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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4장) 14000명과 이스라엘의 승리

이요나 2007. 2. 24. 11:36

(계시록14:1-20) 14000명과 이스라엘의 승리

 

I. 구원의 새 노래(1-5)

A.     144000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1-3)

 

여기서 시온산이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좌정하신 곳을 의미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12:22-24)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시온산은 어느 특정한 장소로만 국한 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여기에 언급된 144000명은 설명할 것도 없이 7장에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인친 사람들로서 교회가 휴거(rapture)된 후 얼마 안되어 예수께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대인들이다. 이들은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 그리스도에게 속임을 당하여 적 그리스도와 동맹을 맺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반대를 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때 11장에 증거 된 두 증인도 함께 출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될 것이다.

 

144000명의 인침에 대하여 여호와의 증인들은 자신들을 말하는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그들이 그것을 증거하려면 먼저는 그들이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인 것을 증명해야 하고 또한 이들의 인침은 대환난 기간 중에 있을 것임으로 아직 교회 시대인 지금 인침을 받았다 말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어떻게 사람들 속에서 각 지파별로 1200명씩 144000명을 인치실 수 있느냐 의심을 하는 분도 있겠지만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며 그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창조자이시다. 이미 성경에는 하나님의 인치심에 대한 실례가 여러 차례 증거 되어 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을 들어 올리셨으며 에녹은 교회의 표본이다. 또한 의인 노아에게 방주를 짓게 하시고 그의 가족을 구원하셨으니 이들은 대환난 동안에 구원받을 유대인들의 모형이라 하겠다. 

 

1절 후미에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는 기록은 그 해석이 분분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아버지의 이름은 바로 여호와 이기 때문에 이 이름은 자신들 여호와의 증인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양의 이름에 대해서는 슬쩍 넘어가 버린다. 만약 이마에 쓴 이름이 여호와의 증인이라면 그들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한다.  또한 이들은 여호와라는 말의 뜻 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는 야훼의 영어식 신종어로서 야훼는 그 이름을 받은 유태인 조차도 감히 부르기 두려워 온전한 발음을 못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하신 제3계명을 어긴 형벌에 처해질 것이다.

 

2절에서 요한은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고 증거하였다. 이미 요한은 계시록 1 15절에서 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하였다.

 

흥미롭게도 14400명은 자기들만의 독자적인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론 새 노래는 계시록 5장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5장에서는 보좌 앞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거문고와 금대접에 가득한 향 곧 성도들의 기도를 들고 나아와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5:9-10)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5장에서의 새 노래는 오직 주 예수께서 피로 사신 교회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이다.

 

5장과 14장의 새 노래는 그 내용이 많이 흡사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5장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그룹과 14장에서 새 노래를 부르는 그룹은 시간상의 차이와 그들이 하늘에서 서 있는 위치상의 차이가 있다. 교회는 대환난을 보기 전에 에녹처럼 하늘로 올라가 면류관을 쓰고 네 생물과 함께 어린양을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고, 오늘 본문의 144000은 대환난 중에서 인침을 받아 구속을 받은 사람들로 그들은 보좌와 네 생물들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다. 아마 믿음을 지킨 당신과 나는 하늘 보좌 앞에서 주와 함께 그들의 재롱잔치를 보게 될 것이다.

 

B.     성결과 순종(4-5)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4-5)

 

요한은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먼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않았다는 것은 영적 간음을 의미한 것으로 이들은 세상을 이끌고 있는 종교에 물들지 않은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여 바벨론을 이끌고 있는 음녀에게 미혹되지 않은 사람들이다. 또한 여기서 정절이 있는 자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에 변절되지 않은 사람들을 뜻한다. 

 

두 번째로 요한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 속한 자들이라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적 믿음과 순종을 뜻한다. 또한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란 그들이 성령의 역사로 구속을 받아 복음에 순종한 믿음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계속하여 요한은 5절에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증거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지식에 충만하였음을 증명한다. 바울은 우리에게도 그리스도 앞에 너의 영과 혼이 점과 흠이 없게 되기를 기원하였다. 이 상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앞에 서 있을 때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 거룩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설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 그러나 유다는 우리에게 "주는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라" 소개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아버지 앞에 세우실 때 나는 흠이 없을 것이다. 주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불의를 십자가 위에서 모두 씻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흠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를 위해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께서 우리를 중보 하시고, 그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흠 없이 만들어 주실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을 가리켜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한다. 어쩌면 그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에는 위선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성경은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이 땅의 인간은 스스로 불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할 때 불의한 삯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인 것이다. 오직 어린 양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눈보다 희게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도 어린양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읽는 우리는 더 144,000명 보다 더 복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주로 영접하신다면 주님은 기쁨으로 죄를 사해 주시고 그의 성령으로 인치실 것이다. 144000명은 이마에 인을 치실 것이지만 지금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인을 치신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우리를 값으로 사신 구속의 증거인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믿는 자들에게 당신이 구원의 확신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종지목을 대며 머뭇거리는 성도들에게 준비된 성경 구절을 가지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미혹하고 있다. 나는 이들은 그들이 행한 일에 합당한 값을 치루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린 양의 피로 사시고 성령으로 인치신 거룩한 자녀들의 믿음을 욕되게 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는 이미 그의 성령이 들어 와 계신다. 지금 우리는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을 통하여 영생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참조 요17:3).

