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11:15) 두 증인과 그리스도의 왕국
사도 요한은 10장 7절에서 ‘일곱째 천사가 소리를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이 메시지는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오심을 예고한 것으로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의 임무가 일단락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요한은 힘센 천사의 손에 펼쳐있던 작은책을 받아 먹었다. 이것은 이제 곧 일어나에 할 일들 다시 말하여 이스라엘의 마지막 남은 한 이레 곧 대환란 동안에 일어날 일들로 적그리스도의 멸망에 관한 내용들이다. 또한 여기서 요한은 성전을 척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이것은 예루살렘에 선 성전 을 언급한 것으로 여기서 우리는 시간적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 이유는 그 당시 계시록을 쓰던 요한의 시대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측량할 성전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한 이레 곧 대환란 방으로 들어간 사도 요한을 따라 그가 보고 전달하는 메시지를 살펴 볼 차례이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1-2)
A. 척량의 목적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라는 말씀은 성전의 크기와 넓이를 측량하라는 의미보다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에스겔서 40장부터 42장에서 성전 측량에 관한 내용들을 상세히 살펴 볼 수 있듯이 성경에서 성전 측량이란 의미는 오늘날 성도들의 믿음의 척도를 잰다는 의미와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비유는 스가랴 2장과 아모스 7장7절에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라 한 것은 인간의 잣대로 세워진 성전 곧 수천 년 동안 정통 유대주의자들이 생명처럼 의지해 온 망령된 믿음의 실체를 측량하라는 의미라고 하겠다. 이미 예수께서 이 땅에 세우신 하나님의 교회는 그 임무를 다하고 하늘 보좌의 영광 가운데 있는데 아직도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에서 경배를 하고 있는 이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인간의 완고함이 어떠한가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요한이 척량해야 할 성전을 생각할 때 역사적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요한이 측량해야 할 성전은 이미 함락된 지 20년이 지난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 성전으로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에서 돌아 온 총독 스룹바벨에 의해 지은 제2성전을 헤롯이 해체하여 60년에 걸쳐 로마양식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헤롯 성전은 예수님 당시에도 46년간 진행되어 A.D. 64년에 완성되었으나 예수님의 예언과 같이 몇 년 못 가서 파괴되었다(마24:2).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요한이 계시록을 쓰던 당시는 물론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예루살렘에는 아직 성전이 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이 척량할 성전은 장차 일어날 일 곧 요한이 해야 할 예언과 관련하여 예루살렘에 새로 건축된 성전이 틀림없다. 이것은 이제 곧 세상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어질 성전으로 오랫동안 이어 온 중동 분쟁은 종식되고 이스라엘에는 잠시 평화의 물결이 넘칠 것이다.
B. 측량 금지 - 이방인에게 허락된 곳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2절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는 말씀이다. 여기서 성전 밖 마당이란 이방인의 마당을 의미한다.
예루살렘 성전은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 있는 하나님의 임재하실 성소(naos)와 제사장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과 여인의 뜰, 이방인의 뜰로 구성된 성전(hieron)으로 구분된다. 그 당시 이방인의 뜰은 성전 밖 넓은 산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예수님 당시 이곳은 제물을 사고팔고 돈을 바꾸는 장소로 사용 되었다(요2:14). 그러나 문제는 사도 요한이 살던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전 밖은 이방인에게 주었으니 척량하지 말라는 말씀은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다.
C. 놀라운 예언 - 42개월 동안 이방인에게 짓밟힘.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말씀하시며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에워 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눅21:20) 하시며 다시 “저희가 칼날이 죽임을 당하여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21:24) 하셨다. 이 일은 이미 주 후 73년에 로마 티토 장군에 의해 성취된 일이다.
그 당시 티토 장군은 병사들에게 성전을 파괴하지 말라 명하였으나 술 취한 로마병사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성전 안에 입힌 금이 녹아 벽돌 사이로 흐르게 되어 이를 본 로마병사들이 칼과 창 끝으로 벽돌을 모두 파헤쳐 결국 주께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마24:2). 이후 예루살렘의 함락과 함께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야 했다.
1. 다니엘의 예언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이 깨달은 바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에 마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상고해 보자.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네 백성과 내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래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단9”24) 전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예정을 언급한 것으로 바울은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하나님의 언약이라’(롬11:25-27) 기록하였다.
