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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20) 일곱 별의 비밀

이요나 2007. 2. 24. 13:43

(계시록1:20) 일곱 별의 비밀

 

(계1:20)"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요한계시록 1장 세번째 시간입니다. 요한은 9절에서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섬에 있었더니"라고 기록하여 자신의 입장과 상황과 목적을 증거하였습니다.

 

I. 요한의 증거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라는 말씀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증거'를  이미 2절에서'곧 자기의 본 것'이라 주석을 달았으며 주님은 20절에서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20절) 주석을 하셨습니다.

 

   A. 형제

나는 여기서  요한이 자신을 가리켜 우리를 '형제'라 칭한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호칭입니다. 내가 만약 빌리 그레험을 향하여 형제라고 한다면 세상이 다 웃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계에서는 날이 갈수록 형제라는 칭호가 살아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도 목사님 장로님 집사님 부장님 등 직분적 서열이 줄을 서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우리나라 교회에 두두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요한이 우리를 '형제'라 칭한 것은 주께서 계시록에서 지적하신 교회의 첫번째 문제점에 해당되는 것으로 우리들이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후 막달라 마리아에게  너는 가서  형제들에게 내가 전에 미리 말한 것과 같이 갈릴리에서 기다리겠다 전하라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영광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주인과 스승과 친구의 관계에서 이제 형제의 관계로 오신 것입니다.

 

형제란 피를 나눈 혈연으로 아버지의 기업을 함께 물려 받을 후사에 속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아버지의 아들이 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아버지의 나라를 함께 상속받을 자격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우리 교회에서 이러한 형제의 우의는 사라지기 시작하고 우열을 가리는 직제가 생겨났습니다.

 

만약 누가 어느 교회에 가서 목사나 장로를 향해 '형제여'라고 부른다면 그는 교회에서 출교를 당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2장에서 니골라당을 미워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시며 나도 니골라당을 미워한다 하셨습니다.  니골라당은 교회 안에 직제를 두어 성도와 사제의 서열을 만들어 놓은 이단입니다.

 

   B. 환난과 나라와 참음

또한 사도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한 자'라 소개하였습니다. 요한은 여기서 환난과 나라와 참음을 함께 묶어서 자신의 입지적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환난(둘립시스)란 말은 무거운 돌을 올려 놓은 상태로서 고난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었다 고백하였습니다(고후11:28).

 

또한 '참음'(휘포모네)란 피동적인 인내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속에 닥친 고난과 피할 수 없는 환난을 견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성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나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주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있을 환난을 경고하시며 '끝까지 견디는 자들은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하셨고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행14:22)했으며 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할 것이라(딤후2:12)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부름을 받은 사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환난과 참음의  필연적 사명을 받은 종들인 것입니다.

 

II.그리스도의 현신(10-16)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10-11)

 

밧모섬은 지중해 연안의 스포라데 군도에 속한 작은 섬으로 불모의 유배지입니다. 그곳은 에베소교회에서 52키로 정도 떨어진 곳으로 그 당시 에베소 감독이었던 요한은 황제숭배를 거역한 죄로 도미티안 황제로부터 유배되었습니다. 역사가 유세푸스에 의하면 요한은 끓는 기름가마에 던져졌으나 살아서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교회에 전달할 아주 중요하고 특별한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에 소용돌이 속의 에베소에서 그를 보호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할 수 있는 밧모섬으로 보내셨던 것입니다. 제롬은 요한이 밧모섬에 2년 동안 억류되어 있던 중 계시를 받고 도미티안이 죽자 풀려나 에베소에 와서 계시록을 기록하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A. 주의 날

여기서 '주의 날'이란 초대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며 떡을 떼었던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흥미롭게도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일주일의 끝이고 주의 날은 여덟번째 날로서 첫번째 날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매 주일 첫날에 헌금을 준비하라고 권면했습니다.

 

  1. 시공의 방

여기서 우리는 요한이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였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 이후에는 현실이 아닌 하나님의 공간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서 사십일 간 시험을 받으신 기록을 알고 있습니다.

 

마가는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셔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막1:12,13)기록하였습니다. 이 상황은 이 세상의 시공이 아닌 또 다른 시간과 공간의 체험입니다.

 

사실 사도 요한은 베드로와 형 야고보와 함께 하나님의 시공을 실제로 체험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세 제자들을 데리고 가이샤라 지방을 지나 높은 산에 올라 가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빛처럼 변하신 주께서 구름에 쌓여 모세와 엘리야와 말씀을 나누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때를 회상하며 지극히 큰 영광 중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다고 증거하였습니다(벧후1:17).

