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8장-1)아이구! 이 사람아 오두방정 떨지마라!

이요나 2007. 2. 21. 12:07

(창세기8장-1)아이구! 이 사람아 오두방정 떨지마라!

 

(창세기8:1-12)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들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칠월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 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왕래하였더라 그가 또 비둘기를 내어놓아 지면에 물이 감한 여부를 알고자 하매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접촉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속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또 칠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어놓으매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 돌아 왔는데 그 입에 감람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 알았으며 또 칠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오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구원의 날"

본문 속에는 노아의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문 구체적인 날짜들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것은 그냥 기록상 남겨 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우리로 살펴보고 기억하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모든 것이 그의 예정과 통치 속에 있음과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음을 전재하여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그가 설정해 놓은 괘도를 달려가는 전차와 같다. 그 전차 안에서 우리는 정해진 사람들을 만나고 먹고 마시며 종착역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홍수의 시작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 둘째 달 십칠일에 시작되어 다섯 달째인 칠월 십칠일에 아라랏 산에 머물렀다. 다섯 달은 150일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때로부터 다니엘 시대까지 바벨론 역(曆)을 사용하여 1년을 360일 한 달을 30일로 정하여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날자 2월17일과 7월17일은 같은 날이다. 유대인이 사용하는 유대력의 시작은 바벨론 역(曆)의 10월에 시작한다. 하루가 저녁부터 시작되는 것도 희한한 일이지만 1년의 시작도 10월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후일 성경에 기록된 유월절은 2월14일이었는데 주께서는 유월절기에 죽으시고 주야 3일간 무덤에 계셨으므로 주께서 부활하신 날은 2월17일이다.

 

그런데 바로 이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던 것이다. 이 "머물렀다"라는 말은 "안식"(rested)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로 창세기 2장에서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과 동일한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사역을 "다 이루시고"(요19:30) 하늘에 오르신 것을 생각할 때 노아의 방주는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라랏산의 위치"

이 아라랏산에 대하여는 구구분분 하다. 지금까지 의 조사에 의하면 지금 터어키가 점령하고 있는 아르메니아의 고지대에 있는 해발 17.000피트의 아라랏산이 가장 유력하다. 이 지역은 깊은 샘들로 형성된 베게 용암이 풍부하며 이 산은 해양 화석을 내포한 침전물들이 가득하다. 또한 그리스어 "아르메니아"의 히브리어 형태가 "아라랏"으로 불리는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최근 아라랏산을 찾고자하는 연구가 활발하여 미국 샌디에고의 해리티치 대학의 탐험대와 또 달나라를 갔었던 비행사 짐 어윈(Jim Irwin)이 참가한 탐험대 등 많은 창조학자들에 의하여 활발히 착수되고 있는데 만약 그 당시의 방주의 잔해가 발견된다면 인류의 가장 귀중한 고고학적 연구자료가 될 것이다.(왕하19:37. 사37:38)

 

"노아의 인내"

우리는 본문에서 5개월 동안 계속된 대홍수의 여행을 마치고 아라랏산에 멈춘 노아는 신기할 정도로 신중함을 가지고 대처함을 본다. 아라랏산에 머문지 7개월 동안을 망망한 물위에서 그 물들이 줄어들기를 기다렸을 것을 생각할 때 그에게 있어 하루는 천년과도 같았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 150일 동안 중 홍수가 시작된 날로부터 40일간은 창문도 열지 못하는 암흑 속이었을 것이다. 사십 주야 동안 땅속의 샘들이 터지는 소리와 궁창을 뒤덮고 있던 그 많은 물들이 쏟아지는 공포를 생각해 보라.

 

우리나라는 매년 여름 장마로 물난리를 겪고 있는데 그 며칠 쏟아지는 장마에도 온 세상이 떠들썩한데 밤낮 쉬지 않고 40일 동안을 하늘과 땅 속에서 터지는 많은 물들의 소용돌이를 상상해 보라! 삽시간에 온 세상을 덮어버린 장엄한 물들의 용솟음과 지각의 붕괴로 일어나는 폭음, 그리고 생명을 위하여 아우성치는 1천억이 넘는 사람들과 짐승들의 처절한 피의 절규들.... 한계 속의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40일 주야로 이어진 생지옥을 통과해야 했던 노아는 혼비백산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생각을 뒤집고 태연자약하게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한 준비를 한다. 신천지를 향한 노아는 행보는 오히려 신기할 정도로 차분하고 여유롭다. 이러한 노아의 여유와 지혜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나온 것이었을까? 노아는 다섯 달 즉 150일 만에 아라랏 산에 닿은 날로부터 물이 빠져 내리기를 기다리는데 7개월을 기다렸다.

 

"안식에 이르는 지혜"

먼저 그는 시체를 예지하는 능력을 가진 까마귀를 내어 땅에 주검을 감지케 한다. 그리고 평화의 상징 비둘기를 내어놓아 새 땅의 소식을 접한다. 즉, 아라랏산의 봉우리가 보인 날로부터 40일이 지난 후 까마귀를 내어 보냈고 뒤이어 비둘기를 보낸다. 그리고 다시 7일 후 내어 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감람나무 새 잎을 보고도 7일을 더 기다리는 것이다.

 

그 새 잎은 물이 마른 땅에서 이미 돋아난 감람나무 잎사귀였던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홍수 후에 있을 일에 대하여 일체 말씀이 없었다. 물론 어떻게 하여야 할 것에 대하여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그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과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향한 인내 속에 허락하신 은혜로 주신 하나님의 지혜였다. 만약 우리 한국인들이 이 배에 함께 탔다면 어찌하였을까? 미리 성급하게 뛰어 나와 화를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노아는 비둘기가 자기의 살집을 찾아 날아가 돌아오지 않음을 보고서야 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마치심"(안식)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 온 우리는 지금 험한 세상을 통과하는 방주를 타고 있다. 우리는 이 방주(교회) 속에서 세상의 아우성을 들으며 그의 날을 인내하고 있다.

 

방주의 틀 속에서 살아가는 나날들은 어쩌면 자유의 구속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질서 속에서 얻어지는 지혜와 인내의 열매는 세상을 건너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성경은 이 안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 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