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세례

<성령세례24>영적성장(3)

이요나 2007. 2. 14. 12:17
<성령세례24>영적성장(3)


*18살에 우유병이란 말이냐? *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벗어 나와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하여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그들의 체험은 크리스챤이 경험해야할 비유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를 통하여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애굽의 종살이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 홍해는 오늘의 물세례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광야를 지나서 약속의 땅으로 여행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의 택한 의로운 백성으로 지켜야할 규범 즉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광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였습니다. 물이 없어서 갈급할 때에도 고기가 먹고 싶어서 외칠 때에도 또 그들의 진로를 막는 대적이 나타났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것을 지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 가까웠을 때 모세는 각 지파에서 선출한 12 정탐군을 미리 보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탐군 중 10명이 모두 잘못된 보고를 하였습니다. 단 2사람만이 올바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된 보고를 듣고 지도자를 세워서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노하여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말씀하셨고 다시 "너희가 사로잡히리라 하던 너희의 아이들과 당일에 선악을 분변하지 못하던 너희 자녀들 그들은 그리로 들어 갈 것이라 내가 그 땅을 그들에게 주어 산업이 되게 하리라"(신명기1:39참조)고 맹세하셨습니다. 그 결과 그 불평의 사람들이 죽을 때까지 40년 간을 광야를 빙빙 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원받아 물로 씻음을 받은 백성들이었다는 것일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많은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애굽에서의 삶을 그리워했었습니다. 결국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과거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마음을 억제 못한 결과였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생활을 알지 못하는 광야에서 새로 태어난 사람들만이 새로운 영도자 여호수아를 따라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모든 것은 과거의 육체의 모형과 새로 태어난 사람의 모형인 것입니다. 바로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의 모형인 것입니다.

*쟁취를 위한 전쟁*
과거 광야의 생활에서도 격심한 전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투에는 어떤 소득도 없었습니다. 싸워서 이겨야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 즉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선 새 사람들의 전투는 약속된 땅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자나 성령에 의한 생활을 하는 자들 모두가 당연히 임해야만 하는 영적 전쟁이 있음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우리의 삶 속에서는 격심한 영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성령에 의하여 인도함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와 함께 얻을 기업이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과거의 육체의 모습을 끊어버리지 못하여 광야를 헤메이다 죽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당당히 요단강을 건너서 하나님이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쟁취하는 성령의 사람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부여잡고 믿음으로 전진하므로서 우리 안에 역사하는 성령께서 우리를 방해하는 세력들을 물리치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말씀에 순종한 믿음의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한계*
우리가 그 말씀 안에서 셩령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에게 약속된 기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구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영토에 살고 있는 원주민들 즉 가나안 일곱 부족을 쫓아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리고, 아이, 벧엘을 탈취하여 전진하여 나갔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정복해야할 땅은 계속 남아 있었고 더 큰 문제는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였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이러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된 옛 모습을 깨닫고 한가지 한가지씩 정복해 나갑니다. 그 결과 우리는 점점 선하여지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형상이 되어 가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년간 믿음 생활을 정진한 후에도 또다시 절망에 빠져 버리기 일수입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나의 나쁜 습성들이 남아 있어서 나를 괴롭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어설 때마다 그 승리를 맛보며 할렐루야! 하고 소리를 치게 됩니다.