계속하여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 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를 것이며”(단9:25) 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예루살렘을 중건하고 하나님의 아들 곧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 이 이레 곧 ‘69이레’의 기간을 언급한 것으로 오늘 우리는 69이레와 70이레의 사이에 곧 바울이 말한 바 이방인의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다니엘은 계속하여 “육십 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 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 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단9:26) 기록하였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로마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할 것을 말한 것으로 예수께서 이미 예언하신바 있다(마24:2).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유대인들은 홍수에 떠밀려 가는 재앙 속에 살아야 했으며 오늘날까지 그들은 전쟁의 소용돌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끝으로 다니엘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9:25-27)기록하였다.
이것은 2005년이 된 현재까지도 아직 일어 나지 않은 일로서 마지막 남은 한 이레 곧 칠 년 대재앙의 때를 언급한 것이다. 가브리엘 천사는 이 때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것을 예고 하고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으로 언약을 한다는 것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 문제가 세계적인 이슈가 될 것을 의미한다. 이로서 유대인들은 수천 년 동안 열망해 오던 성전 제사를 삼 년 반 동안 재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세상은 대환난에 직면하였고 우리 앞에는 영광의 그리스도 나라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 대환난의 때를 위하여 이미 주의 사도들을 통해 예고한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을 하늘로 들어 올리게 되는데 이 일은 계시록 4장에서 완성된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마지막 은혜의 시대 한 이레와 함께 세상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살펴 보자.
2. 에스겔의 예언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에게 “내가 그들을 만민 중에서 돌아오게 하고 적국 중에서 모아 내어 열국의 목전에서 그들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낼 때에라 전에는 내가 그들로 사로잡혀 열국에 이르게 하였거니와 후에는 내가 그들을 고토로 돌아 오게 하고 그 한 사람도 이 땅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인 줄 알리라”(겔39:27,28) 약속하셨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신 것이다.
3. 예수님의 예언
또한 주님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을 알라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마24:32-34; 막13:28,29) 하셨다. 여기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며 한 세대는 100년을 의미한다.
4. 이스라엘의 독립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이스라엘의 독립이다. 1948년 5월 이스라엘은 굴욕의 시대를 마감하고 전세계의 주목 속에서 독립하였다. 전세계 역사를 통틀어 멸망 당한 국가가 고유의 민족과 고유의 국가이름과 국가이념으로 회복한 나라는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로서 오직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세계 속에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 온 유대인들은 황폐한 땅을 옥토로 만들고 그들은 아직 팔레스틴과의 영토분쟁에 휩싸여 있으나 이방인에게 짓밟히던 예루살렘은 1967년을 끝으로 유대인에게 돌아 왔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지 못하였다.
5. 회교돔 오마성전(Mosque Omar)
오늘날 이스라엘 땅을 밟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언덕 위에 우뚝 선 황금성전이라 불리는 회교도들의 오마성전(Mosque Omar)을 볼 것이다. 아직도 이스라엘 민족은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눈물의 기도를 드리고 있다.
최근 예루살렘에 돌아 온 정통 유대인들 속에서 성전 재건하고자 하는 운동이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다. 그들은 회교도의 오마성전을 파괴하고 그곳에 다윗의 성전을 재건하려고 결사대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미 시온주의자들에 의해 성전 재건에 필요한 모든 설계와 자재들이 준비되었으며 또 성소에 필요한 모든 기구들이 완성된 상태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성전을 지어야 할 터 높은 바위 위에 회교돔(dome) 오마 성전이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곳을 파괴하려는 과격 시온주의자들의 시도가 있기는 하지만 유대인들이 이곳을 범하지 못하는 것은 회교 돔 경내 안에 솔로몬 성전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감히 성소를 범하는 죄를 범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은 회교도들과 종교적 갈들에 맞물려 서로 타협의 여지가 없는 아킬레스가 되고 말았다. 오늘날 같이 전세계 가운데서 날로 왕성해 지는 회교도들을 굴복시키고 그들의 메카 호마성전을 파괴하고 다윗 성전을 재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6. 적그리스도의 활약
최근 유대의 저명한 성경 고고학자들에 의해 과거 솔로몬 성전은 오늘날 회교 돔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는 새로운 학설이 제기 되고 있다. 카울프만 박사에 의하면 성소(naos)는 지금 회교돔이 있는 곳에서 북으로 100여 미터 지점이라 한다. 만약 이것이 확실해지면 이스라엘은 회교들과 더 이상 다툴 필요도 없이 성전재건에 박차를 가할 것이지만 이 일은 결국 적그리스도에 의해 실천될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새로 재건될 예루살렘 성전은 회교돔과 맞붙은 상태로 재건될 것이다. 우리는 이 일과 관련하여 에스겔서 42장 20절에서 놀라운 기록을 발견하게 되는데 에스겔은 성소 주위 담을 측량하게 되는데 그 담의 목적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려는 표시라고 기록하였다(겔42:20). 이것은 분명 새로 재건될 성소와 회교돔을 구분하는 담을 말한 것이라 생각한다.
