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45장) 인생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이요나 2007. 2. 15. 12:18

(창세기 45장) 인생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

 

(창45:5-8)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20년만에 터진 혈육의 봇물

형제들의 진정한 마음을 알게된 요셉은 더 이상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을 물러가게 하고 자기가 동생 요셉임을 밝히게 된다. 그의 통곡이 어찌나 컸던지 애굽 사람들을 통하여 바로에게까지 보고되었다고 기록되었다. 20년 간 쌓였던 봇물이 터지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 형제들의 입장은 달랐다. 그들은 요셉의 가슴에서 솟구치는 혈육의 정보다는 자신들의 죄악을 보는 경악의 시간이었다.

 

‘놀라서’라는 단어는‘두려움에 떨다’라는 의미이다. 이에 요셉은 친히 그들에게 나아가“내게 가까이 오소서 내가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고 그들을 보듬어 안았다. 예수께서도 자기의 백성들에게 왔을 때 배척을 당했다. 그러나 예수께서 두 번째 오실 때에는 그들은 경악하면서 그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모세도 그의 형제를 돌아보려고 나아가서 그들을 학대하는 애굽 군인을 죽였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배척 당했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두 번째 왔을 때 그들은 모세를 영접하였고 그를 따랐다. 이것이 성경의 진리이다.

 

성경은 이를 가르쳐“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리로다”(슥 12:10)라고 예언하였다.

 

섭리를 터득하는 두려움

이때가 요셉 자신이 애굽에 팔려온 것이 이미 하나님의 예정하심 가운데서 이루어진 섭리임을 터득하는 순간이었다. 요셉은 근심 속에서 두려워하며 경악하는 형제들을 바라보며“나를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 앞서 보내셨나이다”라고 위로하였다.

 

그는 이어서“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라고 하였다.

 

지금 요셉은 현실 속에 역사 하는 하나님의 영적인 섭리를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일이 형제들의 후손, 즉 하나님이 택하신 자기의 백성을 이 땅에 두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앞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체를 보고 계시며 그의 전지하심과 미리 아심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룩하여 나가신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면 그 나아갈 바를 깨닫지 못하여 전전긍긍하고 인간의 생각과 세상의 방법을 찾기 위해서 애를 쓴다. 따라서 성경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계획하신 것이 이루어지기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한다.

 

쇠사슬에 묶인 자들

시편기자는 이 사건을 회상하며“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한 사람을 보내셨음 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 발이 착고에 상하여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시 105:16-18)라고 노래하였다.

 

그 당시의 감옥을 현대의 감옥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었다. 최근 안양 교도소를 방문하고 그곳에 묶여있는 형제들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한다. 아무도 그들의 운명을 모른다. 나 또한 나 같은 미약한 존재가 어떻게 안양 교도소에 정신 교육 강사로 발탁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정신 교육 시간을 통하여 만난 10명의 형제들에게 지난주부터 성경 공부 시간을 열어 주셨다. 매주 금요일마다 진행되는 이들의 성경 공부는 갑자기 생긴 일이다.

 

지난 목요일 저녁부터 그곳에서 봉사하는 신우회 사역자들에게 시작된 성경 대학 과정에서 재소자들을 위한 성경 공부에 이르기까지 하나도 나의 계획으로 진행된 것이 없다. 쉽게 말하여 끈을 잡고 따라가 보니 그러한 사역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가 갈보리채플의 사역으로 바빴었다면 이 일은 불가능하였을지도 모른다. 사역이란 자기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창세기에서 요셉의 부분을 칼럼으로 쓸 때 이러한 사역들과 맞물리는 것을 보면서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또한 과거 젊었을 때 내가 그러한 감옥의 경험을 하지 못하였다면 아니 내가 과거 그들과 같이 세상의 범죄를 일삼으며 살지 않았었더라면 오늘의 이 사역에 절대적 공감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말씀이 응할 때까지

성경은 요셉에게 있었던 모든 일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계획되었음에 대하여 다윗의 입을 통하여“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그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여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 105:19-22)라고 말하였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라는 말씀이다. 여호와께서는 언제 그에게 말씀하셨을까? 우리는 성경 앞부분에서 이러한 일에 대한 예고를 찾아볼 길이 없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 일을 요셉에게 꿈을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그 말씀은 20년 후에 있을 일들을 미리 보시고 그 일을 그에게 준비하게 하기 위하여 미리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이 이러한 일들을 완연하게 잘 알 수 있었다면 그 형제들에게 경거망동하게 자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요셉이 모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미리 하신 말씀을 그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신 계획 속에서 성취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에 대하여 우리 인간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주의 온전하신 인내를 이루라는 말씀 앞에 경배할 따름이다.

