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11장-2)Ziggurats와 천상회의

이요나 2007. 2. 21. 11:07

(창세기11장-2)Ziggurats와 천상회의

 

(창세기11:1-9)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모여서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

오늘은 바벨탑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지금이나 옛날이나 좋은 환경 속에서 살고자하는 삶의 목표는 다름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티그리스와 유브라테스 유역의 기름진 시날 평지로 모여 살게된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이들은 노아의 한 조상의 후손으로 아직 같은 언어체제와 같은 문화를 갖고 살고 있었다고 생각할 때 동족들이 함께 모여 살게 되는 현상은 자연적 현상이라고 하겠다.

 

시대가 발달됨에 따라 이제는 각 사람의 비젼과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이 되었지마는 이 때는 아직 커다란 민족들이 태동되기 직전임으로 이들은 같은 혈육의 정으로 뭉쳐 살기를 원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이 모두 같은 언어를 쓰고 있었다는 것은 우리로 의심 없이 받아 드리게 한다. 노아와 세 아들로 시작된 인류의 흐름이 겨우 4대에 이르렀던 시점이므로 인구도 그렇게 많이 증가하지 않았었을 때였다. 따라서 머리가 출충했던 함의 손자 니므롯이 정치성과 종교성에 두각을 나타내고 노아의 후손의 총체적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을 것이다.

 

"Ziggurats와 종교체제"

니므롯은 앞에서 우리가 배운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특이한 사냥꾼"이란 호칭을 받았던 인물이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육식이 허락되면서 인간과 동물들 사이에는 적대 감정이 생기게 되었고 그로하여 인류는 짐승들의 공격으로부터의 안전과 식생활을 위한 짐승을 포획해야 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대가 개막하면서 사냥에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인기인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따라서 니므롯이 총체적 지도자로 부각되는 것에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고 그의 용맹과 자만 속에 역사하는 사단의 영은 그로하여 영적인 체계를 도입시킴으로 이 땅에 종교라는 굴레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다.

 

엄격히 말하여 하나님은 유일신으로서 종교라는 범주에 들 수가 없다. 그러면 신적인 존재가 되기 위하여는 무엇이 필요할까? 인간이 신적인 존재로 군림하기 위하여는 이 땅에 있는 어떠한 힘으로만은 될 수가 없다,

 

이 땅의 것이 아닌 외계의 비밀 속에서 가려진 신비의 세계를 도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니므롯은 하늘의 영계의 비밀을 접하고자 우리가 오늘 날 지구라트(Ziggurats)라고 불리우는 바벨종교의 신전을 세워 십이궁도를 바라보며 하늘의 징조를 캐내어 신과 교통하고자 한 것이다.

 

처음 이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구어서 만들고 역청 즉 아스팔트의 재료인 몰타르를 이용하여 탑을 쌓기에 이르렀지만 그들의 계획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언어의 혼잡을 갖게 하신 것이다.(그 후에 바벨론 종교의 제단으로 사용된 만신전과 같은 신전들은 언어의 혼잡 이후 니므롯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완성되었을 것이며 후세에 이것을 지구랏트라고 불렀다)

 

"아스팔트와 록펠러의 벼락부자"

이 역청은 이곳을 읽던 존 록펠러의 마음을 흥분시켜 역청 즉 아스팔트가 있는 곳이라면 석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스탠다드 석유회사를 설립하여 이라크와 손을 잡고 그 일대의 유전을 개발하여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었다.

 

니므롯의 생각은 자신이 제민족의 총수가 되기 위하여 흩어지지 않는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하여는 그들의 정신을 한 곳에 집중 시킬만한 거대한 탑을 쌓고 하늘의 타락한 영들과 교신을 함으로써 바벨론 종교를 탄생시킨 것이다. 주께서도 요한 계시록에서 이 거짓 종교인 바벨론을 가리켜 "음녀의 어미"라고 불렀다. 인간들의 생각이 이쯤에 이르자 하늘에서는 천상회의가 개최된다. 참 하나님께서는 인격자이심이 틀림없다.

 

말 안들으면 벼락이라도 내려서 니므롯과 그 일당들을 죽여버리시면 그만이시지 그 정도 가지고 천상회의를 하시다니 인간의 머리로는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언약을 중히 여기시며 자기의 종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심을 성실히 이행하여 가신다.

 

이미 노아와 그의 후손들에게 무지개 언약을 하셨고 이제 죄인된 인간을 은혜로 이끌어 가실 것을 언약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생들 앞에 밤과 낮과 여름과 겨울과 심음과 거둠, 그리고 추워와 더위를 두시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셨던 것이다.

 

또한 노아의 세 아들의 타고 난 품성을 따라 그들이 셈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 속에서 창대하여지고 서로를 섬김으로서 메시야의 때를 기다리게 하셨던 것인데 이들이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무시한 체 인간의 방법으로 하늘을 오르려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의 궤도를 다시 수정하지 않으시면 안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고"하셨던 삼위께서 다시 천상회의를 개최하셔서 인간의 삶의 궤도를 다시 설정하신 것이다. 즉 인간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서로 흩어지게 하신 것이다.

 

"말이 맞는 기쁨"

우리가 외국에 나가 살게 되면 이 언어의 귀중함을 알게 되는데 저는 7년 동안 일본에 표류(?)되어 있으면서 참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많은 고통을 겪었었다. 또한 미국을 몇번씩 방문하면서 그 나라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름다운 나라다 생각하면서도 그 나라에 가서 살고 싶은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것은 역시 언어의 문제였다.

 

요즘 미국으로 가기 위하여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언어는커녕 문화와 생활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무작정 도미(渡美)행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할 말을 잃어버린다.

 

특히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 속에서 너무 말이 맞지 않아서 서로 얼굴을 붉히게까지 되는 일이 시비십상인데 최근 나는 나와 말이 맞는 몇 사람을 인터넷 사이버 공간에서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며 살고있다.

 

아직 이들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이들과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마음이 합하여지고 흐믓해지며 기다려진다. 어떤 때에는 그들이 내게 주신 양들처럼 생각되어 눈을 뜨면 먼저 이들의 소식을 알고자 메일박스로 달려가게 된다.

 

얼굴도 모르는 독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을 때의 기쁨과 위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내가 아마 큰 교회의 담임이었다면 이러한 기쁨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인 것이다.

 

"성육신의 의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종교활동이 아니다. 종교는 인간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의로운 행실로 하늘로 오르려는 인간의 노력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하늘로 이끌어 가기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온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우리 인간의 태어남과 같이 생각하여 기념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 더 구체적으로 말하여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태어난 인간의 혈통이라고 생각할 때 우리의 구원 사역은 모순에 부치고 만다. 왜냐하면 이 땅의 혈육을 가진 인간은 아담의 혈통을 이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하나님이라" 하셨고 다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 기록되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서 이 땅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시지 우리와 같이 죄를 갖고 태어난 혈육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있으시되 생일은 없는 것이며 그의 십자가의 구속사역은 있으시되 예수님의 제삿날은 없는 것이다. 그는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Henry M. Morris, Many Infallible Proofs(San Diego:Creation-Life

Publishers,1974),pp.321-324

(2)척 스미스 저서 우주창조(포도원사 발행)p.130 '종족들의 이주'에서

(3)메튜핸리 창세기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