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11장-1)성경은 일직선상으로 달려 온다

이요나 2007. 2. 21. 11:12

(창세기11장-1)성경은 일직선상의 시간으로 달려 온다

 

(창세기11:6-9)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정부가 공인할 수 없는 이유"

오늘 2년만에 정수기 필터를 갈았다. 물맛이 좀 이상하기도 하지만 정수기를 처음 개설할 때 설치한 사원의 말이 요즘 계속 내 귀를 때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매뉴얼에 의하면 벌써 교체하였을 것이나. 필터 자체가 고가이고 보니 먹고 죽는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해 왔다.

 

며칠 전 어느 목사님 사모님이 오셔서 물을 마시더니 "목사님 이것 청호 정수기 맞아요?"하고 얼굴을 찡그리며 묻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에 물 대신 커피를 먹는 체질이라서 느끼지 못했던 것인데 그 이후부터 개설할 당시 그 사원의 말이 귀를 때리고 있었다. "이 필터를 갈아주지 않으면 수돗물을 먹는 것만도 못합니다.

 

세균덩어리를 마시는 것과도 같으니까요" 목사 부인이 다녀 간 후부터 갑자기 커피 맛이 영 딴 맛이다. 사람의 마음이 요렇게 간사해서야..... 또 내가 정수기 필터를 갈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토요일이면 "크리스챤 이성교제" 정기모임에 참가하기 위하여 우리 예쁜 아들딸들이 전국 각처에서 달려 올 터인데 요 이쁜 놈들에게 세균덩어리를 먹일 수는 없다 하는 생각이 들어 큰맘을 먹고 3회에 걸쳐 분납하기로 하고 필터를 교체했다. 뭔가 목에 걸려있는 더러운 세균덩어리가 뚝 떨어진 기분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물맛이 갑짜기 꿀맛이다. 나 이거야 참!

 

이 정수기 국가 공인 허가품이냐고 묻는 나의 말에 그 기술자는 청호든 웅진이든 국가 공인 정수기는 우리나라에 없다고 한다. 만약에 국가가 정수기를 인정하게 되면 정부가 관장하는 수돗물은 못 먹는다는 결론이 되기 때문에 그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국가 공인 정수기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수돗물을 들고나오면 테레비에 나온 수도 당국자들은 수돗물은 완전히 살균이 되어서 마셔도 된다고 우기는 것이란다.

 

그들은 먹어도 된다고 하는데 청와대도 국무총리실에도 서울 시청장실에도 그리고 국회의사당에도 정수기 없는 곳은 관청은 한군데도 없단다. 사실이 그렇지 수돗물이 그렇게 자신이 있으면 왜 지들은 정수기물을 먹을꼬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순의 합리화"

이 이야기를 왜 쓰느냐하면 모순의 합리화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오늘 어느 독자로부터 역사는 해석하는 사람과 사용되어 가는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마스는 문명의 발달과 함께 교회사 속에 만들어진 합법적인 예배로서 더욱 성대하게 들여져야 한다는 논쟁이 제기 되었다.

 

나는 이러한 논쟁이 휘말리는 것을 싫어 하지만 감상쓰기에서 밝힌 것처럼 그의 의견에 대한 나의 소견을 이야길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이유는 이 일이 하나님에 관한 일일진대 이에 대하는 나의 견해를 말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 자신이 그러한 일에 대한 대답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나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 독자의 이론은 크리스마스가 사단의 문화 속에서 태동된 것이라 해도 우리 안에 온전케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주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만약에 이러한 이론을 합리화시키려면 인간은 아담의 죄도 인간의 예배의 발전으로 다시 성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구태여 인간의 육으로 이 땅에까지 오실 필요도 그 어처구니없는 십자의 형벌을 통하여 우리를 대속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

물론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졌다. 그러므로 인간은 지혜롭고 엄청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에 대하여 성경도 인간의 능력에 대하여 "이같이 행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다"고 기록하였다. 이것은 인간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한한 것이라고 하겠다.

 

온 인류가 합심하여 하늘에 닿게 탑을 쌓고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흩어짐이 없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하늘에 오르기 위한 인간의 지혜는 어쩌면 아주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빨리 전도를 하여 주님의 세계를 속히 이루자하는 말과도 같다.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며 아버지께 간구하신 예수님의 기도에서 " 아버지여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그러나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이 기록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인간의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방법이 하나님의 뜻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인간의 지혜와 방법을 떠나서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를 택하는 인간의 의지적 순종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설정하신 것"

우리는 노아 홍수 후 노아의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이 땅을 저주하지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들었다(창8:21,22) 그러나 땅이 있을 동안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을 두셨음을 안다. 이것은 인간의 삶을 하나님의 궤도 위에 설정하신 것으로서 모든 삶의 바탕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간은 우리 환경 속에 설정된 궤도의 법칙 속에서 인간으로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신 것이다. 그것이 느리고 어려운 방법이라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은 전지하신 지혜와 지식에서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기록하였다.(롬1:20) 그런데 노아의 아들 셈과 야벳과 함의 후손들은 전지하신 하나님의 택하심 속에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하고 빠른 방법으로 하늘에 오르자는 명분아래 하나님의 설정하신 궤도를 무시한 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겟세마네 동산의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 앞의 인간의 수단과 방법이 하나님의 뜻 앞에 먼저 설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치심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주권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피조물과 창조자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목적을 이루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성경은 사전인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방법론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에서부터 신학박사 학위과정을 준비하는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은 1페이지부터 시작되어 이론적 개념부터 단계별로 배우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시작과 끝이라는 일직선상의 한계 속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땅의 많은 교회에서는 성경을 가르침에 있어 성경 기록과 편집의 모든 권위를 무시한 체 사람의 방법에 의하여 가르치고 있다. 그들의 명분은 성경이 너무 어렵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성도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를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학문은 교과서를 배우기 위하여 사전과 참고서가 있는데 성경공부를 가르치는데는 교재가 주교재가 되고 성경은 교재에 나오는 성구를 찾는 사전이 되고 만다. 그러면 우리 생각을 좀 해보자 하늘나라에 대하여 누가 더 잘 아는 것인가? 사람인가 하나님인가? 우리가 모세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아는가?

 

다윗보다도 하나님을 더 잘 아는가? 아니면 바울보다 더 위대한 자인가? 우리는 이방교회의 일원으로서 바울의 권세 밑에 있다. 바울은 이방의 7개 모델교회에게 순서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교회들은 그 순서를 무시한 체 자기가 맘에 드는 곳을 한구절 골라서 멋진 설교를 만들어 성도로 하여금 은혜 받았다는 말을 듣고자 한다.

그 은혜는 누구에서부터 온 것일까?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일까? 우리가 빨리 뛰면 뛸수록 우리를 실은 천국 열차는 하늘에 빨리 도착할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