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19장-3) 아직도 살아 숨쉬는 소돔성

이요나 2007. 2. 17. 10:27

(창세기19장-3) 아직도 살아 숨쉬는 소돔성

 

(창19:26-28)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기둥이 되었더라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우리는 본문에서 참으로 허망함을 발견하게 된다. 후일 우리 앞에서 땅의 멸망을 볼 때 우리는 본문의 내용을 기억하며 애통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 그 천사들이 롯이 산으로 가기를 거부하고 소알 성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였을 때 롯의 말대로“네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할 수”라는 천사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본문에서“그 성들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라는 기록을 본다.

 

이것은 롯의 믿음 때문에 그를 구하신 것이 아니라 순전히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 때문이었다. 주께서도“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위하여 그 날을 감하지 않았으면 아무도 살아날 자가 없다”라고 하셨다.

 

이것은 그 날에 있을 환란이 어떠할 것을 단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 성경이 롯을 가리켜“의인”이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롯이 구원의 복음을 듣고 주를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오늘의 종말을 사는 우리와 연대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다. 다만 그와 동일한 믿음 위에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롯의 처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을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갖고 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의 가족 중에는 소금기둥이 될 사람은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주께서는 이제 곧 있을 하나님의 진노의 날, 즉 대환란을 경계하실 때에 노아의 홍수의 때의 일과 롯의 사건을 경계로 말씀하시며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7:32) 롯의 처는 그 멸망으로부터 벗어남을 당하는 도중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여 결국 멸망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은 잘 하는데 마지막 순간에 패망의 길로 달려가고 만다. 이것은 결국 세상의 즐거움을 돌아본 결과이다. 성경은 누룩을 죄라고 한다.

 

또한 문둥병을 죄로 상징한다. 누룩은 적은 것이 전체를 버리게 하는 속성을 가르친 것이고, 문둥병은 감각을 잃고 썩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이 외부의 죄악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봄으로 하여 그 유혹이 마음에서 불일듯하여 생기는 마음의 악이다. 주께서 누가 복음에서 몸의 등불은 눈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악의 유혹이 우리를 점령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살아있는 소돔성

나의 지난날의 과정을 생각해 보아도 그렇고 그동안 밤의 세력 속에 눌려 있는 많은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을 볼 때 그들이 믿음으로 그 생활을 정리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간 경우가 허다하다. 96년도 빛과 소금 월간지에 동성애 문제를 다룰 때 인터뷰에 임하였던 “김변화"라는 형제가 있었다.

 

그는 과거 MBC 방송국 전속 가수로도 활약했던 분으로 한국의 최초의 여장 남자였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과거 유흥업소를 경영하면서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로 만났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었고 그도 함께 교회를 출석하였었다. 우리는 한 교회 성도로서 10년의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우리의 삶은 변화가 전혀 없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은 내 현재의 삶의 변화와 관계없이 예수만 믿으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천국과 지옥을 함께 사는 10여 년의 생활을 거듭하면서 내가 그 소돔 성을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노력보다는 고통 중에 탄식하는 내 마음에 더하신 주의 은혜였다. 내가 이태원을 떠나는 날로 김 변화와 다른 형제들은 교회 생활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억류된 7년의 세월, 그 후 내가 목회자가 되어서 서울에 다시 돌아왔을 때 그와 나는 서울 갈보리채플에서 얼굴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는 밤을 새며 술집에서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3시 찬양 예배에 간간이 참석하였었는데 그 때에도 그는 반 여자의 옷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그는 여장의 생활을 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남자의 옷이 변변치 않았고 있다하더라도 물들인 긴 파마머리와 문신을 넣은 눈썹과 주름살 편 자국과 가슴에 넣은 실리콘은 남자의 옷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낮에는 외출을 삼가고 밤의 세계를 낮으로 산다.

