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장-5) 또 다른 공간을 찾아라
*잃어버린 마음의 공간
사람이 과중한 일로 쫓기게 되면 마음의 공간을 잃어버리게 된다. 최근 월요강좌 준비와 분당채플 개척 관계로 마음이 바빠지면서 다른 관계에 소홀해 짐을 느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중심적이다. 생각이던지 일이든지 다른 사람의 편에 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이 중심이 되어서 나의 주장이 다른 사람에게 인정 내지 설득이 되기를 원한다. 이로 하여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몸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에는 짐짓 자신이 없어지는 것이 인간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의 생각들 가운데서 생성되는 것인데 우리를 사로잡는 이러한 생각들이 생성되는 곳과 거처하는 곳은 어디일까?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실 때 자신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과 같은 부분이 우리 안에 생성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성과 감성과 의지 속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시고 행하신다. 이러한 품성이 우리에게도 공유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담이 잃어버린 낙원을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다시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래서 인간은 감성과 지성과 의지를 따라서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행함으로서 일에 성공을 하기고도 하고 실패의 잔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생각하는 공간도 하나님께서 "공간" 즉 궁창을 만들지 않으셨다면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늘이라는 총체적 공간 속에 보좌권과 우주권과 대기권이 있듯이 우리 안에도 "하나님의 공간" 과 "마음의 공간" 그리고 "육체의 공간"이 있을 것이다.
*공간을 만드심
재미있는 생각을 한번 해 보자 지금 이 지구상에 있는 바다의 물의 양과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우리가 사용하는 도량형 단위로 측량이 가능할 것인가? 불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이 많은 물을 둘로 나누어서 궁창 위의 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다. 그 힘에 대한 우리의 생각 역시 불가능이다. 그 많은 물의 압력 속에 있었던 땅, 그 깊음의 흑암과 가중된 힘은 성경에 기록한 혼란과 공허를 가히 짐작하게 한다.
"궁창"이란 히브리어로 "리키아"로서 확장(expense) 또는 엷게 퍼짐(spread-out-thiness)을 말한다. 이것을 현대어로 표현한다면 "공간"(space)라 할 수 있다. 이 말은 다시 설명하면 "궁창"과 "하늘"과 "공간"은 동일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해를 위한 언어의 표현은 그 범위를 분류하여 표현 할 수 있는데 대기권(렘4:25)과 우주권(사13:10)과 보좌권(히9:24)를 통털어 하늘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또 우리가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나눈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빛을 창조하신 후 빛과 어둠을 나누셨고 이제 궁창을 만드신 후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을 나누셨다.
또 앞으로 우리가 배워 나갈 것이지만 넷째 날에 궁창에 광명체들을 두시고 빛과 어둠을 나누신다.
이 나눔의 의미를 생각할 때 만약 우리 머리 속에 생각들을 나눌 수 없다면 어떨까?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 그리고 악한 생각과 선한 생각이 머리 안에 함께 덩어리져 있다면 우리는 하루도 살아갈 수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세상과 나누셨다. 창조 사역에 이 나눔이 없으셨으면 이 땅 안에서의 우리의 생활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두개의 공간
이 지구는 두 개로 공존하고 있다고 한다. 즉 두 개의 다른 분자 구조로 구성된 지구가 동일시간 동일 장소를 공유한 체로 서로 교류하면서 공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의 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 바울 사도가 이끌려 갔던 3층 천 하늘은 이 지구에서 매우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물리학에서 배운 바로는 물질 속에는 그 물질을 구성한 고체 자체보다도 훨씬 많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수소분자의 경우수소 원자핵의 양자를 부풀려 농구공 크기로 한다면 작은 입자인 핵 위주를
회전하는 전자는 약 5.000km의 거리에 놓이게 된다. 즉 수소 원자는 많은 공간이 있다는 결과가 된다. 만약 우리 몸 속의 모든 원자를 양자 덩어리로 축소한다면(몸을 구성하는 원자 내의 공간이 없어진 상태) 모든 전자는 양자와 결합하게 되어 우리 몸을 보는데는 현미경을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비중(density)이 설정된다.
이로서 우리는 우주공간에 태양이나 태양계 안의 어떤 횡성보다도 커다란 많은 별들이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따라서 분자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느냐에 따라 셋째 하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휠씬 가까이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물질세계와 영적 세계가 서로 교차된 상태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의 인식으로는 가능한 것과 불가능이 있을 뿐일 것이다. 아마 성령의 세례를 체험한 사람이면 이러한 것에 대한 설명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지난번 창조이야기 4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나의 체험은 나로 이러한 학설들을 받아들이기에 충분한 믿음을 주고 있다.
*믿는자 안의 또 다른 공간
하나님께서 하늘 위에 매어 달아 놓으신 물과 궁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신비에 관한 것들을 한계 속의 인간의 머리 속에서 창출한 과학의 잣대로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에서 출발하여 하나님의 신에 의하여 증명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로서 지구는 온실과 같은 구조 속에 휩싸여 있었을 것이다. 동일한 온도가 유지되고 공기의 순환이 없었으므로 물의 순환이나 대기의 이동과 폭풍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아주 평온한 공간을 유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평안을 이러한 의미로 받아 드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새로운 "공간" 그 궁창은 지금도 믿는 자 안에서 역사 하시는 성령의 능력과 그의 말씀으로 이루어가고 있다."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 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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