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24장-1) 결혼의 제1조건, "절대 돌아가지 말라"

이요나 2007. 2. 16. 13:28

(창세기 24장-1) 결혼의 제1조건, "절대 돌아가지 말라"

 

(창24:4-6)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종이 가로되 여자가 나를 좇아 이 땅으로 오고자 아니하거든 내가 주인의 아들을 주인의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돌아가리이까 아브라함이 그에게 이르되 삼가 내 아들을 그리로 데리고 돌아가지 말라

 

이스라엘의 역사

우리말에 과거가 없으면 가슴이 없고 미래가 없는 사람에게는 머리가 없다는 말이 있다. 바울은 성도들이 꼭 알아야 할 일들 4가지 중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첫째로 꼽는다.(고전 10:1) 성경은 창세기로부터 이스라엘의 연대를 따라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성경을 연구할 때에 꼭 살펴보아야 할 것은 구약의 예표와 그림자이다. 유대인의 랍비들은 율법을 연구할 때 그 표면에 있는 말씀보다 기록되지 않은 그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침묵의 말씀을 찾아내는데 많은 시간을 갖는다. 물론 이러한 일은 하루아침에 되어지는 일이 아니다. 말씀에 대한 전반적인 통찰력과 이해력 그리고 지식을 향한 열망과 그를 만나고자 하는 사모함으로 진정을 다해 접근할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베드로도 이에 대하여“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이 예언의 말씀은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다”라고 하였다.

 

구약에 나오는 예표들은 신약에서 성취되었다. 따라서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구약에 기록된 장막과 희생 제사, 절기들은 신약에서 성취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적 예표(Type)인 것이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한 그림자이고, 오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임할 성령 강림의 예표이다. 우리는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구약의 대표적인 예표 속에서 2가지를 배우게 되는데, 그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하나님의 모리아 산에 올라가 희생 제물로 드리는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이고, 또 하나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뜻에 따라 화목 제물이 되는 이삭의 순종이다.

 

이것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 이 2가지를 이끌고 가는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랑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결혼이라는 인륜지 대사를 설정하셨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사라는 아브라함의 아내이며, 하나님이 자기 아내로 맞이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예표 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아내로 삼으셨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이방 신을 섬길 때 그들을 음란한 여인이라 부르셨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창세기 22장에서 나타난 모리아 산에서 이삭의 순종은 2000년 후 실제로 동일한 장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확증된다.

 

결혼의 원리

이삭은 모리아 산 사건 이후 성경 속에서 잠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구속 후 하늘에 오르시어 하나님의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 인 교회를 준비하여 이끌고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또한 창세기 24장은 그리스도인이 왜 결혼을 중요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결혼을 위한 준비와 과정에 이르는 결혼의 원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지금 각 교회의 문제는 젊은이들의 이성교제이다. 내게 상담해 오는 젊은이들 중에 80%가 거의 이러한 문제이다. 이것은 그만큼 각 교회가 이성교제와 결혼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바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위한 살아있는 규범으로서 이보다 더 정확하고 완전한 원리는 이 세상에 없다.

 

성경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친히 쓰신 것으로 그의 택하신 백성들이 오랜 역사 속에서 실증적 삶으로 확증된 진리의 교범이다. 모든 철학과 학문은 창조주에 의하여 이미 설정된 이론들에 대한 의문과 연구로 발견된 원리로서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계속 검토되고 분쟁하며 연구되고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발견하기까지는 미지의 여지를 남겨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창세기 22장은 이방인 가운데서 그분의 이름을 취할 백성, 즉 그리스도의 신부를 취하는 성령의 사역이 어떠함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라고 하였고 다시“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고 하였다.

 

그는 부부의 사랑을 위하여“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몸을 주심 같이 하라”(엡 5:25)고 하였고, 아내들에 대하여는“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고 역설하였다.