 

이러한 상태의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기에는 여러 가지 난감한 일들이 벌어진다. 우선 일반 성도들 사이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되고 그들 또한 일반 성도들이 바라보는 눈초리를 견디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 중 예수를 믿는 자들은 아주 완전한 여장을 한 채 대형 교회 예배를 참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 당시 서울 갈보리채플은 과거 내가 클럽을 하고 있던 자리에 개척을 한 상태여서 다행히 일반 성도들보다는 술집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과 세상 음악하는 젊은이들이 많았다. 다행히 세상 음악을 하는 형제들은 오히려 그들과 사촌처럼 잘 어울리곤 하였다. 왜냐하면 게이(동성연애자)들은 하나같이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하였기 때문이다.

 

지옥의 증인들

그후 김변화 형제는 1년이 넘도록 얼굴을 보이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그 형제가 몸이 아파서 거동을 못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을 수소문하여 찾아갔을 때에는 이미 그는 병에 찌들어 걷지도 못하고 흡사 귀신의 모습으로 담배와 약과 비디오로 생활하고 있었다. 창문은 온통 두꺼운 천으로 덮여 있었고 방안에서는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가끔씩 찾아주는 동료들이 던져주는 몇 푼으로 연명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할 말을 잃고 쳐다보는 나를 향하여“이 목사님 살고 싶어요”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 그때의 나의 심정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위로의 기도와 그리고 몇 푼의 돈과 방안을 청소해 주는 것뿐….

 

그리고 나는 매일 그를 방문하며 위로의 벗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최근에 막 끝난 누가복음 주일 설교 테이프 시리즈를 건네주며“만약 당신이 이 테이프에서 주의 음성을 듣고 교회로 나아올 수 있다면 주께서는 당신을 치료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을 하면서도 내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이미 그 형제는 오금을 펴지 못하는 상태였고 사타구니를 중심으로 가려움증이 멈추지 않아서 얼마나 긁었는지 피가 멈추지 않아서 피묻은 기저귀를 차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에이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는 발걸음까지 멈추고 있는 실정이었다. 테이프와 함께 던진 나의 말과는 관계없이 내 마음은 이 사람은 회생 불능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처럼 나는 무력한 목사가 되어 고개를 떨구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3일 후 유난히도 차가운 2월 눈보라가 치던 날 저녁, 그는 굴러갈듯이 옷을 들쳐 입고 가파른 4층 옥탑 철 계단을 기어 내려와 다시 5층 이상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우리 교회까지 기어 왔다.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1시간이 더 걸렸다한다.

 

그 때 나는 세상을 진하게 살던 청년 둘이 6개월의 간격을 두고 마약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되는 터라서 마음의 위로를 받지 못한 심령이 되어 소박맞은 여인처럼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그 사건으로 그나마 출석하던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져 버리고 을씨년스런 개척교회 응접실에 덩그러니 혼자 앉아 성경을 죽이고 있던 때였다.

 

성경공부의 능력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불꺼진 계단을 몸으로 쓸며 유리문을 빠끔히 열고 기어들어 오는 불쌍한 걸인이 있었다. 나는 내 일생에 이처럼 불쌍한 모습을 본 일도 없었고 또한 내 일생에 이처럼 행복한 얼굴을 본 일도 없었다.“목사님 저 왔어요!”연약하지만 힘있는 목소리가 눈물로 범벅되어 시뻘겋게 상기된 콧등 사이로 흘러 나왔다. 얼굴을 온통 가린 머플러 사이에는 코와 눈물로 엉클어진 고드름이 맺혀 있었다. 47살의 내 억장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을 끊어버린 내 어머니의 시신 앞에서도 나는 그처럼 울지 못했었다.

 

인간의 죄와 무력함, 그리고 은혜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나는“주님 나의 모양이었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우리는 부둥켜안은 채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 우리는 승리의 영광을 주께 돌리며 시간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따끈한 차와 함께 식탁을 준비하였다. 나는 사람과의 만남에서는 식탁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안다. 맛있는 음식과 따끈한 차를 결들이면 마주한 얼굴은 곧 훈훈해지고 가슴을 열게 된다.

 

주께서 왜 우리의 식탁을 방문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겠다. 냉장고에 있는 것을 몽땅 쏟았다. 다행히 구정 무렵이라서 냉장고 안에는 스테이크용 고기와 생선 그리고 과일과 떡으로 차 있었다.

