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성령세례

<성령세례 22>영적성장(1)

이요나 2007. 2. 14. 12:18
<성령세례 22>영적성장(1)

*그리스도의 형상*
오늘은 성령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만드심에 대하여 공부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에게 특정한 봉사를 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4:11) 여기서 목사와 교사는 헬라어 원어로 볼 때는 한 단어입니다 즉 pastor-teacher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 은사를 받은 사람로서 이들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엡4:12) 세운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1절에서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되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의 뜻과는 관계없었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바울은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고전12:29,30)고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분명한 어조로 "아니요"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각 교회의 여러 가지 봉사를 말하는 것으로 그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고 봉사의 일을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이 칼럼을 쓰고 있는 이유도 같은 목적인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이 성경을 공부하는 이유도 온전한 성도가 되기 위하여 그리고 자기와 모든 사람들에게 덕이 되기 위하여 또한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집을 세우기 위하여 입니다. 주께서는 우리들이 성숙한 크리스챤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 주변에는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것은 영적 성장 정지상태의 크리스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몇 살까지 젖을 먹을래? *
사실 그러한 사람들이 우리 교회 안에는 가득합니다. 바울은 그러한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에게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 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고전3:1-2)고 하였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상태는 태어난 지 몇 개월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바울은 히브리 교인들에게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히5:12)고 말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어린아이에게는 어린아이에게 맞는 식사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의 성장에 따라 거기에 맞는 것을 주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크리스챤에게도 영적 성장을 하게 되는데 그를 위하여는 그 성장에 맞는 성경의 지식과 경험과 체험들이 필요합니다.

베드로도 이에 대하여 "갓난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루도록 자라게 하려 함"(벧전1:2)고 말하였습니다. 어린아이라면 젖을 먹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아이들은 젖을 떼고 단단한 것을 먹을 때가 오는 것입니다. 영적 발달에 있어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크리스챤의 행로에는 영적 성장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3)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열여덟살이다!*
여기서 "온전한"이란 말은 "충분한 성숙"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충분한 성숙'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성경에 기록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것을 말합니다. 탄생 후 어린 아이의 상태는 자연상태로서 자기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워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던 아이는 곧 기어다니고 걸어다니게 되어 이제 우유병을 치우고 이유식으로 그리고 또 밥을 먹여야만 때가 오는 것입니다.

이가 나기 시작하면 우리와 함께 식탁에 앉아서 고기도 먹여 주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약 일곱 살이 되었는데도 우유병을 물고 있다면 그것은 장애자입니다. 이처럼 요즘 교회에는 우유병을 물고 있는 애 늙은이로 가득합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주름살이 쭈글쭈글한데 아직 우유병을 물고 있는 모습을 참으로 한심한 일입니다. 성경은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있으리라"(막13:17)고 경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는 이 무리 속에 속해 있지 않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당신은 아니라고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잣대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혹시 믿은 지 18년이나 되었는데 젖꼭지를 물고 뛰어 다니며 "나는 18살이다"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바울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8:29)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6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우리의 형상과 모양"이란 말씀은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 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엘로힘)이란 호칭 속에서 하나님은 영이심이 내포되어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라고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도 하나님의 영적인 측면이 포함되어 창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의미는 하나님의 속성과 품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서술할 때 우리는 성경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품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랑, 거룩, 심판, 긍휼, 자비, 청결, 온유하심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의 품성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된 통치적 성품은 '자결권'입니다. 즉 모든 것을 결정하심에 스스로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도 또한 자기 스스로 결정을 할 수 있도록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 스스로 선택하셨습니다. 누구와 의논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도 인간 스스로의 선택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 중 가장 대표되는 것은 "의"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의로워지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감정적 품성중 대표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품성을 갖도록 창조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 결과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가 되어 버리고, 냉담해지고, 자기 모순에 빠지고 자기 고집에 집착하여 하나님에게 무관심하여졌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사람들을 모습 속에서 하나님인 인간을 창조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육체의 모습*
이러한 인간의 타락상태에 대하여 성경은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배악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9-31)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상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므로서 나타난 인간의 도덕성은 참으로 입에 담기조차 힘든 상태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이러한 악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롬1:32)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종말의 시대의 인간의 모습에 대하여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1-5)고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이러한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이 인간에 대하여 의도하지 않은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
우리가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1:1,2)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은 사람의 모습과 그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향하신 창조의 의미를 알리신 것입니다.

또 성경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진리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어떠한 모양으로 창조하셨으며 어떠한 목적으로 창조하셨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를 통하여 지금의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의 형상으로부터 얼마나 형편없이 타락하였는가를 알 수가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늘날의 우리처럼 육체적으로 열정적이고 관능적인 삶을 살도록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요14:9)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오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생을 하나님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골1:15)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타락한 우리를 취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인간의 타락의 결과들을 무효화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다시 회복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영적전쟁의 결과에 대하여 내일로 이어집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1. 교회의 직분자들을 세우신 목적은 무엇인가"

2. 목사에 대한 원어적 고찰을 하라.

3.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를 어떻게 키웠는가?

4. 히브리교회의 문제는 무엇인가?.

5.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을 설명하라

6. 육체의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라.

7.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