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6:23) 브엘세바로 올라가자
(창26:23)이삭이 거기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나는 최근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믿음의 차세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것은 중국을 여행하면서 19세기와 21세기를 한눈으로 보며 마음으로 다가온 세미한 음성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나는 성경 속에 기록된 믿음의 2세대를 찾아 보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차세대란 말할 것도 없이 이삭의 세대라 하겠습니다. 더 확장하면 야곱의 시대까지 나아갈 수 있겠습니다만 야곱은 믿음의 3세대에서 다루어야 할 것 같습니다.
믿음의 2세대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 볼 본문은 창세기 26장의 내용입니다. 바야흐로 25장에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175세의 장거의 세월을 정리하고 자기 열조로 돌아갔다고 가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자기의 열조란 그의 조상을 말함으로 그는 셈을 따라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갔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25장 1절에는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르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기록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 때의 흉년이란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이르렀던 75세의 때를 일컽는 것으로 이미 100년 전을 말하고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한 세대를 거론할 때 100년을 주기로 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소위 세대주의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세대별로 나누려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시간과 날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예를 말하자면 주님은 무화과 나무를 말씀하시면서 이 세대가 가기전에 내가 다시 오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무화과의 비유를 이스라엘의 독립 즉 1948년으로 해석하며 따라서 주께서 말씀하신 이 세대란 2048년까지라고 해석을 하게 되므로 향후 40여년이란 세월이 남았음을 생각할 때 두려움이 앞서기까지 합니다.
또 1절에 언급된 블르셋 왕 아비멜렉은 창세기 20장에서 아브라함과 관계를 갖었던 왕으로 성경은 그를 가리켜 의로운 백성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블르셋 땅에 이른 이삭은 무엇인가 불안한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여호와께서 나타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한 땅에 거하라"하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기근을 당한 이삭의 마음에 대하여입니다. 그는 이미 아브라함의 기업을 물려받고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아비로서 거대한 한 민족을 태동하였기 때문입니다. 어쩜 블르셋 땅에 이른 이삭은 그들에게서 겅계의 눈빛을 발견하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이삭은 좀더 큰 나라 애굽으로 갈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에게 "이 땅에 유하면 내거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으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으로 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물질과 감성주의자들의 나라 애굽으로 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약속을 하실 때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였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법도를 지켰음이니라"말씀하시므로 그 약속의 근간을 주께서 부르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에 두셨습니다. 여기서 '지켰음이니라'는 파숫군과 같이 경계하며 살피고 조심하여 실행하였다는 뜻입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제 기근이 풀릴 때까지 그랄에 살기로 작정하고 여장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내 리브가에 대한 불안감이였습니다. 사라나 리브가가 도대체 얼마나 미인이였기에 대를 이어 아내를 빼앗길까 불안해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왕들이 탐을 낼 정도라면 당대의 절세미인인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빼앗길 아내조차 없는 이요나는 한결 마음이 느긋해집니다.
아내에 대한 불안감을 가진 이삭은 그곳 사람들에게 아내 리브가를 가리켜 누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아마 이것은 이삭의 선입관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창세기 20장에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낯설은 타국에 가서 살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의 친족이나 민족들이 그곳에서 무엇을 어떻게하고 살았는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성경공부에 열심이였던 이삭은 아브라함이 기록한 그 당시 내용들을 잘 살펴보고 처음부터 일어날 소지가 있는 일을 예비하였을 것입니다. 이삭은 참으로 세심하고 여유있는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일은 아비멜렉 왕에 의하여 원만이 해결되었습니다. 이삭의 부부가 얼마나 의가 좋았던지 두 사람이 부둥켜 안은 것을 아비멜렉 왕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삭에게 "네가 어찌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백성 중 하나가 네 아네와 동침하기 쉬웠을 뻔 하였은즉 네가 죄를 우리에게 입혔으리라"하였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이삭을 당황하게 하였을 것입니다. 이삭은 블르셋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로 불의를 일삼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로 이러한 생각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 많은 시행착오를 갖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은 의롭고 남은 불의하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성경은 비판하지 말라 기록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창세기 20장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블르셋 사람들은 이미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에 대하여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당시 아비멜렉 왕은 군대장관 비골과 함께 아브라함에게 나아와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창20:22)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으로 '브엘세바'라하여 향후 자기 후손들을 위한 불가침조약을 맺은 바 있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그곳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참조 창20:22-34).
