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좌/계시록 강해

(계시록7장) 마지막 찬스

이요나 2007. 2. 24. 13:15

(계시록7) 마지막 찬스

 

오늘 우리가 살펴 7장은 특별한 내용들이 기록되었다. 하나는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환난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의 구원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성경에 예언된 가지 사실들을 기억해 필요가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70이레(25:12) 정하셨다 기록하였고 다니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예언을 근거로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만에 마치리라 예언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계속하여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70이래를 말하여 예루살렘을 증거 하라는 영이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 때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 이레가 지날 것이요’(9:25) 하였고 다시 육십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왕의 백성이 와서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 같을 것이며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26) 예언하였다.

 

계속하여 예레미야는 이레에 있을 일들을 말하여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하겠고 그가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것이며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27) 기록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 것은 예레미야로 말씀하신 육십 이레는 이미 역사 속에서 모두 성취되었고 아직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직 이레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계시록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언급한 이레 기간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보고 있는 것이다.

 

I. 봉인된 우리 하나님의 (1-8)

계시록 7장은 6장과 8 사이 대재앙의 일곱인 여섯째 인과 일곱째 사이의 삽입구이다. 역시 우리의 한계를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 없다. 우리는 6 마지막 절에서 자기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재앙을 바라보며 진노의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6:17)하고 외치는 사람들의 원성을 들었다. 여기서 이르렀다’(has come) 말은 현재 완료형으로 도착되었다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여 이상 돌이킬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

 

A. 천사(1)

후에 내가 천사가 모퉁이에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1)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6장의 내용들의 완료상태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다. 그러나 후가 어느 정도의 시간적 공간을 갖고 있는지 우리는 길이 없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모퉁이라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보고 성경은 하나님의 절대 영감에 의해 것이 아니라 말하며 이유는 모퉁이라는 표현은 지구가 둥굴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도 땅이 둥글지 않다고 기록하지 않았으며 성경은 한계 속에 있는 땅의 인간들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는 아직 인간의 지혜가 오늘의 과학과 문명에 도달하지 못한 시대였다. 그렇다고 해서 시대 사람들이 오늘날의 우리보다 지혜가 부족하다던가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히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문화와 예술과 철학은 그들이 발견하고 만든 테두리를 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땅의 모든 일들은 대주재이신 창조자의 예정 가운데서 발견되고 만들어져 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고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아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이 전혀 잘못된 표현은 아니다. 오늘날도 우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사방곡곡에 살고 있다는 표현을 쓰며 삼성의 제품들이 땅의 사방을 누비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지구가 둥근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소개되는 천사는 문맥의 내용을 보아 8장에서 언급된 일곱 나팔을 부는 천사 넷째 천사까지를 언급한 것이라 생각된다. 천사들은 모두 땅과 바다와 강의 재앙들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한다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성경에는 바람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주께서도 바람을 꾸짖으셨다. 스가랴는 병거를 보았는데 이는 하늘의 바람으로 세상이 주의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6:5) 증거했으며 욥은 바람은 하나님의 기운이라(37:9) 하였으며 예레미야는 바람은 하나님의 병거다(4:13) 하였다. 다니엘은 장차 땅에 일어날 나라들을 말하며 하늘의 바람이 바다로 몰려 불더니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다(7:2,3) 하였다.

 

오늘날 동남 아시아에서 한류가 불고 있다. 앞에 가을연가와 대장금이 뜨겁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전세계에서 코카콜라의 바람이 불었고 일본의 소니 바람이 불었었다. 시대를 따라 나라 사람들 속에서 문화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인가?.

 

이와 같이 교회 가운데서 여러 가지 바람이 불고 있다. 그러나 바람들이 좋은 것은 아니다. 바울은 주께서 사역자를 세우신 것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4:14)하였다. 따라서 땅에 일어나는 모든 바람과 풍조들은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바람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 생각해 필요도 있겠지만 그보다 바람이 불지 못하게 붙잡아 놓았다고 땅에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하겠다.

