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49장) 열두지파의 섭리

이요나 2007. 2. 15. 12:09

(창세기 49장) 열두지파의 섭리

 

(창49:1-2)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의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비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오직 하나

이제 야곱은 147세로 육신의 장막을 걷고 영원한 본향 하늘로 올라갈 차례이다. 참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 중에 하나는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이승에 같이 살던 부모 형제는 혈육의 정을 끊지 못하여 애석하고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사실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안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야곱의 죽음은 아담 이후 2,255년이 지난 때였다. 이제 창세기를 마감하면 출애굽으로부터 말라기 선지자까지는 약 1200년의 기간이 남게된다. 따라서 예언의 공백기 400년을 포함하여 메시야 오시기까지는 약 1600년을 남겨둔 셈이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야곱은 그 아들들을 모두 불러모은다. 여기서“너는 모이라”고 아들들을 단수로 지칭한 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특별한 의미를 주고 있다. 사실 야곱에게 있어서 그 아들들은 하나와도 같다. 열두 아들이라도 그들은 오직 한 아들인 것이다. 이제 이 속에서 오직 한 아들 메시야가 오시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나다.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서로 다투었듯이 지금도 각 교파간에 다투고 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하나님도 한 분이시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라”고 하였다.

 

2절부터의 형식은 히브리어 특유의 시의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 시는 우리의 시들과 달리 운을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사상을 전달하기 위하여 반복법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히브리 시는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의 끓음같은 르우벤

이제 야곱은“너희는 모여 들으라”고 강조한다. 요한일서에서는“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본 바요 살펴보고 만진 바라”(요일 1:1)고 기록하였다. 이와같이 복음은 들음에서 시작한다. 열두 명의 아들들을 불러놓고 야곱은 이제 자기의 생을 마감하면서 그들의 일에 대하여 예언하기 시작한다.

 

예언에 거론된 순서를 보면 꼭 아들들의 나이대로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야곱은 먼저 그의 큰아들 르우벤에 대하여 예언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실 큰아들은 큰 의미가 있게 마련이다. 자기 생전에 처음으로 자기의 육체의 열매를 맺을 때의 그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야곱은 르우벤에게 그 생전에 잘못했던 일과 연관하여 그에게 예언을 하였다. 우선 야곱은 르우벤이 장자의 기백과 위력을 갖고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그의 성급하고 조급한 성품으로 그 권능을 받지 못하였음을 지적하였다.

 

그의 성품이“물의 끓음”에 비유했다. 우리가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장에서“사랑은 오래 참으며”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오래 참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오래 끓인다’라는 뜻이다.

이 말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인데 사물에 대한‘인내’와는 다른 의미가 있다. 결국 르우벤은 참지 못함으로 하여 장자의 권세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아버지 야곱의 첩 빌하와 통간하였는데 그때 야곱은 장자인 르우벤에게 한마디의 책망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우리는 장자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즉 오래 참는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데 야곱은 임종 직전에서야 그 일을 거론하고 있다.

 

이 예언대로 르우벤 지파는 향후 수백년 간 한번도 지배권을 잡아보지 못하였다. 또한 그들의 후손들도 조급하여 후일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이 명령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고 요단강 동편의 좋은 목초지를 발견하고 눌러앉는 실수를 저질러 후일 외적들에게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모의에 참예하지 말라

야곱은 둘째와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에게는 혹독한 예언을 한다.“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 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이 예언은 지난날 밧단 아람에서 돌아와 첫 주거지 세겜에서 야곱의 딸 디나의 간음 사건으로 하몰족을 몰살시킨 일을 거론하고 있다. 여기서 야곱은“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라고 단호히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에 대하여 어떠한 사랑을 가져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후일 이들은 여호수아 시대에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가 물려받은 땅 아래쪽 브엘세바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스라엘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배출하지 못하였다. 레위 지파는 모세와 아론과 같은 지도자를 배출하였고 후일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의 지파가 되었지만 이것은 이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권적인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로 이루어진 것이다.

 

실로가 오기까지

유다에게 내려진 예언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와 같다. 원래‘유다’는‘찬송’이란 뜻이다. 이 예언은 다윗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수백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부터는 남왕국을 이끄는 지파였다. 여기서 우리가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보게되는데‘실로’란 히브리어로‘샬롬’(평강)이란 의미로 메시야를 지칭한다.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은 치리자의 지팡이가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떠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께서 태어난신지 얼마 안되어서 흥미로운 사건이 발생되었는데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서 사형권을 빼앗았다.