 

II. 세 천사의 예고(6-12)

A. 영원한 복음의 전파(6-7)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6)

 

십 사만 사천 명이 하늘의 도성 시온산에 이른 후 이제 이 땅은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에 앞서 심판이 예고 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어느 때이고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은 어느 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의 천사들을 보내어 복음을 전하셨다.

 

6절에는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을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기록되었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본 공중을 날아가는 천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쩌면 이것은 인공위성을 통해 전세계 가운데 전파되고 있는 복음의 공중전파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도들이 살던 1세기 시대에 영원한 복음 갖고 공중을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면 그는 무어라고 증거할 수 있었을까? 만약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늘날 인공위성이나 인터넷 시스템을 보았다면 무어라고 표현하였을까? 내가 어린시절에는 영화를 가리켜 활동사진이라 하였다. 그것은 사진이 발명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복음이 땅끝까지 이르면 주께서 오시겠다는 말씀을 오해하여 어서 속히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복음을 향한 그들의 숭고한 마음은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50억 인구 중 아직도 반 이상이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길거리 거리거리마다 복음의 물결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도 어두움 속에 사는 사람들아 더 많다. 오히려 복음의 부흥은 세상으로 핍박을 받을 때 사람들 가운데서 더욱 부흥되어 왔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생각하여야 할 것은 인간의 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복음은 최악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전파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의 지하교회를 방문한 일이 있었는데 그곳의 성도들은 너덜너덜한 성경책을 보물처럼 귀히 다루고 있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비참한 생활 가운데서도 영원한 복음을 듣기 위해 갈급하고 있었다. 오히려 나의 경우 복음이 풍만한 우리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절실히 느끼고 있다.

 

대환난의 시대에도 과연 복음전파의 매개체가 있을까?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적그리스도 체제에서 가장 금지될 것은 진리의 복음활동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들 속에서도 나름대로 열정적인 종교활동이 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의 토대는 바벨론을 지휘하는 음녀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도 북한과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종교활동은 있다. 다만 그들의 체제 속에서는 진리의 복음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때에 가장 중요한 복음의 매개체는 하늘을 나라는 천사일 것이다. 이것이 무엇인지 이 시대를 사는 여러분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하늘 공간을 향하여 진리의 복음을 날리고 있다. 그날에 누가 이것을 읽을 수 있다면 이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천사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대환난 때에는 성령이 교회와 함께 하늘로 올라간다. 그때 성령은 이방인에게서 떠나 유대인들에게 역사하게 된다. 그때는 바로 유대인을 구원하기 위해 남겨진 한 이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14장의 내용들은 대환난 기간동안의 유대인을 향한 복음의 역사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음녀와 적그리스도는 결코 진리의 복음을 용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두 증인이 순교를 당하고 또 인침을 받은 144000명의 증인들도 순교를 하게 된다. 144000명은 적그리스도와 맞서 복음의 전사들이 될 것이고 그들을 통해 쏘아 올린 복음의 진리는 인터넷이나 또 다른 공중파를 통하여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파 될 것이다.

 

그날이 되면 오늘날 우리가 아무리 복음을 외쳐도 귀를 기울이지 않던 유대인들의 마음이 열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후 오순절에 있었던 영적 부흥의 불꽃이 타오르게 될 것이다. 복음을 접한 사람들이 건물 지하나 토굴이나 산속에 숨어 인터넷이나 무선전파를 타고 흘러 나오는 진리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다.

 

천사들은 세상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7)외쳤다. 이 얼마나 긴박한 메시지인가? 사실 멸망의 환난은 이미 그들의 눈 앞에 바싹 다가와 있는 것이다. 이미 17절 이후에서 멸망의 전쟁 아마겟돈이 소개되고 있다.