 

형제들을 안심시킨 요셉은 아직 5 년이라는 기근이 남아 있음을 알리며 그들이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친다. 이제 속히 가나안으로 내려가서 아버지와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올라오면 자기와 가까운 고센 땅에 머물게 하여 그들을 봉양하겠다고 하였다.

 

이 소문이 바로에게 전달되어 바로는 요셉에게“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 오라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고 명한다.

 

이에 요셉은 오가며 먹을 양식을 주고 암수 나귀 각각 열 필에 애굽의 좋은 물품과 양식을 실리고 그 아버지가 타고 올 수레를 함께 보냈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이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다시 살아온 것이다. 양식을 사러간 아들들이 돌아와서 전하는 요셉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은 요셉이 보낸 애굽 왕궁의 호화로운 수레를 보고서야 기운을 얻고 요셉을 보기 위해서 달려간다.

 

창살없는 감옥

언젠가 잠깐 말씀드린 일이 있었지만 나는 6년이란 세월을 감옥 아닌 감옥에서 살았던 일이 있었다. 지금부터 정확히 13년 전의 일이다. 목회자가 되겠다던 하나님과의 서원을 깨고 유흥업도 사명이라 생각하고 클럽을 확장하는데 정열을 쏟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는 왜 그렇게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잘되어 가는 것인지…. 원래 예수를 영접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이끌림에 사로잡혀 그것이 서원인지도 모르고 하나님께서 지금 내가 하는 일에서 복을 주시면 5년 후 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기도하였었다. 그것도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첫 발을 들인 예배 때의 일이었다.

 

그후부터 5년 동안 수억의 재산을 모으게 되었는데 약속한 5년이 되었을 때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마음 속에 있음에도 그 약속을 구태여 감추어두고 그 당시의 서원은 내가 믿음이 없었던 시절에 했던 것으로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고 나는 이 어두운 세상 속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름받은 사람이니 클럽을 많이 만들어서 그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어둠의 전도자가 되겠다고 서원을 갱신(?)하였다.

 

그러나 그때에도 내 마음 속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던 두려움이 있었는데 아직 하나님께서는 나와 약속을 깨지 않으셨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어둠을 지키는 황제가 되고자 그동안 벌어놓았던 모든 것을 쏟아 150평 짜리 디스코 클럽을 인수하여 수리하던 날, 그 때가 하나님과 서원을 한 지 5년이 되던 해였다. 150평의 클럽을 손수 디자인하여 수리하던 중 나는 검찰청 특수부의 단속에 걸려 서울 구치소에 구속되었고 재판을 받기까지 40일간 수감되어 있었다.

 

아직도 역사하심

집행유예로 풀려난 나는 두려움 가운데 신학교에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벌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마음은 아니었다. 신학교에 발만 들여놓으면 하나님이 속아넘어가실 줄 알았으니 하나님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미련하기 짝이 없는 짓이었다.

 

그 때부터는 하는 일마다 꼬이기 시작하더니 벌려놓은 일마다 말썽이고 매일 같이 일어나는 사고로 나는 편안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불안과 초조로 살아가는 나날 가운데 그 고통을 잊기 위한 나의 행각은 더 깊은 악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은 그러한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탄식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이때부터 잠자는 내 영혼의 심령 가운데서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성령이 계심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잠시 일본에 건너가 머리를 식힌 후 사업에 열중하리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는 3개월 정도 여정으로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내 운명의 수레바퀴는 지진을 만나 이태원을 정비하는 국가적 차원에서 내가 운영하던 클럽 3곳은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폐쇄 조치를 당하고 말았다. 그때로부터 5년 동안 움직일 수 없는 동경의 국제거지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그로부터 5년 간 국내에 들어오면 감옥 생활을 해야하는 수배자가 되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5년 내가 하나님과 서원한 세월 5년이 지난 후 나는 갈보리채플 목사가 되어서 귀국하였다. 내가 목사가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과 약속한 그 언약의 세월이 나를 말씀의 도가니로 이끌고 가서 나를 만들고 계셨던 것이다.

 

요셉의 일에 대하여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라는 말씀은 아직도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사로잡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역사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