성전의 재건은 적그리스도의 권세로부터 성취될 것이다. 그 이유는 그는 전쟁과 혼돈의 세상에 평화의 얼굴로 등장하여 종교적 갈들을 봉합하여 전세계적 합의를 이끌어 낼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요한에게 내린 성전 밖은 측량하지 말라는 명령은 참으로 절묘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II. 두 증인의 출현(3-6)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듯이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가지고 피가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3-6)
A. 그들의 정체 - 나의 증인(THE)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증거하실 때 항상 그의 증인들을 보내셨다. 예수께서도 그의 사도들에게 너희가 성령의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다. 이제 이스라엘을 마지막 구원의 시간 한 이레가 이르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두 증인을 보내셨다. 또한 계시록 14장에는 하늘을 나는 천사들이 복음을 전하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하늘을 나는 천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두 증인이 등장한 시점은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바 이스라엘 마지막 구원의 시간표 곧 남은 한 이레의 기간으로 아직 이 땅에 남아 복음의 메시지를 믿지 않던 유대인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역시 메시야 시대에 관한 메시지 일 것이다.
지금 그들은 지금 수천 년 동안 상실했던 성소와 예배를 회복하고 율법을 따라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메시야의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이 되면 랍비들은 메시야와 관련된 예언서를 가르칠 될 것이며 그 중에 스가랴서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1. 스가랴의 예언
11장 3절에서 천사는 사도 요한에게 두 증인을 소개하면서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하였다. 이것은 구약 스가랴서를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스가랴서를 살펴 보자.
스가랴 선지자는 바벨론에서 태어난 제사장 출신의 선지자로 스룹바벨과 여호수아를 따라 예루살렘을 돌아 왔다. 그러나 그는 아직 바벨론에 남아 있는 자들 곧 바벨론 제국의 생활을 청산하고 칠십 년 간 황폐해진 예루살렘 땅으로 돌아 가는 것을 꺼려 했던 자들을 향해 메시지를 전해야 했다.
스가랴는 이상 중에 주께서 천사에게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며 내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며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는 말씀을 들었으며 또한 주께서 네 명의 기술자를 보내어 예루살렘과 유다 땅을 헤치는 네 뿔들을 치우게 하심과 예루살렘을 척량하기 위해 보내신 한 사람을 보았다.
또한 스가랴는 여호와께서 제사장 여호수아의 옷을 더럽힌 사단을 책망하시며 그의 사자들에게 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 입히시며 그 앞에 일곱 눈이 있는 돌을 두신 것을 보았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을 위로하시고 예루살렘을 부흥케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였다.
2. 두 감람나무
스가랴는 이상 중에 순금 등대와 일곱 등잔과 등대 곁의 두 감람나무를 보았는데 그 뜻을 알 수 없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며 금 기름을 흘려 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냐”(스가랴4:11,12) 물으니 천사는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스가랴4:13,14) 설명하였다.
이 말씀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의 날에 그의 종들에게 친히 역사하실 하나님의 예정에 속한 것으로 복음을 믿지 않던 유대인들에게 있어 두 감람나무는 미스터리 속한 신비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늘 사도 요한이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 기록하므로 그들의 눈 앞에서 수천 년 동안 유대인의 뇌리 속에서 살아 있던 말라기 4장 5,6절이 성취된 것이다.
3.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 데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말4:5,6)기록하였다. 이후 메시야의 천년왕국을 소망하던 유대인들은 엘리야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 후 400년 동안 침묵하신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어 제사장 사가랴에게 보내어 그 아내 엘리자벳이 아들을 나을 것을 예고하고 “저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에게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들을 예비하리라”(눅1:17) 전하였다.
