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24장-4) 아! 결혼, 나의 천생연분아!

이요나 2007. 2. 16. 13:18

(창세기 24장-4) 아! 결혼, 나의 천생연분아!

 

(창24:64-65)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약대에서 내려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뇨 종이 가로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면박을 취하여 스스로 가리우더라

 

신부측 부모들의 태도

이제 엘리에셀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들은 브두엘의 가족들은 이삭의 청혼을 승락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그들은 아주 명쾌한 답변으로 청혼을 받아들인다. 여기서 우리는 이 결혼에 대한 결정을 리브가가 하고 있지 않음을 간파하여야 한다.

 

그의 아버지와 실질적 가장의 위치에 있는 오빠 라반에 의하여 결정되어지는데 이들은“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다”라고 단정한다. 즉 그들은 리브가의 결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임에도 그 결정을 자신들의 생각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이것은 신부의 부모들이 터득해야 할 성경적 진리인 것이다.

 

우리는 결혼이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결혼에 있어서 먼저 전제하여야 하는 것은 부부의 인연은 하나님으로부터 라는 것이다. 다만 이 땅에서 이미 예비된 배우자를 어떻게 찾느냐가 최대 관심사이며 고민인 것이다.

 

과거 우리 민족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부모의 결정에 따라 혼인하여 아들 딸 낳고 검은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살아왔다. 이러한 연분을 우리는 천생연분이라고 한다. 즉 하늘에서 맺어준 인연이란 말이다.

 

천생연분이란 나를 창조하심으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렇다면 왜 현대인들은 이러한 자신의 천생연분을 찾지 못하고 삼 사십이 넘도록 방황을 하고 있는 것일까. 먼저 이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의 결혼의 문제를 창조주로부터 준비하신 선물임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주관에 의하여 선택하려는데 문제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권에서는 남자를 선호하는 관계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깨뜨려 버리고 미리 선별하여 자녀를 낳는 관계로 남녀의 균형이 깨진 영향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준비하신 배우자 관계를 찾는 것을 떠나서 자신의 조건과 취향에 따라 상대를 찾기 때문에 만남에서부터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을 시대의 변화로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손이 닫지 않는 해와 달과 별과 그 외의 모든 자연계의 현상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래 아직도 그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미 배우자를 준비하여 주셨음을 신뢰하고 믿어야 할 것이다.

 

성령의 선물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우리의 배우자를 어떻게 만나야 할 것인가? 이것은 24장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우선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셨음을 믿는 부모의 마음과 충분한 기도와 사려일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지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부모에게 의뢰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것은 우선 나를 가장 잘 아는 분은 역시 부모이며 나를 가장 사랑하고 나의 행복과 장래를 염려하는 분도 역시 부모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날 때 이미 정해진 것이라면 우리는 부모에게 결혼 문제를 맡기고 조용히 기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신랑되신 주께서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성령을 보내셔서 성령이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를 돕도록 하셨다. 설혹 부모가 믿지 않는 사람으로 물질을 탐하는 분들이라 해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미 나는 성령의 인 침을 받은 사람으로서 성령의 주관 속에 인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성령께서 나를 온전히 인도하실 것을 믿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우선은 부모에게 그 문제를 알리고 부모의 인준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안 믿는 부모라 해도 이 세상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주관하심 속에 있는 것이며, 또한 나의 결혼 문제에 대하여 부모 형제보다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배우자는 부모를 통하여 주의 성령이 준비하게 하는 것이 성경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리브가의 부모로부터 승낙이 떨어지자 아브라함의 종은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먼저 경배를 하였다. 이것은 그 모든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은 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또 그의 가족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의 이름으로 받는 성령의 선물 즉 은사와 같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면 먼저 우리는 성령의 인침을 받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인 것이 확증되고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內住)하신다. 이 때부터 우리는 거듭난 생활을 하게 된다.

 

리브가도 아브라함의 종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금팔찌와 코걸이를 미리 선물로 받았다. 팔찌와 코걸이는 고대 이방인의 풍습으로서 결혼을 하던가 누구에게 종속이 될 때의 표식이다.

그리고 그의 부모로부터 결혼의 승낙을 받을 때 그는 더 많은 은 금 패물과 의복을 받게 되는데 이것은 아브라함의 종으로부터 모든 것을 들은 후에 이루어진 일이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 먼저 성령으로부터 인침을 받고 그리고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확실히 우리를 구속하신 분이 누구인지를 듣게 되는데 그때가 되면 이제 신부로 단장할 패물과 의복을 받게 된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주신 의와 옷과 성령의 각양 은사다.