 

  2, 나팔 소리

요한은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에스겔도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 뒤에서 큰 소리가 들려'(겔3;12)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뒤에서 들렸다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을 대할 수 없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 하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팔 소리는  출애굽기에서 처음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멜 백성과 언약하실 때 그의 백성들 앞에 나타나실 때에 모세가 증거하여 "제 삼일 아침에 우롸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출19:16)기록되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날에 있을 일에 대하여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라"(마24:31) 약속하셨으며,  바울은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15:51) 하였고 다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을 좇아 강림하시리라"(살전4:16) 증거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에서의 나팔 소리란 주 하나님과의 만남과 관련된 상징 언어라 하겠습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나팔소리가 아니라 '나팔 소리 같은 음성'이라는 것입니다. 음성이 얼마나 크기에 나팔 소리 같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 나팔 소리 같다는 의미는 크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팔 소리가 우리에게 주는 신호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은 나팔소리에 익숙합니다. 기상 나팔 취침 나팔 옛날 영화를 보면 전쟁터에서의 나팔수는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3. 책에 기록하라

11절에는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피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라 기록되었습니다. 이 교회들은 에베소를 깃점으로 서북방향을 불규칙하게 돌아 마치 북두칠성과 같은 모양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킹제임스 성경은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이라 번역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를 흥미롭게 하는 것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라는 단서가 요한이 주의 형상을 서술한 처음과 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앞뒤에 도장을 찍어 놓은 것 같은 인상입니다)

 

또한  '너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으로 사도 요한이 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일곱 교회에 지대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우기 책에 기록하라는 것은 당시의 교회뿐이 아니라 주께서 오시기까지 이 땅에 전개될 모든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문맥을 따라 볼 때 주께서 말씀하신 요한이 본 것은 12절부터 16절 사이에 기록된 하늘에 계신 예수님의 형상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님은 20절에서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입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20) 하셨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요한이 본 주님의 형상이 일곱 교회와 역학적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B. 영광의 형상(12-16)

 요한은 하나님의 공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된 상황을 설명하여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12)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음성을 알아 보려'라는 표현입니다. 요한은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에 상당한 매력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금촛대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두개의 촛대를 연상하게 되는데 그 하나는 출애굽시에 광야의 성막에 놓인 촛대로서 한 몸에 중앙을 중심으로 양쪽에 세개씩의 가지를 가져 일곱개의 불을 켤 수 있는 메노라(Golden Menorah)입니다(출25:31-37). 또 하나는 솔로몬 궁전의 금촛대로서 좌우 양쪽에 다섯개씩 세운 순금 촛대(왕상7:49)입니다.

 

  1. 인자의 복색(12-13)

또 우리는 예언자 스가랴가 환상 중에 본 순금 등대의 일곱 등잔(슥4:2)을 연상하게 되는데 요한은 금촛대를 보는 순간 구약 성경에 기록된 금촛대를 연상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이렇게 리얼하게 표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촛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는 상징성을 갖고 있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습니다. 요한은 계속하여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요한이 인자같은이란 표현을 쓴 것은 사람의 형상과 같은데 딱이 사람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한 밤 중 이상 중에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계신 이 앞에 인도되는 인자를 보았습니다.(단7:13) 또 예수께서도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촛대 사이에서  발에 끌리는 옷을 입을 사람이란 대제사장 밖에 없습니다. 또한 금띠를 띨 수 있는 분은 왕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은 이십일일 금식 중 힛데겔 강가에서 전쟁에 관한  이상을 보았는데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고 허리에 우스바 정금 띠를 띠었다"(단10:5)기록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분은 살렘 왕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하나님 앞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베드로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벧전2:9) 하였습니다.

 

  2. 인자의 형상(14-15)

요한은 14절에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 형상은 다니엘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단7:9)라고 기록하였습니다.

 

   a. 양털같은 눈

또한 이사야 선지자는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여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8)기록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와 같은 표현이 기록된 다니엘서나 이사야서를 살펴 보건데 이것은 모두 감당할 수 없는 죄에 대한 사함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하시기 전에 죄사함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b. 불꽃같은 눈

'그의 눈이 불꽃같다'는 표현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다니엘은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단7:9)기록하였으며 히브리서 기자는 천사들에 관하여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히1:7)증거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깊고 은밀한 것이라고 능히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생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헤아리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다나엘의 마음(요1:48)과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한 나다나엘의 마음(요3:3)과 갈급한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요4:10) 재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제자들의 마음(막10:23)을 모두 헤아려 보고 계셨습니다

 

  c. 빛난 주석

요한은 계속하여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으며"(15)라 증거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도 우리는 다니엘서 10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그 몸은 황옥같고 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같고 그 물소리를 무리의 소리와 같도다"(단10:6)증거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세이레 금식 중 깨달은 큰 전쟁에 관한 이상이라고 주석하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다니엘이 7장에서 뵌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진노하심 속에서도 죄사함의 여지를 갖으신 대제사장의 복색으로 나타나셨는데 여기서는 심판을 앞에 둔 통치자이신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얼마나 다급했었는지 고령의 나이에도 세이레 동안이나 좋은 음식을 금하였습니다.