 

바람은 근원이 어디서 출발한 것인지 없지만 만약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바다의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 움직임도 없을 것이고 비나 눈도 내리지 않을 것이며 온도의 변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물론 태풍도 없을 것이라 좋은 면도 있겠지만 사람들은 공기의 유통이 없기 때문에 재해나 산업 폐기물로 쏟아낸 오염된 공기로 질식하게 것이고 비가 없는 상태에서 해로부터 오는 열을 그대로 받아야 하므로 지구는 온난화는 더욱 극심해 것이며 가뭄의 피해는 상상도 없을 것이다.  

 

B. 다른 천사(2-3)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권세를 얻은 천사를 행하여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2-3)

 

말씀은 앞에서 언급한 예레미야와 다니엘이 말한 이스라엘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한다. 바울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 하노니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 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것이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11:25) 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현시대를 돌아 보건 , 이미 구원자 되신 하나님의 기름 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에 오신 2 년이 지났고 지금 우리는 이방인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날을 고대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 7장의 말씀을 읽는 우리는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신 일들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믿으며 장차 땅에 시대를 분변하여야 것이다.

 

우리는 2절에서 언급된 다른 천사가 누구인지 정확히 없지만 사역적 면을 보좌 앞의 생물과 관계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소유권을 의미하는 도장이다. 에스겔 9장에는 마지막 살육이 있기 그릇을 가진 사람에게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는 내용이 기록되었다(9:1-7). 

 

신약에서 인치심은 세례(침례) 성령의 세례로 인식되고 있다. 침례는 내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 드리는 의식이며 성령세례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부르신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시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돋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선포되는 나라로 보아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문선명 교주나 박태선 교주와 같은 사람들이 돋는 곳을 우리나라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이것은 아전인수격인 해석일 뿐이다.

 

C. 하나님의 144.000

여기서 하나님의 종들이란 대환난 동안에 구원 받을 성도를 의미하는 것인지 구원 받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인지 여러 학설이 있지만 우리는 144000 사람들을 14장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다니엘과 바울이 말한 이레 동안에 구원 받을 이스라엘의 성도들이라 보아야 것이다.

 

요한은 4절에서 내가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 중에서 맞은 자가 십사만 사천이라기록하였다. 대하여 하나님의 왕국이라 자처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은 144.000명은 자기들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나 1930년대에 여호와의 증인의 신자 수가 144.000명에 이르자 그들은 다른 말로 변명을 하였다. 이처럼 이들이 말을 계속 번복한 이유는 주께서 자기들이 오리라 예언했던 때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의 계획(The World Program) 일으킨 하버트 암스트롱은 144.000명은 자신들의 조직이라 말하며 자기들 속에서 열심히 봉사를 하면 대환난이 때에 긴급연락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말을 유포하고 있다.

 

이들이 이처럼 말하는 데에는 성경을 영적으로 해석한다는 아전인수적인 발상에서 온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사람들이 일어나 지각이 없는 많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교의 경전으로 전락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치신 144.000명에 대하여 영적으로 해석해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 보고 144.000명을 인치라 해도 가능한 것을 하나님께서 없겠는가? 사람들은 자기와 관련된 사람을 인치겠지만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을 인치실 있는 분이 하나님 외에 누가 있겠는가?

 

또한 성경에는 이미 하나님의 인치시는 구체적인 방법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시된 일이 있었다. 과거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릇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장자들을 구원하신 있었다(12:3-14). 에스겔 선지자도 환상 중에 환난에서 구원 받을 자들의 머리에 먹으로 표를 하라는 말씀을 받은 일이 있었다.