굴러온 돌과 텃 세
그후 이삭은 그곳에서 거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살이에는 늘 호사마다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위협하면 당연히 텃새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얼마나 축복을 받았던지 블르셋 사람들이 시기하기에 이르렀고 아비멜렉 왕까지 나와서 이제 그곳을 떠나라고 명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블르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우물을 막고 흙으로 덮었다는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우물
블르셋 사람들은 이삭이 거부가 된 이유를 살펴 본 결과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팟던 우물들 때문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만큼 그당시 우물은 인간의 삶에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그들의 핍박에 의해 그 지역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거기서도 아브라함의 우물을 파서 그 아비의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계속 거듭되어 이삭의 종들이 다시 판 아브라함의 우물은 블르셋 사람들에게 의하여 메였습니다.
성경은 그 당시 정황에 대하여 '이삭의 종들이 골짜기에서 파서 샘 근원을 얻었더니 그를 목자와 다투어 가로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을 인하여 그 우물의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팟더니 그들이 또 다투는고로 그 이름을 싯나라 하였으며'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삭의 새로운 사역
이제 그 아비 아브라함이 과거 아비멜렉의 왕과 세운 맹서의 우물 일곱 우물은 그랄 목자들의 시기와 질투에 의하여 모두 메워지고 이삭은 새로운 우물을 다시 파야만 했습니다. 20절 이하 기록으로 보아 이삭이 새로운 우물을 팔수록 그랄 목자들의 대응도 날로 더 심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삭과 그의 종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우물을 팠습니다. 그 결과 더이상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에 이삭은 그 우물의 이름을 르호붓이라 칭하여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접할 수 있게 됩니다. 먼저 그 첫번째는 이삭은 그곳 왕으로부터 출국명령을 받은 후에도 하나님께서 번성을 약속하신 그랄을 떠나지 않았으며, 두번째는 그 아비 아브라함의 행함을 그대로 답습하여 아버지가 판 우물을 다시 파 아버지가 부른 이름을 그대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목회 방법을 그대로 좇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삭은 아비 아브라함이 판 우물이 모두 메워진 후에도 그곳을 떠나지 않고 그랄의 목자들과 다툼 속에서 새로운 우물을 파기를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이삭은 다툼 속에서 더 넓은 곳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이삭은 새로운 깨달음으로 브엘세바로 올라 갔습니다(23).
브엘세바로 올라가자
성경은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오랜 세월 투쟁에 시달린 이삭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경기자는 "이삭은 그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거기 장막을 쳤더니 그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브엘세바란 맹세의 우물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21장의 기록처럼 과거 아브라함이 아베멜렉 왕과 그의 군대장관 비골이 맹세한 곳입니다.
여기서 이삭은 시대를 떠나 믿음의 조상 아버지 아브라함의 삶 가운데서 행한 믿음의 역사 속에 변함없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이미 아브라함에 체험한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셨으며 오늘날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언약된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비멜렉과 비골이 다시 이삭에게 나타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의 맹세가 얼마나 허무한가를 익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그들의 맹세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택하신 자와의 언약속에 역사하시는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브엘세바는 아직도 우리 속에서 영존하신 것입니다. 나는 오늘에서야 브엘세바의 언약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이 어린 종으로 하여 당신의 영존하심과 주의 종의 눈으로 주의 부르신 믿음의 조상들로 하신 영원한 말씀을 보이심을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세세토록 영존하신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여호와입니다. 세세토록 찬송과 능력과 영광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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