4. 세례 요한과 엘리야 미스터리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복음의 시대를 전파하였을 때 유대인들은 그가 오리라 한 엘리야일 것이라 생각하였다(요1:21). 또한 세례 요한이 증거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엘리야 또는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였다(마16:13,14). 이처럼 유대인들은 메시아 앞에 등장할 엘리야를 고대하고 있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상에 올라가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 장차 해 받으실 일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셨다. 이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임의로 대우하였다(막9:13) 하심으로 세례 요한이 엘리야 임을 증거 증거하셨다.
만일 세례 요한이 오기로 한 엘리야라 할 때 오늘 요한이 증거한 두 증인 중 한 사람이 엘리야가 틀림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을 생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앞에 엘리야가 등장해야 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가브리엘 천사는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며 그가 엘리야의 심령으로 왔다 증거한 것이다.
두 증인 중 한 사람이 엘리야라는 증거는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하며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말씀에서도 발견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예언을 무시하던 아하시야 왕이 자신을 데리러 오십부장들을 보냈을 때 두 번이나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들을 살랐으며(열하1:1-15) 또 아합왕에게 내가 말하기 전까지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을 것이라 하여 삼 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 비를 멈추게 하였다(약5:17).
5. 모세와 엘리야 에녹, 스룹바벨
그러면 또 한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은 모세 또는 에녹일 것이라 말하고 스룹바벨일 것이라도 말한다. 성경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라 하셨으므로 이 땅에 살던 사람으로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오른 사람은 에녹과 엘리야 뿐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체험하신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오른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에녹과 엘리야 일 것이라는 가정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는 두 증인 성경에 기록된 선지자 중에서 다시 올 것이라면 엘리야와 모세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 이상 중에서 장래의 일을 말씀하신 사람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인이 될 선지자 중에 율법의 대표자 모세와 예언자 중의 대표자 엘리야 보다 더 합당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성경은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신34:5,6)기록하였으며 또한 유다서 9절에는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을 할 때”라고 기록되었다. 아마 사단이 모세가 다시 증인으로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의 시체를 압류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B. 두 증인의 죽음(7-8)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 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7-8)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라는 표현은 매우 적절한 문장이다. 이 두 증인은 증거를 마 칠 때까지는 결코 그 누구도 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권능이 그들의 생명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요한은 두 증인이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을 소개하고 있다. 이 짐승은 말할 것도 없이 적 그리스도를 말한다. 요한은 계시록 17장 8절에서 이 짐승을 가리켜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라고 기록하였다.
1. 무저갱의 짐승
물론 그 당시에 적그리스도는 양의 얼굴을 하고 마치 평화의 사도처럼 세계적인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을 것이다. 이때 등장한 두 증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열심히 회개의 메시지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증거가 끝날 때쯤 곧 3년 반이 되었을 때 무저갱에서 올라 온 사단이 평화의 사자로 군림한 적 그리스도 속에 역사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두 증인을 죽이기 위해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겨우 두 사람을 죽이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기록은 매우 흥미롭기만 하다. 그러나 두 증인에게는 아무도 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하고 있었으며 불을 내리고 비를 멈추고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하고 그들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역병과 재앙이 임할 것이기 때문에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 적그리스도는 불안에 떨고 있는 사람들을 구한다는 명분을 얻어 최신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동원할 것이다. 그러나 두 증인이 죽은 것은 결코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할 1260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2. 큰 성 소돔과 애굽
결국 두 증인은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요한은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계11:8) 기록하였다. 이 말씀은 참으로 끔찍스런 말씀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눈이 언제나 예루살렘 위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대하7:16).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 가장 거룩하고 성스럽게 여기는 예루살렘을 가리켜 영적으로 소돔같고 애굽과 같다고 비유한 것을 통하여 그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악한 상태인가를 알 수 있다. 아마 이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와 같이 율법적인 종교활동이 강요되고 도덕과 윤리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계11:9)는 기록을 보아 두 예언자의 시체는 예루살렘 거리에 방치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 될 것이다. 또한 사흘 반 동안이라는 기록은 두 예언자의 시체가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특수 처리되어 전시될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얼마나 비 인간적이고 잔인한 일인가?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땅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시체를 보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에는 그 사흘 반 동안에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전세계사람에게 보이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3. 전세계적인 축제
이 일은 세계적인 톱 뉴스가 되어 전세계 메스콤이 앞을 다투어 보도할 것이며 전세계 사람들은 방안에서 실시간으로 보게 될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요한은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11:10) 기록하였다. 이 땅에 진리를 전하는 교회가 들림을 받게 되면 이 땅의 사람들은 더욱 악해질 것이다.
