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해/창세기 강해

(창세기4장-7)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요나 2007. 2. 21. 14:30

(창세기4장-7) 너 하나님의 사람아!

 

(창세기4:25,26)아담이 다시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구원의 메시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이루리라"고 선포하신 시대에 사는 사람들은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이다. 며칠 전 우연하게 연결되어 맡게된 논 크리스천, 그것도 자신들을 이반이라 부르는 그룹(일반-이성애자/이반-동성애자)의 일본어 회화 첫 시간이었다.

 

과거 어둠의 세계 속에서 그와 같은 인생을 경영하던 나에게는 동상이몽의 시간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었더니 지금은 빛의 자녀라"하신 주의 말씀이 와 닿는 내 가슴에서는 눈물과 기쁨이 교차되고 있었다. 만약에 주께서 나를 부르지 않으셨다면 아직도 죽음의 세계에서 오늘을 살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는 만감(萬感)의 순간이었다.

 

먼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축복하심을 믿는 나는 목사가 아닌 일본어 회화 선생으로서 교제가 시작되었다. 인간의 불협화음은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 즉 "나는 저와 다르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된다. 또 상대를 인정하며, 수용하며, 자신을 이해하고 안다고 할 때 둘 사이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신뢰하게 된다.

 

일본인의 속성을 설명하며 2시간 동안 웃고 떠드는 가운데 우리의 교제는 자연스럽게 융화되었다. 꽃다운 청춘을 험한 세월 속에서 방탕하던 내가 어느덧 이들의 아버지의 나이에 와 있음을 깨달으며 만약 이들이 내 아들이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잠겼다.

 

*다시 거론되는 아담의 이름

오늘의 본문에는 그동안 나타나지 않고 있던 하나님의 첫 사람 아담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유가 어떻든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첫 사람이다. 즉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 생육함과 번성함과 충만함과 그리고 땅의 정복과 생물의 다스림의 복을 주신 "사람"(아담)인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동산 에덴을 다스리고 지키게 했던 "사람"인 것이다.

 

"다시"라는 말은 절망에 빠진 우리로 늘 소망을 주는 단어이다. 이 말은 우리가 실패하여 좌절하고 괴로워할 때, 우리 마음 가운데로 다가와 용기와 희망을 준다. 에덴에서 추방된 이들은 자신들이 낳은 아들들로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 사단에게 빼앗긴 권세를 다시 찾으려 했던 이들의 계획은 큰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임으로서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져 버렸다.

 

자신들의 꿈을 이루어 줄 아들이라 생각하였던 첫 아들 가인은 하나님의 생명을 죽임으로서 하나님 앞에 서지 못할 죄인이 되어 겨우 목숨을 위한 표를 받아든 채 또 다른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가 버렸고 아담과 하와는 깊은 좌절과 절망으로 빠져들었다.

 

*시작과 끝

인간은 언제나 끝에서 다른 시작을 만나게 된다. 밤이 지나야 아침이 오는 것이다. 이것이 세상 속에 두신 하나님의 법칙이며 은혜이다. 주께서는 "나는 시작과 끝이요 알파요 오메가"라 하셨으며 또한 "내가 너를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른다"하셨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시작할 마음이 있느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계획을 실현하려 했던 인간의 노력이 하나님의 고귀한 생명을 살인하는 엄청난 사건으로 번져버린 죄의 속성 속에서 죽음에 이르는 뼈저린 아픔과 고통을 체험한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불순종의 결과를 통감하며 하나님 앞에서 "다시" 시작한다. 이들의 시작은 "하나님의 하신 말씀" 앞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 앞에 다시 나아가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절망 속에 빠진 후에야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다. 스펄전 목사는 그의 회고록에서 밤을 세우며 눈물의 빵을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말하지 말라고 역설하였다.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깊은 절망의 구덩이에서 "다시"만난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다시 음미하는 말씀

이들이 다시 상고해 보는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의 씨"(seed)였다. 즉 여자의 후손(seed=히브리어Zera=단수집합명사)이란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깨우침이었다. 왜 아담의 후손이라고 하지 아니하시고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셨는가? 이들이 깨닫게 된 "여자"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아다마) 즉 "남자와 여자"를 의미하신 것이다.

 

즉 범죄 후 아담의 휘하로 들어 간 여자 즉 하와를 지칭한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비록 인간의 범죄로 죄가 몸 안에 들어 왔으나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돌아 갈 때, 우리 안에는 또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탄생되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과 하와가 인간의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동침=히브리어 야다=알다)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 다른 "씨"(후손=seed) 즉 "셋"(대신 세움, 보상)을 주신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씨"를 낳을 여자에게 주셨지만 하나님 나라의 권위의 질서가 남자에게 있음을 깨달은 이들은 가인이 하와에 의하여 호칭되었었음과는 달리 아벨 대신 다시 주신 아들은 아담에 의하여 "셋"이라고 호칭된다. 이로부터 "셋"도 아들을 낳고 "에노스"(*역자주 참조)라 이름하여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회성의 호칭 "남자"(man)의 시대가 시작된다.

 

그러므로 성경은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하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범죄로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단절되고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는 추방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