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례20>그리스도의 참된 증인 (1)
*제자들의 관심*
앞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서 성경을 가르치시고 계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부와 노력만으로 성경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아볼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란 유대인으로서 학문과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후 에베소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이 때 바울과 함께 동역하던 아굴라와 그의 처 브리스길라가 그의 설교를 듣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에 대하여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고 역설하였습니다. 자 이제 저와 여러분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에 대한 두 번 째 테마를 공부하겠습니다. 첫 번 째 테마에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어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성령께서 우리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능력을 주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관심*
사도행전 1장4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세례라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하여 아무도 경험한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여 이 때가 이스라엘의 회복하실 때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행1:6) 제자들의 관심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자기들도 살 판이 나기 때문이지요. 제자들은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도 바라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의 소망과 관심사는 오직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어 속히 이스라엘이 의의 왕국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계시면서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 관한 테마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성령에 대하여 십자가 사건 전에 몇 날에 걸쳐서 지겹도록 설명을 들었는데 부활하신 후 또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시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갈리리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하시며 숨을 불어 넣어주셨지만 별다른 체험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또 성령세례를 기다리라니 정말로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었겠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세상 재미에 빠져서 이 시대에 우리가 정말로 중요시해야 할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이다, 크리스마스다, 교회건축이다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갖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세운 교회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 버리고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주께서도 이러한 상태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가는 방법*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관심사에 대하여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일소에 부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세례의 목적은 전 세계 속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얼마 후 제자들의 사역 속에서 그대로 시행되어 사도행전을 보는 우리에게 흥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이 얼마나 확장되었던지 그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커다란 마찰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28절을 보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이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면서 제자들은 온 유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이르는 곳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 내려갔을 때에는 도르가라는 여인이 죽어서 사람들이 그녀의 장례의 봉사를 위하여 베드로를 불렀었습니다. 그 때 도르가는 베드로의 기도에 의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일대에서 많은 이적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교회를 개척하고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를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만들었습니다. 또 성령은 빌립집사를 통하여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를 안수하게 하였습니다. 성령은 베드로를 고넬료 가정으로 보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팀을 만들어서 아시아 일대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반대하는 무리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증인이라고 하는 거짓말쟁이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나서서 간증을 하고 다닙니다. 사실 이들은 자기들을 지칭하는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라 "구속주"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아니라고 거짓 증거를 하고 다닙니다.
또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증인, 또는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종이라고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천국을 다녀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모두 자기들이 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자랑 내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아무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울고 짜고 소리치는 스피커 소리에 심장만 벌렁벌렁 떨릴 뿐이고 결국은 그들의 집회는 헌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요.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곳에가 보면 온통 자기들의 자랑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5:26) 또 예수께서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14) 또 그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령의 이름이 너무 영광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너무 떠들고 요란스런 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는 내가 무엇을 말하였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내 생활이 뒷받침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그리스도의 평안을 증거 하면서 내 삶이 평안치 못하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면서 그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증인이란 말의 정의*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증인이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란 단어는 "말투스"로서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사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증인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여 자신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가 임한다던가 환상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증인은 내가 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그의 전지 하심과 미리 아심 속에서 선택된 부르심인 것입니다.(엡1:3)
하늘 나라에 대하여는 그 어떠하심이 이미 성경을 통하여 그의 교회에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다만 그의 날까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길을 성취해 가는 것뿐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가 마치 요술쟁이나 마술처럼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평안과 그의 기쁨과 그의 의가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삶 가운데 그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인 것입니다.(이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져 갑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볼로의 부족은 무엇이었나?.
2. 행1:4절에서 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셨는가?
3. 행1:4절에서 제자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4. 성령세례의 약속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
5. 성령세례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성령세례 이후 사도들의 행함을 살펴 보라.
7. 나는 복음의 증인인가?
