서 이 문제는 아마 죽기보다 참기 힘든 문제일 것입니다. 그럴 때다 견디 못하고 괴로워하는 한나에게 그 남편 엘가나는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고 위로하였지만 그 문제는 남편의 사랑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많이 사랑하였었나 봅니다. 결국 한나는 마음의 괴로움을 참지 못하고 여호와께 통곡을 터뜨리고 서원기도를 하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필요하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한나의 기도가 얼마나 길었던지 제사장 엘리에게 주목되고 말았습니다. 엘리는 이 여자가 술이 취한 것이 아닌가하고 나무랐습니다. 그 모습이 어떠했기에 술 취한 여인 같았을까요? 아마 목숨을 내걸고 매달리는 기도였을 것입니다.

한나는 엘리 제사장에게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두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보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입니다"라고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엘리는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이 말 한마디에 한나는 눈물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끌고 갈 영적 지도자 사무엘을 낳아서 여호와께 드렸습니다.(삼상1:10-17)

그 당시 이스라엘은 영적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는 선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아들들이 악하여 하나님의 전의 제물을 도적질하고 성전에서 음행을 저지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그의 집을 멸하기로 하셨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과 백성들을 이끌고 갈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하나님의 애통하는 마음과 조화를 이룰 한 여인이 필요했었습니다.

사실 한나는 명문의 딸로서 엘가나와 결혼하면서 자녀를 갖기 위한 기도를 계속 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가문을 이을 아들을 달라고 한 것이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첩 브닌나의 격동으로 한나의 마음이 번민하게 되었고 한나는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자신의 심령을 오직 하나님께 고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한나의 기도는 성령이 그 안에서 탄식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고 계십니다.

*비둘기 같이 울어라!*
구약성경에는 또 하나의 성령의 탄식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기도입니다. 이사야서38장 14절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아 죽게되자 면벽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나는 제비같이 학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도의 슬픔에 차게되면 사실 혼절하게 됩니다. 생떼 같은 자식의 죽음을 본다던가 할 때 인간이 극도의 슬픔에 차게 되는데 그 순간에는 어떠한 통곡의 소리도 입에서 나오지 않고 흡사 술취한 여인처럼 또는 제비나 비둘기의 울음소리처럼 말을 잃게 되고 맙니다. 이렇게 하여 인간의 의식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는 우리의 간구함 속에서 하나님과 마음의 합의를 이룰 때 우리는 성령의 탄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유14)고 권면 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우리에게 있을 영적전쟁을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고 역설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의 영입니다. 따라서 이 영적인 싸움에서의 승리는 오직 성령의 능력을 받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6:18)라고 가르쳤습니다. .

*방언의 기도*
그러면 어떠한 기도가 하나님과 마음의 조화를 이룬 기도일까요? 성경은 영으로 기도하는 방법에 대하여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방법은 방언의 기도입니다. 그러나 이 방언 기도는 하나님의 은사로서 하나님이 주셔야만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즉 초대교회 성도들은 세례와 함께 나타나는 은사 중에 하나였습니다. 바울은 방언의 은사보다 예언의 은사를 앞세웠지만 그는 방언을 금하지 말라 하였고 남보다 더 많이 방언을 말함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는 다른 은사에 비하여 규제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서는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도 이 문제로 한참 고민하였습니다. 내가 하는 방언이 정말로 하나님의 주신 은사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곤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방언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이 그 내용을 모르기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통역을 하기에 힘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방언은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하는 방언이 할렐루야나 몇 마디 같은 소리라면 그것은 방언의 은사가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는 나중에 은사를 다룰 때 다시 거론하기로 하겠습니다.

*영의기도*
또 다른 방법에 대하여 바울은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여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영으로 찬미하고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가 감지할 수 있는 영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것은 극도의 영감이 필요한 부분입니다만 우리는 삶 속에서 우리의 영이 고통을 받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또 영적 갈급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육체와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과 또 다른 체험입니다. 그것이 느껴질 때 우리는 우리 안의 영을 감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영으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마음과 같은 부분인 것 같으나 분명히 마음의 부분과 또 다른 영적인 부분 속에서 탄식하는 영을 느껴질 때 여러분은 그 때 마음을 다하여 진정한 기도를 그에게 드리십시오.

나에 의하여 드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영에 의하여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십시오. 나의 영 안에는 그의 성령이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의 깊은 곳을 알고 드려지는 하나님의 영의 기도이며 나와 마음을 합한 즉 하나님과 조화된 기도인 것입니다. 이제 구하십시오. 성경은 명령하고 계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셨지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구하여도 얻지 못함은 너희의 정욕대로 구하기 때문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구하실 것인지 아셨을 줄 믿습니다. 이제 성령에 의하여 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필요하신 것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구하시기를 원하시는 것들을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한나의 기도의 처음 출발점은?

2. 한나를 격동한 것은 무엇인가?

3. 한나의 기도는 무엇에 초점을 두었는가?

4.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살펴보라?.

5. 방언기도에 대하여 서술하라?

6. 마음의 기도를 감지해 보라?

7. 당신은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