 

오늘날 아직도 세상 사람들은 예수께서 창조자이심을 부인하여 그를 부처나 공자나 마호멧과 동일선상에 두려고 한다. 오늘날 크리스마스가 되면 절간의 스님들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아기 예수께서 오신 것을 축복한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또 목사나 신부들도 사월 초파일이 되면 이 땅에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오신 것을 축복한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서로가 성인으로 동등한 위치에 놓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의 창조자이심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메시지는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영적 지식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어서 두 번째 천사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8) 하고 심판의 시간이 임박하였음을 경고하였다. 이것은 이미 2000년 전 주께서 외치신 말씀이기도 하다. 이미 주님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15) 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의 복음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의 종들을 통하여 전달되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는 것은 그 책임이 본인에게 있는 것이다.

 

첫째 천사는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외쳤다. 이것은 피조물이 아닌 우주와 만물의 창조자를 경배하라는 메시지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와 그가 다스리는 과학적 체제에 감동되어 그것이 자신들의 삶을 주관하는 지배자라고 믿게 될 것이다. 사실 이러한 물질주의 바탕은 19세기에 일어났다. 산업혁명시대의 과학자들은 강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경제체제의 논리를 과학에도 적용하였고 찰스 다윈은 이 원리를 자연계에도 적용시킴으로 적자생존의 이론을 수립하였다. 후일 이 사고는 진화론의 중요한 교의로 발전하였다.

 

또한 20세기에 들어와 정보혁명의 시대가 되었다. 이 중추적인 역할은 컴퓨터가 맡고 있는데 21세에 들어서면서 생명공학과 함께 거대한 과학혁명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벌써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황우석 교수의 맞춤 줄기세포 조작 사건은 이미 전세계의 시선을 집중 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적그리스도를 우상으로 만드는 위대한 과학혁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적 시대를 대응할 영적변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영적변화에 대응하여 심리적 변화와 최신기술을 도입한 메커니즘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심리학적 상담과 전도를 위한 마케팅 전략의 모체가 된 것이다.


    B.
바벨론의 파멸을 예고(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 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노라"(14:8). 여기서 말하는 바벨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바벨론의 실체를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자세히 보게 된다.

 

잠시 거론하건 데 바벨론의 성경적 역사는 창세기 10장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함의 자손 니므롯은 그의 처 세미라미스와 함께 일월성신을 섬기며 사람들을 미혹하여 바벨탑을 쌓았다. 그 음녀의 물결은 세상의 문화와 역사를 타고 내려와 로마 콘스탄틴 황제 때 그리스도의 교회가 국교화 되면서 음녀의 역사는 교묘하게 교회 안에 종교활동의 매개체로 등장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오늘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문화가 모두 이로부터 출발한 것이라 생각할 때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것인지 알 수 있다. 이미 베드로 사도는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한다고 기록하였다.

 

C. 불과 유황의 심판을 예고(9-13)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14:9-11).

 

흥미로운 것은 첫째 천사, 둘째 천사, 셋째 천사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처럼 강조하듯 순위를 정하여 언급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는듯하다. 이 내용들은 대환난 동안에 이스라엘의 영적부흥을 위한 성령의 활동과 또한 임박한 멸망을 모두에게 경고하는 메시지이다. 만약 이 메시지를 받고도 회개하여 돌아 오지 않았다면 그 누구라도 더 이상 구원의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셋째 천사는 13장에서 언급된 적그리스도의 짐승표를 다시 언급하고 있다. 이 말은 다시 계시록 204절에서 언급된다. 그러므로 만약 이 메시지를 받고도 어린양의 구속에 동참하지 않으면 그는 결국 짐승표를 받게 될 것이고 적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 영영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흥미롭게도 천사는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11b)전하였다. 밤낮 쉼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이것은 영혼과 육체의 고난을 의미한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적그리스도의 체제 속에서 노예가 된다는 뜻이다. 쉬고 싶어도 쉬지 못하고 자기의 의사와 관계없이 체제의 씨스템 속에 노예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북한의 사람들을 보면 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12절에는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성도는 교회가 아니다. 137절과 같이 이스라엘의 구원받은 성도들을 뜻한다. 지금은 이방 교회시대가 아니라 유대인 교회시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천사는 이스라엘 성도들에게 세 천사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의지적 인내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천사는 예수 믿음을 지키기를 요구하였다. 이것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한 인내의 말씀과도 같은 것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하였다. 그러므로 천사는 대환난 속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예수 믿음으로 육체의 소욕과 세상을 향한 욕망을 벗어버리고 인내를 이루라는 말씀이다.

 

요한은 13절에서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기록하였다. 천사는 요한에게 기록하라 하였다. 이것은 꼭 전달되어야 할 메시지라는 뜻이다. 여기서 천사가 말한 자금 이후는 언제인가? 바로 첫째, 둘째, 셋째 메시지가 전달된 이후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의지적 인내로 예수믿음을 지켜 적그리스도로부터 순교를 당한 자들을 뜻한다. 그들에게 성령이 역사하고 있음을 우리는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으며 지켜 온 믿음의 수고가 이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쉬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의 모습을 계시록 20 4절에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III. 추수와 심판(13-20)

A. 알곡의 추수(14-16)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낮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 지니라"( 14:14-16).

