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40장) 너는 어떤 옥에 갇혀 있는가?

이요나 2007. 2. 15. 12:55

(창세기 40장) 너는 어떤 옥에 갇혀 있는가?

 

(창40:5-8)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몽조가 다르더라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관원장에게 묻되 당신들이 오늘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컨대 내게 고하소서

 

다음은 네 차례인 것을?

그러나 내가 확신하고 있는 것은 아무도 그들의 인생에 대하여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그를 섭리하신 하나님만이 그를 인내하고 계신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처지를 목격하는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깨달은 우리로 하여금 마땅히 하여야 할 일들을 스스로 하게 하시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 분의 형제 자매들의 중보로 하여 우리는 160권의 성경과 50여권의 성경 공부 교재들을 교도소에 보냈다.

 

나는 이 일을 위해 내가 운영자로 봉사하는 일만 오천여 명의 크리스천 이성교제 회원과 2천 명의 칼럼 독자에게 성경 한 권의 중보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중보 요청 전체 E-Mail을 보내고 나면 수신 거부로 돌아오는 편지가 천 여 통이고 이제 이러한 E-Mail은 지겨우니까 더 이상 보내지 마세요 라는 가슴 아픈 편지도 있다.

 

어떤 사람은 이러한 E-Mail을 또다시 보내면 다음 넷에 고발하여 사이트를 운영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사람도 있다. 아직 세상 가운데서 풍요롭게 잘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성경 1권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아직 모르고 있는 동안에 세상의 악한 사자는 형제의 사랑을 잃은 그들의 마음 속으로 파고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과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여 알거늘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영화롭게도 하지 않는 그들을 하나님께서 상실한 마음 속에 내어버리신다고 경고하고 있다.

 

감옥이 편한 사람들!

물론 옥에 갇힌 그들에게도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이 있었다. 그러나 한번의 실수로 그곳을 다녀오면 사회는 물론 가정에서조차 그들을 경멸하여 마음 붙일 곳이 없는 그들은 또 다시 죄를 짓게 되고 만다. 이러한 악순환 속에서 그들은 전과자로 낙인찍히게 되고 그들은 결국 세상을 등지고 살아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그들을 위하여 문을 열어놓은 유일한 곳은 형무소뿐이다. 담배 자판기만큼이나 많은 교회들이 출소하는 이들을 한 두 사람씩만 맡아서 사랑으로 이끌어주어도 세상은 훨씬 밝아질 것이다. 또 안타까운 일은 이들을 관리하는 교도소와 교도관을 보는 사회의 시선이다. 교도소 탈출 사건이 일어나면 이들의 고충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때려잡는 매스컴은 자중하여야 할 것이다.

 

요즘 각 방송국에서는 병원, 경찰청, 소방서와 관련된 드라마를 많이 편성하고 있는데 유독 교도소에 대하여는 일반인에게 사악한 곳으로 비쳐지고 있다. 나는 안양 교도소를 왕래하면서 수 십 년을 죄수 아닌 죄수가 되어서 헌신 봉사하는 교도관들을 보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재평가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나는 어느 장기 재소자로부터 눈물겨운 편지를 받았다. 그에게는 차라리 그 철책 안이 평안한 삶을 제공하는 안식처라는 것이다. 다시 나갈 희망 같은 것도 필요 없고 오직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여생을 마치고 싶다는 것이다.

 

밖에 나가보았자 찾아갈 곳도 없고 소망도 없고 받아주는 곳도 없으니 또 죄를 짓고 들어와야 하는 자기의 모습이 무서워서 차라리 그곳에서 종신형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모두 우리의 아들들이며 형제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들이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살기를 소망하는 그들이 그 흔해 빠진 성경 1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의 집에 가면 여기 저기 볼 품 없이 굴러다니는 것이 성경인데 그들에게는 오직 삶의 소망인 생명의 말씀인 것이다. 교도관들의 말을 빌리면 많은 유명 목사들이 줄을 지어 빵과 우유를 들고 와서 선거 유세처럼 집회를 하고 지나가고 있지만 한 권의 성경이 없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심령이 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는 자

시위 대장 보디발은 요셉의 억울함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사려 깊은 사람이었나 보다. 때마침 왕을 모시는 의전실 관장들 중 왕의 술을 관리하는 관장과 떡을 굽는 관장이 바로에게 죄를 짓고 시위 대장 보디발의 집안에 있는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은 요셉이 갇힌 곳이었다. 시위 대장 보디발은 요셉으로 그들을 시중들게 하여 하나님의 계획은 이어져 나갔다.