 

요한은 5,6,7절에서 유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블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기록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신 유다 지파가 선두에 나타나고 있는 것은 성경적이 아닐 없다. 이스라엘 지파로 말하자면 야곱이 양자로 받아드린 애굽에서 낳은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포함하여 야곱의 열두 아들이 이에 해당된다(35:22-26). 그러나 흥미롭게도 여기에는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가 기록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에 빠지면 그를 백성에서 제하셨다. 모세에게 일러 네가 만일 책에 기록한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재앙이 크고 오래고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28:58,59) 하셨고 다시 너희가 하늘의 별같이 많을지라도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남는 자가 얼마 되지 못할 것이라’(28:62) 하셨다(참조 29:18-21).

 

열왕기상 12 18절로 21절에는 이스라엘의 에브라임 지파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세우고 백성들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못하게 했던 일들이 기록되었으며, 사사기 18 30절에는 자손이 자기를 위해 새긴 신상을 세웠다 하였으며 호세아 선지자는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 하였다.

 

나는 얼마 한국대사를 마치고 돌아간 이스라엘 대사가  어느 신문에 기고한 흥미로운 칼럼을 읽은 일이 있다. 그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유독 단지파만 행적이 묘연해졌는데 한국의 시조의 이름이 단군인 것과 한국의 역사가 5000년인 , 그리고 다른 민족과 달리 하나님을 사모하는 민족성을 감안 한국민이 지파에 속한 같다는 내용이다.

 

진실이야 주님께 물어 보아야 하겠지만 야곱이 임종 열두 아들들 축복할 때에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49:17) 예언을 생각할 때에 소름을 끼치게 한다. 과연 우리 민족이 지파의 요소를 갖고 있다면 무시무시한 예언이 아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수년 영국의 어느 종교학자는 장차 땅에 임할 적그리스도의 모형은   한국교회에서 보게 것이다 말한 일은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풍조를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러나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에스겔이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지파와 요셉 지파는 모두 다른 지파와 함께 기업을 분배 받게 된다(참조 48:30-34). 이로서 우리가 있는 것은 이들은 비록 144.000 속에 인치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그들도 모두 대환난을 통하여 구원 받게 것임을 있다. 

 

II. 구원의 보증(9-14)

후에 내가 보니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없는 무리가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앞에 서서 소리로 서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9-10)

 

A. 무리

여기서 다시 라는 시제가 나온다. 그러니 내용은 앞에서 언급된 144.000명을 인친 후의 일이 틀림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시제를 언급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계시록을 보다 깊게 음미하고 관찰하게 하신 배려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옷을 입고 나오는 무리들의 분포다. ‘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이란 땅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 국가와 종족과 언어를 초월한 모든 인류를 언급한 것이다. 따라서 나는 대환난 때에 다시 한번 구원에 대한 대각성 운동이 일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때까지 살아 남아 세상 재미를 보다가 하늘로 올라 생각은 아예 하지 말았으면 한다.

 

사실 그때는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 휴거를 후이기 때문에 구원을 향한 믿음의 투쟁은 스스로의 의지로 결정을 해야 한다. 성령이 함께 하는 세상에서도 믿음을 지키기 어려웠는데 적그리스도의 통치에서 자기 스스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옷을 입은 무리들은 말할 것도 없이 6 다섯째 인을 떼실 피의 순교를 통해서 제단 밑에 들어간 영혼들이다.

 

1.        승리의 종려 가지

오늘 우리는 7장에서 대환난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를 당하여 제단 아래서 그의 종들과 형제들이 차기까지 기다리던 성도들이 보좌 앞에 것을 본다. 수가 아무라도 없는 무리라는 것으로 보아 대환난을 통과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짐작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불행하게도 세상에 때에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여 휴거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이 제발 이들 속에 들어 있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휴거의 은혜는 혈육이라도 능히 없고 오직 온전한 진리의 가르침과 거룩한 기도밖에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옷을 입었다는 것은 이들도 거룩한 자녀가 되었다는 뜻이다. 또한 그들이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앞에 섰다는 것은 고통과 유혹을 이기고 승리에 도달한 것을 의미한다. 종려 가지란 유대인에게 있어 매우 낯익은 말이다. 종려나무는 대추야자에 속한 나무로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15 27절에 처음 소개된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속되어 광야를 통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들에게 내린 모든 질병을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며 그들을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 엘림에 장막을 치게 하셨다(15:26-27).

