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11장-3)너는 밀레니엄의 시대를 분변하고 있는가?

이요나 2007. 2. 21. 11:04

(창세기11장-3)너는 밀레니엄의 시대를 분변하고 있는가?

 

(창세기11:10-)셈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셈은 백세 곧 홍수 이년에 아르박삿을 낳은 후에 오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아르박삿은 삼십오 세에 셀라를 낳았고 셀라를 낳은 후 사백삼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셀라는 삼십세에 에벨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사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벨렉은 삼십 세에 르우를 낳았고 르우를 낳은 후에 이백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르우는 삽십이 세에 스룩을 낳았고 스룩을 낳은 후에 이백 칠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스룩은 삽십세에 나훌을 낳았고 나흘을 낳은 후 이백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나흘은 이십구 세에 데라를 낳았고 데라는 낳은 후 백십구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데라는 칠십 세에 아부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더라

 

"흘러내리는 하나님의 강"

인류의 족보는 유구하게 흐르는 강과도 같다. 이 성계가 이씨조선의 서울을 한강유역에 세우고 우리에게 내려온 지 60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우리는 세기를 건너뛰어 밀레니엄을 맞고 있다. 우리가 타어날 때만해도 20세기는 먼 하늘에 있는 것처럼 느끼던 것이 이제는 21세기를 코앞에 두고 있다, 그만큼 세월이 물과 같이 흐르고 있다는 증거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루 24시간이 더 짧아진 것도 아니고 어제의 해는 오늘 다시 뜨고 있지마는 우리가 사는 오늘은 분명 어제와 엄청 다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10년 전 내가 일본에 포류되어 있으면서 제일 먼저 느낀 것은 이 나라는 무엇인가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나의 7년간의 일본 포류기에 대하여는 별도로 시간을 할애 할까 한다)국가 전체가 어떠한 급류를 타고 흐르는 강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거대한 시계 태엽에 묶여서 톱니바퀴에 맞물려 어쩔 수 없이 돌아가는 물레방아 같은 느낌이 있었다. 그런 시간적 감각은 상류층이나 하류층이나 똑 같이 맞물려 있었다.

 

"거대한 톱니바퀴"

그리고 1995년 미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나는 그 나라를 밟으며 더욱 거대한 톱니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다. 거기서 생각하니 일본은 마치 미국의 거대한 톱니에 물려있는 작은 톱니 같기도 하였다. 그들의 시간은 뉴욕의 정치와 증권가에 촛점을 마추고 아침 이른시간부터 맞물려 돌고 있었다. 그리고 7년간의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 왔을 때 한국에서의 나의 첫 느낌은 마치 밋밋한 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올라가도 그만 내려가도 그만 오늘의 해는 내일 다시 뜨고 있었다, 어쩌면 바쁘게 돌아가던 톱니바퀴에 끼어 가랭이가 찢어지던 나에게는 모처럼 갖어보는 안식이었을 수도 있었다. 그 당시 우리나라는 부잣집 창고를 끼고 사는 사람들처럼 매일같이 흥청이는 잔치집 같았다, 위나 아래나 노닥거리며 눈먼 돈 줏어 먹기에 혈안들이었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가득차서 돈벼락맞은 사람들의 풍경과도 같았다.

 

IMF가 들어 닥치면서 꼬랑지에 불붙은 여우들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꼴이란 정말로 목불인견이다. 위 놈들이나 밑의 사람들이나 함께 맞물려 지옥으로 내려가지 않으려고 안감 힘들을 쓰고 있는 모습이 연일 메스콤에서 판을 치고 있다.

 

그동안 참으로 잘들 해 먹었지. 처음 놈이나 다음 놈들이나 마찬가지로 먹이 사슬에 매여있는 똑 같은 놈들이 되어 눈 가리고 아옹하면서 이리 덮고 저리 덮어가며 서로 자리메기기를 해나갔지만 이제 하나님의 제도권 속에 들어간 지금은 덮어버릴 수도, 도망갈 곳도 없이 그냥 불구덩이를 들어가야만 한다. 정치권이 그러했고 경제권에 그러했다, 이제 곧 종교권의 시작이다.

