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5장-3) 구름을 타고 올라가고 싶지 않단 말이지?

이요나 2007. 2. 21. 14:24

(창세기5장-3) 구름을 타고 올라가고 싶지 않단 말이지?

 

(창세기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바울이 강조한 4가지

우리는 본문에서 중요한 인물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우리는 이 인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세밀히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교회 성도들이 꼭 알아야할 네 가지 중요한 일들을 역설하였다.(*우리도 이방교회에 속한다) 그 하나는 "이스라엘 역사"를 아는 일이고(고전10:1) 또 하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것이며(롬11:25) 세 번째는 "신령한 하나님의 은사"에 관한 것이며(고전12:1) 그리고 네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대환난"에 관한 일(살전4:13)이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에녹의 삶은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성취한 사람으로서 주의 재림을 고대하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먼저 그는 하나님이 계획하신 역사 속의 사람이며 믿음으로 사는 이스라엘의 조상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정확히 예언한 신령한 은사를 체험한 사람으로 대 홍수 이전에 하늘로 올리워진 사람이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에녹"은 하나님 앞을 떠난 가인의 아들과 같은 이름을 가진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다. 또한 노아의 아버지 "라멕"도 가인의 계보의 핵심적 역할을 했음을 생각할 때 이들은 거의 비슷한 지역에 살면서 언어와 문화를 서로 공유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지금시대와 같이 하나님 앞에 사느냐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고 있느냐가 다를 뿐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도 지적하셨듯이 그 시대에도 세상의 자녀들이 빛의 아들들 보다 세상을 사는 지혜에 더 앞섰는가 보다.

 

*다시 이어지는 족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선 아담에게 아벨 대신 주신 셋(*기름부음)을 통하여 에노스로 이어진 아담의 족보는 연약한 삶 (*에노스의 이름의 뜻)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이름에 의지하며 믿음을 굳건히 하였고 (*게난-대장장이) 하나님을 더욱 찬양 (*마할랄렐)하며 절망 가운데서도(*야렛) 다시 가르침을 시작하는 에녹의 모습으로 태어난다.

 

주님이 오시기 전 대환난의 예언의 말씀을 받은 종말을 사는 우리는 에녹의 휴거에 대하여 예의 주시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노아의 홍수 이전에 들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예언대로 그가 죽은 후 669년 후 즉 그의 아들 므두셀라가 죽을 때 대홍수의 심판이 임했던 것이다. 또한 같은 성령에 의하여 기록된 성경은 우리에게 에녹이 장차 주께서 거느리신 수많은 거룩한 자들과 함께 올 것(유14)를 예언하고 있다.

 

*메시야가 오기까지

또한 그는 주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오기 전에 이 땅에 다시 와서 복음의 증인으로 활동할 것을 암시되어 있다. 계시록에는 주의 재림 앞에 보내실 두 감람나무가 이 땅에 와서 1260일을 예언하고 죽임을 당한 후 부활 승천할 두 증인을 소개하고 있다.(계11:3절 이후)

 

이 중의 한 사람은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바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엘리야(말4:5,6)이며 또 한 사람은 에녹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죽음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 뿐으로서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고 예언되었기 때문이다. 주께서 오시기 전에 에녹이 다시 와서 아직 주를 영접치 않은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르칠 것이다.

 

우리는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라는 말씀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는 말은 참으로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이 되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 팔십을 놓고 볼 때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하나님과 동행하고 사는 것일까? 우리는 단 하루는커녕 한 시간도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이름이 에녹(교수, 시작)인 것을 감안할 때 그가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다는 말씀은 그의 삶 자체가 자녀들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동행의 의미

여기서 "동행"이라는 말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아담의 입장하고는 다를 것이다. 에덴의 아담은 죄가 없었던 때로서 그의 삶의 호홉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동행이었을 것이고 에녹은 인간의 몸과 마음 안에 죄가 잉태된 삶 속에서 믿음으로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성경은 그의 믿음에 대하여 "에녹은 믿음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히11:5)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부터 2500년 후의 이스라엘 사람 엘리야가 다시 죽음으로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하게 되는데(왕하2:11) 주의 재림 전에 올 "두 증인"은 구약의 선지자 스가랴가 예언한 "여호와 앞에 선 두 기름발리운 자들"일 것이며, 예수님 부활 승천 시 "곁에 있던 두 사람"(눅24:4, 행1:10)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요한은 그들을 "천사"로 지칭하였는데(요20:12) "천사"는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신 자로서(히1:14) 하나님의 "사자"를 가리키며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칭할 때에도 사용되고 있다.(계2:1 마13:39, 갈3:19)

 

성경은 종말을 사는 우리에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예언하심으로 주의 오심을 고대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