 

그 날 저녁 나는 내 침실을 사무실로 옮기고 예배실 뒤편 골방의 내 침대를 그에게 내어주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남아있는 교회의 성도들을 다 잃는다해도 오늘의 이 기쁨을 결코 잃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우선 그를 위하여 대형 프라스틱 통을 준비하여야 했다. 신체의 조건 때문에 목욕탕을 갈 수 없는 처지였다. 우선은 전기 온수기를 하나 설치하고 매일 더운물로 몸을 씻을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파마로 엉겨붙은 긴 머리를 대충 보기 좋게 손질해 주었다. 그리고 좀 넉넉한 바지와 셔츠를 속내의와 함께 준비하였다. 두 젊은이를 하늘로 떠나보내고 처음으로 회복하는 기쁨이었다.

 

이래서 인간은 생떼 같은 자식들을 저승으로 먼저 떠나보내고도 천연덕스럽게 살 수 있는 가보다. 그동안 침묵으로 가려졌던 나의 공간은 잔잔한 미소와 평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온유한 공간 속에 식탁과 함께 차려지는 우리의 성경공부는 시간을 따로 정할 필요조차 없었다. 이때부터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또 다른 시간과 공간 속으로 흐르는 삶을 누리게 되었다.

 

빌딩 속의 옹기점 연기

김 변화 형제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되어 스스로 교회청소와 식탁과 세탁물까지 관리하기에 이르렀고 주일이면 찬양리더와 함께 봉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아직 지팡이를 짚어야만 했지만 내가 가는 집회마다 앞자리에 앉아서“Lord I lift your name on high”를 불렀다. 손을 들고 찬양하는 그의 눈에는 늘 눈망울이 맺혀 있었고 그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동경 호라이즌 5주년 기념예배까지 동행하였다. 그의 얼굴의 밝은 빛은 보는 이로 하여금 기쁨을 주었고 하나님의 살아있음을 목격하게 하였다. 그는 그동안 생활하던 여장 옷가지와 장신구들을 내다 버렸고 이제 그는 김 변화라는 한 성도의 모습으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갔다. 그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이어지는 사역자 성경 공부에 참가하며 오직 하나님을 아는 일에 열심을 다하였다. 그에게 세상은 이제 의미가 없어졌다, 그는 60의 나이에서도 무엇인가 주를 위해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그가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은 지 불과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의 상황이다.

 

그는 매일 먹어야 했던 진통제도 이제 일주일에 한 두 번 씩 날이 궂을 때에만 먹었다. 그의 몸과 마음의 변화는 성경말씀의 성장과 함께 나날이 달라져 갔다. 그러나 그 해 가을 이제 지팡이를 놓게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는 그 주위의 동료들을 전도한다는 목적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고 내가 잠든 틈이면 다시 소돔의 거리로 한 두 발짝 씩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교회는 문을 열면 바로 그 거리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는 술과 담배는 이미 다 끊었지만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왔던 동료들과의 정을 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친구들은 60평생의 그의 삶이었다. 이 일이 지난 후에야 나는 악한 영들이 그 지역을 떠나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막 5장-군대귀신 이야기) 또한 새로운 영적 생활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도와의 기쁨의 교제가 이어져야 함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목사와의 고요한 대화로 60평생을 세상 환락 속에 젖어 있던 기억을 끊어버리기에는 너무 무료했을 것이다.

 

내가 그곳을 벗어나는 데에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 속에서 7년이 걸렸거늘…. 한 번 두 번 그들과 만나는 횟수가 늘던 어느 날 그의 입가에서는 서서히 미소가 사라지고 무엇에 골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떠날 마음을 굳히고 있는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도 없었다. 오직 그를 섭렵하시는 하나님의 긍휼에 호소하는 일 뿐…. 그 후 어느 날 그의 침대에는“목사님 감사해요”라는 쪽지가 나를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일년 후 그는 다시 소돔 거리의 옛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주여 도와 주소서… 아! 빌딩 너머로 피어오르는 옹기점의 연기를 바라보며…(지금 나의 책상 앞 창너머로는 그가 거니는 소돔거리가 빌딩들 사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