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 6장-2) 옥에 갇혀버린 타락한 영들

이요나 2007. 2. 21. 14:14

(창세기 6장-2) 옥에 갇혀버린 타락한 영들

 

타락한 천사에 대한 글을 올리면서 많은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은 영적세계의 문제들이어서 이해를 돕기 위하여 현대사회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았던 일들을 소개할까 합니다.

 

추후 창조 이야기가 끝나는 대로 마가복음을 다룰 예정입니다만 이 부분은 복음서에 귀신들린 자들이 현실 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에는 두 세계가 공존하고 있음을 명심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물질세계이고 또 하나는 영적세계라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과 일반 피조물의 삶의 현장을 물질세계라고 할 때 영적세계는 영적인 것을 감지할 수 있도록 지음을 받은 천사를 포함한 인간들의 영역 속에 있는 있는 세계인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어 사단의 지배권 속에서 살게 되었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하여 이 두 세계 주권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으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므로 이 세상에는 사단의 역사로 많은 영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에 각별히 주의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주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심으로 이러한 문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음모"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지라" 이것은 한마디로 비정상적인 관계를 의미하는 내용이다. 창세기 2장에서 우리는 최초의 인간 아담을 창조하시며 하와를 지으신 후 아담에게 이끌어 온 하와를 보았다.

 

아담은 자기 앞에 있는 배필을 보고 "내 살 중에 살이요 뼈 중의 뼈"라 하였다. 또한 그는 남자(수컷)에서 취하였으니 여자(암컷)라 칭하였고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떠나서 한 몸을 이루라 명령하셨다.

 

이것이 부부의 시작이고 가정의 출발이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은 그러한 개념이 아니라 여자의 아름다움에 이끌리어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주신 가정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들의 육적인 충동에 의하여 여자를 취한 것이다. 더군다나 "모든 자"라는 어휘로 보아 이들은 일부일처가 아님이 분명하다.

 

진짜성령은사 가짜성령은사 검증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늘 받는 질문이 있다. 그것은 크리스천 속에 역사하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다. 당사자들을 내가 직접 만나 본 것이 아니라서 꼭 어떻게 단정지을 수는 없었지만 그 문제에 대한 상담자들은 성경의 말씀들을 살펴가면서 좀더 신중히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귀신들은 어느 집단들의 입버릇처럼 "더러운 귀신들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묶음 놓고 나가거라" 외쳐서 될 일들이 아니다. 이 귀신들은 타락한 영적 존재들로서 오직 하나님의 성령이 아니면 안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는 것이며 너희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깊게 살펴보면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확실한 답변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다만 그들 속에 역사하는 더러운 영적 존재들을 누가 쫓아 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열쇠일 뿐이다.

 

"믿는자 속에서 나타나는 귀신들"

지난번 세미나에 어느 여전도사님께서 질문한 내용이다.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한 자매에 관한 일로서 그 자매는 모태 신앙으로 가족들과 함께 어려서부터 믿음생활을 착실히 하며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매에게 때때로 나타나는 더러운 귀신의 역사는 주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얌전하고 착실한 자매가 때때로 음행에 사로잡혀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생각할 때 도저히 이해가 않되는 일이겠지만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오랜 세월 내 자신이 그러한 상태를 겪어 왔기 때문이다.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 중에는 이 요나에 대하여 아는 분들도 계시리라 믿는다. 여러 책자들을 통하여 나의 이야기들이 소개되었었기 때문이다, 결코 자랑할 수 없는 나의 이야기는 언제 적당한 기회에 다시 말하기로 하고 내가 오늘 말 할 수 있는 것은 악하고 더러운 귀신이 우리 안에 어떻게 역사 하는가에 대하여 잠깐 거론할까 한다. 마가복음 5장에는 군대 귀신들린 자가 나온다.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께서는 이 귀신들린 자가 자기 앞에 나타나기 전에 벌써 귀신을 나오라고 하셨었다.(막5:8) 그런데도 이 사람은 예수를 보고 달려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고 소리치고 있다. 이 귀신은 얼마나 지독한지 예수님이 이미 나오라고 명령하였는데도 나오지 않고 발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귀신들은 하나님께 맹세하고 자신을 괴롭게 하지 말라고 애걸을 하고 있다.

 

"성경에서 배울 영적개념들"

예수께서는 그 귀신들의 이름을 물어 보셨다. 그는 자기의 이름을 "레기온"(군대)라고 하며 그곳에서 내어 보내지 말기를 간청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세상에는 집단적으로 역사하고 있는 귀신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2천 마리의 돼지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귀신들이 그 지역에서 떠나지 말게 해달라는 말속에는 특정한 귀신들이 좋아하는 장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귀신들이 어떠한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일들을 현실 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즉 술집이 범람하는 유흥가 그리고 창녀촌, 또한 마약을 하는 사람들은 늘 그들의 집단들과 함께 하고 있다. 한 때 나는 도박하는 사람들에게 휘말린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나는 엄청난 돈을 탕진하며 내 마음 속에서는 극심한 탄식을 하면서도 그 사슬을 끊지 못하고 울부짖으며 끌려 다니던 경험이 있다.