 

또한 예수께서 자기의 일을 마치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르실 무리가 종려 가지를 가지고 예수를 맞으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하고 영접하였다(12:13, 11:9,10). 여기서 호산나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하고 외치는 환호성이다.

 

   2. 구원의 노래

이들은 소리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외치고 있었다. 아무라도 능히 없는 무리의 함성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감격의 순간인가? 이들은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자기들의 구원이 자신들의 믿음과 능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희생하신 어린양께 있음을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진리를 진즉 깨달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미 바울은 교회를 향하여 우리가 자다가 때가 벌써 가까웠으니 우리가 처음 믿을 보다 가까웠음이라하지 않았던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때라도 구원의 진리를 깨달아 영원한 멸망을 당하지 않고 하늘 보좌에 오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없다. 대환난 중의 사람들 속에는 그들 속에 들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B. 모든 천사들의 경배(11-12)

이들의 고백을 들은 모든 천사들이 보좌와 장로들과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하며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로다 아멘하였다. 흥미롭게도 찬송은 장로들이나 생물이 아니라 모든 천사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천사들은 땅에 구원하심을 받을 후사들을 섬기던 천사들이라 생각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14) 하였다.  주님은 삼가 소자 중에 하나고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8:10) 하셨다. 우리가 사실을 믿을 비로서 우리가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성도로 택하심을 받았음을 있다(1:3,4).

 

천사들의 찬송은 5 11절에서 이미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을 나라와 제사장과 왕으로 삼으실 외치던 음성과도 같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다’(5:11) 하였다. 다만 이들에게는 ()대신 감사가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5장에서의 천사들의 찬송은 땅에서 부와 지혜와 힘을 포기한 사람들을 칭송한 것이고 7장의 이들은 부를 쫓다가 멸망을 당한 사람들을 구원하신 감사의 찬송이 틀림없다.

 

C. 장로의 질문

장로 중의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입은 자들이 누구며 어디서 왔느뇨’(13) 하고 물었다. 이에 요한은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답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이들을 없었을까 생각해 필요가 있다. 그들이 만약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성도였다면 요한이 모를리 없었을 것이다.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주님을 따라 변화 산상에 올랐을 모세와 엘리야를 눈에 알아 보았다. 물론 알아 있도록 주께서 영안을 여셨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만약 그들이 교회의 일원이었다면 교회의 사도인 요한은 능히 그들을 알아 보았을 것이다. 특히 요한은 사도 가장 나중까지 살아 남아 에베소 교회를 돌보고 있었고 밧모섬에 유배되어 주의 계시를 받아 계시록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교회의 성도였다면 요한은 눈에 알아 보았을 것이다.  

 

그때 장로가 답하여 이는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 말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대환난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지 않고 우상에게 정하지 않음으로 순교를 당한 믿음의 사람들이다.

 

당시는 땅에서의 교회시대는 휴거와 함께 끝났다. 진리 가운데 있던 성도들은 나팔 소리와 함께 성령으로 이끌려 하늘로 올라가고 땅에는 이미 예고된 7 대환난이 시작된 것이다.   더욱이 사도 요한이 없었던 이유 하나는 그에게 계시된 성경에는 교회의 휴거에 대한 말씀과 성도들이 받아야 하나님의 기업과 믿지 않는 자들과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진노만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III. 하나님의 약속(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A. 특별한 장소(15)

흥미롭게도 무리들은 정말 어려운 과정과 결단을 통해 하늘에 올라 왔지만 그들은 이미 하늘에 오른 교회와 같은 위치가 아니다. 이들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보좌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여기서 성전’(나오스) 지성소를 의미한다. 사실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들이 땅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던 곳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금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그러면 교회는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함께 누리며 그리스도의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19 참조). 베드로는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 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하였다

 

바울은 그를 위하여 자녀이면 또한 후사이니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후사니 우리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것이니라’(8:17) 하였고 다시 생각컨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없도다’(8:18) 증거하였다.

