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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세례5> 믿는자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2)

이요나 2007. 2. 14. 12:37
<성령세례5> 믿는자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2)


*C. H. 스펄전의 충고
C. H. 스펄전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저는 하나님의 교회가 쇠퇴할 때 언제나 그것을 되살리는 방법은, 성령에 대하여 많은 진리를 설교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에는 이 성령이 교회의 호흡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시는 곳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성령이 사라지면 경건성의 활력이 감소되고 타락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성령께 『당신의 길로 속히 인도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고 있진 않습니까? 교회들이 미지근해져 버린 것을 안타깝게 보고 있진 않습니까? 성령이 은혜를 내려주셔서 부흥을 일으켜 주실 것을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습니까? 주께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주가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 위해 성령의 불 세례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성령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 주셨는데도 우리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면 책망받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스펄전은 마지막 부분에서 「주께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주가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 위해 성령의 불 세례를 다시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만약 성령이 우리에게 문을 열어주셨는데도 우리들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라면 책망받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 곧 파라클레토스(돕는 분)를 약속하셨을 때,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조 때부터 임재하심
성령은 창조의 때로부터 이 땅에 계속 계셨습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말씀하셨고 예수께서 성령의 강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요16:7) 이것은 성령이 세상에서 역사할 일들에 대하여 설명하신 것입니다. 주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과 다투심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 속에서 간섭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결과가 일어날까요?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감사도 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부끄러움에 내어버린 결과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자녀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키운 부모의 고통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려 하고 계심을 기록하였고 그 이유에 대하여 "나의 신은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킹제임스 성경"나의 신은 사람의 안에서 다투지 않을 것이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처럼 노아의 시대까지는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의 안에서 다투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단의 영이 사람들의 마음과 육체를 지배하게 되자 성령은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 것을 알리셨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노아를 통하여 역사하신 성령의 메시지를 거부하였습니다. 성령이 사람들과 다투시고 있음에도,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성령에 대하여 마음과 생각을 닫아 버렸기에 하나님께서는 나의 신은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리라"(KJV:나의 영은 사람 안에서 분투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제 얼마 후면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의 안에서 분투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것은 노아의 때에 임하였던 것과 꼭 같은 것입니다.

*양심의 소리
오늘날, 대개 성령이 사람들의 안에서 분투하는 것을 우리들은 양심의 소리라고 부릅니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에 씌여진 율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방 다른 민족에 대하여는 바울은「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롬2:15)」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마음에 쓰여진 하나님의 율법, 즉 그들의 양심이 잘못을 책망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주께서 오시기 전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바울을 통하여 양심에 화인맞은 자들에 대하여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담전4:1-2)말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죄악감도 없고 양심의 가책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데까지 이르러 성령의 음성을 거부한 것입니다. 저는 어느 미국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사회의 추세에 따라 사는 사회 과학자들 몇 명으로부터 교회는 어떻게 기원 2000년을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연구와 저서를 쓴 사람이 그의 연설에서 "많은 부분에서 우리 성인들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적 상황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젊은이들이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영적 현실의 감각들을 잃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이 악에 대한 조금의 양심마저 없어져 가는 시대를 향하여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이 악인지 모르게 되어 이 때문에 자신들이 범죄를 범하고서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사는 세상이 된 것입니다. 최근 천인공로할 범죄를 지은 젊은이들의 재판을 받는 과정을 취재하는 기자들이「그들은 전혀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았다」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따나 죄의 속성에 사로잡힌 그들은 이미 양심에 화인을 맞은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심판은 마음에서 시작
또한 성령께서는 세상의 잘못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거역하고 거부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공회 앞에 일어서서 그들이 선조들과 똑같이 성령을 거스리고 있음을 비난했습니다. (행7:51참조) 예수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붙잡았을 때 예수께서는 바울에게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행26:14)」라고 흥미 있는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관한 의에 대하여는 비난받을 일이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가책이 없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 안에 뭔가 가시가 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주가 바울을 붙잡았을 때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가랴서 7장 12절을 보면 「(그들이)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그들은 마음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금강석처럼 굳게 하여 성령을, 율법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습니다. 「만군의 주가 그 성령에 의해 앞의 예언자들을 통해 보내신 가르침과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만군의 주로부터 큰 노가 나왔도다」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을 굳게 하면 성령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는 수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성령께서 세상의 잘못을 심판하신다는 것에 대하여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의로운 생활을 조소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그리스도를 조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증거를 조소하는 말들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이제 곧 때가 이르면 그들은 자신들이 한 언행에 대하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