 

예비 신부의 결정

아브라함의 종은 하룻밤을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여 줄 것을 청한다. 이것이 바로 종의 태도이다. 종은 자기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한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이와같이 성령께서도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시기 위하여 늘 우리 안에서 우리의 연약함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시다.

 

여기서 우리는 물질적인 사람의 모습을 또 보게 된다. 갈 길을 재촉하는 종에게 라반은 며칠을 머무를 것을 종용한다. 크리스천에게 있어 이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신부는 신부로 결정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속히 신랑의 집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성도로 인침을 받고 선물을 많이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혼식을 하기 위하여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 신랑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것에 안착하고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을 가리켜 썬데이 크리스천이라고도 하고 무늬만 크리스천이라고도 한다.

 

그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모두 세상 속에서 적당히 즐기며 믿음 생활을 세상의 방법대로 한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삶 속에서 경건함이 나타나지 않는다. 엘리에셀은 이러한 라반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형통한 길을 인간이 소홀히 할 수 없음을 밝혔다.

 

여기서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결정적 결단의 찬스가 주어진다. 이러한 결정은 가족들이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예비 신부 리브가를 불러 그 문제를 결정하라고 한다. 여기서 리브가는 그 종과 함께 바로 출발하기로 결정을 하는데 이것이 신부인 성도들의 태도이다. 이미 신랑의 신부가 되기로 결정이 됐으면 더 이상 망설이면 안된다.

 

이제는 육의 생활에서 떠나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그의 신부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며 의에 대하여, 죄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알게 하고 우리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한다.

 

그리고 무사히 신랑의 집으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 리브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속에서 물 흐르듯이 준비된 자신의 혼인에 주저할 이유가 없음을 안다. 사실 낙타를 타고 800km를 여행하는 일은 여인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사막 지대에서 낙타를 타는 것은 아주 고약한 일로서 낙타 등에 오른 후에는 조급함이나 생각을 다 버리고 낙타의 움직이는 리듬에 따라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순행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들은 낙타 등을 타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이끌고 가는 길잡이는 성령이신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길의 지도와 양식은 성경인 것이다. 이제 신부는 신랑을 만날 날을 고대하며 기쁨으로 인내해야 한다. 지금은 자기가 받은 은 금 패물을 차고 신부복을 입고 자랑할 때가 아니다.

 

아직 결혼식을 치르기 전의 신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리브가를 축복하는 그의 가족들의 놀라운 기도문을 발견하는데 라반이“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라고 축복하였다. 이 축도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의 딸에게 하는 축복 기도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와가 에덴의 판결을 받을 때 여인을 통하여 사단의 머리를 부수어 버릴 아들을 낳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의젓하게 얼굴을 가리라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준비된 신부는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신랑의 집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친정으로부터 리브가를 시중할 하인까지 딸려보낸 것을 보면 라반의 집은 나름대로 유복한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우상을 섬기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셈의 후예로써 하나님도 믿고 있었다.

 

긴 여행 중에도 신부 리브가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리브가는 자신을 인도하는 성실한 종 엘리에셀의 위로와 가르침을 받으며 묵묵히 인내하며 앞에 있는 신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과연 무엇이 리브가로 하여금 이러한 고통을 인내하게 하였을까? 그것은 신랑을 만나는 기쁨과 소망,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사랑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으로 인 침 받을 때 마음속에 주어지는 선물로써 믿는 자만이 누리는 축복이다. 또한 이미 받은 많은 은사들은 그를 든든하고 지혜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점점 깊어지는 지식은 모든 시련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되었음이 분명하다. 여행은 결국 종착지에 도달한다. 리브가가 신랑이 있는 지역에 도달하였을 때의 이삭의 모습을 살펴보자. 그는 의젓하고 여유있는 자태로 신부를 향해 묵묵히 걸어오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을 억제하고 조급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는 저물 때 묵상을 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 묵상 기도는 가슴과 마음과 생각으로 하는 기도로써 삶 전체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이루어진다. 또한 신부 리브가는 신랑 이삭의 모습을 발견하자 실크 스카프를 꺼내어 얼굴을 가렸다. 신랑과 신부의 만남이 이처럼 신비스럽고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 이성을 대하는 당신은 어떠한가?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스킨십 정도는 괜찮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 결혼할 사이인데 미리 속 궁합을 맞추어 보아도 괜찮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을까?(이제 우리는 몇 번에 걸쳐 성경과 우리의 관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그리고 우리와 그리스도의 만남의 관계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