 

   d.많은 물소리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은 에스겔서에서 소개되고 있습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로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겔43:2)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에스겔이 이 글을 기록하면서 '이 모양은 내가 본 이상 곧 전에 성읍을 멸하러 올 때에 보던 이상 같고 그발 하숫가에서 보던 이상과 같다'(겔43:3)는 주석을 달았습니다. 따라서 이 내용은 에스겔이 10장과 1장에서 본 생물 곧 그룹들과 관계가 되는 말씀입니다.(겔10:19,20)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에스겔 10장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음란한 왕들의 시체를 거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제는 그들이 그 음란과 그 왕들의 시체를 내게서 멀리 제하여 버려야 할 것이라 그리하면 내가 영원토록 그들의 가운데 거하리라"(겔10:9)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말씀은 "만일 그들이 자기의 행한 모든 일을 부끄러워하거든 너는 이 전의 제도와 식양과 그 출입하는 곳과 그 모든 형상을 보이며 또 그 모든 규례와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율례를 알게하고 그 목전에서 그것을 써서 그들로 그 모든 법도와 그 모든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라"(겔10:11)는 기록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를 돌아 볼 때 주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성소에 거하여 거룩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맡은 사역자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하고 더럽습니까? 정말 입에 올리기 조차 부끄러운 일들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러한 자들을 향한 심판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우리가 다 반듯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증거하였고 또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살후1:6-9)기록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많은 말씀 가운데서 은혜와 복에 관한 내용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허물과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기 위하여 많은 권고와 권면과 책망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성경에서 이 많은 물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참으로 복받은 사람입니다.

 

  3. 날선 검(16-17)

요한은 16절에서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증거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앞에서의 모습은 구약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이었다면 16절에 기록된 모습은 부활의 승리와 영광 중에 계신 신약적 요소가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이 들려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맡은 교회의 사역자들이 그 오른팔 장중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이 자신들이 맡은 사역에 대하여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 손에 있는 일곱 별로서 성경에 기록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들입니다. 병을 고치고 예언을 하고 능력을 행하기 위해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께서 나를 태중에서부터 부르셨고 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셨다'(사49:2)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4:13,14)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그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고'라는 말씀은 이미 히브리서를 통해 전달된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나니"(히4:12)증거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 가기를 힘써야 할 우리를 향하여 하신 말씀으로 그 주체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그 제자들이 거룩히 보전되기를 기도하여 내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한다 하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를 거룩히 하옵소서 기도하였습니다(요17:14-17).

 

이사야 선지자는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라'(사11:4)기록하였습니다. 또 바울은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쳐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살후2:8)증거하였습니다.

 

    4. 해같은 얼굴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밝히 밝히시는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변화산상에서의 모습을 보며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마17:2)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요한은 주를 가리켜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요1:9) 기록하였습니다.

 

III. 그리스도의 명령(17-20)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19)

 

요한은 자신이 하나님의 시간 속에 이끌려가 호흡하는 사람으로 가히 보지 못할 하늘에 속한 비밀을 보고 있던 상황을 기록하여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같이 되었다' 증거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영광 중에 이 땅에 오실 예수의 형상을 미리 본 에스겔(겔1:28, 3:23, 43:3)과 다니엘(단10:8)에게도 나타났습니다.

 

만약 우리가 동네 목요탕에서 어느 고귀한 사람을 만나는데 그 사람의 신분을 몰랐다면 보통 사람으로 생각하여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등을 밀고 여러가지 말을 나누는 동안 그가 대통령이었든가 재벌 총수임을 알게 되었다면 우리는 크게 놀라고 말 것입니다.

 

이런 일은 베드로에게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베드로는 동생 안드레의 인도로 나사렛 예수님을 만나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개를 받고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갈릴리 목수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베드로는 동료들과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밤새도록  허탕치고 돌아 왔습니다. 그 새벽에 주께서 해변에 나타나 그물을 깊은 곳에 내리라 하셨습니다. 믿기지는 않지만 베드로는 주께서 하신 말씀이니 따르겠다 하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왼일입니까? 그물이 찢어지도록 잡혀 두 배를 가듣체운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창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아무 부담없이 읽고 들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커다란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이 들은 큰 나팔 소리와 같은 주의 음성과 금촛대 사이를 거니는 주의 모습을 보았다면 우리의 호흡은 멎고 말았을 것입니다.