 

며칠이 지난 후 요셉이 그들을 섬기러 들어가니 그 두 사람이 각각 다른 꿈을 꾸고 근심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려 깊은 요셉은 이들의 근심된 얼굴을 살피고 그 연유를 묻자 그들은 간밤에 꾸었던 꿈을 해석할 수 없다는고 말하니 요셉은 귀가 번쩍 뜨여서 “꿈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느냐”라고 하며 그들의 꿈을 말하게 하니 술 관장의 꿈은“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다”고 하였다.

 

이에 요셉은“세 가지는 사흘이라 이제부터 사흘 후 당신은 복직되어 바로에게 다시 술을 올릴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우리는 요셉이 어떻게 이렇게 대담하게 딱 잘라서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전지하심과 미리 아심 속에서 이루어진 계획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명철한 지혜를 주셔서 그 일을 말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하실 일, 사람이 할 일

요셉은 때를 놓치지 않고 당신이 회복될 때에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부탁하며 자신은 히브리 사람으로 옥에 갇힐 일을 하지 않았음을 말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라도 사람의 손으로 풀어야 할 일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죽은지 나흘 뒤에 나사로를 살리실 때“나사로야 일어나 나오라”(요 11:43)고 말씀하셨고, 또다시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사람들에게“풀어놓아 다니게 하라”(요 11:44)고 말씀하셨음을 볼 수 있다.

 

사람을 살리신 분이 사람을 묶은 끈을 왜 풀지 못하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성경의 기록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은 하나님이 하시지만 사람이 할 일은 사람이 하여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떡을 맡은 관원장은“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들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고 말하였다.

 

이에 대하여 요셉은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끊고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먹을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참으로 듣기에도 끔찍스런 해석이다. 우리 같으면 이러한 이야기를 이렇게 담대히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일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분명하게 말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 후 사흘 후 요셉의 말대로 바로의 생일날 술 관원장은 다시 봉직되고 떡 관원장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꿈 해석에 감추어진 비밀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의 꿈 해석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그 꿈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니 그 해석도 하나님 외에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우리에게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를 제공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먼저 술 관원장의 말을 살펴보면“그의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내 손에 바로의 잔이 들려 있어 포도를 따서 즙을 짜서 바로에게 주었다”라고 하였다.

 

이 이야기를 조목조목 살펴보면 아주 순리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포도나무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는 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이 과정에는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의 손에 바로의 잔이 있는 것과 그 포도송이를 따고 술잔에 짜서 바로에게 즙을 올리는 것은 그의 충실한 직무를 뜻한 것이다.

 

그 관원장은 자기 앞의 일들을 순리에 입각하여 성실히 이행하여 자기의 주인을 기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떡 관원장의 꿈은 왕에게 드려야 할 떡 광주리가 자기의 머리 위에 있었다. 이것은 재물에 둔 그의 마음이며 그 세 광주리 중 윗 광주리를 여러 가지 음식으로 화려하게 꾸며 바로 앞에 둔 것은 광명한 천사의 얼굴을 한 사단의 두 마음인 것이다.

 

또한 새에 관한 해석은 길가에 떨어진 씨를 공중의 새들이 와서 먹었는데 예수께서는 그 새들을 가리켜 사단, 악한 자, 마귀라고 하셨다.(막 4:2-20) 이것은 요한계시록 19장 17절에도 같은 상징적 표현으로 기록되었다. 숫자에 있어서 한 자리 숫자가 하루로 해석된 것은 7년은 7년으로 70년은 70년으로, 삼 년 반은 삼 년 반으로, 천년은 천년으로 해석해야 하는 원칙이며 또한 떡 관원장의 광주리 속의 떡이 어떻게 만들어진 경위가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목적을 위하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역자의 온전치 못한 마음이 숨겨져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꿈 해석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께서 친히 준비하신 사랑의 포도주와 생명의 떡을 나누어주는 오늘의 사역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없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