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7장-3) 멸망의 세상과 환란을 통과한 사람들

이요나 2007. 2. 21. 13:44

(창세기7장-3) 멸망의 세상과 환란을 통과한 사람들

 

(창세기7:17-24) 홍수가 땅에 사십일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 하매 방주가 물 위에 떠다녔으며 물이 땅에 창일 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오십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홉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일백 오십 일을 땅에 창일 하였더라

 

"대홍수의 문자적 의미"

"홍수"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마불"과 "마임"인데 여기에 기록된 "홍수"는 "마불"로서 노아의 "홍수"에만 적용된다. 이 단어는 "멸망"을 가리키는 앗수르어와 관계가 있으며 이것은 "엄청난 양의 물들의 재앙"으로 번역할 수 있다. "마불"이란 단어는 이곳 외에 시편 29장 10절에 단 한번 기록되었는데 여기서도 노아의 대홍수를 가르키고 있다. 신약에서는 "카타클로스머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므로서 일반 홍수와 구별을 하였다.

 

본문에서 이 홍수를 통하여 이 땅의 인간뿐이 아니라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천하의 모든 육체"를 멸하였다고 기록함으로서 동물들도 인간처럼 생명의 "기식"(Breath,"루아크")즉 "영"이 있음을 다시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천하"라는 단어는 생물들에게 있음으로 물 속의 생물들은 멸절되지 않았음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기록을 부인하는 사람들"

노아 홍수는 11-12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깊음의 샘"이 터지고 "하늘의 창"이 열림으로 지각의 대 균열과 함께 40일 동안 지속되었는데 창세 이후 이러한 홍수는 지구상에서 한번도 없었다.

 

나는 성경의 기록을 떠나 이 땅의 창조의 역사를 증명해 보려는 사람들처럼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다고 한다. 이런 증명은 자기가 하나님 보다 위대한 사람임부터 증명을 한 후에 자신들의 학설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 어느 민족 설화 속에는 온 땅을 덮은 홍수의 사건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전 세계적으로 홍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지각의 변동에 대하여도 진화론자들의 균일설 보다는 대홍수로 인한 지각의 변동이 더 과학적인 신빙성을 제공하며 지층의 형성과 구조를 설명하는 것도 대홍수 사건으로 설명하는 것이 진화론보다 훨씬 강한 과학적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아마 홍수 전 지각의 변동이 없었을 당시의 산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수만 미터에 이르는 산들이 아니라 오늘날의 언덕과 같은 밋밋한 정도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과 같은 교통 수단이 없었던 그들이 온 땅에 가득할 정도의 인구밀도를(1.370억) 가질 수 있는 것은 그 만큼 인간이 살만한 땅이 존재하였음을 설명한다.

또한 지질학적으로도 거대한 안데스 산맥이나 히말라야 산맥들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음이 제시되고 있다. (참조: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의 "격동속의 지구"-Earth in Upheaval)

 

"인간은 재난을 예견할 수 있는가?"

왜 그 당시 사람들은 임박한 멸망에 대하여 예감을 느낄 수 없었는가? 우리는 앞에서 앞으로 다가 올 재난을 감지하고 이 땅의 모든 짐승들이 노아의 방주 앞에 나아 왔음을 보았다.

새에서부터 가축 그리고 짐승과 기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물들은 그러한 재난에 대한 감지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생물을 다스릴 권세를 가졌던 인간들은 왜 그러한 것을 갖지 못하였을까?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내어 보내실 때 이러한 감지 능력을 제한해 버리신 것일까?

불가(佛家)에서는 무 상심(無常心)이란 말이 있다.

 

또 인도의 요가는 초월명상을 통하여 신의 경지에 돌입한다고 한다. 이들은 인간이 마음을 비워야 태초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들의 연구가 일월성신을 섬기는 어리석음에 기초를 두고 있지마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데는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가진 인간에게 앞으로 다가 올 재난을 감지할 수 없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하나님을 감사하고 영화롭게 해야 할 인간들의 생각이 허망하고 우준하게 되어 썩어 없어질 피조물을 경배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더러움 속에 내어버려 두심으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깨달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롬1:18-24)

 

"인간이 알고자 하는 일들"

최근 기독교계를 혼란스럽게 하는 풍조는 거짓 예언에 대한 부분이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삶이 고통스러워질수록 성경에 기록한 예언을 살피고 연구할 생각은 하지 않고 코앞의 먹고 사는 일들만 알고자 하는 인간의 심리는 목회자들 사이에까지 번지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 심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상 미아리에 줄지어 있는 점쟁이 상가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야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그렇다치고 최근 각 교회에는 예언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21세기의 지식을 무색할 정도로 우매한 짓들을 서슴치 않고 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된 예언의 은사는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을 이끌어 가는 하나님의 나라의 계획은 이미 성경에 완성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이 완성된 시대를 살고 있다. 즉 정해진 궤도 위를 달리는 전차를 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그 날"

성경은 종말을 향해 달리는 우리에게 분명한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아마 대홍수를 예언하던 노아의 시대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죽어서 천당을 가는 일을 믿으면서도 삶 가운데 일어날 교회의 휴거와 대환난에 대하여는 무관심이다. 아마 노아 시대의 사람들도 지금과 같았으리라.

 

이에 대하여 베드로는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며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2:3-5)고 경고하고 있다.

 

지금도 성경은 종말에 살고 있는 우리를 향하여 "깨어 있으라" 경고하고 있다. 이 말은 그 일에 대하여 알고 있으라는 말씀이다. 나는 오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하나님께서 성경의 기록한 그 말씀을 깨닫고 있으며 그 경고의 예비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