 

  A. 처음과 나중

혼비백산하여 죽은 자같이 된 요한에게 주님은 오른손을 얹고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육체의 인간이 하늘의 신적 요소를 느낄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날 때 느꼈던 현상입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바다의 풍랑을 잠 재우실 때나 물위를 걸으실 때 두려워했으며 변화산상에서 구름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두려워했습니다.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호칭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 속한 칭호입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은 없느니라'(사44:6) 기록하였으며 다시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하셨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모태로부터 여호와께 속한 백성 이스라엘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을 들은 사도 요한은 택하신 이스라엘 족속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흥미롭게 하는 것은 오늘 요한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주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택한  이스라엘의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일곱별은 일곱교회의 사자라 하셨으니 말입니다. 따라서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라'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곧 택하심을 받은 모든 사역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B. 사망과 음부의 열쇠

주님은 계속하여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사도요한에게 정말 감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한은 예수의 사랑하는 자로서 그의 죽음과 다시 사심을 목격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로부터 사망의 문과 음부의 문이 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것은 인간만이 갖는 내세에 대한 생각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은 영은 하늘로 올라가고 짐승의 영은 땅으로 내려 간다 하였습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살아 생전에 내세를 준비하기 위해 종교를 만든 것입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시23:4)노래 하였으며 '여호와여 나를 긍휼이 여기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미워하는 자에게 받는 나의 곤고를 보소서'(시9:13)외쳤습니다.

 

또한 음부(하데스)란 믿지 않는 사람의 영혼이 죽어서 심판의 날까지 갇혀 있을 지옥입니다. 이곳은 주를 대적하는 사단과 거짓 선지자들이 심판을 받을 게헨나와는 다른 곳이며 또 타락한 천사들을 가둔 옥(타르타스)와도 다른 곳입니다.

 

우리는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의 영혼이 음부 속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며 주께 세상에 살아 있는 형제들에게 지옥의 소식을 전해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너희와 우리 사이는 깊은 구렁이 있어 서로 오갈 수 없으며 그들은 선지자들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를 받아야 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눅17:19-31). 

 

베드로는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벧전3:18)기록하여 주께서 타락한 영들이 갇혀 있는 옥에 내려가 구원의 메시지를 기롱한 영들에게 복음의 승리를 전한 사건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문과 음부의 문의 열쇠를 갖고 있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우리 주께서 생사의 열쇠를 갖고 계신데 우리가 비록 죽는다 해도 걱정할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은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이를 것을 말씀하시며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의 권세를 주셨느니라" 하시며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5-29)하셨습니다.

 

  C. 네 본 것

이 말씀을 하신 주님은 계속해서 "그로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명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란 접속사는 위에 언급된 것 즉 요한이 듣고 보고 겪은 모든 상황 전체를 포함한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하였지만 네 본 것이란 1장에서 요한이 본 그리스도의 형상이며 이제 있는 일이란 2장과 3장에 기록된 이 땅에 전개되고 있는 교회사 전체를 말한 것이며 장차 될 일이란 아직 이루어 지지 않은 일로서 하늘에 예정된 하나님 나라의 총체적인 일입니다.  

 

  1, 일곱 별의 비밀 

그러나 흥미롭게도 요한은 20절에서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알곱 금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기록하였습니다. 또 주님은 요한에게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11절) 하셨습니다. 따라서 요한이 본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일곱 교회와 그 사자들에게 미치는 지대한 영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일곱 별의 비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흥미롭게도 2장과 3장에서 살펴 볼 일곱 교회의 메시지 속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제외한 모든 메시지에서 1장에서  요한이 본 그리스도의 형상이  모두 삽입되어 있습니다. 만약 오늘날 주께서 당신 앞에  양털 같고 눈 같은 주의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은 회개에 관한 문제를 다시 점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우리가 단련한 빛난 주석같은 발으로 보았다면 우리는 우리의 행위를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2, 일곱 교회의 사자

여기서 '사자'(messengers)란  다른 성경에는 '천사'(angels)로 기록되었습니다.  천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다시말하여 하늘의 메시지를 전하는 배달부입니다.  후일 천사는 엎드려 절하려는 요한에게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이라'(계19:10)하였습니다.

 

20절 말씀은  문맥을 따라 볼 때 19절에서 언급된 '네 본 것'을 서술한 것으로 우리의 사고의 시선을 주목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계시록 서두에서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메시지는 불신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른 손에 일곱 별의 비밀에 관한 것으로 곧 일곱교회의 사자들에 관한 메시지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장차 될 일에 대한 것부터 살펴 볼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 지금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우리의  주인되신 예수께서 오늘 우리 앞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신가를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성경은 그 나타나신 형상의 어떠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더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습니다. 주께서 감하신 심판의 날은 화살처럼 빠르게 달려 오고 있습니다. 다음주 2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충분히 읽어 와 주시기 바랍니다.