 

여기서 요한은 환상 속에서 이 땅에 추수를 하러 오시는 그리스도를 보고 있다.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다만 아직 육체에 거한 요한으로서는 하늘 나라의 물질적 구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본대로 기록했을 것이다. 이 추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추수인 것이다. 70이레 가운데 그들을 위해 남겨진 한 이레에서 약속하신 영혼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이다. 이로서 이스라엘의 칠십 이레는 완성된다.

 

이 추수는 성경 역사 속에서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인간의 범죄 이후 하나님의 추수는 한번도 중단된 일이 없다. 우리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예수께서 범죄한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추수하시는 것을 보았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가 넉 달이 있어야 추수를 하겠다 하였으나 벌써 추수할 때가 되었다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은 그의 택한 백성들이 모두 구원의 문에 들어 오기를 기다리며 많은 시간을 허락하셨다.

 

땅에 곡식이 다 익었다’(15a)는 말씀은 교회시대에서 많이 들어 본 말씀이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주님은 씨를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하시며 추수 때에 천사들을 보내어 알곡은 곡간에 넣으시겠다 하셨다. 이것은 교회시대를 향한 예수님의 메시지이지만 영혼을 추수하시는 원리는 성경 그 어디에도 동일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님은 알곡을 거두신다.

 

이제 요한은 성전에서 나온 또 다른 천사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영혼을 추수할 이한 낫을 들고 계신 인자를 향하여 네 낫을 휘둘러 곡식을 거두라는 메시지를 듣는다. 나는 왜 이처럼 영혼추수에 많은 천사들이 동원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여러 천사들에게 나누어 맡기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도 어느 한 사람에 의해 교회를 장악하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나 아니면 다른 사람은 할 수 없다는 교만은 불순종이다. 하나님은 복음을 위해 많은 천사들을 동원하였고 그에 합당한 직무를 맡기셨다.

 

요한은 16절에서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기록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영혼의 추수의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3 39절에는 가라지는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라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 등장하는 추수꾼은 천사가 아닌 구름 위에 앉으신 금 면류관을 쓰신 인자이시다. 여기서는 천사들이 너무 바빠서 다른 일들을 맡기시고 주께서 친히 추수를 하신 것 같다. 그만큼 긴박한 상황인 것 같이 보인다.

 

B. 진노의 포도주 틀(17-20)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 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타디온에 퍼졌더라"( 14:17-20).

 

예수그리스도의 재림과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에 앞서 세상은 피로 물들게 된다. 이 내용은 이미 앞에서 여러 번 예고된 아마겟돈 전쟁의 단편을 전해주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이들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심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수께서는 인자 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5:27) 하셨다. 이제 그의 심판의 날이 다가 온 것이다. 이미 구원에 속한 자들의 영혼은 모두 하늘로 들어 왔고 이제는 심판의 때가 이른 것이다.

 

여기서 언급된 스타디온은 고대 운동 경기의 달리기 코스를 재는 단위로서 1 스타디온은 185미터이다. 그러므로 일천육백 스타디온이 얼마나 큰 범위인지를 짐작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아메겟돈은 헬라어로 무깃도로서 무깃도의 계곡은 185 제곱 마일에 해당된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마겟돈 전쟁을 예고 한 것이다. (우리는 계시록 16장에서 상세한 내용을 보게 된다.)

 

이사야 선지자는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을 인하여 무리를 밟았고 분함을 인하여 짓밟았음으로 그의 선혈이 내 옷에 뛰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 구속할 해가 왔으나 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음으로 이상히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내가 노함으로 인하여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인하여 그들을 취케 하고 그들의 선혈로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63:3-6)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부패한 적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 나라들은 익은 포도처럼 짓밟혀 터질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대 학살 이어서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남아서 이 끔직한 재앙을 겪지 않는 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있는 것이다. 이제 5장에서 잠시 쉬면서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살펴 보자.

 

(참조)  여기서 우리는 한가지 의문을 갖게 되는데 그러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다 순교한 것인가? 그러면 후일 이 땅에 살아서 천년동안 그리스도를 맞이할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것은 이미 계시록 12 13절 이후에서 언급되었다. 두 증인의 증거로 잠에서 깨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뱀의 낯을 피하여 패트라 암반도시에 들어가 3년 반 동안 양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14장의 이야기는 144000명의 순교자들의 역사로 앞에서 구원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달될  마지막 메시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