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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5장-1) 백살의 아브라함 장가드는 속사정

이요나 2007. 2. 15. 14:07

(창세기 25장-1) 백살의 아브라함 장가드는 속사정

 

(창25:1)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회춘된 생식기능

창세기 17장에서 하나님께서는“내가 너를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하리라”(창 17:5)고 하시며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 주셨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이미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스마엘은 12방백의 조상이 되었다. 본문에서 아브라함은 첩 그두라를 통하여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될 여섯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들은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된다.

 

성경은 이들에 대하여 단 2대만이 거론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더 이상 그들을 중요시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들중 미디안, 시므란, 므단 등은 후에 아랍인의 조상이 된다. 따라서 오늘의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들의 후예이다.

 

여기서 우리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아브라함의 회춘은 단회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적어도 본문의 내용은 이삭의 결혼 후의 일이다. 따라서 이삭이 결혼할 때 아브라함의 나이가 140세였으니까 이삭을 낳기 위하여 백 살에 회춘된 생식기능은 지속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0살의 아들을 장가보내고 며느리까지 얻은 아브라함이 체면 불구하고 결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이 땅의 인간은 그 누구도 육체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바울은 독신 은사가 아니면 결혼할 것을 주장하였다. 주께서도 독신으로 지낼 자는 고자의 운명을 가진 자들이 받을 수 있음을 지적하셨다.

 

백 살에 죽은 몸에서 회춘된 아브라함의 육체는 건장한 남자의 정욕을 지닌 남자로 회복된 것이다. 그의 재혼은 육체의 소욕때문에 사단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한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상한 지체나 병든 기관들을 아주 온전하게 회복시키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다. 그는 치료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배우자는 준비된 선물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우리의 배우자를 어떻게 만날 것인가? 이것은 24장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먼저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셨음을 믿는 부모의 마음과 그리고 충분한 기도와 자식의 배필을 준비하는 부모의 깊은 사려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부모에게 배우자의 선택을 의뢰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하는 이유는 우선 나를 가장 잘 아는 분은 역시 부모이며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나의 행복과 장래를 염려하는 분도 역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부모에게 결혼 문제를 맡기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의 신랑되신 주께서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를 돕도록 하셨다. 따라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배우자는 부모를 통하여 주의 성령이 준비하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자기의 아들들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즉 그의 첫 아들 이스마엘과 그두라에게 낳은 서자들에게도 많은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이것으로 보아 인간의 육신 적인 정은 우리와 같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인 이삭에게 자신의 모든 소유를 상속함으로써 그들과 구분하였다. 그리고 자기 생전에 육신의 아들로 인하여 일어날 마찰들을 방지하기 위하여 서자들을 동방으로 이주시켰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과 영의 일은 늘 서로 대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육체에서 벗어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은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한다.

 

형통한 삶

본문에서 아브라함이“자기의 열조에게 돌아갔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말씀 속에는 영적인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산 막벨라 굴에는 오직 그의 처 사라가 묻혀 있을 뿐인데 그가 열조에게 돌아갔다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된 하나님의 평안의 장소, 후일 모든 믿는 자들이 죽어서 돌아갈“아브라함의 품의 평안한 장소”인 본향으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175년 동안 즉 부르심과 믿음 밖의 75년의 세월과 믿음과 순종의 100년의 세월이 모두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삶을 마친 것이다. 마치“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라는 바울의 고백과도 같다.

 

시편 1편에서“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기록하심과 같이 아브라함은 175세를 형통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다윗은 이러한 복에 대하여 노래하기를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에 거하리로다”(시 91:1)라고 하였고, 다시“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시 91:16)라고 노래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장구한 세월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과 순종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고 그의 육신은 생전에 그가 준비한 막벨라 굴에 사라와 함께 묻혔다. 우리는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장사에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참석함을 볼 수 있다. 이것으로 이들은 육신으로 형제의 정을 유지해 온 듯 싶다.

 

영적 승계자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축복이 이삭에게 승계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아브라함이 죽은 후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태초로부터 인간을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는 자기와 관계된 사람에게 복을 주심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에베소서에서“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쁜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다”(엡 1:3-5)라고 말하였다.

 

이 말씀을 분석해보면 복을 주신 것은 그의 아들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그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 짐이다. 성경은 우리에게“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흥미로운 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이 브엘라헤로이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이곳은 과거 하갈이 사라에게 쫓겨나 광야를 헤매다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난 곳으로“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이 지역은 네겝광야의 지역으로 리브가를 맞이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왜 이 광야에서 외롭게 생활하였는지 성경은 말이 없지만 오랜 세월 자기를 지켜주던 아버지 아브라함의 소천 후 그는 오직 하나님의 지켜주심(감찰하심)을 소망했을 것이다. 육신의 형제들이 떠나가고 오로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이어나갈 독자로써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할 이삭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지켜주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육신의 형제

12절부터 18절까지는 이스마엘의 후예가 기록되고 있는데, 이것은 아버지 아브라함을 장사하기 위하여 만난 이스마엘이 성경을 기록해 나갈 이삭에게 자신의 아들들의 이름을 전달해 주었을 것이다.

 

후에 이삭은 이것을 다시 통합하여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창 15:19) 그의 후예들은 북부 중앙 아라비아 지역 일대에 정착하여 살았지만 정확한 신원을 알 수 없다. 다만 이들은 후일에 탄생되는 이삭의 장남인 에서의 후예 에돔족과 함께 세일산을 중심으로 거류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스마엘은 137세로 죽게 되는데 이삭은 이로부터 58년을 더 살았다. 성경은 이스마엘의 죽음에 대하여도 아브라함과 같이“자기 열조에게 돌아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록 그가 언약의 자손은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의 아들인 그는 아브라함이 믿는 하나님을 믿는 자로써 죽음 후에 영적인 세계를 누리는 영적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이스마엘의 후예들이“하윌라에서부터 앗수르로 통하는 애굽 앞 술까지 이르렀다”라고 기록하므로써 지금의 북부 아라비아의 조상임을 말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