 

"666 시스템"

우리가 666 씨스템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나라를 이끌어 가는데에는 세 가지 권세가 필요하다, 그 첫째가 영권, 즉 종교요 둘째가 왕권 즉 정치권이요 세 번째가 먹고 살아가는 경제권이다. 전세계는 수세기 동안 왕권이 주도권이 되어서 나라를 다스려 왔는데 이 왕권은 하늘로부터 주어진 권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떠나서 자신의 지식과 이념 그리고 철학을 중심으로 다스리면서 세계의 정치체제는 이데올로기(혼적 부분) 속에서 각축전을 별려 왔다. 그후 지금의 세계는 어떠한가?

 

이제는 이데올로기로는 나라의 균형을 이끌어 갈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제 인류는 먹고 살아야 하는 심각한 문제 속에 부디치게 되면서 전 세계는 금세기에 이르러 경제(육체)가 그 나라를 이끌어 가는 머리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이러한 먹고사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인간의 혼과 육과 영은 각기 다른 요소로 충족시키지 않으면 않되게 지어졌다. 육은 식물(食物)로 혼은 지식과 경륜으로 영은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족되어야 한다. 그래서 성경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한다 하였고 또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덮으리라 하였다.

 

"인간성 회복의 시대"

이제 곧 세계 정세는 신정(神政)의 시대로 돌입되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친히 창조하신 인간성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각 지도층의 권세자들의 도덕성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진노는 전세계 속에서 역사하실 것인데 먼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춘 곳에서부터 그리고 하나님을 거부하는 나라에서부터 시작하실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선두로 하여 경제에까지 계속 일어나갈 것이지만 이제 곧 종교계에도 각 지도층들의 도덕성이 회복이 잃어 날 것이다, 하나님의 종으로 자처하면서 그의 한 일이 크던 작던지 간에 그들의 불의가 모두 들어 날 것이다.

 

이것이 밀레니엄의 초반에 부어질 이 땅의 진노이다. 그러나 이것은 대환난 기간에 일어날 하나님의 진노와는 구분된다. 이것은 이제 주의 오심과 함께 하늘로 이끌어갈 하나님의 성도(교회)를 정결케 하기 위한 하나님으로부터의 연단인 것이다.

 

"메시야의 족보"

오늘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 흐름을 본다. 하나는 흐름 속에 인간의 수명이 단축되고 있다는 것과 그 흐름은 메시아의 오심을 향하고 있는 일직선상의 역사라는 것이다. 바벨탑 사건 이후 성경은 이백 년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후에 그들이 어떻게 이동을 했는지, 무얼 먹고 살았는지 누가 누굴 낳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다. 때로 성경은 참으로 냉정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을 참는 것이 이처럼 힘이드는데 인간의 하는 짓거리를 보면서 묵묵히 주의 날을 준비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가 하나님이니까 망정이지 아마 그의 오장 육부를 열어보면 암덩이가 주렁주렁 달렸을 듯 싶다.

 

내가 하루 참는 것도 이처럼 힘이든데 어떻게 수천 년을 참으셨고 그리고 그의 아들의 죽으심 속에서 또 이천 년의 세월을 묵묵히 우리와 함께 살아오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는 역시 인간이 아니시오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그의 모습일러라. 그의 사랑의 모습이요 자비의 모습이요, 긍휼하심의 모습일 것이다. 성경의 족보는 모두 메시야에게 초점이 맞추어있다.

 

노아와 셈으로 써 내려온 메시야의 족보는 이제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오고 있다, 셈과 아브라함과 그리고 유다 지파의 다윗으로 연결되어 메시야로 연결되고 있는데 최근 세계각국에서 자기가 메시야라고 떠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메시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는 먼저 자신이 유대인임과 유다지파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의 못자국과 허리의 창자국을 내 놓아야 하고 12사도와 함께 수많은 성경 속의 인물들의 증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즉 아브라함을 불러 내려야 하고 다윗을 불러내어 자기가 그의 혈통임을 증명하여야 할 것이다. 자칭 메시야라고 말하는 문선명씨는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