 

유대인은 율법에 따라 사람을 정죄하고 죽이기도 하였는데 로마정부가 이 법을 박탈한 것이다. 이 일은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수께서 빌라도 앞에 끌려나왔을 때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너희 율법이 있으니 너희가 처리하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유대인의 사형권이 폐지되었었는데 그 당시 랍비들은 옷을 찢으며‘아직 메시야가 오지도 않았는데 치리자의 지팡이가 떠났도다’라고 울부짖었다. 사실은 이미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나사렛에서 자라고 계신데 말이다.

 

또한“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라는 말은 이사야서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 영존 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아버지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전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리라”(사 9:6-7)

 

넘어뜨리는 자

스블론은 예언처럼 해변 지역 즉 지금의 갈릴리 지방에 자리를 잡았다. 마태복음 4장에는 그 경계가 갈릴리 해변에 위치한 가버나움까지 미쳤다고 시사하고 있다.(마 13:15,16) 야곱은 잇사갈을“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 비유했다. 이것은 건장한 만큼 게으르다는 뜻이다. 잇사갈은 므깃도 계곡 일대의 비옥한 지역을 차지하였다. 여기까지는 레아의 아들들에 대한 예언이었다.

 

이제 라헬의 여종 빌하의 둘째 아들인 단에 대한 예언이다. ‘단’은‘심판’이란 뜻이다. 단을 향한 예언 속에“나는 여호와의 구원을 기다린다”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후일 이스라엘 분열 이후 북왕국을 다스리던 여로보암에 의하여 북 왕국 사람들로부터 예루살렘에 대한 숭배와 동경을 끊어 놓기 위하여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 상을 세워 놓게 되는데 이 때문에 단지파는 일찍부터 우상 숭배에 젖어 들게 된다. 야곱은 앞에서 다윗의 지파에서 나올 메시야의 예언을 하였는데 단에게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할 독사에 비유하였다.

 

이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우리를 매우 궁금하게 하고 있지만‘구원’이란 단어는‘예수아’즉‘예수’를 지칭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일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단지파가 제외된 사건을 추리하는데 커다란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군대’라는 의미인 실바의 아들 갓지파는 전쟁에 능한 자들로 요단의 동편에 위치하여 암몬 자손과 다른 민족들의 공격을 많이 받았었다.(대상 5:18,12:8)

 

또한 그의 형제 아셀은 갈멜산 북쪽 해변 두로와 시돈 지역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탈환하는데 실패하고 안락한 삶을 꿈꾸어 베게인들과 가까이 하여 타락하게 되는데 후일 빵굽는 자들이 된다. 단의 형제 납달리는 시인이나 웅변가들이 많이 배출되는데 후일 드보라 선지자 시대에 바락과 같은 사사가 나타나 드보라와 바락의 승리의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삿 5:1-31)

 

전능자의 손

이제 야곱의 사랑하던 아내 라헬의 소생들에 대한 예언이다. 야곱은 먼저“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라고 노래하였다. 이 말씀은 시편 1편을 읽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을 예언한 것이다. 즉 요셉이 향후 애굽의 제 2인자로 누릴 영화를 말한 것이다. 요셉의 축복 속에는 실로 아름다운 말들이 많이 나온다.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그를 쏘며 군박하였으나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 팔이 힘이 있으니 야곱의 전능자의 손을 힘입었음이라”는 말속에서 복수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속성을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아무리 선하여도 누구에게 공격을 당하든가 상처를 입으면 그것을 마음에 두고 꼭 보복하려 한다.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이러한 보복 심리를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요셉이 이기는 힘은 자기의 보복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여호와께 모든 것을 맡김으로 이겼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원수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였고 떡을 먹이고 물을 주어 그 머리에 숯불을 올려 놓으라고 가르친다.

 

또 요셉의 지파는 목자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그로부터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가 나도다”라고 예언되었다. 신명기 32장 모세의 찬양 속에도 반석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반석’이란 강력한 보호자를 상징한다. 이와 같이 요셉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복과 땅에서의 솟는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을 받는데 영·혼·육의 모든 복을 다 받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베냐민에 대한 예언이다.“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이들에게는 이 말 밖에 없는데 후일 이들 속에서는 많은 용사들이 배출된다. 또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을 배출하며, 바울이 이 지파에 속한다. 이렇게 야곱은 자기의 열두 아들들에게 예언을 한 후 임종하여 조상의 품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