 

결혼을 앞둔 이삭은 40세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창 25:20) 왜 이렇게 노총각이 되도록 장가도 가지 못하고 떡꺼머리 총각이 되었는지 성경은 침묵한다. 외아들을 둔 어머니와 고부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는 이야기 거리로 제공되는 것으로 보아 어쩌면 사라가 90살에 얻은 마마보이라서 그 사랑을 며느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사라가 죽은 몇 년 후 이삭의 배필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의 준비

본문의 서두에서 아브라함이 늙기까지 하나님의 복을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범사에 복을 받았다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네 영혼이 잘됨과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라”(요삼 1:2)는 사도 요한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이처럼 온전한 순종 속에서 온전한 믿음의 행로를 지켜 온 아브라함은 모든 일에서 풍요롭고 평안한 삶을 맞는다.

 

사실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면서 시작은 좋았으나 나중에 비참함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은 사람들일진대 우리가 오늘까지 살아온 날보다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이 육신의 장막이 있을 동안 잠시 겪는 환란과 고통을 이겨내고 영원의 세계에서 누릴 복락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오늘 창세기 15장에서 잠깐 거론되었던 아브라함의 심복 엘리에셀을 다시 만난다.

 

엘리에셀이란“하나님은 나의 도움”이란 뜻으로 성경에 그 이름이 나타난 지 50년 만에 느닷없이 성경에 등장한다. 어린양의 유월절 고난 후 50일째가 성령강림절인 오순절인 것을 생각할 때‘50’이라는 의미 또한 흥미롭다. 그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그의 독자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오는 중대한 사명을 받는다.

 

예수께서는 성령을‘보혜사’라고 소개하셨는데, 보혜사는 헬라어로‘파라클레토스’로서‘옆에서 돕는 자'라는 의미이다. 예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소개하실 때“그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라”고 하셨다.

 

이와같이 성령은 자기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즉 그의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들이 성령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하물며 어떤 교회의 집회에서는 성령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며 집회를 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몰라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그 영화로움과 창조와 구속과 속성에서 하나님이시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이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 따라서 성령은 마치 주인의 뜻을 아는 노련한 종과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으로 그 사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되돌아가지 말라

이제 아브라함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엘리에셀은 800km나 떨어진 메소포타미아의 나홀의 성까지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는 그 여행길에 앞서 아브라함에게 묻기를 신부감이 나를 쫓아오기를 싫어하면 주인의 아들을 주인이 나오신 땅으로 인도하여 가야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것은 또한 결혼 적령기를 맞은 그리스도인들이 명심해야 할 절대 명령이며 결혼 제1조건에 해당하는 사항이다. 성경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믿음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 결혼하여 엄청난 고난을 겪는 모습을 본다.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다시 못 박히던 과정을 답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이삭의 신부를 구하러 가는 지역 하란과 나홀성은 헤브론에서 모리아 땅을 가로질러야만 한다. 이삭은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 속에서 모리아 산에서 죽었다. 이제 그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누릴 뿐이다.

 

그는 다시 모리아 산을 통과할 필요가 없다. 그를 모리아 산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로 끌어내리는 것과도 같은 신약적 모순을 야기하게 된다. 이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이와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히 9:28)고 말하였다.

 

성경의 믿음의 원리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전제로 한다. 성경은“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 10:38)고 하였고, 다시“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되라”(히 10:39)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을 때 그들을 용서치 아니하셨고 후일 하나님의 섭리하신 바벨론을 거역하고 다시 애굽의 힘을 얻고자 하던 이스라엘을 용납지 아니하셨다.

 

성경은 미래 지향적이다. 메소포타미아는 하나님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더 이상 고향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드리신 구속은 영원하여 그의 이름으로 성결케 된 그의 성도들은 다시 더럽혀질 수 없는 것이다. 이제 그의 신부 된 성도는 성령의 능력과 그의 인도하심으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뿐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그 일을 거절한다. 아브라함은“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 것이라”고 하며 종의 손을 환도뼈 아래에 손을 넣고 맹세케 하였다. 사실 이삭은 그 약속의 땅을 한번도 떠난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