'내가 이것을 해냈다'하는 자만심에서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기쁨도 얼마가지 못하여 당신은 또'나는 형편없는 놈이구나'하며 좌절감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 때마다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 자신이 내 안에 있는 나의 감성과 습관들 즉 육체의 구습들을 물리치지 못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의 불의를 잘 발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비판하며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데 우리가 다른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할 때, 다른 네 손가락은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깨달아야합니다. 성경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남을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내가 비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의지는 연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다!*
물론 우리에게는 자신의 좋지 않은 습관들을 고치려는 생각이 있습니다. 때로는 담배를 끊으려고 삼일 금식을 해보기도 하고 모형 파이프를 입에 물고 기를 써 보기도 합니다. 술을 끊기 위하여 콜라를 마시며 운동을 해보기도 하고 성경을 보기도합니다. 그러나 결국 작심 삼일만에 무너질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생활 속에서 이러한 경험은 크리스챤이면 누구라도 해 보는 경험입니다. 그러나 또 넘어지고 실패하고 다시 무릎을 꿇고 주님께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러한 육체의 습성을 이기지 못한 것일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의 습성 즉 육체의 습성들을 자신이 이겨낼 수 있다면 구태여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 '듀나미스' 성령을 주셨겠습니까? 이것은 우리의 감성과 이성으로 제어할 수 없는 영적인 요소입니다. 원래 죄라는 것의 출발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영적 교만에서 출발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육체 안에 있는 죄의 모습들은 영적 교만의 부산물입니다. 그리고 그 영적 교만의 배후에는 사단이라는 커다란 영적 존재가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과의 다툼에서 합법적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쟁취하였습니다. 원래 이러한 권세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첫 사람 생령인 아담에게 주신 권세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 아담이 이 영적 싸움에서 실패하고 만 것입니다. 그 실패의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가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가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이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싸움에서 실패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인간의 감성과 이성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단도 막강한 위력을 소유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는 영이시니*
그래서 주께서는 사단이 요구한 죄의 값으로 자신의 육체의 생명을 내어 주고 우리를 구속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아직 존재되고 있는 죄의 속성들 즉 육체의 모습을 멸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을 주시어서 그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가 소망하는 선한 모습을 회복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8:26)고 기록하였습니다. 그 결과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모습들이 성령의 능력에 의하여 없어지고 우리의 얼굴에서는 주의 광체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고린도 3장 18절을 보면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이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구약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아 가지고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 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나는 광채로 하여 백성들이 그에게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안에서 없어질 것이다"(고후3:13,14)고 말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언제든지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하였고 다시 "이는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라"(고후3:18)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속하는 모든 법에서 벗어나 오직 주의 영으로 돌아 갈 때 즉 우리가 그의 영광에 들어가기를 힘써 주를 예배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몸과 마음을 주께 의뢰할 때 주의 성령이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져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옛 사람의 모습*
따라서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은 우리를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기본적으로 우리에게 "너희는 이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율법의 선함을 알고 그 율법이 지시하는 대로 살고자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몸 안에 하나님의 선한 법에 대항하는 또 다른 법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롬7:21)

그러나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 율법을 실행하는 방법이나 올바른 삶의 사는 방법 즉 우리의 이상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로마서 8장3절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롬8:3) 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룬 것입니다.

우리로 승리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의 죄를 정하사 십자가에서 죄 값을 치루게 하셨던 것입니다.(빌2:6-8) 그 이유는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롬8:4)입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언제까지일까요? 우리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령의 충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의 삶*
우리가 육신의 장막에서 살아 있는 동안 세상의 임금인 사단이 우는 사자와 같이 우리를 멸망시키려 찾아다니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을 보면 "사단이 예수를 시험을 다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가니라"(눅4:13)고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사단이 얼마나 끈질기게 하나님의 사람들을 주시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의 날이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성령충만한 생활인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는 이상 사단은 우리를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도 우리 안에서 성령은 우리의 잘못된 부분들을 고치고 계신 것입니다. 그의 능력으로 우리는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하신 주의 말씀을 완성해 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화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교회 가운데에서는 아직 어린아이의 상태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에게 소망을 두고 그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며 진정한 마음과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지 않고 내 육적인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갖추려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3:5)고 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최고의 상급을 위하여 달음질하여야 합니다.

주의 성령께서 우리를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하실 때까지 그의 뜻 안에서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는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성경은 기록된 바와 같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딤후3:16,17)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주의 영이 나를 주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고 계심에 감사 드립니다. 나의 영혼에 축복이 있으리라 아멘(내일부터는 하나님의 싸이클에 마추는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애굽에서 벗어난 일들을 서술하라

2.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돌아가려했는가?

3. 광야에서의 전투의 목적은 무엇인가?

4. 가나안 땅에서의 전투의 목적은?.

5. 그들이 가나안 땅을 완전히 쟁취하지 못한 이유는?

6. 우리 안에서 성령의 역사는 무엇인가?

7.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