’기뻐하고 서로 예물을 보낸다’는 것은 큰 축제를 베푼다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축제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두 예언자의 시체에 이변이 일어난 것이다. 요한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 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11:11-12) 기록하였다.
4. 부활하는 두 증인
이 장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 전세계 지구촌 티브이 방송국에서는 매 시간마다 두 예언자의 시체를 놓고 크리스마스와 같은 축제를 즐기는 뉴스가 제공되고 있는데 갑자기 티브이 화면에 비치던 두 예언자의 시체가 살아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자. 이것은 정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이미 2000년 전에 유대의 갈릴리에서 있었던 것을 기억하라. 바울은 오백 여명의 갈릴리 사람들이 보았다고 하였다.
천사는 요한에게 그 시에 일어날 재앙을 전하여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 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 도다"(계11:13-14) 하였다.
오늘날 예루살렘에는 방대한 건축 건설 계획이 추진 중이다. 앞으로 예루살렘은 전세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도시의 십 분의 일이 지진으로 파괴된다면 그 때의 참화와 황폐함이란 어떠하겠는가 얼마 전 우리 앞에 일어난 파키스탄의 지진을 생각할 때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은 칠천 명의 죽음을 예고하고 있다. 나중에 티브이에서 칠 천 명이라는 보도가 나올 때 사람들은 기절을 하게 될 것이다.
III. 그리스도의 재림 나팔(15-19)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계11:15)
A. 일곱 번째 나팔과 세 번째 재앙
두 예언자들이 사람들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자 예고 된 세 번째 재앙인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진다. 이 나팔 소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의 나팔소리이다. 대게 많은 사람들이 이 나팔소리를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소개한 마지막 나팔소리와 일치시키려 시도한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을 억지로 갖다 붙이는 것으로 사실 이 두 가지를 동일시 할 만한 성경적인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이 날은 이 땅에 살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소망해 오던 영광스러운 날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따라간 구약의 성도들을 말하며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 하였다" 기록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다" 증거하였다. 이들은 모두 오늘 울려 퍼지는 일곱째 나팔소리를 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왕국의 선포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이 날에 하늘에서는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는 큰 음성이 날 것이다. 이 말씀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늘날 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옳다. 이 세상의 지배자는 사탄이다.
인간은 아담의 죄 값으로 인하여 모든 권리를 사탄에게 내 주었기 때문에 사탄이 세상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의 보혈로 값을 치르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께 대속하러 오셨다. 오늘날 주의 교회인 우리들은 이미 그의 피의 구속을 받은 예수그리스도의 소유물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 완전한 구속의 날까지 주의 성도들을 성령으로 인을 치셨다. 여기서 성령의 인이란 물건을 살 때 미리 낸 보증금과 같다. 그러므로 그의 보내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다.
B. 이십사 장로들의 경배
이때 하나님 보좌 앞의 이십사 장로들은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감사 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계11:17) 하였다. 여기서 왕노릇이란 이 땅의 최고 통치권을 의미한다.
계속하여 장로들은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 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 소이다 하더라"(계11:18) 하였다. 이것은 세상의 심판을 요청한 것이다.
이 말씀은 시편을 인용한 것으로 다윗은 이 날을 미리 말하여 "어찌하여 열 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들은 어느 시대고 끊임없이 분노한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세상에 오실 때도 그를 대적한 자들은 그 시대의 지배자들이었다. 그들이 주를 대적한 것은 모두 자기들의 왕의 자리를 빼앗길까봐 두려워한 것이다.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하였고 유대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통치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리스도를 빌라도에게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러나 일곱 번째 나팔과 함께 이 땅에 오신 만왕의 왕께서 철장으로 질그릇처럼 부셔 버리실 것이다.
끝으로 요한은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11:19) 기록하였다. 우리는 아직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 20장에서 이 땅에 열릴 천년왕국을 소개하고 있다. 그것도 아직 우리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 안의 언약궤가 보인다는 것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모세에 보이셨던 언약궤의 실체로서 우리는 모세가 본 하나님의 성전과 신비의 언약궤를 친견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니엘 선지자가 말한 것을 기억해 보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이 말씀을 생각하며 이제 우리는 12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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