 

하루저녁에 몇 천만 원을 잃으면서도 몇날며칠을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던 상한 심령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쌍한 생각이 든다. 세상의 육체 속에 역사하는 영들은 거의 다 모두 술과 담배와 도박과 음란을 탐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행하는 그러한 일들에 대하여 죄의식조차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예수를 영접한 후에도 과거의 온전치 못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채 귀신들에게 머리채를 잡힌 고통하는 심령들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온전한 구원을 위하여 성령 안에서 울부짖는 우리의 애절한 믿음의 의지가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요나의 영적전쟁"

나는 과거 이태원에서 십여 년 동안 클럽을 운영하였었다. 그때까지 나의 방종된 생활은 급기야 어머니의 죽음까지 초래하였다. 그때부터 시작된 영혼을 향한 나의 방황은 종교에 의하여 삶의 고뇌에서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세상살이 속에서 함께 방황하던 어느 여인을 통하여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는데 예수의 영접은 나의 의지로부터 먼저 시작된 것이 아니라 전지하신 하나님의 미리아심과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 여인을 만나는 현장에도 나는 마음의 평안을 위하여 염주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 술집에서 활동하던 가수로서 고통으로 이어진 3년동안의 일본 생활 속에서 예수를 영접하였고 귀국길에 내게 예수의 이름을 전하라는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따라 나에게 온 것이었다.

 

그녀의 전도에 나는 예수를 나의 구속주로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노력도 필요 없었다. 이미 내 마음 속에는 알 수 없는 힘으로 가득찼 있었고 나는 그 힘을 따라 예수를 믿겠노라는 고백을 했을뿐이다. 그 순간 체험하는 예수 그리스도 안의 평안과 기쁨은 오늘까지 한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탈출과 하나님의 계획"

그로부터 미치광이처럼 시작된 나의 믿음생활에 대하여 그 누구도 시비할 수 없다. 나는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였고 나의 영은 거듭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례교인으로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하는 명실공히 한 교회의 성도로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때때로 양심에 눌림을 받고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며 회개도 하였고 능력 있다는 목사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안수를 받았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구원받은 것과는 관계없이 내 생활 속에서는 악한 영들의 역사가 계속 역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나는 이것을 양신 역사를 믿는 어떤 사람들처럼 내 안에서 하나님의 영과 귀신의 영이 함께 역사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지금도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사랑하였고 주께서 나를 구속하신 것과 내가 구원받은 것을 믿었으며 주를 알고자 하는 갈급한 내 심령 속에는 늘 주의 음성이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나의 믿음은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충만한 지식에 이르지 못한 채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감동과 정적인 믿음생활에 충동되고 있었다. 또 다시 종교의 늪에 빠진 나의 믿음은 나를 모태로부터 구속 인도하신 주의 예정하심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내 심령이 모든 것을 깨달을 그의 때까지 사단에게 시험을 당하고 있었다. 말씀으로 양육되지 못한 채 무지몽매했던 나의 믿음은 육체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였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군대 귀신이 예수께 말한 것처럼 "이 지방에서 떠나지 말게 해달라"는 청을 나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당시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복음은 필요하며 나는 그러한 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다는 아전인수격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니 그 당시의 나의 믿음 생활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지 못하는 무지 몽매한 마음에서 솟아난 종교활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바울이 로마교회에 말한 것처럼 내게는 의로운 생활을 이루지 못하는 믿음의 소문만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군대 귀신의 메시지"

군대 귀신의 사건은 우리에게 커다란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더러운 귀신들은 때때로 집단으로 역사하며 그 환경을 지배하며 또한 그 귀신들린 사람이 그 귀신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사가 있는 한 그 귀신은 그에게서 역사 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예수를 자신의 의지로 영접하여 나의 영은 구원받았지만 내 의지 속에 아직 그 더러움을 즐기려는 마음으로 하여 의로운 생활을 이루지 못하고 늘 죄를 범하며 성령으로 탄식하게 한 것이다. 이런 사람에 대한 것은 결국 그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의 날까지 그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보전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 수천 명의 미국 갈보리채플 사역자들이 히피의 생활을 청산하고 위대한 추수군들이 되어 복음을 전하고 있듯이 은혜로 구원받은 심령들이 굳은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그 악한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주께는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귀신을 쫓는 것이면 그에게 하늘나라가 임하였다"고 하셨다. 그러기 위하여는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친히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의 나타나심을 체험하는 길뿐이다.

 

아직도 더러운 영들은 하나님의 예정하심 속에 있는 많은 영혼들을 세상의 더러움으로 사로잡아 그들의 믿음의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 드려지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 사슬을 풀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하심 가운데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택하신 사람들을 악한 영으로부터 친히 그 사슬을 풀으실 날이 있음을 굳게 믿고 고대하며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 땅의 사단 추종자들이 사단을 숭배하는 의식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데 미국에는 사단교회까지 등장하여 사단의 숭배를 위한 마녀들의 주술과 마술들이 횡행되고 있으며 매년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이 원인 모르게 행방불명되어 이들에 의하여 종교적 제물로 희생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을 통하여 어린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데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내용이다. 우리는 현대 문명 속에서 이러한 이기(利器)를 통하여 세상을 편리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사단은 우리가 접하는 모든 매개체를 통하여 음란한 모습으로 우리의 아이들을 육체를 사로잡기에 혈안이다. 이를 위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단의 음모를 차단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어린 아이들의 쉽게 접하는 음악 또는 컴퓨터 게임 영화 등을 보지 말라고 권장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 크리스챤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매개체들로서 우리의 아이들의 정신문화를 충족시키도록 연구하고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 시대를 따라서 발전하고 변모하는 세상의 흐름을 직관하고 먼저 앞선 지혜를 가지고 만들어낸 음악과 춤과 영화와 컴퓨터 게임으로 우리 아이들을 세상의 문화와 예술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