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5장-2) 시방 나보고 팔백년을 살라면 욕이다

이요나 2007. 2. 21. 14:26

(창세기5장-2) 시방 나보고 팔백년을 살라면 욕이다

 

(창세기5:6-20)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 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를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팔백 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은 백 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인간의 죽음과 메시야

우리가 앞에서 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을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 셋을 낳고 팔백 년을 살며 자녀들을 낳고 구백삼십 세에 죽은 아담을 보았다. 이 내용는 지금까지 연구하는 창세기 속에서 인간들이 가장 이해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자녀를 낳고 죽었다"라는 말은 모든 인간들에게 공감을 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이 오시기 심히 가까운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주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심과 또한 우리가 그와 함께 지낼 이 땅에서의 천년왕국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역사가 극도로 발전된 문명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인간의 지식을 초월한 신화의 범주에 속한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자기 제자들에게 절대적 믿음을 요구하시며 여러 번에 걸쳐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과 재림에 대해서 자세히 가르치신 이유도(마가복음9장 참조)

 

그 당시 모든 유대인들이 가졌던 잘못된 메시야관을 패러다임 시키기 위해서이다.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오기전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고 다윗의 자손 메시야가 예루살렘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지도자들이 메시야를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메시야에 대한 바른 지식

만약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메시야에 대한 바른 지식을 접하지 못하였다면 어떠했을까? 만약 우리가 구구단을 모르면서 수학문제를 풀려고 하려는 것과도 같고 글을 모르면서 일기를 쓰려는 것과 같을 것이다. 정확한 지식은 현실을 바로 보게 한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성경을 토대로 메시야관을 가르치신 것도 그들 앞에 다가 올 현실을 직시하게 위한 것이다.성경은 현실을 살아가던 과거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미래를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겪어야 할 일들을 하나님께서 기록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그 기록된 문서 즉 성경의 문법적 이해와 그리고 그들이 살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노력만으로 그 시대를 함께 살지 않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한계 속의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간의 세계 속에 표현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기름부음이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알게 하는 것이다.

 

*현대교회의 문제점

그러므로 최근 교회사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은 먼저 성경 지식의 부족함 속에서 인간의 생각으로 신적인 요소를 충족 시켜 보려는 인간의 무지의 소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종말을 향하여 달려가는 현대인들은 성경을 통하여 완성된 그리스도의 지혜와 지식을 터득하고 현실을 직시하는 믿음생활을 통한 영적 훈련으로 곧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여야 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하는 우리에게 있어 메시야를 고대하는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신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예비하라"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이 시대에 다시 조명해 보아야 할 중대한 의미의 메시지이다. 그만큼 영적 혼란 속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성경 적 지식의 토대와 경험이 필요하다.

 

본문 속에서 우리는 최소한 육백 년 이상의 삶을 사는 인간의 조상을 보게 된다. 최근과 같이 인생살이가 심각한 시대에는 오래 산다는 것은 오히려 욕이 된다. 인간이 만약 이처럼 고통의 굴레 속에서 수백 년을 살아야 한다면 이것은 인간의 영광이 아니고 수치이다. 생노병사의 고통의 수레를 걸머지고 생명의 위협과 시기와 질투와 분노 속에서 땀 흘리며 먹고사는 투쟁을 하며 수백 년을 살아야 한다면 인간은 이 지구상에 숨쉬는 모든 생물들 중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이다.

 

*불순종의 결과

아담의 불순종으로 시작된 이 땅의 저주는 종말을 향하여 서서히 불타고 있다. 쇠붙이들이 녹이 스는 것은 서서히 타고 있다는 증거이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에 대하여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실 먼저 계신 그는 성령과 불로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라"증거 하였다. 또한 주께서도 하나님 나라가 도래되면서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말씀하셨다.(막9장)

 

이와 같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이 땅에는 사망이 주관하게 되어 위대한 창조자의 형상이요 모양이며 하나님의 영광인 사람은 그 얼굴의 빛을 잃고 죄의 속성 속에서 사망을 기다리며 진리와 자유를 잃어버린 인간으로서 그 굴레에서 능히 자유케 할 전능자이신 우리의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기를 기다리며 살아야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선 아담과 그의 후손은 아직도 하나님 앞의 예배자임을 기억해 두자.

 

<족장들의 이름의 뜻>

아담               "사람"

                 "기름부음 받은자"

에노스             "숙명적인 연약성"

게난               "대장장이"

마할랄렐           "하나님이 찬양 받음"

야렛               "하강(下降)"

에녹               "시작/교수"

므두셀라           "그가 죽을 때 심판"

라멕               "정복자"

노아               "안식"

 

<역자주> 공백설을 무시할 때, 창조에서부터 홍수까지는 1656년의 계산이 나오며 아담은 노아의 부친 라멕이 56~100살까지 살았을 것이며 노아는 셋이 죽은 지 14년 후에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