 

  1. 계속적인 보호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며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계속적인 보호와 어떤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공급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는 것은 그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이 얼마나 극심했던 것을 있다. 연속되는 재난 속에서 이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다.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않는다는 기록은 이미 바람을 불지 못하게 데서도 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비도 없고 눈도 없어 땅은 뜨거운 태양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영적인 축복

이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육체에 속한 것만이 아니다. 17절에는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의 모든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기록되었다. 사실 이러한 표현은 인간생활 속한 것이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이나 천사와 등등한 후사들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들은 부활의 영체로 그리스도의 영광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보좌 가운데 계신 목자 되신 어린 양의 인도를 받게 된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에 속한 것으로 그들은 생명수 샘으로 인도된다. 이미 하늘 영광에 있는 우리는 땅에 사는 동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생명수를 값없이 넘치도록 부어 주셨다.

 

또한 하나님은 이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셨다. 이것으로 이들이 세상에서 받은 고통의 눈물이 어떠했던가를 있다. 이들이 흘린 눈물은 감사의 눈물이 아니라 감당할 없는 환난으로부터 오는 고통의 눈물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백성의 수치를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이사야 25:8) 기록하였고 요한은 모든 눈물을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 갔음이러라’(21:4) 하였다.

 

이제 이들은 오직 예수를 바라보며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하고 찬양을 드리고 있다. 또한 찬송을 들은 모든 천사들이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을 하나님께 돌리고 있다. 이것은 이미 4장에서 요한이 하늘나라의 모습으로 생물이 하나님께 경배를 돌릴 이십사 장로들이 자기 면류관을 벗어 보좌에 던지며 경배하며 찬송한 노래이다.

 

우리는 오늘 무리들의 찬송 속에서 이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으며 이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과 힘이 있었음을 있다. 이것은 땅에 임한 고난이 얼마나 것인가를 대변하며 고통에서 그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대변하고 있다. 부디 나는 당신의 이름을 무리 속에서 보지 않게 되기를 기도한다.

 

B. 부활의 과정

여기서 우리는 부활의 과정을 살펴 보자.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덤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5:28,29)하셨다. 이것은 죽은 자들의 부활과 관련한 번째 주의 말씀이다. 유다는 에녹의 증언을 빌어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다기록하였다.

 

   1. 부활의 우선순위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고전15:13) 증거 하였고 다시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전15:23,24) 증거하였다. 이것으로 우리는 성도의 부활은 크게 둘로 구분되었음을 있다.

 

또한 우리는 그의 강림하실 때에 무리로 구분됨을 있다. 바울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일어나고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하였다. 이것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서 휴거하는 성도들을 언급한 것이다.

 

이것은 바로 공중에서의 혼인잔치를 언급한 것으로 주님은 이들의 복에 대하여 여자가 낳은 중에 세례 요한보다 자가 없으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니라’(11:11) 하셨으며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17:22) 하셨다.

 

2.        대각성의 시대

그러면 우리와 함께 휴거에 이르지 못하고 대환난 중에 구원 받은 사람들은 과연 누구일까 나는 이들은 땅에서 진리를 따라 살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에 휘말려 믿음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하고 넘어진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바울은 이들에 대하여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살후 2:9-12)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때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피로 구원을 받은 영혼인고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실 것이다. 그들을 위해 아들 예수께서 어린 양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이레를 남겨 두신 것처럼 믿는 이방인들에게도 마지막 찬스를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주를 믿지 않은 이스라엘이 말할 없는 고통의 세월을 통과해야 했듯이 이들도 굶주림과 목마름 속에서 고통과 눈물의 세월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고통의 세월의 때에 비로서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고 순교의 결단을 내리므로 하늘에 오르게 것이다. 이때에 주께서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되리라’(24:14) 하신 말씀이 성취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