*제자들의 관심*
앞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자들 속에서 성경을 가르치시고 계심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공부와 노력만으로 성경을 모두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장에는 아볼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란 유대인으로서 학문과 성경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그리스도에 대하여 많은 연구를 한 후 에베소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이 때 바울과 함께 동역하던 아굴라와 그의 처 브리스길라가 그의 설교를 듣자 무엇인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의 속에서 성령의 역사가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전도에 대하여 "내 말과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고 역설하였습니다. 자 이제 저와 여러분은 믿는 자 속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에 대한 두 번 째 테마를 공부하겠습니다. 첫 번 째 테마에서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 하시어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계심을 알았습니다. 오늘은 성령께서 우리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시는 능력을 주심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관심*
사도행전 1장4절을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기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사실 예수님의 말씀에는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말이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세례라는 것에 대한 것에 대하여 아무도 경험한 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주여 이 때가 이스라엘의 회복하실 때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행1:6) 제자들의 관심사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메시야로서 공공연하게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 자기들도 살 판이 나기 때문이지요. 제자들은 사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도 바라지 않았었습니다. 그들의 소망과 관심사는 오직 예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어 속히 이스라엘이 의의 왕국으로 전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었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과 40일을 함께 계시면서 하늘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의 왕국 건설에 관한 테마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성령에 대하여 십자가 사건 전에 몇 날에 걸쳐서 지겹도록 설명을 들었는데 부활하신 후 또 성령에 관하여 말씀하시니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얼마 전에 갈리리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성령을 받으라"하시며 숨을 불어 넣어주셨지만 별다른 체험도 없었는데 이제 와서 또 성령세례를 기다리라니 정말로 재미없고 따분한 이야기임이 틀림없었겠습니다. 우리들도 이처럼 세상 재미에 빠져서 이 시대에 우리가 정말로 중요시해야 할 부분으로부터 떨어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추수감사절이다, 크리스마스다, 교회건축이다 하는 문제에 흥미를 갖고 있는 동안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 세운 교회의 본질로부터 멀리 떨어져 버리고 멀어질 때가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주께서도 이러한 상태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게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땅 끝까지 가는 방법*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관심사에 대하여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일소에 부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세례의 목적은 전 세계 속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얼마 후 제자들의 사역 속에서 그대로 시행되어 사도행전을 보는 우리에게 흥미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이 얼마나 확장되었던지 그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과 커다란 마찰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5장 28절을 보면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이 교를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나면서 제자들은 온 유대로 흩어져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이르는 곳곳마다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 내려갔을 때에는 도르가라는 여인이 죽어서 사람들이 그녀의 장례의 봉사를 위하여 베드로를 불렀었습니다. 그 때 도르가는 베드로의 기도에 의하여 다시 살아났습니다. 빌립은 사마리아 일대에서 많은 이적을 일으키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교회를 개척하고 바울을 데려다가 안디옥 교회를 이방 선교의 전초지로 만들었습니다. 또 성령은 빌립집사를 통하여 에디오피아 내시 간다게를 안수하게 하였습니다. 성령은 베드로를 고넬료 가정으로 보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팀을 만들어서 아시아 일대에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모든 것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반대하는 무리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이 가는 곳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을 통하여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증인이라고 하는 거짓말쟁이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나서서 간증을 하고 다닙니다. 사실 이들은 자기들을 지칭하는 "여호와"의 이름의 의미조차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여호와라 "구속주"를 의미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서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아니라고 거짓 증거를 하고 다닙니다.
또 우리 기독교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증인, 또는 복음을 전하는 능력의 종이라고도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천국을 다녀왔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말들을 들어보면 모두 자기들이 한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자랑 내지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아무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울고 짜고 소리치는 스피커 소리에 심장만 벌렁벌렁 떨릴 뿐이고 결국은 그들의 집회는 헌금을 모금하는 것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입니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지요. 이처럼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다는 곳에가 보면 온통 자기들의 자랑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요15:26) 또 예수께서는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6:14) 또 그는 진리의 영으로서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성령의 이름이 너무 영광을 받고 있습니다. 성령의 이름으로 너무 떠들고 요란스런 잔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이유와 목적이 어디에 있던지 간에 성경의 가르침을 떠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는 내가 무엇을 말하였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한 바와 같이 내 생활이 뒷받침하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내가 그리스도의 평안을 증거 하면서 내 삶이 평안치 못하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면서 그 사랑이 우리를 통하여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증인이란 말의 정의*
이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이 증인이라는 말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증인"이란 단어는 "말투스"로서 "순교자"를 의미합니다. 사도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증인이라는 단어를 오해하여 자신에게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계시가 임한다던가 환상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증인은 내가 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창세 전에 그의 전지 하심과 미리 아심 속에서 선택된 부르심인 것입니다.(엡1:3)
하늘 나라에 대하여는 그 어떠하심이 이미 성경을 통하여 그의 교회에 말씀으로 주셨습니다. 다만 그의 날까지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그 길을 성취해 가는 것뿐입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가 마치 요술쟁이나 마술처럼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로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의 평안과 그의 기쁨과 그의 의가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입으로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의 삶 가운데 그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증거인 것입니다.(이 이야기는 내일로 이어져 갑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볼로의 부족은 무엇이었나?.
2. 행1:4절에서 예수께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계셨는가?
3. 행1:4절에서 제자들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4. 성령세례의 약속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
5. 성령세례의 목적은 무엇인가?
6. 성령세례 이후 사도들의 행함을 살펴 보라.
7. 나는 복음의 증인인가?
'특별강좌 > 성령세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령세례18> 교회를 도우시는 성령(1) (0) | 2007.02.14 |
---|---|
<성령세례19> 교회를 도우시는 성령(2) (0) | 2007.02.14 |
<성령세례 21>그리스도의 참된 증인(2) (0) | 2007.02.14 |
<성령세례 22>영적성장(1) (0) | 2007.02.14 |
<성령세례23>영적성장(2) (0) | 2007.0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