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5장-4)777년의 인생 속에서도 소망한 삶의 평안!

이요나 2007. 2. 21. 14:22

(창세기5장-4)777년의 인생 속에서도 소망한 삶의 평안!

 

(창세기5:28-32) 므두셀라는 일백 팔십 칠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 팔십 이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라멕은 일백 팔십 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심으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이 노아를 낳은 후 오백 구십 오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칠백 칠십 칠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노아가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에녹과 노아의 메시지

오늘 우리는 본문 속에서 홍수이전의 족장들과 즉 이 땅의 대 이변의 시대를 사이에 두고 두 시대를 경험하는 족장을 만난다. 에녹이 이 땅에서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옮겨갔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은 노아 방주를 타고 대 이변을 겪고 살아남는 족장들이다.

 

에녹의 들림과 노아의 방주는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설계도를 미리 보여 주는 것과도 같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바꾸어 말하면은 에녹의 사건은 주님이 오시기 전 이 땅에서의 교회의 들림으로 볼 수 있으며 노아의 방주는 대환난을 통과하는 유대인을 포함한 이 땅의 종족들을 가리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으로 10장에서 배우겠지만 노아의 아들은 홍수 이후 이 땅의 살아있는 종족들의 조상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인들 모두는 노아의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들인 것이다.

 

*정복자의 필요성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정복자"라는 이름을 가진 가인의 후예 중 가장 유력자와 동명이인이다. 하나님의 앞을 떠난 가인의 후손 라멕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간의 프로젝트를 통하여 지상낙원을 설립하려는 가인의 비전을 실현시키기 위한 또 다른 토대를 구축한 인물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운 인간 기본조직의 틀을 깨버리고 두 아내를 취하였고 자신의 죄과를 채찍질하며 양심을 괴롭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죽였으며 또한 가인의 생명을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변역하여 가르치는 반역의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이 땅을 정복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묘한 의미의 하나님의 완전숫자 칠백 칠십 칠 세의 살았는데 라멕의 아버지 므두셀라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 속에서 최고 장수 인물로서 아들 라멕 보다도 5살을 더 살았다. 물론 에녹의 아버지 야렛도 에녹 보다 435년을 더 살았다.

 

*노아의 이름 속의 메시지

이 땅의 두 시대를 공존하는 노아와 그 아들 특히 노아의 이름에는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특별한 의미가 있다. 그 이름 속에서 그의 아버지 라멕(정복자)이 얼마나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힘들고 험한 삶을 살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자기의 죽음과 함께 이 땅의 멸망의 예언을 받은 라멕의 아버지 므두셀라는 이 땅에서의 마지막 사람답게 자기의 자식을 통하여 정복자로서 꿈을 실현시키고자 힘썼을 것이다. 라멕이 자기 아버지보다 5살 먼저 생을 마감한 것을 보아 라멕의 육체적인 노고를 배제할 수 없다.

 

우리는 노아의 이름 속에서 저주받은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를 맛 볼 수 있다. 삶의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삶 속에서의 안위함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복음의 시대를 바라보면서 "너희는 내 백성을 위로하라 복역의 때가 끝났고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고 외쳤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그의 은혜로 우리의 죄의 사함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의 영혼과 육은 온전한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오심만을 고대하고 있다. 물질 문명이 최고로 발달된 현대를 살아가면서도 인간의 삶은 더욱 각박해지고 전 세계의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먹고 살아가는 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대형 슈퍼마켓마다 먹을 것이 쌓여 있어 정말로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이 지구에는 기아로 죽어 가는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연일 매스컴을 떠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눈에 보여지는 풍성한 물질들은 한낱 그림의 떡처럼 보여지고 이 땅은 인간의 노고와 고역으로 신음하고 있다. 이 땅의 종말을 예고받은 죽음 앞에 서서 하나님의 안위를 바라보던 라멕시대의 사람들처럼 곧 다가올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땅의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의 안위하심을 고대하고 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 땅의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아나니 또한 우라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8:22,23)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의 가르침을 상기해 보자. "그 때의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된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